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한정식선생과의 오찬 약속으로 인사동에 나갔으나,
할 일이 많아 서둘러 귀가해야 했다.

집에 도착해 여장을 풀기가 무섭게 ‘유목민’의 전활철씨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형! 오늘 전시오프닝 아닙니까? 신용이 형과 조해인씨가 와서 기다립니다.”
"아뿔사!" 일전에 술좌석에서 한 말을 그대로 믿고 나온 모양이었다.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지만 다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목민”에는 김신용씨와 조해인씨가 마주앉아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이미 김신용씨는 불콰하게 취해 있었지만, 오랜만의 만남이라 반갑게 술잔을 나누었다.
얼마 전 출간된 김신용씨의 소설 ‘새를 아십니까?’가 독립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
그리고 조해인씨의 소설이 내년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다는 등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조금 있으니 김명성, 박인식, 전인미, 김억씨 등 지인들이 나타났고,
나중에는 채현국선생께서 많은 손님들을 모시고 오셨다.
년 말 분위기가 무르익은 대폿집 ‘유목민’은 시끌벅적 달아올랐다.
한 사람 두 사람 빠져나간 자정 무렵에는, 몸도 마음도 취해 비틀거렸다.

 

사진,글/ 조문호

 

 

 

 

 

 

 

 

 

 

 

 

 




 

지난 12일은 사진가들과의 오찬 모임과 ‘로마네꽁띠’의 
저녁 약속까지 겹쳐 온 종일 인사동을 배회해야 했다.

오찬모임에는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황규태,
한정식, 이완교, 구자호, 전민조, 이기명, 유병용씨를
만났고, 만찬모임은 ' 박인식씨를 비롯해 한정식, 정영신,

이세기씨와 함께 했다.

그날은 날씨도 변덕스러웠다.
한동안 햇볕이 쨍쨍하다 오후 늦게는 첫 눈까지 내렸다.
맛보기로 조금 내리다 말았지만, 왠지 가슴이 설레었다.

기분 좋아  취한 건 좋았으나, 목욕탕 간 육명심선생

사진 찍다 경찰관에게 조사받는 일을 당했다.
제기랄~

사진,글 /조문호

 

 

 

 

 

 

 

 

 

 

 

 

 

 

 

 



지난 6일 시인 김신용씨가 인사동에 나왔습니다.

얼마 전 ‘새를 아세요?’란 소설을 출간했으나 공식적인 출판기념회가 없었습니다.
몇 차례의 모임에서 사인회는 가졌지만, 인사동 주변의 가까운 분들끼리 모임을

한 번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참석하지 못한 분이 더 많았습니다.

그 날 김신용씨를 비롯하여 조준영, 이명희, 전강호, 박인식, 노광래,

조경석, 정영신씨 등 10여명이 모여 조촐한 술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관절염으로 술을 마시지 못해 술자리가 너무 조용했습니다.

나도 왠지 사진이 찍기 싫어 조용히 술만 마셨더니, 역시 조용히 취하더군요. 

김신용씨는 집에서 자전거를 많이 타는데, 본인의 키보다 낮은 자전거를 오래 타

관절에 염증이 생겼나봅니다. 자전거 하나 마음 편하게 살 수 없어, 

남의 자전거 얻어 끌고 다니는 가난한 시인의 삶이 참 안쓰럽습니다.

 

사진:정영신 / 글:조문호

 

 

 

 

 

 



지난 3일 오후7시 무렵,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찬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오세필, 공윤희, 전인경,
황인호, 윤재문, 허미자, 전인미씨 등 여러 명이 있었는데,

뒤늦게 최백호씨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효교의 교주로 자처하는 최백호씨의 건강론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모임에서 틈틈이 건강에 대한 정보들을 전해 주는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갑자기 살이 빠져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 본 결과, 위에 조그만
종기들이 돋아났다는 것이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정도라지만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 엄청 놀란 것이다.

그런데 그 병인이 하잘 것 없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저녁 방송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습관적으로 땅콩을 먹었다고 한다.
그 땅콩이 주범인데, 몸에 좋은 견과류도 조금 먹으면 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몸으로 체험해 가며 알려주니 최고의 멘토가 아닌가?
모두들 ‘로마네꽁띠’로 자리를 옮겼더니,
벌써 크리스마스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진,글 / 조문호

 

 

 

 

 

 

 

 

 

 

 

 

 

 


경북 고령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 온 조선백자 장인 백영규씨의 달항아리 ‘조선달 月’전이,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3층에서 열린다.

방송인 전유성씨가 기획하여 추진한 '조선달'전에 소설가 박인식씨가 나섰는데, 전시도록의 발문 내용도 좋았지만 표제로 쓴 “조선달 月”이란 글이 너무 멋졌다. 돈 안 되는 소설가보다는 서예가로 나서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5일 오후6시에 시작된 개막식에는 작가 백영규씨 내외를 비롯하여 전유성, 박인식, 무세중, 무나미, 송상욱, 서수남, 신영수, 김호근, 심철종, 최일순, 권순철, 이명희, 김정남, 노광래, 편근희, 이상철, 정영신, 인오스님 등 많은 분들이 전시를 축하하며, 달항아리의 멋에 흠뻑 빠졌다.  풍만한 몸체를 가진 달항아리 절정의 원숙미에 취해....

개막행사의 하나로 행위예술가 심철종씨의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멀쩡한 달항아리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것이었다.
조그만 사발 하나 값도 만만찮다는데, 그 돈의 가치를 깨부수는 통쾌함을 다 함께 맛 보게 한 것이다.
심철종씨에 따라 전유성씨도 항아리를 깼으나, 백영규씨가 깨는 소리에 비교될 수가 없었다.
둔탁한 소리가 난 두 분에 비해, 소리의 파장이 훨씬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수 많은 항아리를 깨트려 온 백영규 장인의 관록을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인사동 '유목민'에서 '로마네꽁띠'로 옮겨 간 전시 뒤풀이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사진,글 / 조문호

 

 

 

 

 

 

 

 

 

 

 

 

 

 

 

 

 

 

 

 

 

 

 

 

 

 

 

 

 

 

 

 

 





최인선의 회화 25년 미학오디세이
25 Year Anniversary of In Sun Choi's Aesthetic Odyssey

최인선展 / CHOIINSUN / 崔仁宣 / painting

2014_0605 ▶ 2014_0805

최인선_날 것의 빛-모네 Light of Rawness-Monet_캔버스에 유채_184×259cm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007h | 최인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4_0605_목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전시기간 중 5회 격주 목요일 04:00pm~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아라아트센터

AR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9길 26(견지동 85-24번지)

Tel. +82.2.743.1643

www.araart.co.kr

 

 

 

최인선의 회화 25년에 부쳐 햇살 속에 발가벗은 '사과'라는 단어는 사과가 아니다. '연필'이라는 단어 자체가 연필이 아닌 것처럼. 연필 냄새를 풍기는 것은 연필이 아니라 연필을 놀리는 게 업인 사람일 수도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서 이렇게 썼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당연한 제목이다. 그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묘사한 '그림'이니까. ●1990년대 중반부터 최인선은 언어의 본성 (본질 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을 파고들었다. '사과'라든가 '연필' 같은 일반명사조차 그 이름 주인의 본성과는 아무런 개연성이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뤄진 약속이자 관행의 소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화가의 눈을 떴다. 자신이 소통시키려는 사과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과를 그려서는 안되었다. 연필을 전달시키려면 연필을 그리는 대신에 연필을 그냥 사용해야만 했다. 그 즈음의 몇 작품 명을 살펴본다.「먹는 언어 또는 먹히는 언어, 1997」,「조각적 사고 사고적 조각, 2000」,「생산되어진 흰색, 2000」,「하언이의 언어코끼리, 2001」 ,「나의 가족의 이름은 아름다운 다리를 만든다, 2000」,「읽는 회화, 2000」,「빛에 조각하다, 2001」,「연필다리, 2001」 ...

 

최인선_검정과 실버 위에 이미지, 언어, 생각 늘리기 Extending Image, language,

Thought over Black silver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2cm_2001

 

 

이 제목들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림은 글로 쓰고자 했고, 글로 그림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이 제목들은 쓴 게 아니라 그만의 조형언어로 그린 것이다. 당시의 그는 화가라기보다 번역가로 봐야 옳다. 번역 대상은 회화의 주제가 된 '언어'다. 그 언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꿔놓은 대신 조형화시켜 보여 주자는데 번역작업의 목적이 있다. 그는 언어를 입에서 눈으로 옮겨 놓으려 했다. 번역된 작품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읽어내게 하려면 언어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의미구조를 해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체되었다가 최인선 식으로 재결합한 제목들이기에 기존 언어의 의미구조를 초월하게 되었다. 르네 마그리트라면 제목 뒤에다 이렇게 덧붙일 만 하다. - 이것은 제목이 아니다. 그림이다. ● 그렇다. 그의 진정한 그림은 화폭이 아니라 이 제목들에 있는 것이다. 변기를 전시장으로 옮겨다 놓고 마르셀 뒤샹이 붙인 '샘'이라는 제목의 역할과도 한통속이다. 뒤샹의 발견인 레디 메이드 또한 옮기기, 다시 말해 번역작업인 셈이다. 뒤샹이 주변 부산물들을 작품 세계로 옮겨 놓았다면, 최인선은 생각과 사고의 부스러기들에 형태와 색을 입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화폭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들로 하여금 생각이나 사고의 형태를 눈으로 읽어볼 수 있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미적 체험을 안겨주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 그의 작품세계에는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우주의 신비를 엿본 듯 하고, 세상의 모든 고뇌가 제 어깨에 내려 앉은 듯하여 별에 스치는 한 점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그 피 끓던 시절에 끝내 말이 되지 못했던 간절함 들이 쌓여 그의 화폭에서 조형언어의 옷을 입고 우리 눈길을 기다린다.

 

최인선_날 것의 빛 Light of Rawness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14
 

 

태풍인가 싶게 바람이 센 어느 봄날이었다. 홍익대 작업실에서 2008년부터 선보인 그의「미술관 실내. 날것의 빛」 시리즈 여러 점을 봤다. 그 순간 두 가지 상념이 내 머리를 쳤다. - 그의 작업은 색의 한계에 대한 물음표다. - 그는 영원 (카오스다. 검을 현玄에 누런 황黃이 군림하는 무채색이다.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비어야만 영원해진다)의 세계에서 순간 (색의 세계다. 오직 한 순간의 진실만이 색으로 드러난다)의 세계로 넘어온 미적 망명자다. 영원을 지향하던 무채색 세계에서 언어의 본질을 찾아 헤맨 모색기에 그가 감내했을 오랜 '미학적 고독'이 거기서 씻김굿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어느 인도 성자의 부르짖음을 상기시켰다. - 현세는 물론 내세도 전생도, 성聖과 속俗도, 깨달음으로 얻은 참나眞我의 빛도 한갓 마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성자의 세계에서 한껏 평화로웠던 내 마음은 뿌리 채 뽑혀 뒤집어지고 있었다. 캠퍼스로 들어오면서 맞았던 태풍의 눈이 거기 있었다. 그 눈이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휩싸여 나는 단숨에 수십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랐다. 아름다움으로 몸서리치던 젊은 날의 시간과 그렇게 다시 마주쳤다.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아니 환영이기에 더욱 숨막히게 만드는 아름다움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뭣보다 작가의 국적을 알 수 없었다. 역사적 바탕도 읽을 수 없었다. 작가의 나이도 성별도 짐작 가지 않게 했다. 그는 뭔가 숨기려 했을까? 아니다. 그의 의도는 오로지 미학적인 것에서만 쏠려 있었다. 미학의 본질에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모조리 쏟아 부어 서로 하나로 묶은 결과물이었다. 진정이라면 아름다움도, 사랑처럼, 국경도 나이도 성별도 초월한다. 불필요한 인문학 과시나 관심으로 미학적 에너지를 소모시키거나 본질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서였다. 교훈적이거나 관념적이거나 수사적인 테크닉을 모두 던져 버리고 오직 직감으로 빛나는 색의 본질과 일대일로 맞짱 뜨고 있었다. 다른 예술 장르로도 표현될 수 있는 모방적이거나 재현적인 기능을 과감히 떨쳐냈다. 오직 회화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을 위해 그는 색 그 자체를 재료로 삼아 그리는 작업으로 되돌아 와 있었다.

 

최인선_백색침실 White Bedroom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4

 

 

최고의 셰프가 정성껏 차린 식탁처럼 세련미가 극치에 닿은 화면이지만, 나는 거기서, 생선 뼈와 살 사이로 파고드는 사시미 칼날의 예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칼날에는 해체된 생선의 붉고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리하여 뛰어난 성취를 이룬 모든 작품의 이면에는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까지 캔버스에 저며 바르려는 원초적이고도 불가해한 창작 욕망이 잠재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실이라는 '공간'과 역사라는 '시간'은 그의 관심 밖에 있다. 그를 매혹시키는 시공간은, 시간이 공간으로 또 공간이 시간으로, 육체가 정신으로 또 정신이 육체로, 우연이 필연으로 또 필연이 우연으로 뒤바뀌는 그 경계, 다시 말해 기존의 현실과 역사에서는 실현되지 않았기에 여태 보이지 않아 조형으로 표현된 적이 없는 낯선 세계다.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있는, 그 세계에서 그는 혈연이나 성별이나 나이나 국적까지 초월함으로써 현실의 가시적 세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모든 사물 속에 내재적 본질이 입고 있는 색의 수수께끼 실마리가 그의 손에서 풀려났다.「생각하는 형태들」 시리즈에서 생각은 작가가 아니라 감상자의 몫이다. 작가는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 제목들로 그런 여지를 남긴다. '사색'이 미술재료나 양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만든 까닭을 여기서 찾게 된다. 깊은 통찰력이 빛나는 사색을 캔버스 속에서 융합 시키는 것, 그리고 사물들의 원초적인 색들을 작품의 필수 요소로 이끌어내는 작업이야말로 그가 일궈낸 그만의 미술 양식으로 볼 수 있다. 물체건 사람이건 풍경이건 아니면 이들간의 다양한 조합에서건, 그가 택한 모든 조형요소들은 작품 속에서 색깔로 제 생각들을 드러낸다. 정물화에서도 실내 풍경 에서도 사물들의 사색은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존재의 깊이를 더해간다. 그러나 이 사색은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곳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철학과 과학이 아닌 곳으로 발걸음을 뗀다. ● 그가 화재로 붙들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기존의 질서와 선입견으로부터 철저하게 독립되어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그를 기존의 미학세계에서 자신만의 미학세계로 망명을 떠난 '미적 망명자'로 부르게 된다. 회화의 사색은 (철학적 × 논리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회화의 사색은 (과학적 × 학문적) 진리를 찾지 않는다.그것은 다만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한다. 그의 작품은 스스로 놀라고 스스로 탐색한다. 모노크롬의 미니멀한 작업에서 조차 그는 그림의 본질을 담은 그릇인 형태를 완전히 버린 적이 없다. 그 형태야말로 '그리기'로서의 회화를 살찌우고 정당화 시켜주는 미학 요소들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최인선_영원한 질료 Eternal Material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97cm_1993
 

 

「날것의 빛」 시리즈는 그의 모든 작품 연대기에 있어 비할 데 없이 빼어난 색채 사전이다. 마티스의 작품 또한 눈부시지만, 그의 이 시리즈 곁으로 다가오면 그 빛을 잃을 것만 같다. 햇살 속에 발가벗은 색채의 나신들은 너무도 눈부시다. 그가 콜라주하는 오브제는 물체가 아닌 '시간'이다. 피카소가 공간적 입체주의를 창시했다면, 그는 시간적 입체주의를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날것의 빛, 2014」 시리즈에서 거듭 확인 된다. 그런 작품에서는 하나의 실내 풍경이 서 너 개 또는 그보다 많은 화면으로 나눠진다. 그 분할된 화면들은 각자 다른 시간대에 속해있다. 그 부분 화면들은 제 각각 다른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맞물려 있는 곁의 화면과는 동일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음에도 시간적으로는 서로 떨어진 시차를 느끼게 한다. 호텔 로비에 세계 주요 도시의 각기 다른 시간들이 콜라주 되어 있듯, 실내 풍경을 그린 그의 화폭에는 등장 사물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콜라주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문다. 존재와 의미의 경계마저 그 빛 속에서 허물어지고 만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일까? 화재로 선택된 사물이나 콜라주 된 시간의 스토리가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령 모네나 세잔느 같은 대가들의 그림으로)도 있지만 특별히 눈길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조화롭거나 서로 충동하는 색들은 그 자체로 이미 놀라움이며 발견이다. 곳곳에 사물들의 생각이 깔려있다 해서 미술적 매력이 감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작품의 형식미에 풍부함을 더하고 색채만이 발견하여 말할 수 있게 하고 또 안내해서 미학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최인선_영원한 질료 Eternal Material_캔버스에 혼합재료_184×228cm_1993

 

최인선_날 것의 빛 Light of Rawness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3

 

여기서 빛나는 모든 색채들은 인과관계를 초월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할 개연성을 찾아 볼 수 없다. 색채의 본질은 그 비 개연성에 있는 것이다. 광합성 작용으로 잎과 나무와 가지를 길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처럼, 그는 자신만이 구사해내는 색채들로 인과관계의 경계를 뛰어 넘어 신비함으로 빛나는 비 개연성의 세계로 망명했다. 그 세계에는 무라카미 하루끼의 소설「1Q84」 에서처럼 달이 두 개 떠있을 수도 있고, 빨간 철근 프레임으로 세워진 집이 강아지처럼 소파에 누워 노란색 낮잠을 즐길 수도 있다. 거기에는 인과율의 하수인인 고정관념이나 관습이 없다. 단 한번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세상을 향해 영원히 열려진 창문이 있을 뿐. 그런 세계를 학자들은 병행세계 Parallel World 라 부른다. 현실과 병행해서 존재하지만 감지 불가능하며 호환 불가능한 세계를 말한다. ● 25년에 걸친 그의 미학적 오디세이는 비 개연성의 세계, 바로 미학적 병행세계로 우리를 데려다 주는 네비게이션으로 작동한다. 그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어느새 그가 만든 병행세계로 들어와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연필냄새 그대는 어디에? 지금 날것의 빛이 오랜 그리움 더불어 다발로 쏟아져 내리는 창문 앞에 섰다. 저 뒤쪽에 주방이 있었지. 거기서 그대는 지금 저녁 식탁에 올릴 생선을 손질하고 있는가. 창문 틈에서 날것의 빛살에 싸인 생선 비린내 풍겨온다. ■ 박인식

 

Vol.20140605d | 최인선展 / CHOIINSUN / 崔仁宣 / painting

홍익대 미술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최인선씨의 ‘미학오디세이 25년’ 초대전 개막식이 지난 5일 오후6시 ‘아라아트’지하4층 전시실에서 있었다.

개막식에는 최인선씨의 지인들과 축하객들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인사동 사람들’로는 아라아트 대표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유근오, 최백호, 남궁옥분, 편완식, 김정남, 공윤희, 노광래, 홍성식, 이상철, 편근희, 황예숙씨 등 여러 명이 함께했다.

 

최인선씨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미학오디세이 25년’전은 전무후무한 대규모 전시로 ‘아라아트’ 지하4층부터 지상3층까지 전 7개층 1,200여평의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작 50점을 비롯한 400여점의 전시작들을 통해 25년 동안 진행되어 온 그의 작업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전시를 기획한 소설가 박인식은 전시서문에서 "그가 콜라주하는 오브제는 물체가 아닌 '시간'"이라며 "그는 자신만이 구사해내는 색채들로 인과관계의 경계를 뛰어넘어 신비함으로 빛나는 비개연성의 세계로 망명했다"고 말한다.

이 전시는 8월5일까지 이어진다.

 

 

 

 

 

 

 

 

 

 

 

 

 

 

 

 

 

 

 

 

 

 

 

 

 

 

 

 

 

 

 

 

 

 

 

 

 

 

 

 

 

 

 

 

 

 

 

 

 

 


 

2014년 4월30일 오후3시, 연극 ‘레 미제라블’의 리허설을 촬영하기 위해 대학로로 나갔다.
이명희씨의 열연장면들을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오래전부터 약속해 두었으나,

지겹도록 반복되는 연습장면에, 어느 듯 저녁 때가 닥쳐왔다.

아내와의 약속으로 급히 인사동으로 왔는데, 뜻밖에도 ‘아라아트’대표 김명성씨, 소설가 박인식씨,

화가 조경석씨와 마 틴, 국악인 윤혜성씨 등 한꺼번에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툇마루’에서 같이 식사하고 나오는 길에서는 화가 손연칠씨와 감정인 류상동씨를 만난 것이다.

반가움에 ‘노마드’로 안내했는데, 그 자리에서 패션디자이너 손성근씨도 있었다.

인사동은 이래서 좋은 것이다.
약속도 없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고, 덤으로 공술까지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술도 마셨으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이틑 날 새벽일찍 장터로 떠나야 할, 이 장돌뱅이 신세를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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