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이야기가 있는 국악콘서트가 매달 마지막 수요일 오전 11시에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예음헌에서 열린다.
9월 27일에는 장돌뱅이 사진가 정영신씨의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새로운 우리음악의 정체성을 찿으려는 'The 林‘의 연주로 ‘다담’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약장수로 나서는 정영신씨로 부터 오래전부터 들은지라, 내가 기사로 따라나서기로 작정했었다.

전 날 저녁 무렵, 녹번동의 정영신씨 집을 찾았다. 이튿날 새벽에 떠나려 간만에 만났으니, 어찌 술 한 잔 나누지 않을 수가 있겠나.

비상 술로 꼬불쳐 둔 와인 딱 한 병만 마시고 자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 금새 자정이 되었는데, 알람을 새벽 다섯시에 맞추어 놓고 잤다.





정신없이 잤는데, 정영신씨가 난리 법석이었다. 시계가 일곱시가 넘었다는 것이다.

이놈의 알람이 그만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둘 다 세수는커녕,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출발해야 했다.
큰 일 났다. 운전대를 잡으니 출근차량들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해 고속도로 들어가는 것만도 한 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네비의 도착예정시간이 한 시간 정도 초과되었으나, 막히기 시작하면 대책 없기 때문이다.




‘다담’ 출연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전좌석이 예매되었다는데, 그 많은 구경꾼들의 항의는 어쩔 것이며, 더구나 국악방송의 녹화도 있다 하지 않았나.
얌체운전이고 지랄이고 가릴 것 없었다. 버스전용차로를 넘나들고 카메라 피해가며 평균 140킬로로 달렸다.
그런데, 새벽부터 비가 내려 도로가 완전히 젖어 있었다. 위험한 질주지만, 죽기 살기였다.

차라리 사고로 죽으면 용서라도 될 것 같았다.




달리다보니, 기름조차 없었다.
급히 휴게소 방향으로 진입했는데, 커브 길에 속력이 너무 빨랐다.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았는데, 빗길이라 차가 360도로 뺑 돌아버린 것이다.
“어이쿠! 죽었구나”싶어 옆자리의 정영신을 쳐다보았더니, 얼굴색이 완전히 똥색이었다.
마침 차가 들어오지 않아 살았는데,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다시 시동 걸어, 기름 채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논산 쯤 지나다 보니, 네비에 나타난 도착 예정시간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천지신명님이 불쌍하게 여겨 도와준 것 같았다. 현장에 도착하니, 딱 시작 10분 전이었다.
사회자와 대담 내용을 조율할 틈도 없었지만, 위기는 넘겼다.


사진 찍기 위해 이층 녹화실에 올라가 앉았지만, 강사가 혼이 빠져 실수할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별 탈 없이 잘 풀어갔다. 장터 사람들의 찐한 정담에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 들려 준 'The 林‘의 연주도 좋았다. 특히 리더인 신창렬의 구음과 김주리의 해금연주도 죽였다.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늦은 시간도 아닌 오전공연에 모인 관객 수였다.

서울의 한 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그만 도시 남원의 문화수준에 존경감이 일었다.
‘다담’콘서트를 성공리에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예원당 앞마당에서 다육식물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눈에 익은 한 분이 정영신을 비롯한 여러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보니 오래전 인사동사람들의 모임인 ‘창예헌’ 식구로 사인암 축제에도 함께했던 박호성씨였다.

이 분이 한국의 국악심포니 오케스트라인 ‘세종국악관현악’단장으로 있었던 분이 아닌가.

뒤늦게 알았는데, 박호성씨가 바로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의 원장에 취임한지가 3년이나 지났다고 한다.




잠깐 외도인지, 아예 관리로 나선지는 모르지만, 잘하는 것 같았다.
국악원 여직원이나 무용단원이나 모두가, 보지도 못한 춘향이처럼 예뻤다.
서울에서 변사또 아닌 박사또로 내려오게 된 그가 존경스러워졌다.




덕분에 간장게장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기도 하고,

그 궁전 같은 국악원 곳곳을 안내받았는데, 우리나라 국악의 요람이었다.

원장실에 들려 커피까지 얻어 마셨는데. 명강사의 노하우에 대한 많은 조언도 주었다.




서울오는 귀경길에 정영신씨가 한 마디 던졌다.
'지옥 같다 온 기념으로 염라대왕과 술한잔 해야겠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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