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저질러 놓은 일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정선은 물론 동자동과 인사동마저 물리치고 싶지만
무슨 악연이 있는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여기가면 저기 생각, 저기가면 여기생각, 숨겨둔 첩 처럼 뒤가 밟힌다.
해가 서울역 머리 위로 기울며,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요즘은 전시장이나 사람 모이는 곳을 잘 가지 않으니
정선과 녹번동, 그리고 동자동만 다람쥐 채 바퀴처럼 돈다.
하는 일도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러다 멍청이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 만사가 귀찮아지는 걸 보니 아마 갈 때가 된것 같다.
내일 새벽일찍 정선 떠나려면 녹번동으로 가야했다.
가기 전에 인사동서 소주나 한 잔할까?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약속 없는 혼 술이 싫어서다.
지하도에는 요구르트로 허기 메우던 노숙자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휴게소에는 밥집 문 열기만 기다리는 부랑자들의 지루함이 엿 보인다.
나도 밥 얻어먹기 위해 녹번동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래도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복은 많은 놈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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