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하는 이 위중한 시기에

줄 세우는 김치 나눔이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있었다.

 

자선단체에서 보내 온 김치를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누어 주는 연례 행사인데,

쪽방 주민들에게는 겨울을 날 수 있는 유일한 부식이라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린다.

이번엔 량이 많지 않았는지 알리지도 않고 나누어 주었다.

김치 나누어 주는 것을 몰랐는데, 옆방의 정씨가 공원에 줄섰다고 귀띔해 주었다.

 

아무리 전염병으로 외부 출입을 자제하지만, 안 나갈 수 없었다.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사람이 줄서 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먹을 것 찾는 사람들을 보니, 사는 게 전쟁이었다.

 

그렇게 줄 세우지 말라고 노래를 불러도 듣지 않더니,

한동안 코로나가 그들의 나쁜 버릇을 고친 줄 알았다.

편리한 시간에 찾아가는 방법이 서서히 정착돼 가고 있었는데,

왜 줄 세우는 병이 다시 도졌는지 모르겠다.

 

수량이 일정하지 않으면 구역이나 등급별로 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많은 김치를 건물 안으로 들이는 어려움이야 있겠다.

그렇지만, 동사무소에서 주는 나눔은 절대 줄 세우지 않는다.

메시지를 보내오면 틈나는 시간에 찾아 가면 되지않던가?

 

왜 쪽방상담소란 조직을 만들어 거지 길들이는 악역을 맡겼는지 모르겠다.

 

다들 점염병에 주눅 들었으나 모처럼 동네사람 만나니 반갑긴 반갑더라.

모처럼 동자동 새꿈 공원에 웃음꽃을 피웠다.

 

옛날 유행가 자락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방역을 따르자니 정이 울고, 정을 따르자니 방역이 운다.”

 

김정심씨를 비롯하여 몇몇 사람이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황춘화씨는 나를 보더니 죽은 서방 만난 듯 반색하며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잡은 손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옆에 있던 김정심씨 말이 걸작이다.

“이제 큰 일 났다. 저 사진 올라가면 조작가 색시 한데 머리 다 뽑힌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에 안 서러웠다.

술친구이자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빈자리가 너무 큰 것 같았다.

모처럼 이웃 만나 기분 좋았으나, 나를 보니 아들 용성이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용성이 따라 가고 싶단다.

 

하기야! 힘든 세상 무슨 미련이 있어 감옥살이 해가며 살고 싶겠나?

모진 목숨 스스로 끊을 용기가 없을 뿐인데, 코로나 따라 가는 것이 어쩌면 편할지도 모르겠다.

 

난, 동자동에서는 주식이 라면이라 김치가 없으면 안 된다.

어렵사리 김치는 탔으나, 김치 들고 사진 찍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전염병으로 마음도 편치 않아 먼저 들어왔는데,

오는 길에 홈리스 자활센터 최성원 목사를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다.

 

 낑낑거리며 4층까지 올라오긴 했는데, 방이 좁아 들여 놓을 곳이 없었다.

매 년 김치 탈 때마다 후회하는 것이 냉장고다.

 

오래 전 동자동에 입주할 때 정영신씨와 중고 냉장고를 사러갔는데,

내가 우겨 제일 작은 사무실용 냉장고를 샀기 때문이다.

좁은 방에 큰 냉장고가 버티면 너무 답답할 것 같은 배 부른 생각을 한 것이다.

 

살다보니 냉장고가 작아 냉동은 물론 반찬도 제대로 넣을 수 없었다.

냉장고를 비워 억지로 밀어 넣긴 했는데,

냉동 칸에 닿은 부분이 얼지 않을까 모르겠다.

 

나눔 덕분에 올 겨울 부식은 해결했으나, 걱정도 따랐다.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있었다면, 동자동에 줄 초상난다.

하기야! 노숙자들이 그렇게 무방비로 어울려도 걸린 사람이 없었으니,

코로나가 거지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제발 줄세우는 짓은 그만 끝내라.

 

사진, 글 / 조문호

 

한 때 서울역전을 떠돌던 부랑자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동지 날 보고 처음이니 일 년 가까이 된 것 같았다.

내복도 안 입은 행색을 보니 정신이 온전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기야!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 해도 용타 싶다.

 

한 보름 가까이 장돌뱅이 정영신씨 '장에 가자‘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덕분에 술도 제밥 얻어 마셨고 반가운 분도 많이 만났다.

코로나가 번진 일 년 동안 만난 사람에 버금갈 정도다.

그렇게 많이 만나도 별탈 없는 걸 보니, 아직 죽을 때는 아닌 것 같다.

 

동지 덕에 먹고 자는 문제도 쉽게 해결되었다.

낮 시간은 충무로와 동자동을 오갔지만, 밤에는 녹번동에서 개겼다.

 

다시 복귀했으나, 환경이 바뀌어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쪽창을 여니, 시베리아 벌판같은 찬바람이 몰아쳤다.

나야 문만 닫으면 얼어 죽을 염려는 없지만, 노숙자들은 어떻게 버틸까?

아무리 생각해도 얼어 죽는 사람도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정오 무렵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역전으로 갔다.

허급지급 허기를 메우는 자도 있고,

여기 저기 웅크려 잠들었거나, 드러누운 사람도 있었다.

간밤의 추위에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었겠는가?

 

노숙왕 김지은씨 한데 물었다. “간밤에 얼어 죽은 사람 없냐?‘고...

“사람이 그래 쉽게 죽나? 어젯밤은 맛배기에 불과한데...‘

 

몇 일 사이 김지은씨를 비롯한 몇 몇 부랑자의 움막이 모두 철거되고 없었다.

하필 추운 날 골라 철거하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모진 목숨,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사는지 모르겠다.

죄가 있다면 배우지 못해 사기를 제대로 칠 줄 모르는 죄뿐인데...

 

나도 어디가서 뭘 좀 먹어야 했다.

마침 엊그제 쪽방상담소에서 배급 탄 식권 두 장이 있었다.

한 장은 ‘한강오리탕’집 만원짜리 식권이고, 한 장은 ‘청국장’집 팔천원짜리 였다.

둘 다 13일까지 사용할 수 있어 비상식량으로 꼬불쳐 둔 것이다.

 

그러나 동자동 ‘청국장’ 집에 들어가다 문전박대 당했다.

“한 시 반 이후에 와요. 점심시간은 안 돼요”

쪽방 촌 거지행색에 앉기도 전에 쫓아 낸 것이다.

그 자리에서 식권을 찢어버렸다.

 

어떠한 이해득실로 식권을 발행했는지 모르지만,

위선의 자선이라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두 번째는 후암시장 부근에 있는 ‘한강오리탕’으로 갔다.

이집은 지난 여름에 갔더니, 친정아버지처럼 살갑게 챙겨주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대하는 태도는 똑 같았다.

주인의 곱고 아름다운 천성이 몸에 베어있었다.

 

옆에 있는 ‘경향신문’을 가져다보니, 죽일 놈의 전두환이가 일면에 나왔더라.

밥맛 떨어 질까봐 얼른 넘겼는데, 정말 신문 볼 것 없었다.

 

이어 정갈한 밥상이 나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오리탕을 먹었다.

코에서는 콧물이 눈에서는 눈물이 범벅될 정도로 맛있었다.

 

고맙다! 이게 온정이고 자선이다.

얻어먹는 각설이도 언젠가는 그 빚을 갚는다.

시간 맞추어 가족사진이라도 한 장 멋지게 만들어드려야겠다.

 

부디 ‘한강 오리탕’이 대박 나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돈이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돈 앞에는 혈육도 친구도 없는 비정한 세상이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 생각한다.

 

강남에 사는 부자가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쪽방 사는 빈민들이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돈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복권에 당첨되어 흥청망청 쓰다 쪽박 차는 경우도 보았고,

소박하게 살던 사람이 개발로 졸부가 되어 돈 장난으로 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돈이 권력으로 바뀌어 망가지는 명사도 숱하게 보아왔다.

 

인사동에서 건물을 몇 채나 가진 부자가 돈 밖에 모르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관광객이 사라져 그만 두었지만, 싸구려 잡화상 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이 많은 아내와 공부해야 할 자식까지 동원해 장사에 매달렸다.

살날도 많지 않은데, 그 돈이 아까워 어떻게 죽을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지만, 대개의 쪽방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배짱은 편하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이전에는 돈에 쫒겨 허둥댔지만,

세상에서 밀려나 욕심조차 놓아버리니,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며칠 전 동자동 새꿈공원으로 모처럼 동네 마실을 갔다.

가을 흔적만 뒹구는 공원에는 사람들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에서는 누군가 빵을 한 상자 가져와 여럿이 둘러 서 나누어 먹었다.

대개 없는 사람들이 정이 많아, 뭔가 생기면 나누는 걸 좋아한다.

 

한 쪽 구석에는 나와 같은 건물 사는 서씨 혼자 앉아 소주를 깠다.

소주 한 병 사들고 가서 술 친구가 되었다.

서씨는 평소에 말이 없어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아, 나도 딱 할 말은 없었다.

소주 석 잔 마시는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침묵만 흘렀다.

 

심심해 내가 먼저 영양가도 없는 말을 꺼냈다.

“서형! 한 가지 물어 봅시다”, “뭔데요?”

‘만약에, 서형이 복권에 걸려 일억이 생긴다면 뭐부터 하고 싶소?‘

 

한 참을 머뭇거리다 하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쓸데가 없네”

손가락을 꼬무락거리더니, 1억을 100명에게 주면 얼마지?“

내가 ‘백만원 아니요’ 했더니,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났단다.

 

"밤중에 서울역 가서 노숙하는 사람들 자리에 백 만원씩 두고 싶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돈을 보면 얼마나 좋겠나?.

어떤 사람은 쪽방에 들어와 같이 살 수도 있고, 밥도 굶지 않고...”

 

정말 귀 똥 찬 생각이라, 서씨가 갑자기 달리 보였다.

없는 사람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생각이었다.

돈 맛을 알아 돈에 중독된 사람은 절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다.

서씨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복권 한 장 사보자!

그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하여...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길 건너에 자리한 낙원동은 주머니 가벼운 노인들의 안식처다.

그러나 오 갈 때 없는 노인들의 도피처에 다름 아니다.

 

이곳에서는 만 원짜리 한 장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이발도 할 수 있고 헌책도 살 수 있다.

따뜻한 국밥으로 허기를 메우고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긴다,

그리고 대포 한 잔으로 시름도 풀 수 있는 곳이 바로 낙원동이다.

 

소뼈와 우거지로 밤 세워 끓여낸 국밥 한 그릇이 2천 원이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에다 이발도 염색도 5천 원이면 충분하고,

맥주 컵에 따라 주는 천원의 잔술 한 잔에 하루가 지나간다.

 

서쪽의 인사동과 북쪽의 익선동, 남쪽의 종로에 비해

낙원동은 제반 시설이 낙후된 데다 노인이 많아서 인지,

길 하나 사이에 가게 임대료조차 세배나 차이 난다.

 

낙원상가 지하에는 청국장으로 유명한 ‘일미식당’도 있고 ‘맛국수’와 ‘엄마김밥’도 있다.

탑골공원 북문 쪽으로는 ‘유진식당’ 등 싸고 맛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지난6일, 인사동에서 낙원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단 밑에 자리잡은 ‘다리 밑 집’에서 길만 건너면 낙원동이다.

탑골공원 북문 쪽에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장기판 하나에 훈수꾼은 여러 명 붙어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아! 씨발, 마가 왼쪽으로 갔으면 막을 수 있었잖아!"고

투덜거리자 구경꾼들이 모두 웃었다. 다들 처음 만났지만, 이내 친해졌다.

인천에서 왔다는 서씨는 "아는 사람 없어도 그냥 와서 이야기하다보면 친해진다"고 한다.

장기 두는 사람도 훈수 두는 사람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게 전과 달라졌을 뿐이다.

이곳은 사회적 격리도 통하지 않는 노인들의 천국이다.

 

탑골공원으로 출근하는 노인들이 늘어난 것은

무료 급식도 있지만, 파격적으로 싼 식당이나 이발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현궁 맞은편에 있는 노인복지센터와 낙원상가에 있는 실버영화관 등

노인들 시간 보낼 곳이 몰린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노인들에게 몸 파는 '박카스 아줌마'들이 종묘 쪽으로 옮겼다.

“나랑 연애한번 할래요? 잘해 드릴게”라며 박카스를 내미는 장면은

이제 탑골공원 주변에서는 볼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거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늙어감에 따라 찾아오는 죽음을 막을 수야 없지만,

노년의 가난함과 외로움, 그리고 노인의 성 문제 등 사회가 터부시하는

여러 요소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박카스 아줌마’가 아닌가 생각된다.

 

애잔하면서도 불편한 존재가 노인들이다.

어쩌다 나이 드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고통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가족 부양하느라 정신없이 돈벌이에 급급하다 

미처 재미있게 사는 '놀이'조차 배우지 못한 것이다.

몰입할 놀이도 없는 남자들에게 불어난 잉여시간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노인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거쳐야 할 인생행로다.

낙원동이 노인들의 도피처가 아니라 이름처럼 낙원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다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공원 주변엔 길 잃은 노숙자만 남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그들의 삶이 안타깝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해 졌다.

빈민들이야 코 구멍 한 쪽방이라도 있지만 노숙하는 부랑자가 걱정이다.

지난 화요일의 ‘새꿈공원’에는 몇 명 안 되지만, 쪽방주민보다 노숙자가 더 많았다.

썰렁한 공원에서 웅크려 자는 이도 있고, 몇몇은 술로 몸을 데우고 있었다.

웅크려 자는 머리 위에 걸린 ‘비주택 거주자 주거 상향사업’이란 현수막이 무색했다.

 

쪽방 밀집지역에 사는 ‘비 주택 거주자 이주지원을 위한 주거상향사업’이 시작 된지 몇 개월 되었으나

동자동 쪽방주민들에게 외면 당 하고 부랑자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쪽방 촌에 사는 대부분의 빈민들은 가구도 없이 몸뚱이 하나뿐이라 외곽의 임대 아파트를 원치 않는다.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방만 넓으면 뭐하냐?‘는 것이다.

 

교통 요충지인 동자동에서야 어디든 쉽게 나 다니지만, 외딴 곳에 가면 외출 한 번 하기도 쉽지 않다.

또 하나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은 그동안 줄 세워 구호물품으로 생색내며 빈민들을 길들여 온 탓이다.

그러니, 동자동에서야 굶어 죽을 염려는 없지만, 임대아파트에 가면 얻어먹을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일괄적으로 시행하지 말고, 사정에 맞는 다변화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

영등포 쪽방촌의 성공 사례를 참고하기 바란다.

 

당장 잘 곳도 없는 부랑자는 그 사업에 해당 되지도 않는다.

된다 해도 주민등록상의 문제나 단절된 가족 때문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신세다.

아무리 좋은 복지정책을 펼쳐도 빈민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으면 헛수고일 뿐이다.

 

하기야! 정치라는 게 본래 그런 거지 뭐...

집이 없어 길에서 얼어 죽는 사람 걱정보다, 생색내어 표 얻는 것이 먼저니까.

 

사진, 글 / 조문호

 

우려했던 일이 눈앞에 닥치고 말았다.

동자동 쪽방촌에 전염병 확진자가 생겼다는데,

문제는 쪽방의 화장실이나 주방 등 사는 공간 대부분이 공용이라 격리란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들 겁먹어 방에서 꼼짝을 안 하니, 굶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날씨가 쌀쌀해 침낭을 꺼내놓고, 라면을 끓여 허기부터 메웠다.

 

다들 뭐하나 궁금해 쪽방 건물 4개 층을 다 돌아봐도

방문 열린 곳은 아래층 장섭씨 뿐이었다.

 

이 친구는 책 읽는 것을 즐겨 온 종일 책만 읽는다.

 

밖으로 나갔더니, 사람 없는 공원엔 찬바람이 일었다.

천원으로 밥 먹는 ‘식도락’은 도시락으로 바뀌었고,

말 그대로 사랑방 역할을 해 온 ‘동자동 사랑방’조차 출입을 제한했다.

 

마침 ‘민족사랑교회’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일 돕던 정심씨가 고맙다며 날 꼭 껴 안아주네.

사진찍고 처음 받아 본 환대에 얼떨떨했으나.

날씨가 쌀쌀해 그런지 따뜻한 여자 품이 좋더라.

 

요즘은 밖에 나오는 분이라고는 고물 줍는 조인형씨,

몸 아픈 분들에게 도시락 배달해주는 원용희씨,

공원 주위를 맴도는 이남기씨 등 몇몇 밖에 안 된다.

그 외는 목숨 내놓고 사는 노숙자들뿐이다.

 

어쩌면 쪽방에 갇혀 티브이만 끼고 사는 사람보다 노숙자가 나은지도 모르겠다.

허구한 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으니, 이 시국에 누가 그렇게 즐길 수 있겠는가?

늘 취해 해롱해롱하니, 코로나도 피해 갈 것이다.

 

어쨌거나 정신 바짝 차려 쪽방촌의 감염은 막아야 한다.

자칫하면 동자동에 줄 초상난다.

 

 

코로나를 내 쫓는 굿이라도 한 판 벌일까보다.

 

사진, 글 / 조문호

 

간밤에 비가 쏟아져 쪽방에서도 시원하게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라면 끓이며, 서랍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핸드폰을 거는 전화로만 사용해 걸려온 전화를 가끔 확인해 본다.

거리두기의 한 방법이나, 이틀 동안 걸려온 전화는 한 통밖에 없었다.

 

요즘은 전시장 개막식은 물론 사람 모이는 술자리는 잘 가지 않는다.

숨쉬기가 힘들어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나, 사람들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입력된 번호에 전화를 걸었더니, ‘용산주거복지센터’란다.

용건은 LH공사를 통해 전세자금을 대출해 줄테니, 이사할 의향이 없냐는 것이다.

그 것도 무려 구천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대출해 준다고 했다.

 

세상 물정을 잘 몰라 전세 값이 그렇게 많이 올랐는지도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그 돈으로 집을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신용불량자에게 큰돈을 대출해 준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전세금을 담보해 두면 떼일 염려야 없겠지만, 이자는 갚아야 할 것 아닌가?

 

짐작컨대, 동자동 쪽방 촌 재개발을 앞두고 외곽으로 몰아내기 위한 방법 같았다.

짐도 없이 혼자 사는 빈민들이 임대주택이나 전셋집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대충 먹어 치우고 공원에 나가 보았다.

간밤에 내린 비에 노숙하는 병학이가 어떻게 잤는지 궁금했다.

 

잠자리에 가보니 깔판을 텐트처럼 쳐 놓고 있었는데,

끼니는 뭘로 해결했는지 돌 팍에 숟가락만 놓여 있었다.

술친구와 어울려 밤새 젖은 몸을 술로 말렸다.

 

공원을 북적였던 쪽방사람들은 한 둘 뿐이고, 빈자리를 비둘기가 차지했다.

어떤 이는 쪼그려 커피 한 잔에 시간 죽이고, 어떤 이는 빗자루 춤을 췄다.

머지않아 다들 쫓겨날 텐데, 이제 남은여생을 어떻게 보낼 건가?

 

재개발 하려면 주민 대책부터 세우고 추진해야 할 것 아닌가?

 

전셋집이나 임대아파트 같은 넓은 집은 필요 없다.

정붙이며 살아 온 외로운 사람들, 함께 살게 해다오.

 

사진, 글 / 조문호

 



추위 따라 찾아 온 자선행사가 얼어붙은 동자동을 녹이고 있다.
뜸 했던 동자동 나눔 행사가 날씨 탓인지 연이어 열린 것이다.
작년에 이어 찾아 온 ‘KT임직원’들의 방한복 나눔과 ‘삼성’ 후원으로 ‘사랑의 열매’에서 주는 식료품 나눔이다.




지난 11월26일은 KT에서 방한복 나누어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거지도 나름의 패션이 있어, 옷이라고 아무거나 입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옷을 줄줄이 걸어놓고, 순서대로 하나씩 골라 입게 했다.




매번 그렇지만, 여기 저기 살피고 사진 찍느라 꼬리 줄에 서기 마련인데, 작년에는 입을만한 옷이 없어 허탕 쳤다.
올해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운이 좋은지 검은색 롱 패딩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눈 짐작으로 하나 골라 입었는데, 좀 무겁긴 해도 담요처럼 따뜻하며 부티까지 났다.




동자동의 많은 사내들이 같은 옷을 골라 입었는데, 똑같은 디자인의 헌옷이 모두 어디서 나왔을까?
옷 안쪽에 이름 적은 조그만 쪽지를 붙여놓은 걸 보니, 임직원에게 나누어 준 옷을 다시 수거한 것 같았다.




내가 받은 옷 주머니에는 젖어 말라붙은 휴지뭉치와 함께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주머니를 제대로 뒤지지 않고 넘긴 것 같으나, 보너스로 생각하고 잘 썼다.




지난 4일은 식료품 나누어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이왕 줄 것이면 주민 숫자대로 주면 좋으련만 800개 선착순이라 적혀있었다.
그 부족한 200여개 때문에 또 긴 줄을 서야하지 않는가?
배분하는 쪽방상담소 담당자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도 모르겠다.




그 날은 날씨가 추웠지만, 회원증을 바코드로 바꾸어 시간은 많이 단축되었다.
선물상자를 하나 받아 풀어보니, 쌀과 라면, 김, 통조림 등 꼭 필요한 식료품만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일에는 동사무소에서 떡값 받아 가라는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5만원이 들었는데, 명절도 아닌데 무슨 떡값일까?.
주더라도 수급비 통장에 넣어주면 될텐데,..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피차 번거롭지 않은가.




쪽방 촌에 신경 써 주는 것은 고맙기 그지없지만, 쪽방상담소의 줄세우는 관행은 여전했다.

동자동 밖의 다른 빈민들도 이처럼 줄 세워 도움 주는지 모르겠다.




옷 받는 날 서울역 지하도는 여전히 추위에 떠는 노숙자들이 많았다. 
쪽방이 없어 방한복이 더 절실한 그들은 왜 도움 받을 수 없을까?
거지도 쪽방 있는 거지와 쪽방 없는 거지를 차별 하네.




아무튼, 올 겨울 얼어 죽지 않도록 도와주어 고맙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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