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란 말은 영화 제목이 아니라

오갈 때 없이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이 내뱉는 체념의 말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시달려도 시원한 물 한 컵 마실 수 없으니,

산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그들을 위안해 주는 술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한 낮에는 마실 수가 없다.

아무리 이열치열이라지만, 오늘같은 더위에는 버텨내질 못한다.

 

다들 누워서 해 넘어가기만 기다리는데, 차라리 누웠을 때 조용히 데려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한쪽에선 시끌벅적한 찬송가 소리가 그들을 유인했다.

천당가고 싶으면 자기들이나 가지, 왜 불쌍한 부랑자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데, 한데 끌어 모아 어쩌겠다는 말인가?

 

'신천지'와 '사랑제일교회' 사건으로 온 국민이 고통 받는 걸 몰라서 하는 짓인가?

무슨 놈의 물 귀신 심보인지 모르나, 하나님에 미처도 더럽게 미쳤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는지 모르겠다.

죽고 나면 한 줌의 흙에 불과한 것이 인생인데, 천당은 무슨 천당?

그 광신도 무리 말처럼 세상의 종말이 온 것이 아니라, 돈에 병던 개독교의 종말이다.

 

동자동 쪽방에 사는 최완석씨가 노는 곳은 서울역광장이다.

대개의 쪽방 사람들이 새꿈공원에서 노는데 반해, 왜 그는 노숙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할까?

 

쪽방조차 없는 빈털털이가 더 인간적이란다. 이심전심이다. 

그래서 개털 주제에 술도 대부분 그가 산다.

 

어떤 사람은 그를 미친놈이라 구박하지만, 그가 미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미쳤다.

 

서울역 광장을 하릴 없이 돌아 다녔더니, 온 몸에 땀이 범벅이다.

그늘에 앉아 같이 쉬고 싶어도 거리두기란 강박관념에 가까이 하기 싫었다.

 

어쩌면, 다들 부랑자는 멀리하니, 그들 세계만이 안전지대 일수도 있다.

오히려 내가 그들을 감염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동자동 '새꿈 공원'으로 옮겼다.

쪽방 촌 사람들은 티브이를 끼고 살아 그런지, 나라에서 시키는 말을 참 잘 듣는다.

온 종일 곰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외출 한 번 하지 않는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생수를 나누어 주었으나, 사람이 없으니 물이 남아돌았다.

시원한 물이 아니라 그런지, 나온 사람조차 관심 두지 않았다.

 

담배 피우는 박상민군과 두 할머니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 한적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 갈 곳은 많아도 가고 싶은 곳이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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