일년 전 정선에서 십년 넘게 처박억아 둔 먼지투성이 액자를 끄집어낼 때 본색을 드러낸

폐질환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천형의 병이 되고 말았다.





그 때는 심한 호흡장애로 입원까지 했으나, 기관지 확장제인 ‘테오란-비’를 먹고
‘아노로 엘립타’를 매일 흡입하는 식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통풍으로 자이로릭까지 매일 먹어야하니 약통을 끼고 사는 편이다.
약 타러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들리는 게, 생활화 된지 일 년 가까이 되었는데,
담당의사가 묻는 말은 항상 똑 같다.






의사 : 담배 끊었습니까?
나 : 아뇨
의사 : 하루에 몇 개피나 피웁니까?
나 : 반 갑요.
의사 : 안 끊으면 죽습니다.
나 : 안 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의사 : 술은 얼마나 마십니까?”
나 : 소주 한 병 정도 마시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안 마십니다.
의사 : 술과 담배를 반으로 줄이세요
나 :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그냥 꼴리는대로 살다 죽는 것이 편하겠네요.






대책 없다는 듯이 “약이라도 잘 챙겨 드세요”라며 진료를 끝낸다.
한 달에 한 번씩 주고받는 대화가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데,
처음 몇 번은 고문처럼 느껴졌으나,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한다.






지난 5일은 ‘진주청국장’ 누님의 팔순이라 양재동에 갔다.
모처럼 남매가 만났으니, 어찌 술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다들 맥주를 마셨으나, 혼자 소주를 마셨다.
기분 좋아 옛이야기들 곱 씹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다 돌아왔다.





서울역에서 내려 지하도로 나가니, 노숙하는 천씨가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긴다.
“아제! 어디 갔다 오요? 술 한 잔합시다”
소주를 사주었으면 그냥 올 것이지, 같이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종이컵에 따라 두 잔 정도 마셨는데, 몸에 신호가 왔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어지러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천씨가 “와 그라요? 이제 다 됐구나”며 지하도 밖까지 부축해 주었다.
길 모퉁이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가누었다. 






뿌옇게 뒤 덥힌 미세먼지까지 가쁜 숨에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빨리 가는 게 상책이라 집 앞까지 왔으나, 4층까지 오를 자신이 없었다.
저만치 김원호씨와 동네사람들이 보였으나,
나보다 나이 많은 늙은이들에게 부축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없었다.






한 칸 오르고 쉬기를 수십 번 했는데, 드디어 4층 입구의 박씨 신발이 보였다.






“천국 오르기가 너무 힘들다”며 복도를 들어서니,
마치 저승사자 같은 놈이 한 쪽 구석에 버티고 있었다.
자세히 쳐다보니, 술에 젖어 사는 옆방의 알중 최완석이었다.






관속에 들어왔으니 이젠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아 뻗어 버렸다.
숨 못 쉬고 자다 죽는 것도 괜찮을 텐데, 죽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서야 정신이 들었는데, 라면 국물 생각에 물을 끓이다 생각 했다.
술과 담배를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낮은 방으로 이사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장터에서 점쟁이 할매들이 정영신씨에게 여러 번 들려주었다는 끔찍한 말이 기억났다.
“빌빌거리며 엄청 오래 살 겠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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