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아리랑’에서 “인사동 백년을 걷다”란 인사동 풍류객을 위한 큰 잔치가 열렸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창예헌’과 천상병기념사업회 이사장인 김명성씨가 초대한 자리로,

마치 심청전의 심봉사 잔치가 연상되는 그런 자리였다.



그동안 터줏대감이셨던 민속학자 심우성선생과 교통부장관을 역임한 풍류가 이계익선생, 극작가 신봉승선생,

음향의 달인 김벌레 선생은 세상을 떠난 데다 강 민, 신경림, 무세중 선생은 몸이 불편해, 나오실 원로 분이 몇 분 되지 않았다.

엉겅퀴 꽃을 쓴 민영 시인, ‘한국의 아이로 잘 알려진 황명걸 시인, 조선의 삼대구라로 불리는 협객 방동규 선생,

문학평론가 구중서선생, 소설가 김승환 선생, 철학자 신성준 선생 등 몇 분 남지 않은 원로께서 먼저 나오셨고,

제주와 부산, 사천, 남해, 단양, 전주, 광주 등 전국 방방곡곡의 풍류객들이 한 분 두 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오부터 오후 아홉시까지 온 종일 잔치를 열어 천상병시인과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모습을 드러냈는데,

무려 150여명이나 몰려 들었다.

예전에는 틈틈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으나, 그 비용을 혼자 감당해 온 김명성씨의 아라아트사업이 나락에 떨어져,

오랫동안 소식한 번 전하지 못한 것이다.


 

인사동 백년을 걷다라는 잔치를 마련한 취지는 친일 후손의 갑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게 부끄러워 집을 나와 한 평생 거리를 떠돌며 독서회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던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 나 격랑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았던 노촌 이구영 선생,

문필가이신 박이엽 선생의 노조에 대한 지조, 그리고 저잣거리 웃음거리로 잘 못 왜곡된 천상병시인의

올 곧은 정신을 제대로 알고, 그 분들의 무대였던 인사동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다들 모처럼의 잔치 소식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나누는 정담에 인사동은 봄바람 같은 훈훈함으로 가득했다.

그동안 소식도 듣지 못한 황명걸 시인의 저희를 사랑하기에 내가라는 신간 시선집과

김신용 시인의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라는 제목을 단 신간 시집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자리에 어찌 풍류가 없을 소냐? 전주에서 올라온 음류 시인 송상욱씨의 열 두냥 인생을 시작으로

김상현씨의 아코디언과 장 군의 협연으로 부른  장소영씨의 진도아리랑으로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어 갔다.

김상현씨가 애절하게 부른 '떠날 때는 말없이 봄이 오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슬픔에 빠져들었다.

봄이 오면으로 반복되는 절절한 후렴에서 내가 좋아하는 봄날은 간다와 겹쳐지며 설움이 북받힌 듯 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김진규 시인은 하모니카 연주에다 천상병선생의 시 강물을 낭송하기도 했다.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천상병시인의 눈에 비친 강물은 기쁨의 강물이 아니라 서럽게 흘러가는 강물이었다.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이지, 기계처럼 돈만 쫓고 살아가는 오늘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난데없는 엉뚱한 일도 벌어졌다.

모임에 참석한 원로 분에게 여비라도 챙겨드리기 위해 80세 이상은 16만원을 드린다고 공지했는데,

한겨레에서 확인도 없이 기사화 해, 돈 얻으러 찾아 온 분이 여럿 생긴 것이다.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식사 대접해 돌려보내기는 했으나, 참 돈이란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의 원로 분들은 오찬 후 곧 바로 귀가하셨으나, 뒤 늦게 위선으로 똘똘 뭉친 늙은이 한 분이 나타났다.

입구에서 사진 찍는 나에게 사진 찍지 말라며 지팡이를 휘두르는 폭력을 저질렀다.

다시 지팡이를 치켜들기에 휘어 잡는 위압에 멈추었으나, 사과하라고 겁박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요즘 치매증세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참았다.



무슨 억한 심정에 잔치 집 깽판 치려 작심한 모양인데, 언론이 자기도취에 빠지게 만든 불쌍한 노인이다.



 

내가 이 잔치를 기록하는 사진가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사진 찍혀 않될 일이 있으면 조용히 말을 하던지, 카메라 확인 후 지우면 그만이다

평생을 사람만 찍어 온 사진가에게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니,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오래전 자선을 내 세워 사익을 취한 기획전을 문제삼은 적이 있는데,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분은 일체 카메라에 담지 않으나, 보기 싫은 사람은 찍을 필요도 없다.

한 달 전에는 우연히 창성동 실험실갤러리에서 열린 이지녀씨의 무속전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날은 노광래씨 흉사를 알리어 문상객을 모아준 일을 격려하여 사진을 찍었는데, 마음이 풀린 것으로 생각했다.


 


좀 있다 다른 지인에게 들어보니, 나를 더 두들겨 패고 싶었으나 폭력 전과가 많아 참았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옛날에 저지른 폭력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들 떨어진 분이지만,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봉변 당하지 않고 살았던 게 용하다 싶다.

여지 것 돈으로 해결했는지 모르지만, 내 한테 걸리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입구에서 분노를 삭이다 연회장으로 들어가 보니, 배평모씨와 김언경씨가 보였다.

그들을 향해 사진을 찍는데, 난데없는 지팡이가 또 나타난 것이다.

키가 작아 파묻혀 못 보았지만, 안 쪽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잔치 집에 어떻게 좋은 일만 일을 수 있겠는가?

다른 분들은 그런 불협화음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연회를 즐겼다.

천상병기념사업회 재건 문제는 회의를 진행할 자리가 되지못해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으나,

많은 분들의 자문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했다.


 

오후 아홉시가 넘어 인사동 풍류객의 아리랑연회는 끝났지만, 그대로 헤어질 수가 없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분을 위한 잠자리까지 준비해 두었으니, 이 좋은 날 어찌 그냥 갈 수 있을 소냐?

그 날 잔치는 천상병시인 기념사업회 재건과 돌아가신 인사동 터줏대감의 올 곧은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김명성씨가 모았지만, ‘아리랑'광진상공', '엠에스오토텍', '이엘에스솔루션'에서 도왔다.


 

자리가 파한 후 남은 소주 한 병을 챙겨들고 노광래씨가 운영하는 평화만들기로 찾아갔다.

개업 소식은 들었으나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도 하지만, 벗들이 그 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 했기 때문이다.

마침 배평모씨를 비롯하여 김언경, 하형우, 박상희, 임경일, 고선례, 편근희씨 등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함께 어울려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또 폭력배가 나타난 것이다.

나 더러 나가라고 고함 질렀는데, 설사 그 술집이 자기 집이라도 먼저 온 손님을 내 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대꾸도 않했더니 다른 분이 데리고 나갔지만, 별 개 같은 꼴을 다 본 것이다.


 

그 곳에서 나와 인사동 벽치기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찻집 유담에는 김명성, 최석태, 손연칠, 백남이, 공윤희씨 등 여러 명이 홍어회를 배달시켜 마시고 있었다.

그 날은 신경이 날카로워 그런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취하지 않았다.

좀 있으니 정영신, 조경석, 서길헌씨가 나타나 그 것으로 인사동 백년을 걷다잔치를 마무리했다.


 

그 날 잔치에 참석한 분들은 아래와 같다.

구중서, 김승환, 민 영, 방동규, 신성준, 황명걸, 채현국, 송상욱, 이인섭, 유재만, 한귀남, 정기범, 손연칠, 김신용, 배평모, 조경석, 김명성, 김상현, 장 군, 장소영, 신현수, 강찬모, 기국서, 조준영, 임계재, 김진규, 최명철, 전강호, 조해인, 백남이, 변순우, 김언경, 김민경, 이명희, 장경호, 황외성, 박상희, 김 구, 서길헌, 노광래, 정영신, 이은영, 조두림, 안영상, 김수길, 하형우, 고선례, 박구경, 이희종, 최혁배, 임경일, 전활철, 정복수, 이만주, 이지녀, 금보성, 김종근, 박 철, 김효성, 김이하, 공윤희, 고중록, 강선화, 홍석화, 편근희, 유진오, 서인형, 최석태, 김윤기, 황예숙, 김이하, 이승철, 이광군, 박윤호, 권양수, 민영기, 유근오, 김발렌티노, 임태종, 오치우. 최유진, 송일봉, 최근모, 박완규, 조명환, 나재문, 정현석, 김용국, 김상윤, 이상훈, 김병호, 김준태, 목영순, 조신호, 한슬기, 주영선, 김미란씨 등 150여명이 참여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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