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옛날 유행가 자락이다.
술꾼들은 예수님 말씀을 너무 잘 듣는다.
원수라는 술을 그토록 사랑하니까...






술 때문에 먼저 간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닌데다,
더 마시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뿌리치질 못한다.
사랑이 아무리 진하다지만, 목숨 바치는 사람 그리 많지 않다.





요즘은 술자리를 피해 인사동도 한 낮에 가지만, 며칠 가질 못한다.
저녁 먹자는 김명성씨의 뻔한 전화를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봐야 할 전시도 있어, 서둘러 인사동으로 달려갔다.






인사동 벽치기 골목 깊숙이 박혀있는 유담 커피집에는
김명성, 김용국씨와 함께, 제주에 사는 이용철씨도 와 있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술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요즘 김명성씨 패거리는 술도 인사동에서 마시지 않고, 연신내에서 마신다.
그 곳은 불러 낼 술꾼도 많은데다, 음식이 맛있고 싸기 때문이다.
연서시장 안에 있는 ‘똑순내’집이 단골인데, 주모의 넉살도 죽인다.
여럿이 간장게장에 병어 찜을 안주로 실 컨 마셔도, 오만원이면 떡을 친다.





삼청동 '이노갤러리'에 들려, 전시장 지키던 강찬모화백 까지 데리고 갔다.
데모대 막는 경찰에 막혀, 택시 안에서 돈만 버리다, 결국 지하철을 타야 했다.
먼저 간 김병국씨가 술상 차려놓고 기다렸는데, 술꾼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해인, 이만주. 서길헌씨가 왔고, 늦게는 최벽호씨 영화 찍는데 갔던 오세필씨도 등장했다.






그 날의 화제는, 오래전 인사동 ‘실비집’이나 '시인통신'에서 퍼 마시던 이야기였다.
추접 떨기로는 사진기자 김종구를 당할 자가 없었는데, 

막걸리 주전자에다 여름철 꼬랑내 나는 양말을 휘휘저어 짤아 마시지를 않나,
어떤 놈은 한 술 더 떠, 똥딱지 묻은 빤스까지 벗어, 술에 짤아 쳐 마셨다.
벌주로나, 기 싸움으로 마시는 호기도 천태만상이었다.






그 지긋 지긋하던 일들도, 이제 아련한 전설이 되었는데,
강찬모씨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 주었다.
지금에야 술을 멀리하여 부처같이 살지만, 그도 예전엔 꼴통이었다.





어느 놈이 커다란 막걸리 주전자에다, 남자변기에 붙은 누런 찌꺼기를 끌어 넣었다고 한다.
한 참을 마시다 주전자에 덜거덕 덜거덕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변기 찌꺼기를 걸러주는 마게였다고 한다.






아무리 더러워도 모르고 마시면 약이겠으나, 알고 나면 속이 뒤집힐 것 아닌가?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위생을 따지는 요즘 잣대라면, 다들 병 걸려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 목숨이 생각보다 질긴 것이다.






서울역에 사는 노숙자들을 보면 알 수있다.
그들은 물을 겁내는 족속이라, 목욕은 커녕 손도 씻는 일이 없다.
항상 더러운 손으로 상한 음식을 먹어도 배탈도 나지 않는다.
몸은 길들이기 따라 내성이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술자리의 객기는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 꼬맹이 시절에 아버지 친구들이 어울려 벌이는 기행을 엿 본적도 있다.
소리꾼 정상수씨가 운영하는 기방에, 울 엄마 정탐꾼으로 아버지를 찾아 갔는데,
기녀 고무신에다 술을 따라 마시고 계셨다.
다들 알만한 점잖은 분들이라, 기가 막혔다.






그 후 어른이 되어, 그 때의 기행이 풍류로 느껴지며 나도 서서히 물든 것 같다.
술이 취하면 객기를 부리는 것이 다 그 때 영향이 아닐까?
아니면 부전자전이던지...






그 다음에는 죽은 술꾼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쪽방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가는 사람은 다 술꾼이다.

진짜 술이 원수다.



인사동에서 갤러리하던 김용철씨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그 날 처음 들었고,
배불둑이 박진관씨도 몇일 전 혼자 객사했다.

그저께는, 술 취해 가던 김수길씨가 쓰러져 119에 실려 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조해인씨가 ‘인사동 유목민’이란 소설을 쓰며, 그동안 죽은 술꾼을 헤아려보니, 40명이 넘었다고 했다.
그런데, 술 마시던 김명성씨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먼저 일어나야겠다는 것이다.

놀란 오세필씨가 데려다 주었는데, 지금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수 십 년을 같이 마셨지만, 그런 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술자리를 지켰던, 그마저 간다면 이제 끝나는 것인가?

다들 술 때문에 죽을 판이지만, 그래도 악을 쓰며 마신다.


“그래 죽자.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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