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씨는 37년 동안 전국 장터만 돌아다닌 미친 여자다.

그런 미친 여자를 만난 지도 어언 20여 년이 가깝건만,

여태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어 천생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왕 장터를 찍으려면 전국 오일장을 다 돌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거절은 커녕 실행에 옮기려고 전국 6백 개가 넘는 오일장 장터 동선을 파악해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사진 작업에 대한 집념과 투지만은 막상막하였다.

 

몇 년이 걸렸는지 기억조차 아련하지만, 그녀와의 장터 여행은 길고 긴 신혼여행이 되었다.

그러나 두 미친 인간이 벌인 행각은 늙은이 말처럼 ‘밥 팔아 똥 사먹는’ 일이었다.

돈 한 푼 없는 거지가 장에만 가면 신나고 사진만 찍으면 좋아하니 어른으로 보였겠나?

 

긴 세월 장돌뱅이로 살았으면 장삿속도 밝을만한데, 돈 쓸 줄만 알지 벌 줄을 몰랐다.

먹고 사는 것보다 찍는 대상이 먼저다 보니, 거지로 사는 게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결국 그 엄청난 일을 마무리하여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란 책을 완성했다.

그뿐 아니라 ‘장날’과 ‘전국오일장 순례기’, ‘장에 가자’ 등을 연이어 펴내며

장터에 관한 사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미 사라진 시골장들은 그녀의 사진으로 남아 역사가 되었다.

 

나 역시 한가지 일에 매달리면 가족도 보이지 않는다. 

쪽방 살려고 이혼을 요구했는데,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을 위해서라면 결혼하자 면 결혼하고, 이혼하자면 이혼하는 바보다.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는 바보가 착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요즘 그런 여자 보기 힘들다.

 

'사진을 위해서라면 부부면 어떻고 동지면 어떠냐?는 것이다.

우린 세상이 만든 굴레는 벗어 던진 지 오래다.

난, 그녀 방패막이 되어 그녀를 힘들고 슬프게 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쳤다.

위태로운 삶을 살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감은 최고로 친다.

 

그런데, 장돌뱅이 정동지가 또 사고를 쳤다.

팬데믹으로 사람을 피해 다닌 2년 동안,

날 따 돌리고 천안 입장장에서 서천 장항장까지 장터를 떠돌아다니며 바람을 피운 것이다.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이란 책을 내려고 기차 타고 혼자 돌아다닌 것은 좋으나,

그 고생길은 보나 마나 뻔하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 메고 장꾼들처럼 버스 기다려가며 돌아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히려 장꾼들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늦은 밤 용산역으로 마중을 가면 항상 곤죽이 되어 돌아왔다.

매번 위로는 커녕 ‘사서 고생 한다’는 핀잔을 주었지만, 타고난 업이라 여겼다.

 

드디어 장항선 주변의 충청도 장 21곳의 장터 순례를 억척스럽게 끝냈다,

책을 만들고 전시회도 연다지만, 누가 책은 그냥 만들어주며, 전시는 그냥 열어준다 드냐?

그렇다고 돈 잘 버는 서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려받은 유산 한 푼 없는 거지가 말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벌리고 보는 뱃심 하나는 존경하지만, 빚 갚을 걱정이 태산 같다.

그래서 쪽팔려도, 책 팔려고 매주알 고주알 약을 파는 것이다.

 

어제 출판사에서 보내온 200권의 책을 보니, 책더미에 깔려 죽더라도 기분은 좋았다.

일단 한 권을 꺼내 살펴보니, 헛고생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청도 장꾼들이 푸는 느릿느릿한 사투리의 글도 정겹지만,

사람이나 사물을 찍은 사진들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여태 흑백 장터 사진에 익숙했지만, 이번에 만든 컬러 사진집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장터 분위기가 마치 펄떡이는 생선처럼 꿈틀거렸다.

역시 사진의 리얼리티는 흑백보다 컬러가 강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장꾼을 대하는 사진가의 시선이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감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이만하면 책을 권해도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감히 책을 추천 한다.

백 마디의 인사나 술보다 한 권의 책을 사 주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책값 25,000원을 정영신 계좌 (하나은행 593-810222-39907)로 보내주시고,

정영신 핸드폰에 (010-2955-8926) 주소를 남겨주면 된다.

기념으로 작가가 서명한 조그만(5X7인치) 작품 사진도 함께 보내 드린다.

 

글 / 조문호

 

 

 



1952 대구 / 사진가 George A. Van Driessche



‘Designersparty’에서 꾸준히 찾아 보여주는 지난 기록 사진들은 우리의 소중한 역사적 현장이었다.

해방 직후 일어 난 끔찍한 동족학살에서 부터 한국전쟁에 의한 고단한 삶의 모습까지, 친숙하면서도 낮선 풍경이었다.



1952서울 / 사진가 Inger Schulstad



4,3사건이나 여순사건은 외국 기자들이 찍은 사진이었지만,
한국전쟁 시절의 사진들은 대부분 외국 선교사나 미군들에 의해 기록된 사진이 많았다.
더러는 찍은 사람이 확인되지 않거나 찍은 장소가 불분명한 사진도 있었다.



1950 남대문시장 / 사진가 John Rich



그 당시는 컬러사진이 보급되지 않을 때라, 국내에선 흑백필름만 사용하던 시절이다,
코다크롬의 원색이 생생한 현실감을 더했는데, 여인네들이 입은 저고리 색깔은 또 얼마나 예쁜지...



1953 부산 / 사진가 미확인



그 사진 속에는 50년대 장터 풍경도 섞여있어, 눈이 번쩍 띄었다.

흑백으로 찍은 구한말 장터 사진은 더러 보았으나, 컬러로 찍힌 50년대 장터 사진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삼 십 여년 동안 장터를 기록해 온 정영신씨의 소중한 사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1950대구 / 사진가-야로슬라브 코마렉



어릴 때 기억이라 흐릿하긴 하지만, 몇몇 사진들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1952 장소 미확인 / 사진가  John Rich



그 당시 내가 본 장터라고는 고향장인 창녕군 영산장 뿐이었다.
인접 지역 다섯 장을 다람쥐 체 바퀴처럼 돌던 이웃 장꾼들도 생각난다.
저녁 무렵이면, 트럭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무가 있었는데, 분명 어머니의 보따리엔 아들에게 줄 선물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트럭에 실린 장꾼 사진을 보니 부러워 했던 동무가 생각났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볼 수도 없게 되었다.



1952  장소 미확인 / 사진가 Kenneth H



장날 아침이 되면 봇짐 등짐을 이고 지고 들어오는 인접 지역민들의 행렬도 줄을 이었다.
길목에서 팔고 가라며 추근대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 종종 걸음 쳤다.
그 당시는 땔감이 귀해 장날마다 장작을 사 모우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1953 장소 미확인 / 사진가 J. P



좀 더 성장해 보았던 인상적인 장터풍경은 “애들은 가라~"로 시작되는 약장사다.

"이 약 한 번 드셔보세요. 마누라가 들고 오는 아침 밥상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치질 약 바르는 대목에서는 배꼽을 잡았다.
“방문을 걸어 잠거고, 옷을 하나 둘 벗어 걸어두고는 거울을 말 타듯 올라타서 한 번 내려다보세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가 확 펼쳐집니다“



1954 대구우시장  / 사진가 Adam Ewert,Ph



한 쪽에선 살충제 파는 약장사의 종이 마이크도 한 몫했다.

“빈대 모기 파리 벼룩 닭구곰박사이 소 가무나리, 뼈 없는 짐승은 일절 전멸시키는 약입니다”



1952서울 / 사진가 inger schulstad



그리고 군복과 군인들의 비상식량인 시레이션에 대한 기억도 새롭다.
그 당시는 군복이 흔한 시절이라 군복 입은 사람이 장에 많았다.
군인들이 돌아다니며 군복입은 사람 등어리에 검은 먹칠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입어도 검게 염색해 입으라는 말이었다.



1952개성 / 사진가 John Rich



가끔은 군인들의 비상식량인 시레이션이 흘러들어 군침을 흘리기도 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별미로, 별의 별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비스킷도 맛있었지만, 치즈는 맛도 모른 채 먹었다.



1952 사과시장 / 사진가 Rev. Edgar Tainton, Jr



사과시장과 우시장이 펼쳐진 사진도 있었고, 장터는 아니지만 오밀조밀 차려놓은 좌판은 곤궁한 삶을 떠올렸다.
그리고 기차 승객을 상대로 먹거리를 파는 여인들도 볼 수 있었다.



1952 장소 미확인 / 사진가 John Randolph



기차가 정지하면 장사꾼들이 우루루 창가로 몰려들었는데,

구포역에서 들려준 아줌마들의 호객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질긍 질긍 물이 나는 내 배 사이소, 내 배”

“재칩국 사이소~ 재칩국~”



1952 장소 미확인 / 사진가 inger schulstad



아련한 추억을 불러들이는 데는 역시 옛날 사진이 최고였다.
사진은 세월에 숙성되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도 새삼 실감했다.



글 / 조문호



1950 개성 / 사진가 John Rich

1950 대전 / 사진가Thomas Benton Hutton


1950 / 장소 맟 사진가 미확인


1950 부산 / 사진가 미확인


1950 부산/ 사진가 미확인


1950 / 장소 및 사진가 미확인


1950부산 / 사진가 미확인


1951 서울 / 사진가 Count Strad


1951밀양시장 / 사진가 Tom Grasco


1952 장소 미확인 / 사진가 John Randolph


1950 서울 / 사진가John Rich


1952 장소 미확인/ 사진가 Kenneth H


1952 장소 미확인/ 사진가 Rev. Edgar Tainton, Jr


  1952 대구/ 사진가 John Randolph


1952 밀양시장 / 사진가 Tom Grasco


1952 부산 / 사진가  Kenneth H


1952 부산 / 사진가 David Foster


1952 부산 / 사진가 Kenneth H


1952 부산 / 사진가 Kenneth H


1952 부산 / 사진가  Kenneth H


1952 부산 / 사진가 미확인


1952 부산 / 사진가  Kenneth H


1952 부산 / 사진가 Kenneth H


1952 부산 / 사진가 Kenneth H


1952 부산 / 사진가 Kenneth H


1952 장소 서울 / 사진가 Jerry Rosenstein


1952` 장소 미확인/ 사진가 Kenneth H


1952서울/ 사진가 Inger Schulstad


1952평택  / 사진가 Coleman


1952평택 / 사진가 Ronald Coleman


1953 장소 미확인 / 사진가 George Fleur


1953 장소 미확인 / 사진가 George Fleur


1953 강릉 / 사진가 Jack Williams


1953 대구 근처의 작은 시장 / 사진가  Rev. Edgar Tainton, Jr


1953 대구 / 사진가 미확인


1953 / 장소 및 사진가 미확인


1953 부산 / 사진가 Jim Wright


1953 부산 국제시장/ 사진가 David Foster


1953 부산 / 사진가 미확인


1953 부산 / 사진가  미확인


1953 인천/ 사진가  Royce Raven


1953 인천 / 사진가 Royce Raven


1953 인천 / 사진가 미확인


1953 인천/ 사진가 Royce Raven


1953 장소 미확인 / 사진가 Jerry Rosenstein


1953 장소 미확인 / 사진가  Gordon Burroughs


1953 대전 / 사진가 Thomas Benton Hutton


1953 밀양 / 사진가 Tom Grasco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정선 '아라리공원'에서 ‘전국5일장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에 초대된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사진전을 위해 일주일 남짓 정선에서 잘 놀았다.

전시장에서 정선 지역민들도 만났지만, 먼 곳에서 찾아주신 분들도 많았다.

날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정영신씨 사진을 만나러 왔지만, 좌우지간 반갑기 그지없었다.






전시 전날부터 시작된 정선 귤암리의 술 파티가 만만찮은 앞 날을 예고했다.
최종대씨 댁에서 나병연, 송종삼 내외 가 모여 꽁치구이와 돼지고기로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단지, 동네 주민들의 갈등 현안인 물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불편하게 했지만...






기억력이 신통찮아 사진에 찍힌 모습을 돌아보며, 지난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사는 귤암리의 서덕웅씨가 급히 다녀가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해외 전통시장을 찍는 사진가 하재은씨의 방문에 이어, 문경에서 오신 이선행씨, 귤암리 최종열씨도 다녀갔다,

신승철씨는 전시가 열리는 나흘 동안 매일같이 나타나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전시장을 기웃거렸다.





17년 전 펴낸 ‘동강 백성들’이란 포토에세이집에 ‘법도 씹도 모르는 신승철씨’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바보처럼 착하게 사는 동네 이웃이다. 신통한 것은 글도 모르는 사람이 ‘장날’사진집을 샀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관람객에 비해 책을 사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대부분 아는 분들이 사주는 정도인데, 기초생활수급자인 신승철씨가 사진집을 샀다는 것은 분명 뉴스거리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사진집들을 보고 ‘이거 파는 책입니까?’라고 묻는다는 점이다.

여지것 각종 행사장에서 나누어 주는 무분별한 홍보물 세례에 길들어, 돈 주고 책 산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분은 책이 너무 비싸다며 항의하는 분들도 있었다. 인터넷 문화에 치어, 죽을 쓰는 책의 수모가 어디 이 뿐이겠는가?






그리고 태백의 사진가들도 여럿 다녀가셨다. 박병문씨를 비롯하여 박노철, 전제훈, 박종호씨등인데,

‘아버지는 광부였다’로 알려진 사진가 박병문씨는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이석필씨 소개로 만나게 된 박노철씨와 전제훈씨는 ‘사협’에 적을 둔 사진가였다.

쓰레기 통에서도 장미가 핀다는 말이 있듯이, 그만의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앞날이 유망한 사진가였다.

그 무더운 날 포트폴리오까지 챙겨왔었는데, 박노철씨는 오는 7월15일부터 서울 ‘류가헌’에서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라는 주제의 전시를 연다고 했다.

시뻘겋게 흘러내리는 폐광 오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의미 있는 사진전이었다.





그리고 전제훈씨의 사진작업 이야기에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현역 광부로 일하며 광부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몇 장 보여준 사진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외부에서 지나치다 찍은 탄광사진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광맥은 물론 전 작업과정을 깨 뚫고 있기에 좀 더 전문적인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름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사진축제‘의 강원도사진가전에 소개된다고 했는데,

광부사진에 또 하나의 자취를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두 분 다 사진을 예쁘게 찍는 성향이 있었다.

이것이 오랫동안 공모전사진에 길들어 온 폐해인데, 앞으로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숙제였다.






충무로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는 한만인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이 민, 오 환씨가 오셨고,

횡성에서 오신 사진가 구자호씨와 최정태씨는 술과 안주까지 전시장에 공수해 오셨다.

전시가 끝나는 다음 날 장터 인문학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과 횡성장으로 탐방 가는 일정이 짜여있어,

구자호 선생께 잘하는 식당을 추천해 달랬는데, ‘마옥 원조 막국수’라는 좋은 밥집을 소개해 주었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지만, 하나같이 맛있게 먹었다며 고마워했다는 것이다.


덕산 터에 ‘숲속책방’을 차린 소설가 강기희씨와 동화작가 유진아씨,

그리고 안용현씨가 찾아주어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술의 인문학’ 강사로서 더 잘 알려진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전상현씨의 배려 하에 모두 거나하게 마셨다.







전정환 정선군수를 비롯하여 신주호 부군수, 김수복 자치행정과장, 유홍균 지역경제 팀장,

'전국 오일장 박람회' 행사를 기획한 노현숙씨 등 주최 측 인사들도 여러 분 다녀가셨다. 

뒤늦게 나타난 귤암리의 최영규씨는 전시장으로 술과 안주를 배달시켜 전시장을 주막으로 만들었다.

MBC 황지웅 PD와 화암면에서 G갤러리를 운영하는 화가 김형구씨 내외도 다녀갔고,

전시가 끝 날 무렵에는 사진가 곽명우씨가 나타나 전시철수를 도와주기도 했다.




다들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IBS교육방송 ‘디지털평생교육원’의 ‘장터에서 만나는 인문학’이 개강되었다.

아내는 강의 준비하느라 몇 달을 낑낑댔지만, 여지 것 지켜보기만 했다.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 참견할 상항도 아니었다.
녹번동에서 송파까지의 먼 거리를 오갔지만, 한 번도 데려다 준적도 없다.

마지막 12강이 열리는 24일, 처음으로 IBS방송국에 따라 나섰다.
강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내의 말솜씨가 걱정되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장터의 약장사처럼 말을 잘했고, 강의 내용도 괜찮았다.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서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우습기는 했으나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녹화하면 두고두고 재방이 가능 하다니까...

강의를 끝내고는 '나도여행작가다' 라는  과목을 하나 더 맡겠단다.
얼마나 많은 수강생이 모여들지는 모르겠으나,
이러다 사진가에서 약장사로 전향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비록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돈 못 버는 자신이 새삼 한심스럽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굶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만도 고맙게 생각한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1일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개장된 정영신, 조문호의 ‘장에가자’ 사진전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개장식에서 만난 분으로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 행위예술가 무세중, 무나미씨,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시인 강 민, 민 영, 황명걸, 서정춘, 김신용, 천성우, 조준영, 김명성, 송상욱, 김낙영, 김영재씨, 만화가 박기정씨, 사진가 육명심, 한정식, 전민조, 엄상빈, 김남진, 김지연, 이석필, 김문호, 배병수, 안해룡, 이수만, 김상현, 이수영, 곽명우, 고 헌, 권양수씨, 서양화가 신학철, 강찬모, 장경호, 전인경, 정복수, 박불똥, 성기준, 전강호, 허미자, 서길헌, 조경석씨, 한국화가 황외성, 주승자씨, 미술평론가 곽대원씨, 건축가 임태종씨, 연극배우 이명희씨, 무용평론가 이만주씨, 팝페라가수 전은주씨, 인터리어 디자이너 김의권씨, 최혁배변호사, 이성 구로구청장, 김수복 정선군청 문화과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성윤미씨, 조경연, 김우진, 배성일, 강인구, 박시교, 신신자, 하재은, 김윤한, 정승재, 김민철, 김 구, 남연정, 백영웅, 방동규, 정정은, 장종수, 장한결, 이명옥, 김상현, 이기남, 임경일, 강선화, 홍성식, 공윤희, 이지녀, 한진희, 임계재, 클라라, 곽성훈, 김윤한, 하태웅씨 등이다.

그리고 전시 개막식과 뒤풀이를 비롯하여 초상사진 촬영 등 이번 전시회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 ‘사진바다’의 사진가 곽명우씨에게 거듭 감사드린다.

 

사진 / 곽명우 : 글 / 조문호

 

 

 

 

 

 

 

 

 

 

 

 

 

 

 

 

 

 

 

 

 

 

 

 

 

 

 

 

 

 

 

 

 

 

 

 

 

 

 

 

 

 

 

 

 

 

 

 



[서평] 전국 5일장 순례기

"하늘만 빼곤 온통 까만 동네였드래요... 물도, 땅도, 아이들 얼굴도요. 겨울에 눈이 오면 하얀 이불 같다며 좋아했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어물거립니다."
시간이 멈춘 검은 동네 철암장엔 과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장터를 지키고 있다.

- 강원 태백 철암장 중

 

▲ 전국 5일장 순례기 우리 전통과 인정을 찾아가는 장터 순례기
ⓒ 눈빛출판사

 


다큐 사진 작가 정영신의 글로 만나는 태백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탄광촌에서 유년을 보냈거나, 탄광촌의 풍경을 보낸 이라면 향수에 젖어들 것이다. 밥도, 얼굴도, 옷도, 흐르는 물도, 까만 탄광촌 마을은 급속한 산업화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잊혀가는 전통과 인심, 삶의 흔적을 사진과 글로 살려낸 사진집 <전국 5일장 순례기>가 출간됐다.

정영신은 30년 동안 전국 522개 장터를 돌며 장터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글로 담아냈다. 장이라야 유행가 가사로 들어 본 화개 장터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봉평장, 대화장 정도를 들어봤기에 전국에 522개의 장터를 돌며 장터 풍경과 사람을 담아 낸 작가의 끈기와 그 속에 담긴  투박한 삶, 삶의  땀 냄새가 함께 느껴지는 것 같다.

작가는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제주도 장터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을 통해 사라져 가는 전통과 인정, 그 안의 삶과 땀을 담아냈다. 각도의 대표적인 장터 풍경을 소개하고, 각 장터 소개 말미에 인근 장터의 특산물과 장날을 소개했다.

경기도는 강화 풍물장의 화문석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유기 산지, 안성장,  국내 최대 시장이 된 성남 모란장, 화성 조암장, 평택 안중장을 소개한다.

강원도는 태백 철암장, 동해 북평장, 고성 거진장, 삼척 도계장 등 대표적인 장터를  통해 탄광촌의 고달팠던 삶의 흔적과 나물을 캐고 해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삶을 소개한다.

충청남도는 대전 유성장, 부여장, 예산장, 공주 산성장, 천안 아우내장, 서천 특화시장 소개를 통해 충청도 사람들의 서두르지 않는 여유와 국밥집 인심 등을 소개한다. 충청북도는 괴산장, 단암장, 영동장, 진천장, 미원장을 소개한다. 경상남도는 거창장, 합천장, 의령장, 경화장, 구포장, 반성장을 소개한다.

경상북도는 청도반시로 유명한 청도장, 건천장, 고령장, 경주 양복장, 예천 지보장을 소개한다. 전라북도는 울진 흥부장, 군산 대야장, 익산 북부장, 임실 길담장, 전북 고창장, 진안장을 소개한다.

전라남도는 전남 함평장 녹동장, 고흥장, 무안장, 진도장, 곡성 석곡장, 구례 산동장, 순천 아랫장, 광양 옥곡장, 벌교 꼬막으로 유명한 보성 벌교장, 영암 아리랑 영암 독천장, 진도 십일시장(임화장)을 소개한다.

전국의 장터를 소개합니다

"내 태자리가 여그 여자만 갯벌이여. 고행 땅이 좋은께 여태꺼정 대처에 나가 본적이 없당께. 허벅지까지 빠지는 뻘 속에서 고상을 해봐야 꼬막 장사든 바지락 장사든 할 자격이 있제."

벌교장을 소개하는 첫 대목에 태백산맥의 외서댁과 장터댁 등 태백산맥을 통해 각인된 벌교 꼬막과 여인들의 강인하고 차지고 끈질긴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들 여성의 삶에 오체투지로 삭막한 자본가의 마음을 두드려 소통을 하려했던 기륭 여성노동자들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사실  뻘같은 진흙탕 같은 세상 속에서 꼬막을 캐고 바지락을 캐며 강인하게 생명을 이어온 대지의 딸이나, 도시 노동자로 부모와 가족을 먹여 살리던 이들은 대부분은 이 땅의 어머니요, 누이인 여성들이다. 그들은 장터든, 공장이든, 산이든, 들이든 어디서든 생명을 키워내고, 정을 나누고, 덤을 나누고 산다.

작가는 주도 9군데 장터 중 제주 세화장과 모슬포장의 풍경과 사람을 소개하며 30년 간 작업을 마무리 한다. 에필로그에 30년간 522개의 장터를 어떤 마음으로 다녔으며, 어떤 눈길로 풍경과 사람을 담았는지 잘 드러난다. 장터에는 사람과, 역사와, 삶과 땀이 있다. 삶의 향방을 잃은 사람이라면 장돌뱅이처럼 장터를 돌며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장터는 작가 말처럼 사람의 희망을 엮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장터는 끝이 아니다. 5일장이 열리고 있는 한 또다시 긴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대상을 보는 관점이나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보부상에 대한 사려들을 찾아가면서 포괄적인 인문학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장을 지키는 개개인의 사람들에 집중되었다.

그 사람들을 모르면, 그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없다는 생각에 찍히는 사람과의 소통에 관점을 두어 인터뷰도 했었다. 사진에서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달하고, 벙어리로 남는 사진이 아니라 말을 건네는 사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따뜻한 인간의 정과 덤이 살아있는 그곳 장터는 희망을 엮는 집어등(集魚燈)이다. - 책 내용

 

덧붙이는 글 | <전국 5일장 순례기> 정영신 글,사진/ 눈빛출판사/ 1만 5000원


 [오마이뉴스 / 이명옥기자]

 

정영신의 장터순례(38)·청주 미원장

 

어르신들 말소리 웃음소리로 아직도 떠들썩~

4·9일 들어간 날에 장 열려
인근에 평야 발달…쌀 등 농산물 풍부
 

 

7월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미원장도 ‘청원 미원장’이 아니라 ‘청주 미원장’이 됐다. 미원장은 예부터 ‘쌀안장’이라 불렸다. 쌀이 떨어지지 않는 고을이라 ‘쌀안’이라 했다지만, 상당산성 안쪽에 있어 ‘산안’으로 불리다가 ‘쌀안’이 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미원(米院)이라는 지명은 이를 한자로 옮겨 쓴 것이다.

 미원장(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은 아직도 촌로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제 장바닥에 떠도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잘나갈 때 무용담밖에 없다”는 이씨 할아버지(83)의 막걸리잔 위로 지나가버린 시간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우체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수산리 박씨 할머니(90)의 사정도 비슷하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 나들이가 유일한 외출이유. 장에 나와야 사람 얼굴도 보고 얘기도 하고 웃기도 혀유.” 할머니는 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친구라며 웃는다.

 30년째 곡물장사를 하는 조덕님 할머니(78)도 얼굴이 환하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쌀이 떨어지는 벱이 없는 동네였어유. 다른 디는 가물어도 여그 동네는 물이 마르지도 않아유. 헌디 요샌 잡곡이 좋다고 쌀은 쳐다도 안 봐유. 세상 참 많이 변했시유.” 됫박 위로 쌀을 수북이 담는 조씨 할머니 손잔등에 햇빛이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이맘때 장터는 색의 향연이다. 텃밭에서 금방 수확해 온 여러 채소와 온갖 과일이 알록달록 펼쳐져 있다.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오이와 호박의 수줍음은 초록으로 번진다.

 잿물과 폐기름으로 만든 빨랫비누를 길 위에 펼쳐놓은 이씨(67)가 지나가는 여인네만 보면 소리소리 지른다. “마트에서 파는 세제는 이 비누 못 따라와유. 하나만 사다 빨래해 봐유. 다음 장에 또 사러 오구만유. 한장에 천원이유~!”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 펼쳐진 만물상에는 모기장을 사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든다. 잣대를 대고 크기를 재는 표정들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쇠똥 먹고 자란 옥수수 좀 사가유~!”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외치던 이분순씨(61)가 마르면 맛이 없다며 부대에 옥수수를 주섬주섬 담는다. 영 안 팔리는 눈치다. 그런데 큰길가 트럭에 쌓인 옥수수는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옥수수를 고르던 권태영 할아버지(87)의 말씀이다. “사람도 제각각이듯이 옥수수 맛도 다 달라유. 햇빛 많이 본 놈이랑 이슬 많이 받은 놈 맛은 전혀 다르구먼유.”

 미원면 지역은 길게 뻗은 구룡천과 미원천 유역으로 평야가 발달했고, 산간에서는 고랭지채소가 잘된다고 한다. 그래서 쌀을 비롯해 옥수수·감자·수수·고구마·청결고추와 은행·표고·산나물·대추·은행 등이 생산된다. 매년 9월에는 미원면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쌀안축제’도 열린다.

 과거 청원군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소로리볍씨’의 고장으로 유명했고, 친환경 농산물의 명산지로도 이름 높았다. 특히 <청원생명쌀>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졌으며, 청원생명쌀 마라톤대회(올해는 9월28일 개최)도 있을 정도다.

 이제 청원이라는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4일과 9일이 들어간 날이면 미원리 우체국 옆길에는 여전히 장이 들어선다. 보은군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와 여기서 청주시내로 가는 버스가 연결돼 다들 보은장이나 청주장을 찾으면서, 이제 미원장은 예전의 활기를 잃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장날이면 인근 마을에서 나온 어르신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아직은 떠들썩하다. 행여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까 정거장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정을 느끼게 한다.

 미원장 외에 과거 청원군 지역에서 열리는 장은 대청호 인근의 포도로 유명한 문의장(상당구 문의면, 1·6일), 가까이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있는 옥산장(흥덕구 옥산면, 3·8일)과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있는 오창장(청원구 오창읍, 3·8일), 초정약수로 유명한 내수장(청원구 내수읍, 5·10일)이 있다.

 

정영신의 장터순례(37)제주 세화장



“은갈치 참말로 좋수다”
직접 낚시질해 좌판에 좍~

세화해변 옆에서 5·10일마다 장 열려
옥돔·우럭 등 싱싱한 해산물 풍부
70여년 장에서 산 할망…“사람 소리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매일 보는 바다지만 영감하고 바닷가로 달리니 참말로 좋수다.” 경운기에서 내리는 고씨 할머니(73)의 웃음소리가 제주 바다를 닮아 푸르기만 하다. 영감님이 드라이브 가자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따라나선다는 고씨 할머니는 오늘도 경운기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장에 나왔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답게 제주 세화장 어물전에는 자리돔·옥돔·우럭·조기·갈치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갈치는 은빛을 뽐내며 좌판에 일렬로 누워 있다.

 제주도는 잘 알려진 대로 돌·바람·여자가 많은 삼다도다. 키가 워낙 커서 한라산을 베개로 삼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제주 창제 신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날라 제주도를 만들었는데, 한라산을 쌓던 중에 터진 치마 틈으로 떨어진 흙이 오늘날 숱한 오름(한라산에 딸린 기생화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름의 능선이 보여주는 곡선미는 엄마의 너른 품처럼 완만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거기 담긴 제주 여인의 삶이 여행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코발트빛 맑은 세화해변이 지척인 세화장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열린다. 고선아씨(45)는 이곳에서 15년 동안 제주 갈치만 팔았다. 세화해변에서 멀지 않은 성산포의 갈치를 알아준다는데, 고씨는 이걸 잡으려고 밤낮없이 낚시를 한다. 봄 갈치는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낚고 가을 갈치는 밤에만 낚는다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은색 갈치의 꿈틀거리는 모습이 바로 예술입니다” 하는 고씨 옆에서 옥돔을 손질하던 박씨 할망이 “야야, 이제 갈치 박사 다 됐네” 하고 거든다. 그 순간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장옥을 건너 바다로 스며든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낡은 장옥에서 반가운 얼굴, 김옥순 할머니(83)를 만났다. 김씨 할머니는 3년 전 고성장(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만났을 때 채소와 과일을 팔면서 점까지 봐주고 있었다. 염주알을 돌리고 쌀과 작은 종지를 뿌리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예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곱살에 글을 깨친 후 장에 나와 장사하다가 말문이 트여 점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겨울 여기서 잘 아는 할망이 이것저것 묻기에 점괘 따라 말해줬더니 그 이후로 할망 얼굴이 보이질 않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해 그만뒀어.” 70여년을 장에서 살다 보니 사람 소리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할머니의 미소가 밀짚모자에 숨는다.

 “어디에서 와시냐?” 하고 묻는 송씨(60)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친 김에 제주도에는 논이 안 보이는데 벼농사를 짓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물이 빠지는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는 못 짓고, 대신 ‘산듸’를 심어 제사도 지내고 잔치할 때도 쓴다는 답이 돌아온다. 산듸는 밭에 씨를 뿌려 키우는 찰벼인데, 파종과 밭매기가 힘들어 부지런하지 않으면 경작할 수도 없다고 한다.

 송씨가 대뜸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았냐고 물어온다. 제주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4·3사건의 아픔이 눅눅하게 배어 있는 땅이다. <지슬>은 제주 사람이, 제주 땅에서, 제주 토박이말로 만든 독립영화로, 1948년 3월부터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풀린 1954년 9월까지 7년7개월 동안 이어진 4·3사건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세화장 외에 제주에서 열리는 장은 감귤과 갖은 채소가 많이 나는 함덕장, 성산포 은갈치와 성산 겨울무로 유명한 성산장, 대정 암반수 마늘로 유명한 모슬포장(이상 1·6일), 은갈치·옥돔·대장간이 이름난 제주민속장, 성읍민속마을과 제주민속촌이 가까운 표선장(이상 2·7일), 옥돔·갈치·고등어가 많은 중문장(3·8일), 열매를 먹으면 백살까지 산다는 백년초 군락지가 있는 한림장, 제주의 대표 축제인 들불축제와 노천탕이 있는 고성장, 자리돔 축제가 열리는 서귀포장(이상 4·9일) 등이 있다.

 

[스크랩 /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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