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마니'의 산삼심기를 겸한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인왕산에 올랐다.

멀리서 바라 보았던 인왕산은 원만한 바위들이 축을 이룬 산이었는데,

효자동 세종마을을 통해 올라 간 인왕산 산길은 너무나 정겨웠다.

인왕산에 이토록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산길이 있는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행사가 끝난 후, 효자동의 '칼국수에 빈대떡'이란 식당에서 늦은 오찬을 들고

박인식씨를 따라 효자동에서 안국동까지 걸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길을 접한 것이다.

경북궁 서문에서 동문을 통과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관 못 미쳐 골목으로 진입해

꼬불꼬불한 골목들을 거쳤는데, 난생 처음 접한 북촌의 미로같은 골목들이었다.

때로는 사저를 경유하는 무례를 범하기는 했지만, 도처에 풀꽃이 핀 한적한 골목이었다.

'서울의 재발견'이라 할만한 골목들을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아래 사진은 식당에서 점심식사하는 모습과 '로마네 꽁띠'의 술자리 모습들이다.

 

 

 

 

 

 

 

 

 

 

 

                                           경북궁을 통과하는 길은 수문장교대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농심마니의 2014년 봄 행사 "산삼심기"가 아래와 같이 열리오니 많은 참석바람니다.

일자 : 4월29일-30일(화,수:1박2일)
집합장소 : 서울, 구로구 궁동소재 '궁동산장'
행사장소 : 구로구 소재 와룡산 일원

[지하철 온수역에서 6616번 버스 이용,
원각사에서 하차하여 길건너 전파관리소 방향으로 진행하면 5분거리에 궁동산장 있음]

1부행사 : 원각사 산사음악회 오후7시 (정태춘, 박은옥 출연)
2부행사 : 농심마니행사 오후10시 "궁동산장"
익일 와룡산 일원에서 산삼식재
참가회비 : 3만원 (주식제공)
숙박장소 : 궁동산장 ( 02-2611-3687, 010-2821-5113)




그동안 좋지 못한 일로 휘말렸던 김명성씨가 다시 인사동으로 돌아왔다.

사흘 동안 경북 청송과 포항 등지의 장터를 떠돌다 돌아오던 지난 11일 오후,
김명성씨의 동생 효성씨로 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빨리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생각에 차안에서 카톡을 날렸지만, 너무 성급했다.
소식을 접한 인사동사람들이 하나같이 전화를 하거나, 인사동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사자로서는 당장의 업무파악이나 가족들과의 상면이 더 시급했을텐데...

서울 톨게이트에 진입 할 오후8시무렵, 김명성씨로부터 첫 전화를 받았다.
너무 반가워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지인들의 연락을 받아 박인식씨네 “로마네꽁띠”로 간다기에 함께 만나기로 했다. 


한시간 쯤 후에 도착해 보니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채현국, 최혁배, 박인식, 이세희, 강선화, 공윤희, 전인미씨가 모여 반가운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뒤늦게 ‘경북매일’의 최재왕씨와 정기호선생의 부인이신 조경석씨도 나왔다.
근 50일만의 첫 만남이니 얼마나 할 말들이 많았겠나?

사흘 동안의 강행군으로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새벽녘까지 술을 마셔댔으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내일 강민선생님과의 오찬약속에서 부터 줄줄이 약속을 잡아 놓았으니,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조용한 서울의 새벽길인지라 안심하고 달릴 수는 있었으나, 집에 도착하니 또 다른 일이 벌어져 있었다. 장모님께서 넘어져,

밤새 일어나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계시는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결국 집을 비우면 않된다는 말이었다. 낮에는 몇 시간씩 간병인이 찾아와 도와주니 괜찮은데, 밤 시간이 항상 문제였다.

다음 날 잠이 들깬 상태에서 혼자 인사동으로 나갔다.
꾸물대다 시간도 늦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안국역을 놓쳐 종로3가에서 걸어가야 했다.
약속장소인 ‘포도나무집’에는 강 민선생님께서 30여분이나 기다리고 계셨다.
5월초순 무렵, 강민선생님의 ‘인사동 아리랑’ 시집이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뒤이어 이행자, 채현국, 이계익선생께서 나오셨으나, 술이 들 깬 상태로 마신 탓인지 금새 취했다.

오후6시 무렵 ‘노마드’로 자리를 옮겼더니 김신용씨와 전활철씨가 있었다.
뒤이어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윤재문, 정인경, 정기범, 이명희, 임태종, 권영진,
이청운, 김상현, 노광래, 편근희씨 등 많은 지인들이 나타나 오랜만의 회우를 즐겼다.

김명성씨는 몸도 좋아졌지만,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밀린 일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의지도 엿보였다.
그리고 인사동사람들의 뜨거운 성원에 고마워했다.
보답하는 길은 성공하는 일 뿐이라며, 결코 잊지않겠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를 위해, 다 같이 잔을 듭시다”

 

 

 

 

 

 

 

 

 

 

 

 

 

 

 

 

 

 

 

 

 

 



봄바람 부는 인사동에 막사발 2014개가 전시되고 있다.

 

20여 년 동안 막사발만 고집해 세계에 퍼트려 온 도예가 김용문씨의 전시다.
이번 전시의 색다른 점은 터키제자들과 함께, 오늘을 의미하는 2014개를 구웠다는 점이다.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막사발전의 중요한 정보는 한 점당 5만원이라는 점과 개수가 많아

엄청 좋은 작품들이 많다는 점이다.

 
김용문씨는 5년 전 부터 터키 국립 하제테페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한국 도예를 가르쳐 왔다.

그래서 제자 도예가 (비르칸 악차, 투바 외즈칸, 에스라 아칙괴즈, 무하메트 테케신) 네 명을

데려왔고, 함께 전시도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막사발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중국 산동성과 터키 앙카라 등지를 떠돌아 다녔으나

지난 해부터 전라북도 완주에 정착해 “세계 막사발 미술관”을 만들었다는데,

한 번 쯤 구경 갈 기회도 만들었으면 한다.

지난 12일 오후4시부터 ‘아라아트’3층에서 열린 개막식은 박인식씨 사회로 진행되었다.

무세중, 무나미선생의 행위예술과 국악연주가 이어졌으며, 윤여준, 민영 선생의 축사도 있었다.

개막식에 나오신 분으로는 참여 작가를 비롯하여 민 영, 심우성, 윤여준, 무세중, 서정춘, 송상욱,

김신용, 윤승길, 이청운, 박인식, 조준영, 이명희, 무나미, 편근희, 임경일, 노광래, 정영신, 전인경,

곽명우, 장경호, 강선화, 임헌갑, 황예숙, 박상하, 최일순, 명지혜, 유근오씨 등이다.

그런데 명단 적을 때마다 난감한 것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벌써 치맨가?”

 

 

 

 

 

 

 

 

 

 

 

 

 

 

 

 

 

 

 

 

 

 

 

 

 

 

 

 

 

 

 

 

 

 

 

 

 

 

 

 

 

 

 

어려움에 처한 김명씨를 돕기 위해 인사동 예술가들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예술가들이지만 김명성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분들이

하나같이 주머니를 털어 모금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액수보다는 평소에 가까웠던 지인들의 마음을 모우려 했으나

몇 일만에 모금액이 무려 천만 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인사동예술가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났겠지만,

평소에 김명성씨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거두었는가를 알 수 있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사동에 김명성씨가 마지막 희망입니다.
오랜 동안 인사동이 전통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예술가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그러나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전통문화보다는 돈이 앞서는 상업지구로 급변했습니다.

그렇지만 김명성씨는 사재를 털고 남의 돈까지 빌려가며 인사동에 지하4층, 지상5층의 대형 전시문화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인사예술제(가칭)를 비롯하여 인사문화상(가칭) 창설을 준비하는 등, 인사동이 문화예술로 거듭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인사동을 드나드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아 왔습니다.

주위에서 돈 되는 호텔이나 백화점을 만들지 가망 없는 전시공간이 무어냐고 나무랐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 저런 일로 주변에 그를 시기하고 모략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작은 물방울이 강을 이루듯, 그가 다시 현장에서 일 할 수 있도록 인사동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지난 6일 제일 먼저 소설가 박인식씨가 성금을 기탁함으로서, 심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정영신, 전인경, 전활철씨 등 가까운 분들의 동참아래 카페 '인사동 연가' 와 카톡으로 소식을 전했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아날로그 세대라 소식을 접하지 못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어렵게 사는 분들이라 돈 내라는 전화를 못드려 망설이는데, 원로시인 강민선생으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원로선생님들 중에 유일하게 강 민선생만 카페도 보고 카톡도 이용하는 분이셨습니다.

인사동 '포도나무집'으로 나갔더니 기꺼이 동참하겠다며 준비해 온 성금봉투를 주셨습니다.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강민 선생의 참여에 힘 입어, 술 한 잔 마신 김에 여기 저기 전화했지요. 

황명걸, 민 영, 채현국, 임재경, 송상욱선생을 비롯하여 서정춘, 이청운씨 등 많은 분들이 동참하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포도나무집'에 강 민선생을 만나러, 친구 분들이 갑자기 들어 닥쳤습니다.
소설 쓰시는 김승환씨, 한국화가 홍용선씨, 서양화가 강녹사씨, 진부령미술관장으로 계시는 전석진선생께서 오셔서

함께 술 한 잔 나누었습니다.
꽃피는 4월이 되면 '진부령미술관'에서 홍용선선생께서 전시한다는 말씀에, 노래'봄날은 간다'를 질질 짤며 불렀으니

술만 마시면 정말 눈치코치도 없습니다. 안절부절하는 마누라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포도나무집'을 나오는 길목에서 심우성선생을 만났고, '허리우드' 찻집에서는 채현국, 임재경선생을 만나 성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사동 거리에서는 중앙일보에서 일하다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진가 최재영씨도 우연히 만났습니다.

 

모두들 반가웠고, 힘을 실어 준 하루였습니다.

 

 

 

 

 

 

 

 

 

 

 

 

 

 

 

 

 

 

 

 

 

 



안승일씨의 ‘불멸 또는 황홀’ 백두산사진전 개막식이 지난 24일 오후6시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렸다.

전시장은 작품 감상하러 온 축하객들과 내빈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박인식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대부분의 시간을 내빈들의 인사와 축사에 할애해야 했다.
시인 민 영선생을 비롯하여 송 현 시인, 산악연맹 이인정회장, 원로언론인 임재경선생, 김종규이사장,

행위예술가 무세중씨, 서양화가 김용태씨,‘아라아트’ 김명성대표, 방송인 전유성씨, 김영환의원,

박원순시장의 축사가 이어진 후 안승일씨의 인사말이 있었다.

 

"남들은 다들 고생했다고들 하지만 자신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지난 18일 오후6시경, '을지면옥'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 자리에는 판 만드는데 선수들인 '아라아트'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소설가 박인식씨, 이 성 구로구청장,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 진옥섭씨가 나와 있었다.
박인식씨가 기획한 안승일씨의 백두산전을 앞두고 서로 의견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전통공연 흥행사로 이름을 떨친 진옥섭씨와 청백리로 소문났던 문화구청장 이 성씨가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사동을 드나들었지만 서로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정말 실감났다.

그 자리에서 많은 제안들이 나와, 올 해는 신명나는 판들이 많이 열릴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이 성씨는 농심마니 회장 박인식씨에게 당장 올 봄 산삼 심는 행사부터 구로에서 하자는 제안도 하였다.

진옥섭씨의 껄죽한 재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느닷없는 이성씨의 만담에 또 한 번 웃었다.

옛 동화에 나오는 '늑대소년"이야기였다.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쟁이가 아닌데도 거짓말쟁이로 물려 죽었으니 그가 진정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사연인즉, 풀밭에 누워있던 양치기소년이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 편대를 발견하여 '넉대 나타났다'했을 때만 주민들이 나왔고, 진짜 늑대가 나와 "늑대 나타났다"했을 땐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ㅎㅎㅎ

 

 

 

 

 

 

 

 

 

 

 

 

 

 



 

 

 

 

 

 

 

 

 

 

 

 

 

 

 

 

 

 

 

 

 

 

 

 

 

 

 

 

'나 다큐' 프로젝트의 첫번째 대상으로 김명성씨의 삶을 조명하기로 했다.

지난 15일, 부산에서 양산까지 이박삼일을 다녔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주연에 할애 했다.

오뚜기처럼 버텨온 굴곡 많았던 삶이나 그의 철학, 그리고 인사동에 올인하는

많은 이야기를 듣기에는 술 기운이 거나해야 더 진솔해 지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술자리를 즐기는 김명성씨의 스타일에 기인했다는 말에 더 무게가 간다.

중요한 업무 협의로 해운대에서 시작된 일정은 기장을 거쳐 양산까지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박인식, 정영신, 전인경씨가 동행하였고, 해운대에서 정기범씨가 합류했다.

 

김명성씨로 부터 온 종일 취재에만 메달릴 수 있었던 곳은 양산 통도사

인근에 작업실을 둔 도예가 정명수씨의 ‘니산요’에서 였다.

인터뷰 중 옛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인사동에 대한 애착과 집념에서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도 하였다. 자신의 삶과 따로가 아닌 하나라는 것이다.

'김명성, 인사동에 걸다' 다큐의 전체 틀을 짤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취재 기간 동안 기장과 대변을 오가며 맛있는 갈치와 전복죽을 사준 오세필씨,

맛있는 농주를 한 말이나 가져 온 니산, 온 종일 안주 장만하느라 바빴던 나리엄마, 너무 고생 많았어요.

그 맛갈스러운 음식 솜씨로 매번 고생 하지만 복은 많이 받을거요.

그리고 술 취한 아빠 대신 울산역까지 데려다 준 나리도 고마워!

코흘리게 소녀 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01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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