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 인생 40년, 허동화 자수박물관장]

70년대 해외 반출 막으려 모으기 시작, 총 3000점… 11개국서 55회 전시회
'한국의 美' 전파하는 문화 콘텐츠 돼

  

1970년대만 해도 자수(刺繡)와 보자기는 민속문화재 취급도 받지 못했다. 허동화(88) 한국자수박물관장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자수와 보자기를 수집해 처음 갤러리를 연 것이 1974년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한국 규방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소장품은 세계인이 주목하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됐다.

서울 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에서 만난 허 관장은 1~3월 일본 교토의 고려미술관에서 열리는 자수 전시 준비로 분주했다. 그는 1979년 첫 해외 전시 이래 지금까지 11개국에서 55회 전시회를 열었다. 허 관장이 수집한 작품은 자수 2000점, 보자기 1000점에 이른다.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이 ‘화조 십첩자수병풍’ 앞에 섰다.

                                              “화조 병풍 덕에 자수를 알게 됐고, 그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윤동진 객원기자  

평생 자수를 수집해온 허 관장의 전직이 의외다. 육사 9기생인 그는 6·25 때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은 장교다. 1956년 소령 예편 후 한전에서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도자기 수집에 빠져 있었지만, 자수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고 한다. "1960년대 초반이었죠. 도자기를 보러 인사동에 갔는데 한 미국인이 화조(花鳥)가 수놓인 병풍을 헐값에 사가고 있더군요.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저 아름다운 물건이 제값도 못 받고 해외로 반출되다니…. 아무도 지킬 이가 없으니 나라도 나서서 지켜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값어치 없는' 자수를 수집하는 이가 있다고 소문이 나자 집에 있던 물건을 들고 오는 이들이 생겼다. 그들은 팔 물건을 보자기에 싸 왔다. "쇼핑백 돈 받고 파나요? 보자기는 공짜로 들어온 거죠. 근데 이게 기가 막힌 거에요. 작은 천 조각을 이어 만든 호남권의 조각보, 여러 색실로 무늬를 놓은 강원권의 자수보,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는 경기권의 모시보 등 다양합니다. 보자기는 한국과 일본, 터키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입니다. 조각보처럼 독특한 것은 한국에만 있죠."

수집품이 많아지자 허 관장은 1974년 갤러리를 연다. 부인 박영숙씨가 운영하던 삼각지의 치과 병원 한 켠이었다. "수집은 제가 했지만, 치과 의사인 아내의 재정적 지원이 있었기에 모을 수 있었죠. 소유권은 아내에게 있어요. 전 박물관 관리인일 뿐이죠. 하하."

허관장이 수집한 조각보

 

  어느 날 그의 갤러리에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찾아왔다. 최 관장은 "사라져 가던 우리의 자수와 보자기가 여기에 남아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허 관장은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 초대전을 갖는다. "30만명이 다녀갔어요. 자수의 가치를 재평가받게 된 계기였죠. 그 후 가격이 배 이상 뛰어 수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듬해 문화부는 도쿄에 한국문화원을 개관하며 첫 전시로 자수·보자기를 택한다. 첫 해외전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한국 보자기를 처음 본 외국 문화계 인사들이 앞다퉈 초청해왔다. 서양인들 눈에 한국의 조각보는 추상회화로 비쳤다. 독일 린덴 국립민속학 박물관장인 피터 틸레는 그의 저서에 '색채 구성이 뛰어난 한국 조각보는 몬드리안이나 클레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20세기 추상화 거장들이 한국 보자기를 본 적 있을까'라고 썼다.

일본·미국뿐 아니라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에서 초청이 이어졌다. "1999년 프랑스 니스 동양박물관은 한국 보자기로 개관전을 했어요. 콧대 높은 프랑스 박물관이 개관전에 외국 갤러리를 초청해 유럽 미술계에서 화제가 됐죠. 그 해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박물관 전시는 주최 측 요청으로 석 달 연장되기도 했고요."

해외에서 유명해지자 국내에서도 보자기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됐다. "자수와 보자기 둘 중 문화재적 가치는 자수가 더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보자기는 해외에 한국을 알릴 훌륭한 도구입니다. 보자기에 대해선 자부심이 있어요. 제가 수집하지 않았다면 영영 사라질 수도 있었겠죠."

[조선일보/ 김충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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