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다담 콘서트'에 가다 시껍하고 돌아와서, 정영신씨와 살아 온 기념으로 또 한 잔 마셨다.

그러나 적당히 마시고 자야 하는데, 그게 참 마음대로 안 된다. 

술은 넘쳐야 하고 님은 품에 안겨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술 병은 비워야 하지 않겠느냐?

내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 정선 가야 하는데, 자정이 넘어 자빠졌으니, 또 바쁠 수 밖에 없었다.


이젠 알람이란 놈의 성질머리를 알았으니, 더 이상 당하지 않고, 새벽 네시에 정확하게 일어났다.

지난 29일 오전 8시에 만지산에 들려 사진액자 두개 챙겨, 9시까지 화암면 그림바위 G갤러리에 전해 줘야 했다.

시간 맞추어 전해주고, 느긋하게 돌아 오는 귤암리 조양강변의 정취는 너무 포근했다.


만지산 살팔봉은 이미 익어버렸고, 조양강은 온천처럼 그 때까지 김이 무럭무럭 나더라.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급변하고 있다는 평범한 자연의 이치를 말해주었다.





만지산 집으로 올라가니, 입구에서 코스모스가 너울너울 날 반기는데,

오래 전, 삼겹살 구워먹던 불판 가마솥까지 코스모스가 점령해 버렸더라.


"네 이놈~ 네 놈이 빨지산이냐? 계엄군이더냐?"

갑자기 고은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나더라.

갈 때 못 본 불판, 돌아오니 화분으로 보이네.


예전엔, 친구 올 때 삼겹살 구워먹는 불 판이었는데, 

그 좋아하던 친구들을 일 하느라 멀리하였더니,

가마 솥 불판도 알아차려, 화분으로 둔갑해 버렸구나.

그래도 끝까지 지켜주어 고맙다. 힘없어 일 못하고 만지산에 돌아 올 때만 기다려다오.


그리운 친구 하나 하나 불러모아, 삼겹살 구워 소주 한 잔 마시게...

내가 그 때까지 살지도 모르지만, 친구들도 그때가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


그 건 아무도 알 수 없고, 오직 만지산 신령님만 알 것이다.

난, 십년 전 '농심마니' 박인식씨 패거리를 만지산에 불러와 

산삼 심어드리며 알랑방구 뀌어났으니, 좀 봐줄 것 같다.





이튿 날, '정신아리랑제'에 정영신씨가 온 다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술 한잔 먹여 잡아 먹으려고, 정선시장에서 전어 열 댓마리 사다놓고,

강기희 사단의 '문학콘서트' 차에 달라 붙어 오는 정영신씨를 찾아 아라리촌으로 갔다.


'문학콘서트'에서 많은 반가운 사람들 만났으나, 술은 차 때문에 딱 두 잔만 얻어 마셨다.

사진은 200장이 넘게 찍어두었으나, 일은 언제 할지 모르겠다.


정영신씨를 납치해 만지산으로 돌아 와, 가을전어 노리짝하게 구워놓고 술 잔을 들었다.

저 푸른 초원에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살고싶은 꿈을 꾼게 아니라, 남진의 노래를 불렀다.

한 잔하니. 천하가 내 손에 있더라. 대마까지 한 분위기 잡아주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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