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전남 진도 십일시장

밭일하던 여인네도, 장터에서 마주친 여인네도…
틈만 나면 흥얼흥얼…삶을 노래로 승화시켜

열흘 간격 장 들어서 마을이름 ‘십일시’…지금은 4·10·14·20·24·30일에 열려
인근섬 사람들 드나들어 어물전 지천

 

 

진도에는 유달리 한(恨)의 노래가 많다. 삶의 희로애락에서 비롯된 소리들이 이어지는 것이 마치 유장하고 애절한 아쟁 가락 같다. 삶과 노래가 따로따로가 아니게 느껴지는 것은 “오메!” 하는 장터 여인네의 추임새 때문일까. 그 소리에 한바탕 어깨춤을 추면 푸르디푸른 남도 가락이 흥얼흥얼 장터 안으로 흘러가다 멈추어 선다.

 얼마 전 십일시장을 찾았을 때는 무거운 안개가 내려앉은 듯 장 안에 활기가 없었다. 농번기이기도 하지만 온 나라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한 참사 현장인 팽목항이 장터에서 10여분이면 닿는 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방 진도가 초상집이여. 영감이 잡아오는 생선 팔아 가용으로 쓰고 병원 댕기고 하는디, 요샌 뭍에도 못 나가. 장이 쪼까 휑하지라? 젊은 여자들은 모다 팽목항으로 봉사 갔어. 첨엔 장바닥에 퍼져 앉아 ‘아까운 새끼들 어짜 쓰까’ 함서 막 울고 그랬제. 어쩌겄는가.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이겨내야제. 슬픔이 이 늙은이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참에 배웠당께.”

 임회면 석성 인근에 사는 김순단 할머니(76)가 펼쳐놓은 쟁반 위의 문어 두 마리가 조곤조곤 얘기하는 할머니 말을 알아듣는 듯 꿈틀거린다.

 십일시장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의 자연마을인 십일시리에서 열린다. 마을 이름이 십일시(十日市)인 것은 옛날에는 이 시장이 10·20·30일에 열흘 간격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5세기 중엽에는 장이 한 달에 두 번이나 세 번쯤 열렸지만, 18세기 이후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대부분의 장들이 오일장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오늘날 십일시장은 임회장이라고도 하며, 특이하게도 4·10·14·20·24·30일에 열린다. 고군면 고성리에 서는 고군장(이 장은 십일시장을 피해 1·5일에 열린다)과 장날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석교천이 흐르는 십일시교를 건너면 장터가 시작되고, 오른쪽 길목으로 들어서면 장옥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어온 장터의 흔적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십일시장은 인근에 있는 상조도·하조도·각흘도·관매도·가사도·조도군도 등의 섬사람들도 드나드는 장이란다. 장터 바닥은 그야말로 바다를 옮겨놓은 듯 어물전이 지천이었는데, 요즘은 장이 선 이래 가장 조용하다고 한다.

 어물전 멋쟁이로 유명한 김씨 할머니(71)가 “요 꽃게나 사람이나 사는 게 같당께” 하며 꽃게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꽃게는 달이 작은 그믐때는 많이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아 살이 통통하게 올라오고, 반면 달이 밝은 보름에는 활동을 많이 해 살이 오르지 않는단다. 할머니는 “사람이나 꽃게나 많이 움직이면 저절로 살이 빠지는 것은 같은 이치”라며 꽃게를 들어 보인다. 그러면서 45년째 생선을 만지다 보니 소리도 좀 한다며 <진도아리랑> 한 자락을 뽑아낸다. ‘진도 가면 글씨자랑·그림자랑·노래자랑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괜한 말이 아니다.

 십일시교 앞에는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세워놓고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그는 땅 모양만 갖추어도 밭을 맹글어부러 놀고 있는 땅이 없당께. 진도 땅이 기림져서 뭐든 심기만 허믄 잘돼야. 진도 대파는 한양서도 소문 났드만. 징허게 맛나다고.”

 밭일 하던 여인네도, 장터에서 마주친 여인네도 틈만 나면 절로 터지는 노래로 삶을 승화시킨다. “이년아, 가슴에 저미는 한이 있어야 소리가 되는 벱이여.” 영화 <서편제>에 나오던 대사가 이 장터에선 여인네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진도에서는 십일시장 외에도 앞서 말했듯 고군장이 1·5·11·15·21·25일에 선다. 구기자·홍주·돌미역·돌김·대파로 유명한 진도장은 2·7일에, ‘돌아온 백구’와 ‘신비의 바닷길축제’로 알려진 의신장은 1·6일에 열린다.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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