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인터넷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찾아본다.
띠별로 몇 줄 적어 논 운세를 믿지는 않으나 재미로 보는 것이다.
운세가 나쁘면 그만이지만, 행여 좋은 운세라도 나오면 괜히 기분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 날은 "좋은 일은 있으나 끝이 좋지 않다"는 좋다 마는 김빠지는 운세였다.
지난 주말은 녹번동 정동지 집에서 개겼는데, 뜻밖에 손녀 하랑이가 찾아왔다.
아들 햇님에 안겨 온 손녀 하랑이가 그 날따라 사진 포즈는커녕 눈 맞추기도 싫어했다.
땡초 처럼 머리를 빡빡 민 할애비가 낯설기도 하지만, 무서웠던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잠들어 버렸다.
잠든 손녀의 천진한 모습에 빠져 행복감에 젖었는데,
손녀 빰에는 하랑이라 적힌 스탬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아들이 올린 하랑이 춤추는 사진을 보아
춤추는 멋진 손녀 사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결국 자리가 파할 때 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잠자는 손녀를 안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닭 쫓던 개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들 내외가 가고 좀 있으니,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찾아왔다.
요즘 고 김용태씨 DMZ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미군부대 주변 사진관에서 수집한 기념사진들을
스캔 받는 작업을 정영신씨와 같이 해 녹번동에서 술 한 잔 할 기회가 잦다.
그 날은 정영신씨의 장터 기획전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물고 와 스캔 받는 일은 뒷전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야사에 대한 강의가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비단 미술계뿐 아니라 잘 알려진 정사보다 뒷이야기인 야사가 더 흥미로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눈이 번쩍 뜨일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런 내용을 책으로 묶는다면 대박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스마트협동조합’ 서인형 이사장과의 약속시간이 되어 그만 일어나야 했다.
‘스마트협동조합’ 가까이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푸짐한 안주에다 사무실에서 공수해 온 보드카로 술자리가 걸판졌다.
그러나 독주가 목구멍에 들어가니 금방 돌아버렸다.
평소에 마시는 진로를 주량에 맞추어 천천히 마셔야 하는데,
좋은 술이라며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제풀에 간 것이다.
술이 취해 할 말과 안할 말을 가리지 못하고 콩팔 칠팔 지껄인 것은 물론
술집 주인아주머니에게 큰절을 올리는 추태까지 부린 것이다.
내 딴에는 만들어 준 술안주도 좋았지만,
가져 온 술을 영업집에서 마신데 따른 죄송함의 큰절이었으나
그만 몸매에 대한 칭찬까지 곁들이는 오버를 해버린 것이다.
절 받는 분의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던 것 같았다.
뒤늦게 정동지로부터 이야기 들어 알았지만,
필름이 끊겨 중간 중간 기억 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제 버릇 개주지 못한다”는 정동지의 푸념에 감 잡을 뿐이었다.
다 같이 녹번동 집으로 돌아와서 손님들 앞에 대마불사주를 꺼내놓고 잠자리 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찍힌 사진을 보니 같이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진도 있었다.
그 이튿날 정동지에게 물어보니, 내복차림으로 한참 주접 떨다 잤단다.
아이쿠! 고려장 할 나이에 이 무슨 추태던가?
그 날 아침에 본 ‘오늘의 운세’가 딱 들어맞았다.
"좋은 일은 있으나 끝이 좋지 않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천원짜리 선물에 입이 째지네. (0) | 2022.01.04 |
---|---|
세 번째 백신 맞고 죽는 줄 알았네. (0) | 2021.12.17 |
홍찬선 시인, 시집 '서울특별詩' 출간 (0) | 2021.11.23 |
울산 오세필씨 아들 원석이 장가가다. (0) | 2021.11.18 |
美코로나 실직자들, 대마산업으로 대이동 (0) | 2021.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