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의 박구경시인(67세)이 지난 3월2일 오후10시, 서울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조정애시인의 페이스북에 올라 온 박구경시인 부고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승 가는 길에 순서야 없지만, 왜 착한 사람만 데려가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오래전 ‘진료소가 있는 풍경’시집 낼 때는 프로필 사진 찍으러 그녀가 근무한 ‘사천 북사동 보건소’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인사동 사람들 모임이라도 있으면 먼 길을 마다 않고 올라와 모두의 안부를 확인한 인정 많은 시인이었다.

 

너무 늦게 알아 문상도 가지 못했지만, 부디 극락왕생을 빕니다.

 

빈소 : 삼천포서울장례식장

발인 : 3월 4일 오전9시

장지 : 선산수목장

 

박구경시인은 경상대간호학과를 졸업하고, 한때 경남일보 기자와 사천북사동보건진료소장을 지내며, 96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진료소가 있는 풍경’,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국수를 닮은 이야기’, ‘외딴 저 집은 둥글다’, ‘형평사를 그리다’ 등이 있다. 98년 제1회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장관상을 수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고산 윤선도 문학대상, 경남작가상, 하동문학상을 수상했고, 경남작가회의 회장을 지낸바 있다.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자가용은 너무나 미끈하고/ 핸드폰은 점점 작아지고/ 디지털의 표정,/ 그 생각은 너무나도 엉뚱해지고/ 그 꿈들은 세련되고 약아빠졌으니/ 육중한 열 량 스무 량의 기차가/ 거친 쇳내를 풍기며 들어서는 바닷가 역사驛舍/ 사람들이 사철나무 울타리에 깃들어/ 아침 햇살과 바다 물결을 길게 이고 지고/ 사람들이 왔다야! 하며/ 흥청흥청 장터처럼 모여들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2007년 작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중에서)

 

이충재 평론가 “작품집들이 모두 머리가 아닌 발로 쓴 작품”

 

홍찬선 시인의 시집 '서울특별詩'가 출간(스타북스 출판사)됐다. 홍찬선 시인은 제10시집 『서울특별詩』 <시작보고서>에서 “서울은 양파”라고 비유했다. 양파를 까도, 까도 비슷한 모양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안다고 가보면 전혀 새로운 것들이 쑥쑥 불거져 나오고,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는 서울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홍 시인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서울 100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과거에서 현재를 찾고, 현재에서 미래를 가늠해보는 ‘특별한 작업’을 했다. 서울의 다양한 장소와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를 시로 소개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집 제목도 『서울특별詩』다.

 

홍 시인은 “시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도, 시는 손으로 쓰는 것도 아니다. 시는 발로 줍는 것”이라는 독특한 시론(詩論)을 편다. “발품을 팔아야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몸품을 팔아야 알 수 없었던 맛을 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가 고플 때마다 불쑥 떠나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시를 발로 주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꽃피는 봄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이열치열로, 울긋불긋 단풍비가 내리는 가을에는 넓고 깊은 혜윰으로, 함박눈 펑펑 내릴 때는 푸근한 엄마 품을 그리워하며 서울의 골목을 누비며 시를 주웠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다닐 때마다 “민들레와 소나기와 낙엽과 하얀 눈이 벗이 되어 코로나로 도둑맞은 삶과 시간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홍 시인은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해와 달이 뜨고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코로나가 아무리 몽니를 부려도 코로나를 이겨내고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며 “ 『서울특별詩』를 쓰면서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충재 평론가(시인)는 시평에서 “홍찬선 시인은 감히 타인이 흉내 낼 수 없는 열정과 세밀함을 겸비한 시인이며, 일정분야를 놓고 본받고 싶은 부분이 많은 시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이 번에 출간한 제10시집 『서울특별詩』 시집도 그렇고, 이전의 시집 서너 권 《남한산성 100처 100시》, 《가는 곳마다 예술이요 보는 것마다 역사이다》, 《아름다운 이 나라 역사를 만든 여성들》외 작품집들이 모두 머리가 아닌 발로 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열정을 지닌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집도 역시 그에서 멀지 않은 아주 가까운, 그리고 유사한 열정이 빚어낸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시집은 출간되지 않았다. 이는 시인 특유의 특파원, 기자, 편집자의 달란트가 총집결되어 이루어진 소산이란 점에서 우리가 편히 앉아서 문화적으로 큰 유익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를 선물로 받았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의 시인의 열정이 이토록 수많은 독자들에게 엔돌핀이란 감성을 선물하게 됨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평하고 “이 시집은 서울특별시의 문화사업에 관계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귀한 자료가 될 듯싶다. 그리고 시를 편협한 곳에 머물게 하여 자유를 잃고 있는 시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기쁜 마음을 전한다. 이제는 시인들이 시를 가지고 어떤 역할자로 나서야 할 것인가에 대한 아주 특이하고도 애정 어린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학문적 혹은 문학적으로 미시적 테마에 천착하여 유희의 대상으로만 치부하기엔 독자들이 너무 멀다. 그 책임은 여전히 시인들에게 있음을 부인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 시인들의 영혼이 지나치게 빈궁한 상태에 이르거나, 순수성을 잃고 방황하거나, 한량의 오두막집이나 기웃거리며 스스로 내적 멋과 에너지를 잃은 까닭이다. 그런 시인들이라면 홍찬선 시인의 열정과 문화를 사랑하는 그 삶에 관심을 갖고 배우기를 자청한다면, 아마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시집 『서울특별詩』의 대표 시 소개

 

1) 시인이 되자

 

가을에는 시인이 되자

풀벌레 귀뚜라미 세레나데에

며느리 얼굴 고추잠자리처럼 붉히고

한가위 보름달 두둥실 두리둥실

노란 국화 쿠린 은행과 사귀는 속에

 

겨울에도 시인이 되자

새하얀 고드름에 시래기 삭히고

모진 눈보라에도 씨종자 굳게 지키며

꽉 찬 사랑 들꽃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봄에는 젊음의 시를 쓰자

 

코로나 속에서도 아이는 태어나고

거센 비바람에도 어둠이 물러가듯

사는 게 힘들고 어려울수록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발 내딛는 용기로

여름에도 믿음의 시를 노래하자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말고

따듯한 마음 푸근한 살림 전하는 

사시사철 시인이 되자

거짓과 탐욕에 휘둘리는 가짜가 아니라

참과 양심에 우러나는 진짜 시인이 되자 

 

2) 서울광장

 

서울광장에는 삶이 있다

널찍한 대청마루에 두둥실 떠오른

파란 보름달을 맛보며 어슬렁거리는

느긋한 자유로움으로 

사랑의 삶이 퐁퐁 솟고

 

서울광장에는 문화가 숨 쉰다

121개 분수 사이로 아이들이 무더위를 식히고

하얀 스케이트장에선 추위를 뜨겁게 달구며

고향장터가 열리고 록, 드럼 페스티벌과 

공연예술제를 즐기는 문화가 꽃 피어

  

서울광장에는 역사가 살아 있다

고종이 대안문大安門 앞에 만든 도로와 광장이

3.1대한독립만세운동과 6.10민주항쟁으로 

2002 월드컵 붉은악마 응원함성으로 이어져

배달겨레를 한 마음으로 만든 역사가 서리고  

 

서울광장은 미래를 꿈꾼다

자동차에게 교통광장으로 내주고

사람은 땅 밑으로만 다니던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지고

삶이 아름다워지는 멋진 미래가 다가온다

 

3) 인사동

 

인사동의 시간은 

들쭉날쭉 흐른다

별 볼 일 있는 사람은 느긋하게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아인슈타인에 앞서 걷는다

 

인사동의 나이는

제 멋대로 먹는다

삶 맛 아는 사람은 맛갈스럽게

삶 맛 모르는 놈은 퍽퍽하게

갈지자 맘대로 오고간다

 

올 때마다 다른 모습 보이는

인사동은 인생판,

어떤 극본을 짜는지

별 볼지 못 볼지

삶 맛 알지 모를지 

 

그 사람이 그리는 대로

숨김없이 보여준다

빠짐없이 드러낸다

 

4) 해방촌에 뜨는 해

 

오늘도 해방촌에는 달이 뜬다

해방의 고통을 안고 태어나서

해방의 꿈을 바라며 살아가는 곳

 

목멱木覓산 남쪽 기슭 해방촌은 

아픈 역사를 기쁜 미래로 만들어 간다

 

고려 때 원元과 

조선 때 왜倭와   

대한제국을 강탈한 일제와

6.25 전쟁 후 미국의 군대가 주둔했던 곳

 

해방 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전쟁을 피해 온 피난민들과 

농어촌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 

사연을 벽돌 삼고 고통을 흙벽 삼아

비탈에 눈물로 일군 삶의 터전!

 

지금은 그 사람들 대부분 떠났고

해방촌교회와 보성여중고와 신흥시장이 

그날의 사연을 말없음표로 이야기하고

108계단이 경성호국신사를 증거하고 있는 곳! 

 

역사의 때를 벗고 

젊은 예술문화의 옷을 입고 있는 

해방촌에 오늘도 해가 발갛게 뜬다 

 

5) 운수 좋은 날

 

올바른 마음을 지키며 사는 게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헐떡이게 힘든 것은 

시대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창의문 밖 인왕산 오르는 길, 

부암동 무계원(武溪園) 부근에 

보일 듯 말 듯 어처구니없게 놓여 있는 

현진건 집 터, 표지석이 

시인의 아픔과 함께 알려주고 있다

 

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보다

일제에 항거했던 처절한 삶이 

친일의 떵떵거림 속에서 

나날이 잊히는 게 더욱 고통이라는 것을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무영탑 흑치상지로 대한사람의 얼을 

일깨우려다 불쑥불쑥 치미는 울화통에   

마흔 셋에 요절했다는 것을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와 함께 

죽을 때까지 일제에 항거했던 그가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웠던 그가

그토록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부암付岩동 목인박물관 목석원 부근의

현진건 집 터라는 표지석이 

시인의 외로웠던 삶처럼 

잘못된 시대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시집 『서울특별詩』의 대표 시 소개

 

1) 시인이 되자

 

가을에는 시인이 되자

풀벌레 귀뚜라미 세레나데에

며느리 얼굴 고추잠자리처럼 붉히고

한가위 보름달 두둥실 두리둥실

노란 국화 쿠린 은행과 사귀는 속에

 

겨울에도 시인이 되자

새하얀 고드름에 시래기 삭히고

모진 눈보라에도 씨종자 굳게 지키며

꽉 찬 사랑 들꽃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봄에는 젊음의 시를 쓰자

 

코로나 속에서도 아이는 태어나고

거센 비바람에도 어둠이 물러가듯

사는 게 힘들고 어려울수록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발 내딛는 용기로

여름에도 믿음의 시를 노래하자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말고

따듯한 마음 푸근한 살림 전하는 

사시사철 시인이 되자

거짓과 탐욕에 휘둘리는 가짜가 아니라

참과 양심에 우러나는 진짜 시인이 되자 

 

2) 서울광장

 

서울광장에는 삶이 있다

널찍한 대청마루에 두둥실 떠오른

파란 보름달을 맛보며 어슬렁거리는

느긋한 자유로움으로 

사랑의 삶이 퐁퐁 솟고

 

서울광장에는 문화가 숨 쉰다

121개 분수 사이로 아이들이 무더위를 식히고

하얀 스케이트장에선 추위를 뜨겁게 달구며

고향장터가 열리고 록, 드럼 페스티벌과 

공연예술제를 즐기는 문화가 꽃 피어

  

서울광장에는 역사가 살아 있다

고종이 대안문大安門 앞에 만든 도로와 광장이

3.1대한독립만세운동과 6.10민주항쟁으로 

2002 월드컵 붉은악마 응원함성으로 이어져

배달겨레를 한 마음으로 만든 역사가 서리고  

 

서울광장은 미래를 꿈꾼다

자동차에게 교통광장으로 내주고

사람은 땅 밑으로만 다니던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지고

삶이 아름다워지는 멋진 미래가 다가온다

 

3) 인사동

 

인사동의 시간은 

들쭉날쭉 흐른다

별 볼 일 있는 사람은 느긋하게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아인슈타인에 앞서 걷는다

 

인사동의 나이는

제 멋대로 먹는다

삶 맛 아는 사람은 맛갈스럽게

삶 맛 모르는 놈은 퍽퍽하게

갈지자 맘대로 오고간다

 

올 때마다 다른 모습 보이는

인사동은 인생판,

어떤 극본을 짜는지

별 볼지 못 볼지

삶 맛 알지 모를지 

 

그 사람이 그리는 대로

숨김없이 보여준다

빠짐없이 드러낸다

 

4) 해방촌에 뜨는 해

 

오늘도 해방촌에는 달이 뜬다

해방의 고통을 안고 태어나서

해방의 꿈을 바라며 살아가는 곳

 

목멱木覓산 남쪽 기슭 해방촌은 

아픈 역사를 기쁜 미래로 만들어 간다

 

고려 때 원元과 

조선 때 왜倭와   

대한제국을 강탈한 일제와

6.25 전쟁 후 미국의 군대가 주둔했던 곳

 

해방 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전쟁을 피해 온 피난민들과 

농어촌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 

사연을 벽돌 삼고 고통을 흙벽 삼아

비탈에 눈물로 일군 삶의 터전!

 

지금은 그 사람들 대부분 떠났고

해방촌교회와 보성여중고와 신흥시장이 

그날의 사연을 말없음표로 이야기하고

108계단이 경성호국신사를 증거하고 있는 곳! 

 

역사의 때를 벗고 

젊은 예술문화의 옷을 입고 있는 

해방촌에 오늘도 해가 발갛게 뜬다 

 

5) 운수 좋은 날

 

올바른 마음을 지키며 사는 게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헐떡이게 힘든 것은 

시대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창의문 밖 인왕산 오르는 길, 

부암동 무계원(武溪園) 부근에 

보일 듯 말 듯 어처구니없게 놓여 있는 

현진건 집 터, 표지석이 

시인의 아픔과 함께 알려주고 있다

 

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보다

일제에 항거했던 처절한 삶이 

친일의 떵떵거림 속에서 

나날이 잊히는 게 더욱 고통이라는 것을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무영탑 흑치상지로 대한사람의 얼을 

일깨우려다 불쑥불쑥 치미는 울화통에   

마흔 셋에 요절했다는 것을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와 함께 

죽을 때까지 일제에 항거했던 그가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웠던 그가

그토록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부암付岩동 목인박물관 목석원 부근의

현진건 집 터라는 표지석이 

시인의 외로웠던 삶처럼 

잘못된 시대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지난 4일 강민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에 정영신씨와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으로 문병 갔다.

병원 휴게실에는 달마선생 내외 분과 정승재교수, 서정란씨 등 여러 명의 문인들이 먼저 와 계셨다.

소설가 김승환선생은 먼저 다녀가셨고, 맹문제교수도 오실 것이라고 했다.






어디가 편찮은지 궁금해 “선생님 병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상사병이라고 대답하셨다.

다들 웃기에 먼저가신 사모님이 그리워 생긴 우울증 쯤으로 가볍게 여겼는데,

선생님 몰래 전해준 서정란씨의 이야기로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암이 곳곳에 전이되어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의사선생으로부터 처음 검사결과를 들었을 때는 선생님께서도 당황하셨으나, 모든 걸 내려놓았는지 여유롭게 웃으셨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오래 전 입원하셨을 때, 병의 위중함을 아셨으나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해 둔 것이다.

그 끔찍한 고통을 혼자 감수하며 틈틈이 인사동에 나와 주변사람들을 걱정하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무슨 말로 위안 드려야 할지 막막했으나, 내일이면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긴다니 눈앞이 더 캄캄했다.






늦게 오실 분을 맞으려면 피곤하실 것 같아 병실 침대에 눕는 것을 보고 돌아왔는데, 이제 인사동도 끝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떠나야 할 길이지만, 불 꺼진 인사동을 생각하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으나, 선생처럼 온 몸으로 사랑하신 분은 없었다.

터줏대감이며 친구였던 심우성선생도 떠나시고, 이제 선생님까지 떠나신다면 누가 인사동을 지킬 것이란 말인가?






강민 선생의 시 ‘인사동 아리랑2’ 황혼 편을 다시 읽어보자.

“붐비는 인파 속에도
내가 찾는 이는 없다
오늘도 인사동 걷기는 허전하다
추억처럼 불빛이 켜지고 있다
열이 오르며 목이 마르다
잃어버린 불모의 사랑이 허공을 맴 돈다
어딘가 전화라도 걸까
눈시울만 시큰할 뿐
휴대전화를 만지는 손가락은 뻣뻣이 움직이지 않는다
종로 쪽 멀리 남산이 다가오고
차츰 어둠의 장막도 깔린다.
나 이제 또 어디론가 돌아가야 하리
그이의 아지트였던 찻집<보리수>도 없어졌다
진공의 거리
어디선가 그리운 이들 목소리 들리는 것 같다
돌아가리
돌아가리
그런데 이 끝없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눈물의 의미와 그리움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을 밤의 공동(空洞)이 두렵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절절한 선생님의 시에 눈물이 절로 난다.





인사동으로 돌아와 약속한 공윤희씨를 만났다.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 병문안드리지 못함을 애석해 하며,‘메밀란’으로 갔다.
그 자리는 ‘산타페’가 있던 자리인데, 돌아가신 여운 화백의 아지트가 아니던가?






그리고 맞은 편 잡초만 무성한 ‘목인박물관’은 흑백현상소 ‘꽃나라’가 있던 자리다.
‘꽃나라’를 운영하던 신작가도 여운화백도 다 떠나버린 인사동이 더욱 낯설기만하다.






다행스럽게 찻집 ‘초당’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초당보살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아 늦게 나오고 일찍 들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가고, 나 또한 떠나가리라.



사진, 글 / 조문호

























강민시인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2016∼2017년 겨울, 노시인은 촛불을 들고 매주 거리에 나왔다.

함께 나온 이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그동안 시인임에도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한 죄책감을 조금씩 덜어냈다.

'지난해 겨울의 이야기다 / "머릿수나 채워야지." / 그때 배추와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만나 / 광장으로 갔다 / 그냥 집에서 죽치고 있으면 뭔가 죄짓는 것 같고 / 피가 끓어서 광장으로 나갔다 / 이윽고 켜지는 촛불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 (…) / 밖에서는 다시 촛불의 열기가 올랐는지 / 백기완 작시의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광장에서' 부분)

1962년 '자유문학'에 '노래'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잔잔한 창작 활동을 한 시단 원로 강민 시인의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창비)가 출간됐다.





시인은 문단에 발을 들인 지 30년 만에 첫 시집을 냈고, 시력 57년 동안 단지 네 권의 시집을 펴냈을 뿐이지만 '걸어 다니는 한국문단사'라 불릴 만큼 문단의 산증인으로서 문학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시집 4권 중 94편을 가려 뽑고 신작 시 4편을 더해 완성된 이 시선집에는 혼돈의 시대를 힘겹게 산 시인의 미로 같은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군사 정권, 최근 촛불 정국까지 노시인은 80여년을 살아오며 몸소 겪은 삶의 애환과 시대의 고통을 가슴에 안아 들고 자기만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늘 밑바닥을 견뎌온 그의 시에는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도 생생히 눈앞에 그려볼 정도의 치열한 시대 인식과 역사의식이 담겨 있다.

'요란한 불자동차 소리 나더니 / 깃발, 옷가지, 손수건 따위를 흔들며 소리치는 / 신문팔이, 구두닦이, 막노동자, 노점상, 지게꾼 같은 / 누추한 몰골의 젊은이들을 뒤칸에 잔뜩 태운 소방차가 와 멎었다 / (…) // 시내 곳곳에서 함성이 일고 / 저녁 어스름이 깔린 거리에서 / 나는 비겁한 방관자였다 / (…) // 그때 학생들이 앞장선 4·19의 혁명은 / 어쩌면 이렇게 소위 양아치들, 밑바닥 민초들의 가담으로 승리했는지도 모른다'('비망록에서1' 부분)

'"이놈의 전쟁 언제 끝나지. 빨리 끝나야 고향엘 갈 텐데..." / 때와 땀에 절어 새카만 감발을 풀며 그는 말했다 / (…) "우리 죽지 말자"며 내밀던 그의 손 / 온기는 내 손아귀에 남아 있는데 / 그는 가고 없었다'('경안리에서' 부분)

"전쟁 때 인민군이 동네를 점령해 자꾸 자기네들에 협력하라고 하니 시골에 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지. 걷다가 경안리 부근에 주막에 묵으러 들어갔는데 밤이 되니 북한 인민군이 들어오더라고. 얼굴이 빨갛고 뿔이 났다고 배웠는데 걔네가 그렇게 신사적이데. 그중 한 친구가 내 옆에 앉았는데 함흥에서 왔다며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니들이 북쪽에서 쳐들어오니까 남쪽으로 도망간다고 했지. 그랬더니 픽 웃네. 밤새 얘기하다가 이 친구가 먼저 떠나는데 배웅하러 나갔더니 손 내밀면서 '야 우리 죽지 말자' 그러더라고."(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시인은 "시는 누구나 알기 쉽게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학이니만큼 상상력과 서정성이 들어가야겠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쓰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도 시대의 억압 속에서 운동권 젊은이의 죽음을 담은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등 은유를 담은 시 여러 편을 썼다고 설명했다.

'노을 비낀 유연한 강물에 / 네 짧았던 생애가 / 눈물로 피는 데 / (…) // 너는 사자였지 / 아니, 호랑이였지 (…) 못난 놈 / 잘난 놈 / 보다 못해 뛰쳐나온 / 한국의 호랑이였지 // 물이야 막힌들 못 흐르랴 / 잠시의 고임 뒤엔 넘쳐서 흐르지 / 영산 낙동 금강 / 한수 살수 두만 압록 / 막아도 막아도 물은 넘치고 /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부분)

통일과 민주주의, 민중 해방에 대한 오랜 소망을 간직한 시인에게 역사의 미로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그는 지사적(志士的) 심성을 늘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지금도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염무웅 평론가가 "80대 중반을 넘긴 강민 시인의 건강이 많은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는 까닭이다"고 적은 이유다.




도서출판 지성사 刊, 신국판, 96쪽(9,000원)
2018년 11월 15일 (목) 15:50:25 이가온 기자 press@sctoday.co.kr



시인이 만난 사람들, 시처럼 아름답다.


올해 희수(喜壽, 77세)를 맞이한 이행자 시인이 시집 『아름다운 인연』을 펴냈다.

40대 끝자락인 1992년 ‘전태일 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7권의 시집과 3권의 산문집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시집에는 모두 6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표제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집의 중심은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라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때로는 그들에게서 상처 받고 때로는 위안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러한 관계 맺음 속에서 좀 더 특별한 관계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에서 노래한 시인의 인연 가운데 이미 고인이 된 ‘아름다운 인연’들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름다운 인연’도 있다.

그리고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인이 한때 사랑했거나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인연도 노래한다.


1부는 고(故) 고정희 시인, 김진균 선생, 장기려 선생, 이소선 여사, 소설가 이은성 선생을 비롯해

시인이 존경하는 사람들이 중심입니다. 이후 고즈넉한 산사를 노래한 시는 마음을 정갈하게 여미게 한다.


2부는 ‘노래로 내게 온 너에게’ 연작시 9편을 비롯해, ‘그’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 안타까움이 가득 담겼다.


3부는 시인이 현실에서 맞닥뜨린 일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들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켜켜이 추억이 서려 있던 곳을 떠나 용인시로 정착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비수처럼 날카로우면서도 회한 가득한 감정으로 풀어낸다.


4부는 시인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화가, 사진작가, 조각가에 대한 헌시(獻詩)로 엮었다.

시인이 만난 사람들, 시로 승화한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인연.

이행자 시인은 허사(虛辭)를 싫어한다. 그저 자신이 느낀 대로, 본 대로 거침없이 써내려 간다.

시인이 대상으로 하는 자연이든, 사건이든, 사물이든 그리고 사람이든 시인의 직관과 본능에 충실한 묘사가

그래서 더욱 절절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행자 시인과 오랜 세월 함께해온 강민 시인의 「추천의 글」로 마무리 짓기로 한다.


이행자시인/ 조문호사진


  





이행자 시인은,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또 혐오한다.

그이가 써온 대부분의 시가 그이가 품어 안은 사람들이다.

『시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 사람아』…….

문익환 목사, 김정한, 김진균, 박현채, 리영희, 이소선, 이수호 선생 등 손꼽기 힘들 정도다.

그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의롭고 낮은 데로 임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숙원인 분단 종식과 민중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번 시집 『아름다운 인연』을 봐도 역시 그렇다.

대뜸 눈에 띄는 시인 고정희, 문병란을 비롯한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그뿐인가 언론, 문화계, 운동권의 이름난 이들……수많은 ‘노래로 온 너에게’ 그이는 끝없는 애정을 쏟는다.

그러다가도 뭔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칼날처럼 잘라 버린다.

나는 그이의 주변에서 그렇게 밀려나가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이 결벽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독립운동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숱한 고난을 겪은

그이의 성장기와 특별한 생활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매사에 우유부단한 나는 그래서 툭하면 야단을 맞는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그이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이행자 시인의 풍요한 인맥과 그이가 지니고 있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분위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번 시집 역시 ‘아름다운 인연’이라는 표제다. 부디 날개를 달고 낙양의 지가를 올리기 바란다.


- 강 민(시인)-

[이행자 약력]
1942년 서울에서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나 1990년 제3회 ‘전태일 문학상’의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시집 『들꽃 향기 같은 사람들』, 『그대, 핏줄 속 산불이 시로 빛날 때』, 『은빛 인연』, 『11월』 과 산문집 『흐르는 물만 보면 빨래를 하고 싶은 여자』, 『시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 사람아!』, 시화집 강민· 이행자 『꽃, 파도, 세월』, 시선집 『파랑새』를 펴냈다


         

"사회 부조리나 인간 만행 고발하고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이 풍자와 해학으로승화돼 딱딱하지 않고 즐겁게 읽혀"


2018년 11월 13일 (화) 22:19:37 -서울문화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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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기자 press@sctoday.co.kr

목 축이는 새
 
-전략-

달고 단, 물 한 모금
얼마나 돌고 돌아, 예 왔을까
10년 전, 바이칼 호수의 물이
100년 전, 대서양의 물이
1000년 전, 천산산맥의 눈이
수증기 되고
구름 되어 떠돌다
이곳에 와
비로 내렸는지도 몰라

강렬한 볕으로
소음이 잦아진 텅 빈 오후
새 한 마리가
공원 수조에서
물 한 모금 쪼고 있다
 
                               - 캘리포니아 몬트레이(Monterey)에서

탄생(誕生)
 
100억 년 전,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주장은
별 의미 없다
내가 첫울음을 터뜨렸던 것은
나의 탄생과 함께, 비로소
우주가 탄생된 기쁨에서였다
 
-중략-
 
우주는 존재의 목적이 없다
있다면
내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 목적일 뿐
내가 존재치 않는다면
은하계도 안드로메다대성운도 있거나 말거나다
내가 적멸하는 순간
우주도 소멸한다 -후략- (끝)


  
▲이만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삼겹살 애가』,다미르출판사 刊. (10,000원)


























‘읽히는 시’를 표방하며 2015년 12월 출간되어 우리 사회와 시단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이만주 시인의 첫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이 그러했듯이 이번 시집, 『삼겹살 애가』도 예사롭지 않다. 최소한, 시집을 덮는 순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시인과 시는 많아도 시가 멀어진 시대에 시집 『삼겹살 애가』는 읽히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

이만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받아든 사람들 중에는 이번 시집이 이 시인의 ‘두 번째’라는 것에 의아해 사람들이 많다. 그 주변에서 조차도 그의 시집이 열권쯤 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를 따져보면 그가 기행문을 비롯, 무용평론 등 산문을 끊임없이 써 왔지만 어느 자리에서든 시를 가까이 하고 기꺼이, 자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서정시가 주를 이루는 우리 시단에서 서사와 아우른 깊은 사색이 담긴 시로 한국 시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이만주 시인. 그에 대해 충북대 국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임보 시인은 “이만주의 시풍은 호방하다. 시야가 거시적이다. 사회의 부조리나 인간의 만행에 대해 고발하고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이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되어 있어 딱딱하지 않고 즐겁게 읽힌다”라고 했다.

호방과 해학에 더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시들이 내용과 형식에 있어 스펙트럼이 실로 넓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현실을 다루는 짙은 서사풍의 시가 있는가 하면 인생을 관조하는 맑은 서정시도 있고 시가 전 세계를 누비고 동서의 역사에 닿아 있다. 장시가 있는가 하면 제목보다도 본문이 짧은 단시도 있다. 그러면서도 시가 쉽게 씌어졌기에 독자들의 스펙트럼 또한 넓다. 그의 독자 중에는 대학교수나 경제학박사인 광팬이 있는가 하면 재미와 감동 때문에 독서를 전혀 안 하지만 그의 시집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시집이 시작되는 첫 시인 ‘삼겹살 애가’는 ‘코리언 드림(Korean Dream)’을 찾아 한국에 왔다가 돈사 똥통에 빠져 죽은 20대 네팔 청년들에 대한 진혼시의 성격을 띤다.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나아가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  자기의 삶을 돌아보며 인생이란 걸 다시 생각한다.

  





이렇게 시작된 시집은 단순함이나 단일함에 머물지 않고 내용에 있어서 파노라마를 펼친다. 세계를 여행하며 쓴 기행시들은 일반적인 기행시들과 달리 상투적 감상을 벗어나 문명비평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시집은 이밖에도 여러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갖는다. 시집 표지에 돼지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피라미드’라는 시에는 각기 크기가 다른 피라미드 꼴의 시어 나열이 들어 있다. 시들 한 편, 한 편은 독자적인 시들이나 시집 전체로 보면 성경 구약의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불교사상인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으로 끝나는 어떤 맥락성을 갖는다. 또 시집 중간의 <합일> 같은 시는 섹스 묘사에 ‘천부경’까지 인용해 썼다.

어느 문예평론가가 했다는 다음의 말은 ‘삼겹살 애가’가 어떤 시집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세련된 표지 장정부터 범상치 않다. 마법에 이끌리듯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남의 삶에 대한 공감과 시인 자신의 시간에 대한 성찰이 교직되어 있는 세상의 버라이어티에 대한 스케치이자 자신의 안과 밖을 향한 따뜻한 풍자라는 표현 외에 ‘쉽게 폭 잡히지 않는 웅혼한 영성의 찬가’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시집의 이름에 엘레지(Elegy)가 들어 있으나 나는 여기 실린 시 전편을 사람과 세상을 향한 담담하면서도 사려 깊은 오드(Ode)로 읽었다. 그 끝은 한마디로 감동이다.”

첫 시집이 나왔을 때 부산에 사는 주부가 보내 온 것이라는 다음 촌평은 이만주 시인의 시 세계를 알게 한다.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몇 자 올릴게요, 보통의 시가 반짝이는 언어로 사람들의 아름다운 감성이나 슬픔을 표현했다면 이 시는 담담하게 흑백으로 담아낸 한 편의 인간다큐드라마 같았어요. 잘 보았습니다.”   (다미르출판사. 10,000원)






한겨레

[짬] '시력 50년' 기념문집 헌정받는 서정춘 시인


선후배 동료 문인들이 지은 ‘서정춘 시’만 40편에 이르는 서정춘 시인은

그 자신 누구보다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봄 인사동에서

소산 박대성 화백 전시회 때 모습. 김경애 기자


                                   

“그라이 그거시 참 황당한 현상이라…, (내가) 말실수를 많이 하니께 동물원 원숭이 보듯 재미있는지, (나를) 내려놓으니 밀가루 반죽하듯 맘대로 편하게 자기들 식으로 빚는 것도 같고… 이유가 나도 궁금하다니께요.”


그는 내내 부끄럽다면서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자의 반 타의 반’ 동의를 했다고 덧붙였다. 바로 ‘시력 50년’ 기념으로 특별한 자료집을 헌정받는 <시인 서정춘>(가제)의 주인공 서정춘(77) 시인이다.


일찍이 문단에서 그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인 ‘죽편1―여행’은 가객 장사익이 노래로 부를 정도로 예술인들의 애송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그를 주제나 소재로 삼은 작품’을 모은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선후배 문인들을 비롯해 예술인들이 ‘한 시인’에게 영감을 얻어 창작을 한 것을 두고, 30일 전화로 만난 서 시인은 ‘왜냐’고 되물었다.


1968년 서정주 심사한 신춘문예 당선
정년퇴직때 등단 28년만에야 첫 시집
지금껏 시집 5편…과작으로도 유명


등단 50돌 맞아 자료집 ‘시인 서정춘’
문인들이 노래한 ‘서정춘 시’ 38편 모아
엮은이들 “시적 엄격함에 대한 존경”


‘시 공부 10여년에 쌓인 책 이희승 국어사전 빼고 나머지 한 도라꾸 판 돈으로
한 여자 꼬셔와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 세 들어 살면서 나는 모과 할게 너는 능금 해라
언약하며 니뇨 나뇨 살아온 지 오늘로 50년 오메 징한 사랑아!!’ 서정춘 시인은 2017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한 ‘기념일’에서 일본 사진작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서울 청계천변’(1965년작)에서 시작했던 결혼 생활을 털어놓았다.


“수년 전부터 책으로 남겨두면 좋겠다고, 권유를 했는데 그때마다 한사코 마다하셨어요. 올해는 마침 등단 50돌이시니 더는 미룰 수 없어, 밀어붙였지요.”


<시인 서정춘>의 공동 엮은이이자 역시 시인인 도서출판 비(B)의 조기조 대표는 “현재까지 나온 ‘서정춘’을 노래한 시 40편을 찾아냈고, 이 가운데 38편을 1부에 실었다”고 소개했다. 책의 2부에는 ‘서정춘 시인의 시에 대한 짧은 단평’을 정리하고 수많은 평론들은 목록만 넣었다. 3부에는 서 시인의 가족을 포함한 사진과 연보를 담았다. 지난 2015년 <봄, 파르티잔> 시집 출간 기념으로 열린 시화전 ‘시와 그림, 결혼하다’ 때 이제하, 마광수, 박불똥, 마광수 등 29명의 예술인들이 그려준 작품도 일부 곁들일 예정이다.


‘서정춘 시’를 가장 먼저 쓴 이는 고 박정만 시인이다. 서 시인과 같은 1968년 ‘등단 동기’인 그는 81년 ‘한수산 필화사건’ 때 고문 후유증을 술로 달래다 88년 40대 초반에 세상을 떴다. 작고 직전 3개월 사이 무려 300편의 시를 쏟아낸 그는 서 시인에게 보내는 ‘그리운 형에게’ 등 2편을 유작처럼 남겼다. 서 시인 역시 술중독에 빠진 동기를 일으켜 세우고자 ‘명태―박정만에게’로 화답했다.


서 시인의 글은 비교적 최근에야 공개된 ‘등단 뒷얘기’ 딱 한편이 들어갔다. <신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잠자리 날다'를 뽑아준 심사위원 서정주를 서울 공덕동 자택으로 찾아간 자리에서, 집에서 담근 포도주를 권하며 칭찬하는 대선배 미당에게 “전날 밤 황룡 꿈 꾸고 당선됐습니다”라고 일갈했다는 일화다.


2012년 사진작가 육명심의 <예술가의 초상> 출간기념 사진전 때
위아래로 나란히 내걸린 서정춘(위)·서정주(아래) 시인의 모습.
미당은 서정춘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작 ‘잠자리 날다’를 뽑은 심사위원이다.
           


‘서정춘 시’는 위로는 60년 등단한 선배인 고 정진규 시인부터 아래로는 2000년 등단한 후배 장이지 시인까지 ‘서정춘’을 지었다. 69년 등단한 동년배인 이시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은 3편이나 썼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맹문제 시인의 ‘그해 봄 서정춘 만세가 있었네’가 나왔다. ‘대통령 탄핵 다음날 우리는 광화문광장에 모여 한바탕 만세를 부른 뒤 골목 식당에 들어갔네/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 한국작가회의 만세! 자유실천위원회 만세!/ 함께한 얼굴들도 서로 부르며 만세! 만세!/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한바탕 더 부른 뒤 서정춘 시인에게 〈부용산〉을 청했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노랫말은 슬펐지만 시인의 목소리는 광장을 울릴 만큼 크고 당당해 우리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불렀네/ 서정춘 만세!’(<시인동네> 2018년 9월호)


책 출간을 가장 먼저 제안하고 공동 엮은이로 나선 하종오 시인은 “김수영 시인을 비롯해 작고 문인에게 바치는 추모나 헌정시는 적지 않지만, 당대에 이처럼 많은 작품의 주인공이 된 인물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두 엮은이를 비롯해 시적 성향이 전혀 다른 시인들이 모두 ‘서정춘’을 좋아하는 현상도 이채롭다. “서 시인은 ‘구두쇠’라 부를 만큼 과작이고, 단문이면서, 서정적이죠. 다작에 장문이고 참여적인 저와는 정반대라 할 수 있죠.”(하종오) “우리 둘 다 개인적으로 서 시인과 사적으로 인연이 없는 ‘의외의 후배’라는 점에서 더 뜻깊은 작업이죠.”(조기조)


서 시인이 등단 28년 만에야 첫 시집을 펴낸 연유도 지금과 비슷하다. 그는 동향 문인 김승옥 작가의 소개로 입사한 동화출판공사에서 고졸 학력의 한계를 딛고 28년 봉직하고 정년퇴직한 날에 맞춰 <죽편>(1996년·동학사)을 펴냈다. “퇴직하고 나면 쓸쓸해질 것 같아, 한번 묶어 본 것이다. 20년 전부터 시집을 내자고 보채온 유재영(동학사 대표) 시인이 아니었으면 그나마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지금껏 그는 5편의 시집을 냈을 뿐이다.


그처럼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꺼리는 서 시인에게 수많은 예술인들이 끌리는 이유는 정말 무엇일까? 하 시인은 “아마도 작품의 엄격성에 대한 공감과 존경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정작 서 시인은 “이달 말께 책이 나오면 조촐한 자리를 만들어,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싶다”며 웃었다.


한겨레 : 김경애 기자ccandori@hani.co.kr


      



















 민영, 시력 60년 맞아 ‘시 전집’ 펴내




“자네의 눈에 시의 빛이 내비치고 있네. 쉬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시게.” 미당 서정주는 그가 추천해 ‘현대문학’에 시를 실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온 청년 민영(사진)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날로부터 60년이 흘렀고 청년은 83세 노인이 되었다. 시력(詩歷) 60년을 계기로 그는 그동안 펴낸 시집 9권에 수록된 시 409편에다 최근작 10편을 모아 ‘민영 시 전집’(창비)을 펴냈다. 이산의 그리움을 담은 절창 ‘엉겅퀴꽃’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단아하고 깊은 서정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한곳에 모인 셈이다.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 잃고/ 홀로 사는 엉겅퀴야// 갈퀴손에 호미잡고/ 머리 위에 수건 쓰고/ 콩밭머리 주저앉아/ 부르느니 님의 이름// 엉겅퀴야 엉겅퀴야”(‘엉겅퀴꽃’)



그가 1980년대 후반 신경림 시인에 이어 회장을 맡기도 했던 ‘민요연구회’에서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재야 노래패들이 자주 부르곤 했다. 이 시에 거론된 철원은 그의 고향인데,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주했고 다시 광복과 전쟁을 거치면서 부산과 서울로 옮겨 다니는 삶을 살았다. 고향은 있지만 떠돌이의 숙명을 면치 못했기에 그의 시편들에는 늘 어딘가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는 편이다. 두 번째 시집 표제작이기도 한 ‘용인 지나는 길에’ 시인은 “저 산벚꽃 핀 등성이에/ 지친 몸을 쉴까./ 두고 온 고향 생각에/ 고개 젓는다”면서 “소태같이 쓴 입술에/ 풀잎 씹힌다”고 썼다. 한편으로는 “슬픔으로 얼룩진” 역사를 선명하게 음각하기도 했다.

“흘러가거라 등불이여,/ 밤이 지배하는 강물을 헤치고/ 저 끝없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흘러가거라 돛단배여,/ 슬픔으로 얼룩진 역사를 등에 싣고”(‘유등流燈’) 그는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최근 시편 ‘바람 부는 날 영등포 역전에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으나/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대책 없이 째깍꺼리는 시계탑을 쳐다보니// 부끄러워지는구나, 밥 한끼/ 담요 한 장 되어주지 못하는/ 詩를 쓴다는 것이!”라고 짐짓 자탄하지만, “전쟁 때문에 배우지도 못하고 오직 자신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쓴 글이기에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면서 “독자 여러분이 차분하게 읽어주기만을 바란다”고 ‘시인의 말’에 썼다. 



[스크랩] 세계일보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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