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1시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제9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총회 하루 전에 볼 일이 있어 울산 내려 갔으나, 다음날 아침에 바로 돌아와야 했다.
사랑방마을 정기총회가 자주 열리는 총회도 아니지만,

다들 밖에 잘 나오지 않아 한꺼번에 동네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 내려 간 김에 인근의 장터나 유적지를 찾아 사진을 찍었으면 좋으련만, 지체할 수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으나, 정영신씨 고물차가 말썽을 부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었다.




총회가 열리는 동자동 '성민교회'에 들어서니, 반가운 분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선동수 간사의 보고에 의하면 위임한 30명을 포함하여 170여명으로 성원이 되었다고 했다.




2018년도 감사보고와 승인, 사업 결산보고가 이어졌고, 임원선출도 따랐다.
이사장에 유영기씨, 부이사장에 조두선씨, 사업이사에 김정호씨, 조직연대이사에 양정애, 윤용주씨,

교육홍보이사에 임수만씨, 감사에 최순규, 정시영씨가 선임되었다.




그리고 작년 년 말까지 주민들의 출자금이 총 2억5천6백만원이라고 했다.

전년도에 비해 3천8백만원 가량 줄어들었으나 전체 조합원 389명이 출자한 돈으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평균 65만원 정도를 출자한 셈인데, 나는 2016년 부터 출자했으나 아직까지 24만원 밖에 못했다.



출자한 사람의 대부분이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라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저축을 안 해도 담배 값이 없어 허둥댈 때가 많은데, 결국 돈을 쓰지 않는다는 거다.



난, 돈이란 죽고나면 아무 소용없다는 낙천적인 생활습관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저축을 생활화하지 않아, 요 모양 요 꼴로 살지만 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산다.



마약 같은 돈에 끌려 다니지 말고,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는 생각도 변함이 없으니,

죽을 때까지 철들기는 틀린 것 같다.



그런데, 요즘 큰 건물가진 친구들도 내막을 살펴보면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더라.

임대수익도 예전 같지 않은데다, 팔려고 해도 세금 제하고 나면 빚더미에 앉아야 한다는 거다.




결혼도 않고 즐기며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라 꼴이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렵게 살면서도 열심히 저축하는 동자동 사람들이 존경스러운 것이다.

한 평생 고생하며 사람답게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까지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산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

육십대까지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저축해야 겠지만,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은 이해되지 않는다. 

물려 줄 사람도 없는 독신인데, 과연 누굴 위해 종을 울려야 할까?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사랑방’에서는 한 달에 두 번씩 마을 대청소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 이른 아침 무렵의 ‘동자동 사랑방’사무실 앞에는
김정길, 김정심, 김정호, 김호태, 선동수, 유영기, 조인형씨 등 12명의 이웃들이 나와 있었다.
이번이 69회째인 마을 대청소는 강요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나서는 일이라 그런지,
매번 20여명의 적극적인 주민들만 활동하고 있다.

나 역시 늦잠 자는 게으른 탓으로 14개월 만에 두 번째 참여한 것이다.
이 날은 서둘러 나갔으나, 다들 빗자루로 완전무장 한 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기념사진부터 찍고,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물론 구석에 감추어진 쓰레기들을 쓸어 담았는데,
문제는 맨홀 밑으로 밀어 넣은 담배 꽁초였다.
차라리 그냥 버리지, 왜 맨홀 틈으로 집어넣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지저분한 것을 감추고 싶은 본능인지 모르지만, 흡연자들은 각성해야 한다.
기어히 맨홀에 버릴려면, 차라리 자기 코 구멍에나 쑤셔 넣어라.


사진,글 / 조문호

































G갤러리 대표 김형구씨



정선 화암면 주변의 바위들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 기암절벽이 토해내는 자연 조각도 대단하지만, 마치 산수화 속 그림처럼, 마을 자체가 반달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감히 예술가가 어찌 자연이 이룩한 이 웅장 미려함을 따를 수가 있겠는가?





오래 전부터 정선군에서 화암마을을 예술마을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다.
조각가 이재욱씨가 나서, 옛 변전소자리에다 ‘그림바위예술발전소’라는 간판을 달고
야외 조각공원과 갤러리까지 만들어 운영해 왔다.

그러던 중 ‘문화관광부’가 주최하는 2013년 마을미술행복프로젝트 공모에 화암면 그림바위 일대가 선정되며,

국내 최고 미술마을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반월에 비친 그림바위마을’을 내 세웠으나,

의욕에 비해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김형구작 ''



지난 달 'G갤러리' 대표로 있는 김형구씨의 전화를 받았다.

‘다색전’이란 전시를 기획하는데, 작품 두 점을 출품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난, 특정한 주제나 사전 준비 절차도 없이, 한 두 점식 모아 전시하는

아마추어 회원전 같은 전시는 딱 질색이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일에 메 달려 떠 돌다보니, 정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향토문화에 작은 힘이나마 기여하지 못한다는 자책감도 있었지만,

초창기 이제욱씨가 운영할 때에는 한두 차례 출품하기도 했으나 김형구씨가 맡고 부터

전시 참여는 물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역작가들의 합동전이라지만, 엄밀히 말하면 난 정선주민은 아니다.

일 년 전 동자동 작업을 시작하며 그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선에 주소가 남아있는 정영신씨가 정선작가다.



홍경표작



작품반입일로 약속했던 지난 29일 오전9시경 화암면 G갤러리를 찾아 나섰다,
사진을 제작할 시간은 물론, 창고에 처박힌 사진조차 고를 시간이 없어,

방에 걸린 사진 두 점을 챙겨 갔는데, 화가 김형구씨는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G갤러리에서 ‘美親 三友展’이란 제목을 건, 화가 김형구, 김정호, 홍경표씨의 삼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세 작가가 친구이기도 하지만, 화풍이 비슷했다. 마치 한 사람의 작품 같았으나 작품들이 좋았다.

내가 정선에서 보아왔던  전시 중에는 그 중 돋보였다.



김정호작


그러나 오는 10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多色展’의 전시 팜프렛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근 두 달 가까이 단풍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주요한 시기에 열리기에 더 안타까웠다.

그 것도 정선군과 공동주최하는 기획전이라는데, 쌍팔년에나 자주 볼 수 있었던

이런 동아리전 비슷한 전시가 아직까지 기획전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한심했다.

지역작가들의 요청에 의한 친목을 위한 전시라면 갤러리보다 지역민들의 축제장인

‘정선아리랑제’ 한 쪽에 부스하나 만들어 즐기면 될 일이다.





이런 습작들을 모아놓고, 정선 대표작가로 알리려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었다. 정선작가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다.
정선군은 좋은 작가들을 유치하려는 생각은 커녕, 기존의 작가마저 살지 못해 떠나는 실정이다.


그림바위마을을 예술 마을로 만들려면, 일단 관리들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화암마을 관광 온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가 아니라, 전시를 보기위해 화암마을로 몰려오게 만들어야 한다.

세상에 돈 안들이고 되는 공짜는 없다. 또한 갤러리는 작품들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작품이 팔려 나가야 한다.

컬렉터들이 모여들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전시를 꾸준히 유치하여 갤러리의 격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훌륭한 전시 보러 와서 천혜의 그림바위 절경까지 보고 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어디 있겠는가?

좋은 전시만 이어진다면, 등달아 지역민들의 예술을 보는 눈도 높아질 것이다.
부디 정선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육성시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5일 정오 무렵, 동자동 쪽방으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미디어 작가 김도이 군이 밑 반찬을 잔뜩 사들고 찾아 온 것이다.
어저께 페북에 올렸던 불신의 병에 시달린다는 글을 본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몇 달 전 다녀 간 후로 만나지 못해 근황이 궁금했었다.
같이 점심 식사하며 소주 한 잔 하자는 제안에 쌍수로 환영했다.

건물 밑에 자리잡은 ‘광주식당’엔 좌석이 없어 도이씨 따라갔다.
‘서울역쪽방상담소’ 부근에 있는 ‘청국장’집으로 안내했다.
동자동 살고 있는 나도 못 가본 식당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청국장에다 돼지볶음으로 소주 한 잔했다.






빈속에 소주가 들어가니 짜리한 기분이 죽였지만, 낮술이라 은근히 걱정되었다.
다행히 소주 두병을 도이씨가 많이 마셔 주었다.
페북에 올린 동자동소식을 틈틈이 보는지 이 쪽 사정을 좀 아는 것 같았다.
우연찮게 부모님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연인즉, 어머니께서 심한 당뇨로 고통 받고 계신다는 것이다.
누군들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 지극한 효심에 감동 받았다.






발동 걸려 동자동 ‘새꿈공원’ 아지트로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낮술에 젖어 있었다.
정재헌씨는 이미 맛이 갔고, 이준기, 김용태, 계남기, 이한보, 이원식, 강완우씨 등

많은 사람이 여러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도이씨가 동내 사람들을 위해 막걸리와 담배를 사왔다.

다들 고맙게 받아 마셨는데, 이번엔 고급커피와 캔 막걸리를 또 사온 것이다.

이준기씨가 부담스러운지, 집에 가져가라며 사양한다. 사실 지나치면 자존심 상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준기씨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왕년의 주먹 아니던가.





이 날은 교도소 갔다 온 친구들이 많아 그런지 교도소 이야기가 주 화제였다.

다들 사연이야 기구하지만, 이구동성으로 쪽방생활보다는 교도소 생활이 편하다는 것이다,

갔다 오면 몸까지 좋아진다는 교도소 예찬론을 폈다.

하기야 얻어먹으러 다니지 않아도 삼시 세끼 밥 챙겨주겠다, 사람들과 늘 함께 어울리니,

쪽방처럼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술 담배를 못하지만, 건강에는 그 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술 취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이기영씨를 비롯하여 라흥주, 강동근, 이태헌, 연영철,

유한수씨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마침 정용성이가 지나갔는데, 그날따라 말짱했다.

궁금증이 발동해 옥탑 방까지 올라가보았는데, 끓여놓은 라면을 먹고 있었다.

황춘화씨는 흐뭇한 표정으로 자식 놈의 라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그런데, 황춘화씨 얼굴이 묵사발이 되어 있었다.





그 가파른 '9-18’건물, 마의 계단 에서 또 넘어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넘어져 팔을 다치지 않았던가.

아들 용성이가 넘어져 다치더니, 정재헌씨가 넘어져 다쳤고, 어제는 황춘화씨가 넘어져 다친 것이다.

건물 계단 손잡이를 쪽방상담소에서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사람 다 잡고 설치할지 모르겠다.

좀 있으니 꼭대기까지 손님이 줄을 이었다. 정재헌씨야 5층에 사니 올라 올 수 있겠으나. 이원식씨도 올라왔다.






내가 술집 작부를 자청하며 노래 한 곡 뽑았다.

‘비나리는 호남선’을 청승맞게 불렀는데, 갑자기 정재헌씨가 서럽도록 울어대는 것이었다.

말 못할 사연이 있어 보였다. 눈치 빠른 황춘화씨가 자기가 춤 출테니, 신나는 노래로 불러 달란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돌렸는데,

애미는 신바람 나 흔들어 댔으나 용성이는 처음 듣는 노래라 흥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작은 노트처럼 생긴 노래방 책과 손바닥만한 앰프를 켜 놓고 한 번 찾아보란다.

나는 가수라 노래방 노래는 하지 않는다며 밀쳐냈더니,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일 촬영이 있어 강릉까지 가야해 너무 오래 퍼질 수가 없어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동자동 사랑방’ 일행이 방문하겠다는 전갈이 왔다. 타이밍이 귀가 막혔다.

내가 사랑방으로 갔더니, 박정아, 김정호씨가 술과 안주까지 준비해놓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에 올라와 보니, 밑반찬까지 사온 것이다. 박정아씨도 내 하소연을 페북에서 본 듯했다.

후배가 와서 냉장고를 채워놓았다며 돌려보냈으나, 이게 사람 사는 맛이다.






‘동자동 사랑방’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박정아씨는 피가 뜨거운 빈민운동가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주민들이 소통하며 정 나누는 일이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말없이 온몸과 마음을 바치니, 그 열의에 보답하느라 김정호씨도 열심히 돕는다.

내가 오버 할 것 같아 술을 자제하니,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떠 난 후 컴퓨터를 열어보니, ‘광화문미술행동’에 대한 김진하씨의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핵심에서 비껴 간 글이긴 했으나, 이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재발을 막기 위해 누군가 책임지는 사람은 있어야 했다.

대표가 사임하고 부대표가 끌어간다면 협력할 용의가 있다며, 함께한 분들께 죄송함을 표했다.






더 이상 작가 없는 사진이 떠돌아서는 안 된다. 아무리 공익도 중요하지만, 작가에 대한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차후 어디에서라도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저작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작정이다.

잘 못된 일은 바로 잡아야 하니, 다들 양해해주기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4일 동자동 골목의 가게 앞에서 김용태씨가 술 판을 벌이고 있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막걸리 한 잔 권하며, 안주로 깎아 놓은 참외조각을 나누기도 했다.
지나가는 나에게도 한 잔하라며 눈짓을 했다.


그는 오늘 갖고 나온 팔 만원을 노숙자들에게 다 풀었다고 한다.
여러 노숙인 에게 나누어주었으니, 대개 술값으로 잘 썼을 것이다.
김용태씨는 노숙자들에게 구세주다.
돈 팔 만원으로 어디에서 그런 기쁨을 나눌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의 행색 역시 노숙인과 다를 바 없는데, 돈은 어디서 나는지 물어보았다.
오래전 은행에서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쓰고 있는데, 그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자신도 쪽방 달세를 내지 못해 노숙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손이 부어있는 것으로 보아 건강에도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여의도에서 열렸던 기초연금 기자회견장 다녀오느라, 힘들어 그냥 헤어졌으나,
다음에 만나면 그의 삶의 철학이나, 지난 이야기를 물어 볼 작정이다.

스스로 선택한 동자동의 삶이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분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
모두가 극락을 향한, 저승의 문턱을 두드리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나이가 들수록 보폭을 좁히라고 했으나, 그게 잘 안 된다.
독하게 마음먹고 동자동에 살라고 왔으면,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놀아야하는데,
맨날 천방지축 돌아다닌다. 아니 끌려 다닌다.
어디 세상 연을 끊는 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
인사동이나 사진판에 대한 연도 그렇지만, 가족에 대한 연도 마찬가지다.

요즘 나를 더욱 바쁘게 하는 것은 바로 박근혜다.
내가 무슨 투사도 아니고, 세상살이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열 받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신경을 끊은 것이다.
티비나 신문 한 장 보지 않았으니 가능했으나, SNS에 접하며 달라졌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개인적이고 방임적인 처신으로, 여지 것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자책 때문이다.

나야 머지않아 사라질 테지만, 자식들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함께 사는 빈민들을 위해서라도,
싸울 수 있는데 까지 싸워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쁘다는 이야기 한다는 게, 박근혜만 나오면 말이 길어진다.

지난 연말에는 동자동사랑방 공제협동조합 홍보위원회의에 참석했다.
홍보위원 김정호씨가 홍보위원으로 같이 일하자며 나를 끌어들인 것이다.
나야 하는 일이 홍보하는 일이니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 승낙했는데,
할 바에는 제대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대외적인 홍보도 홍보지만, 그보다는 세상과 단절해 사는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게
더 중요한 홍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200여명 중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조합원 수만 보더라도,
폐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어 함께 어울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 날 ‘동자동사랑방’ 사무실에서 가진 홍보위원 회의에는 차재설 홍보이사를 비롯하여

김정호, 허미라 홍보위원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우리가 할 일은 홍보물이나 소식지를 제작하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후원자를 늘리고, 잘 모르는 분을 설득하여 함께 하는 것이었다.

결의를 다지는 식사자리도 만들어, 다 같이 소주 한 잔했다.

그리고 한정민씨도 꼽사리 끼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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