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전남 곡성 석곡장

 

“기러기며 별난것을 다 가져와 잡아달란당께”

1770년 책자에 기록된 오래된 장터
우시장 없어져 ‘한산’…인정은 그대로
“시끌벅적한 씨름판 재미났었는디…”

 

 

 

 

“뺑뺑 돌아라 돌실장 어지럼병 나서 못 본다. 방구 통통 구례장 구린내 나서 못 보고, 아이고 데고 곡성장 시끄러워서 못 본다.”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石谷)면의 옛 이름이다. 석곡장도 예전엔 돌실장이라 불렸는데, 장돌뱅이들이 부르던 노래에도 나온다. ‘뺑뺑 돌아라 돌실장’의 뜻을, 석곡장에서 만난 양씨 할아버지(83)가 친절히 일러준다.

 “시방은 길이 나서 막 통과하제, 옛날에는 모두 산이었응께 냇가로 돌아 돌아 다녔제. 긍께 돌실이여. 또 보성강 주변이 모다 돌멩이였어.”

 석곡장은 1770년에 간행된 백과전서 <동국문헌비고>에도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래된 장이다. 지금은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곡성군 석곡면 석곡리에서 열린다.

 머리에 닿을 것만 같은 대형 현수막을 인 채 각종 씨앗과 약재를 펼쳐놓은 석곡장의 대장 전씨 할머니(85)를 만났다. 수많은 씨앗의 가격을 훤히 깨고 있어 “할머니 천재시네요?” 했더니 할머니가 답한다. “시악시만 알어. 공책에 모다 적어놓고 짬 날 때마다 외우제. 치매도 안 걸리고 좋아라.”

 수줍게 웃던 전씨 할머니가 순천댁 얘기 들었냐며, 지금도 할머니들만 모이면 그 이야기를 한단다.

 “순천댁이 여그 돌실장에서 백반집을 했는디, 인심이 그런 인심이 없었지라. 산골 사람들 새복 장에 이고 지고 오믄 순천댁이 다 사주고 그랬제. 물건 죄다 사주고 뚝배기라도 한 그릇 먹여서 보냈는디, 소문이 안 나겄소. 순천댁 고기 맛볼라고 서울서 오고, 부산서도 오고 난리도 아니었제.”

 이렇듯 장은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가 숨 쉬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와 그 지역 역사를 두루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곡성은 천혜의 자연과 지순한 인심으로 효와 충이 성한 고장이다. 요즘은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오곡면 오지리의 섬진강기차마을로 유명하다. 기차마을 여행은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옛 정취까지 맛볼 수 있어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느낌이다. 기차마을 일원에선 효녀 심청의 효심을 새롭게 조명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0월이면 ‘심청 효 문화 대축제’도 연다.

 농번기라 그런지 장터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한가하다. 장터 맨 끝자리에 있는 ‘석곡닭집’ 앞 닭장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채 우리 안에 갇힌 닭들이 졸고 있다. 양동래씨(66)는 낯선 손님만 보면 외친다.

 “촌닭 한 마리 삿시오. 집에서 키운 닭이라 질기지 않고 맛있어라.”

 양씨는 손수레에 닭을 싣고 장터에 나온다. 장에 온 손님들이 닭을 고르면 양씨는 그 자리에서 직접 잡아준다. 양씨는 요즘 기러기를 잡아달라고 갖고 나오는 사람이 많다며 웃는다. “아따, 요새는 테레비가 사람 잡습디다. 장에 나온 사람들이 다 의사랑께. 별난 것을 갖고 와서는 다리 아픈 데 좋으니 잡아 달라 허고…. 잡아주는 삯이야 따로 받제만, 내 닭도 팔아야제.”

 사람들이 없는 한산한 장터는 이웃집 마당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처럼 자연스럽다. “곡성에서 가장 크다는 장인데 사람들이 없네요?” 하며 인사를 건네자 박막동 할아버지(86)가 답한다.

 “우시장이 없어져서 그러제. 그전에는 순천이랑 벌교에서도 소 팔러 석곡장으로 왔제. 소전 있을 때는 날 새기 바쁘게 장에 달라 들더니, 시방은 장도 사람도 끼우러져 불었어라. 백중날이면 소 걸고 씨름판을 열어 영판 재미났는디, 그 맥이 다 끊어졌당께. 여가 전통 있는 장이었는디, 시방은 장도 아니여….”

 말을 마친 박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흑백사진 속에 숨어 있는 고향 같다.

 곡성에는 석곡장 외에 멜론·사과·토란으로 유명한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이 3일과 8일에 열린다. 효녀 심청의 원류를 찾게 해준 관음사와 껍질째 먹는 친환경 사과가 유명한 옥과장은 4일과 9일에 열린다.  

 

 [농민신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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