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빈

2월 이슈데이 / 이미령



추석 노래자랑 ⓒ조문호


2017년 어버이날, 동자동 새빛 공원에 처음으로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줄에 매단, ‘빨랫줄 사진전’이었습니다. 이웃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자기 얼굴이 있으면 가져갈 수도 있었습니다. 어버이날과 추석을 택해 세 차례 전시를 했으나, 꺼리는 이들이 있어 더 이상 사진전은 열지 않기로 했답니다,

동자동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조문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2017 추석 빨랫줄 사진전, ⓒ조문호


고층 빌딩 사이 숨겨진 작은 동네


3년 전 어느 날, 후배가 보여준 쪽방촌 동영상이 선생님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쪽방행을 선언했습니다. 고심하여 선택한 곳은 동자동. 교통이 편리하고, 친구들이 많은 인사동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바로 건너편 서울역은 유동 인구가 많지만, 동자동은 한낮에도 조용합니다. 고층 빌딩 사이에 위치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쪽방촌은 한 층에만 다닥다닥 붙은 방이 여덟 개. 방음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누이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공동으로 사용해야 해, 요리를 포기하는 집도 있습니다. 그나마 월세는 보증금 없이 약 23만원으로 저렴합니다.



어버이날  ⓒ조문호



가난하지만 정 많은 이웃들이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주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혼자 살기에 맥없이 누워 있을 거라 막연히 상상합니다. 하지만 마음 맞는 이웃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집은 훨씬 따뜻하고 깔끔했지만,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을 텐데 마음 편히, 즐겁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서울역 노숙인들도 동자동 이웃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더 호쾌히 배풀기도 합니다. 주머니 속에 단돈 만 원밖에 없어도,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빌려줍니다.



어버이날  ⓒ조문호



돈에 오염되지 않은 가난한 자들이 남았습니다.



선물나눔  ⓒ조문호



가난을 줄 서서 확인 받고 싶지 않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동자동에는 긴 줄이 늘어섭니다. 수량이 한정적인 ‘후원 물품 배급’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줄을 세우기 때문에 오히려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많고 병든 사람들은 줄을 설 기력이 없습니다. 조문호 선생님은 순번을 정해 골고루 물품을 배분하거나 늙고 아픈 사람들에게 직접 물건을 가져다 주는 게 어떠냐고 여러 번 건의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줄을 세우는 것이 활동을 홍보하기에 좋고, 물품을 나눠주기에도 편리하니까요.



추석 음식나눔  ⓒ조문호



기부하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은 정해져 있습니다. 겨울에는 전기장판, 여름에는 선풍기. 전기장판과 선풍기는 소모품이 아니기에, 한 개만 있으면 몇 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년 새로 기부가 들어옵니다. 쪽방에는 창고도 없어 난감합니다. 매번 받는 쌀과 김치, 라면도 좋지만 가끔은 새로운 맛도 궁금합니다. 쪽방에는 부엌이 없어 조리를 못하는 가구도 있습니다. 후원품을 줄 세워 나눠주기 보다 남영동 ‘푸드마켓’처럼 각자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 고르게 하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물건이 제 쓰임을 다하는 셈입니다.



2018 어버이날 빨랫줄 사진전 ⓒ조문호



작품 사진과 일반 사진의 경계는 따로 없습니다. 보는 사람이 판단할 몫입니다.


이런저런 불편한 점을 앞장서서 건의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찍혔다’는 조문호 선생님. 그래도 이미 3년 가까이 이곳에 살았더니 ‘좀 별난 이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더 이상 사진전은 하지 않지만, 사진 찍히는 즐거움을 안 이웃들의 요청으로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공들여 촬영합니다. 영정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이웃도, 그냥 자기 얼굴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 이웃도 있습니다.



선물나눔  ⓒ조문호



“진실한 사진이 가장 좋은 사진입니다.”


앞으로 계속 동자동에 거주하실 거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가능한 한 계속 있고 싶다고 답하셨습니다. 이미 재건축 조합이 들어서, 몇 년 후에는 모두가 쫓겨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곳에 살며 동자동의 마지막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동자동에도 우리처럼 다양한 개성과 취향을 가진 개인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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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이미령씨 ⓒ조문호


지난 달 ‘해피빈’ 이미령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동자동 글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만나기로 했는데,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노출되는 것이 싫어 쪽방촌에 관한 언론 인터뷰를 거절해 왔으나,

공익단체의 기부를 위한 인터뷰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찍는 이미령씨 ⓒ조문호


어렵사리 동자동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예쁜 아가씨가 예쁜 선물까지 사왔네요.

경찰 조서 받듯 충실하게 답했더니, 인터뷰기사를 보내 왔습니다.



이미령씨가 준 선물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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