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놀던 고향의 놀이터 같았다.
돌이켜 생각하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지겹기도 아쉽기도 하지만,

마치 마누라 떠난 집같이 허전하다.

천상병, 박이엽, 민병산 선생을 비롯하여 김종구, 이존수, 강용대, 김영수, 최영해 등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남은 벗들을 만나려면 인사동으로 가야한다.

도 때도 없이 만날 수 있었던 옛날에 비해, 요즘은 가까운 사람들의 전시오프닝이나 만날 수 있다.

30여 년 전에는 예총의 '사진협회'도, 사우들이 모이는 암실도 인사동에 있었다.
그리고 천상병선생을 뵐 수 있는 찻집이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실비집'도 있어,
일 없는 날은 인사동 주변을 맴돌며 벗들과 정분을 나누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최정자선생과 김신용, 배평모, 이근우, 이점숙, 박한웅, 박광호 등 자주 어울리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지만, 젠 모두 떨어져 있어 쉽게 만날 수도 없다. 인사동에 모임이 있어도 한 두 사람 나올 뿐이다.

세월이 지난 지금의 인사동은  낭만적이라기보다 장사꾼들이 판치는 난장에 다름 아니다.
인사동 고유의 정서는 사람과 돈에 밀려 난지 오래 되었고,
쉼 없이 밀려드는 인파와 얄팍한 상혼에 주눅 들어 낯설기 그지없다.

 

그래도 인사동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많은 갤러리들이 남아있고,
아직은 인사동 골목의 술집에서 세파에 찌든 예술가들의 한숨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사동이란 지난 날 이산가족들을 만났던 여의도 광장처럼 안타깝다.,

아련한 그리움만 떠도는 서글픈 현장일 뿐이다.

 

사진,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11월 27일의 인사동 거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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