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충남 공주 산성장  

 

 

“밤꽃 냄새에 홀려 반평생 장터 지켜유~”

200년전 형성…1·6일 드는 날에 열려
주변이 우리나라 최대 밤 생산지
밤으로 만든 국수·떡 등 음식 다양
호두 많이 나오는 ‘유구장’도 가볼만…
“덤 없으면 장이 아니어유. 저울 눈금대로 살게 되나유. 말 한마디에 덤도 주고 그러면서 살지유.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지유.”

 박씨 할머니(78)는 밤꽃 냄새에 홀려 장터에 들었다가 반평생을 장 덕분에 버텼다고 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소랭이마을 산자락에 하얀 눈 내리듯 밤꽃이 피면, 박씨 할머니는 창문을 두드리는 비릿한 밤꽃 냄새에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단다. 그러다 땡볕에서 기른 상추와 오이를 머리에 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주 산성장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박씨 할머니는, 어수룩한 청상과부를 장터로 불러낸 것이 밤꽃 냄새라고 추억한다.

 박씨 할머니가 사는 정안면은 우리나라 최대의 밤 생산지로 6월에는 밤꽃축제도 열린다. 밤막걸리·밤국수·밤파전·밤떡을 자랑하는 할머니 목소리에도 밤꽃 향기가 배어 있다.

 200여년 전부터 형성돼 오늘에 이르는 공주 산성장은 1일과 6일이 드는 날이면 공주시 산성동 일대에 선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장이 열리는 이곳에는 장날이면 크고 작은 난전이 펼쳐지고, 사람들의 표정도 역동적이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려놓고 잡화난전을 차린 김씨 아저씨(67)가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시방 못 사면 평생 못 사유. 천원이유, 천원~!” 그러자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고무줄을 고르는 오달성 할머니(83)에게 어디에 쓰실 건지 용도를 물어봤더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 “장항아리 묶는 데도 쓰구유, 개미 지나가는 길에도 냅둬유. 장화 신고 밭에 갈 때 바짓단 내려오지 말라고 묶기도 허구만유.” 장터에서 검정 고무줄은 진열 방식이 독특하다. 그냥 툭 던져놓기만 해도 저절로 ‘디스플레이’가 되는 것이다. 마치 꿈틀거리는 생물처럼 짓밟히면서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서해안 시대를 맞아 충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공주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교육과 박물관의 도시다. 세종특별자치시도 지척에 있어 자동차로 20여분이면 닿는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거쳐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삶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의 모든 출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계룡산과 금강의 청정 환경을 즐길 수 있는 ‘5도2촌마을’을 운영해 평일 5일은 도시에서, 주말 2일은 공주에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그래도 공주 땅 자연과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하는 것은 역시 장터다. 자연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다시 거두어간다. 씨앗 한 톨이 흙과 만나는 시간과 그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야말로 자연이 만들어내는 예술임을, 장터 마당에 가면 어렵지 않게 배우게 된다. 장터는 또 사람과 사람의 중심에 서 있다. 이곳에 가면 걸어다니는 시간을 볼 수 있다. 장터에서 만난 더벅머리 총각과 순박한 시골 처녀를 백발의 촌로로 만든 것도 시간이다.

 시대적 환경 변화와 상관없이 43년 동안 시계 고치는 일만 해온 박영철씨(72). 멈춰버린 시계를 장날 하루에 스무개에서 서른개 정도 고친다고 한다. 요즘은 휴대전화가 시계 역할을 대신해 시계 고치는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박씨는 오히려 옛날보다 요즘 들어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직하게 해주니까 단골이 많아지지유. 홍보가 별건가유. 오로지 입소문 하나로 되는 거지유.” 박씨는 말하는 중에도 쉬지 않고 시계를 고친다. “40년이 넘다 보니께유, 믿고 오는 사람이 많아유. 장날이면 누가 보냈다고 손님들이 찾아오는 맛에 홀려 나도 모르게 장에 나오게 되구먼유.” 박씨의 손끝 사이로 늦은 봄바람이 한움큼 바르르 떨고 지나간다.

 공주에는 산성장 외에 고랭지 무와 호두가 많이 나오는 유구장이 3일과 8일에 선다. 유구읍에서는 8월 초순이면 우렁각시축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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