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 관우선생의 아지트인 ‘다리 밑’이 인사동 명물이 되어버렸다.
낙원상가 계단 밑에 자리 잡은, 이 이름도 없는 대폿집은 탁자가 두 개뿐인 구멍가게다.
고향 같이 포근한 단골집으로, 관우선생이 ‘다리 밑’이란 거시기한 이름을 붙였다.






이 대폿집은 시원하게 얼려놓은 생맥주잔에 막걸리를 섞어 마시는 ‘막맥’이 자랑이지만,
감자전과 닭똥집 같은 싸고 맛있는 안주들이 많다.






전날 밤은 건축가 김동주씨와 화가 이목을, 편완식 기자가 ‘다리 밑’에서 논다고 꼬셨지만,
영양가 없는 핑계 대며 안 나갔다. 다 막맥 마시는데, 나 혼자 소주 빨기도 그렇지만,
이미 취한 사람은 사이클이 맞지 않아 편치 않아서다.
술 마시는데도 이 것 저 것 따지는 것이 많아 술꾼 자격 상실한지 이미 오래다.






난, 옛날부터 술에 약하다.
소주 반병이면 알딸딸하게 기분 좋고, 한 병 마시면 오바 한다.
술도 도수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량으로 취한다. 그래서 양 많은 막걸리가 쥐약이다.
맛이 가면 성희롱의 경계를 위험스럽게 넘나들기도 한다.
그 이튿 날 하루 종일 빌빌대며 후회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쯤은 그럴 일이 생긴다.






지난 5일은 통인에서 열린 배일동 명창 판소리가 끝나고, ‘상광루’에서 막걸리를 마신 후
이차로 ‘다리 밑’에 몰려갔다.
통인 관우선생 따라 황태인, 김규진, 배일동, 조상민, 민호기, 박영수, 최유정씨가 갔는데,
이미 다리 밑에는 강정호회장 일행이 자리 잡아, 밖에 앉아야 했다.





반 쯤 담긴 생맥주가 사람 수 대로 나왔는데,
제조 상궁 역활을 하는 관우선생이 막걸리를 타기 시작했다.
희석시키는 비율이 술맛을 결정한다는데, 난 통풍으로 맥주를 못 마시니
그 맛은 확인할 도리가 없다.





오로지 촌놈 술 소주만 마시는데, ‘상광루’에서 막걸리를 마셨으니, 이미 맛이 간 상태다.
엎질러 진 물이라 겁 없이 막걸리를 홀짝거린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테너 이동환씨가 나타나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술이 취해 쪽팔리는 줄도 모르고, 대 명창 들 앞에서 ‘봄날은 간다’를 짤아 댄 것이다.
바람새는 이빨로 뽑아내느라 욕도 봤지만, 좌우지간 술 취하면 간이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술만 취하면 가만 있지를 못한다. 

술꾼들 내려 찍는다며 계단 집에 올라갔는데, 헛걸음질로 디질 뻔했다.
죽는 거야 괜찮지만, 갑자기 떨어지면 술 마시던 양반들 얼마나 놀래겠노?






몸이 비실거려 더 이상 노닥거릴 수 없었다.
비상금을 털 생각으로 택시를 잡았는데, 배일동 명창이 불러 세웠다.
무슨 할 말이나 있는 줄 알았더니,
지갑 깊숙이 감춰 둔 비상금을 꺼내 택시비를 주는 것이다. 자기는 우짤라고...
이 양반 소리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인정도 죽이네.





낙원동에서 서울역까지 오천원이면 찍 쌀 건데, 열배나 되는 신사임당을 주니 욕심이 나부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아제! 녹번동 가입시더” 햇붓다 아이가...
사실, 술 취해 동자동 4층까지 기어오르기 힘들어서다.






이틀 날은 천벌 받아 하루 종일 방바닥에서 빌빌거렸다.
“천지 씹신이여! 이제 그만 데려가소서”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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