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더러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까?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까?
늘 머리를 짓누르던 문제에 또 한 젊은이가 비참하게 희생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설비를 점검하다 벨트에 끼어 죽은 것이다.
꽃다운 스무 네살에 사고를 당했으나, 죽어도 그냥 죽지 못하고, 62일 만에 장례를 치루었다.






그 동안 유족과 여러 시민단체는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라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장례를 끌어 온 것이다.






그 결과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그의 죽음은 안전을 외면하고 효율만을 내세워 온 '공공분야 민영화'와
'위험한 일의 외주화'에 흐름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근로안전을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을 28년 만에 개정하게 했다.






숨진 김용균의 시신은 지난 9일 새벽 4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되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의 주도로,
사고를 당한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앞에서 1차 노제를 지낸 뒤,
서울로 이동해 광화문광장에서 2차 노제와 영결식으로 진행되었다.





영결식에 따라 유족과 장례위원, 시민들의 헌화가 이어졌고,
고인의 시신은 벽제의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되었다.
유해는 전태일 열사의 묘소가 있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이날 11시경, 태평로 흥국생명 앞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펼친 노제에서
참가자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안전한 일터와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비정규직 이제 그만'이라는 손 피켓과
'이윤보다 노동자의 생명'을 상징하는 보라색 풍선 등을 들고, 다들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쳐댔다.






이날 정오 무렵,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어머니 김미숙씨 등 유가족을 비롯한
이준석, 최규철, 백기완, 정동영, 심상정, 김세균, 이정미, 이수호, 서정숙, 이삼헌,
신유아, 김봉규, 김이하, 정영철씨 등 노동, 정치, 문화계 인사 등
약 2천 5백여 명이 함께하며 젊은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노구를 끌고 단상에 오른 백기완 선생은 ‘돈 밖에 모르는 사회가 용균이를 죽였다.
땅에 묻어야 될 것은 젊은 노동자가가 아니라 욕정 자본주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규철씨는 “발전소에서 벌어지는 죽음은 발주사들의 안전 불감증과 탐욕,
관리감독 기관의 허술함 때문이다”면서 “이 죽음은 사회에 의한 타살”이라고 말했다.






비인간적인 방송 환경을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와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무대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묻은 자식을 그리워했다.





어느 누가 그들보다 더 아프며 서러울 수 있겠는가?
어머니 김미숙씨는 “차별 없고 안전한 저승에서 잘 살아라”며 슬피 울었다.






'

춤꾼 서정숙씨와 이삼헌씨는 진혼무를 추었고,
소리꾼 장문희씨는 김용균이 듣고 자랐다는 ‘잘자라 우리 아가’를 불렀다.





영결식을 지켜보며, 오로지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백기완 선생께서 말씀하신 돈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에 살며 다들 돈에 중독되었는데, 과연 돈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렇다고 실패한 사회주의로 갈 수는 없잖은가?





재벌들의 의식변화가 선행되어 부의 재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와 함께 평등한 근로조건을 위한 법적제도 장치를 마련하라.






젊은 노동자의 죽음에 가슴아파 자리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들었던, 또 하나의 생각이다.
앞자리를 피해 뒷자리에 앉은 게, 겸손만이 아니라 행여 여론을 의식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여론을 그렇게 이끈 게, 과연 누구겠는가?

생각대로 세상의 삼대 적은 돈과 권력과 황색언론이었다.






또 하나 걸리는 건, 한참 좋을 나이에 죽은 김용균은 말할 것도 없고,
용균을 사랑했던 애인이 있었다면 얼마나 슬펐을까?
슬퍼도 슬프다고 내세울 수 없는 그 서러움은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그 불행한 죽음과 아픔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은, 오직 김용균을 잊지 않는 길 뿐이다.
돈과 불평등이 죽였으니,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각하면 된다.
모든 국민들이 돈의 마약에서 해방되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다.

돈에 끌려다니지 말고, 돈을 나누며 가지고 놀자.






김용균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

돈보다 인간애를 중시하는 가르침으로 기억하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등한 세상을 바라며 떠난 마지막 희생양이었다고...



사진, 글 / 조문호
























































































스물네 살 고 김용균 노동자는 1994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외동아들로 출생해 지난해 9월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했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그는 4조 2교대로 밤낮으로 일하면서, 최저임금보다 8만 원이 더 많은 임금을 기본급으로 받았다.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트랜스파워에 배치돼 일하다 입사 3개월 만인 12월 11일, 컨베이어벨트에 협착돼 사망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화력지회의 조합원이었던 그는 사망 직전인 12월 11일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그의 유언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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