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순례(37)제주 세화장



“은갈치 참말로 좋수다”
직접 낚시질해 좌판에 좍~

세화해변 옆에서 5·10일마다 장 열려
옥돔·우럭 등 싱싱한 해산물 풍부
70여년 장에서 산 할망…“사람 소리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매일 보는 바다지만 영감하고 바닷가로 달리니 참말로 좋수다.” 경운기에서 내리는 고씨 할머니(73)의 웃음소리가 제주 바다를 닮아 푸르기만 하다. 영감님이 드라이브 가자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따라나선다는 고씨 할머니는 오늘도 경운기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장에 나왔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답게 제주 세화장 어물전에는 자리돔·옥돔·우럭·조기·갈치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갈치는 은빛을 뽐내며 좌판에 일렬로 누워 있다.

 제주도는 잘 알려진 대로 돌·바람·여자가 많은 삼다도다. 키가 워낙 커서 한라산을 베개로 삼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제주 창제 신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날라 제주도를 만들었는데, 한라산을 쌓던 중에 터진 치마 틈으로 떨어진 흙이 오늘날 숱한 오름(한라산에 딸린 기생화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름의 능선이 보여주는 곡선미는 엄마의 너른 품처럼 완만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거기 담긴 제주 여인의 삶이 여행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코발트빛 맑은 세화해변이 지척인 세화장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열린다. 고선아씨(45)는 이곳에서 15년 동안 제주 갈치만 팔았다. 세화해변에서 멀지 않은 성산포의 갈치를 알아준다는데, 고씨는 이걸 잡으려고 밤낮없이 낚시를 한다. 봄 갈치는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낚고 가을 갈치는 밤에만 낚는다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은색 갈치의 꿈틀거리는 모습이 바로 예술입니다” 하는 고씨 옆에서 옥돔을 손질하던 박씨 할망이 “야야, 이제 갈치 박사 다 됐네” 하고 거든다. 그 순간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장옥을 건너 바다로 스며든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낡은 장옥에서 반가운 얼굴, 김옥순 할머니(83)를 만났다. 김씨 할머니는 3년 전 고성장(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만났을 때 채소와 과일을 팔면서 점까지 봐주고 있었다. 염주알을 돌리고 쌀과 작은 종지를 뿌리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예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곱살에 글을 깨친 후 장에 나와 장사하다가 말문이 트여 점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겨울 여기서 잘 아는 할망이 이것저것 묻기에 점괘 따라 말해줬더니 그 이후로 할망 얼굴이 보이질 않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해 그만뒀어.” 70여년을 장에서 살다 보니 사람 소리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할머니의 미소가 밀짚모자에 숨는다.

 “어디에서 와시냐?” 하고 묻는 송씨(60)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친 김에 제주도에는 논이 안 보이는데 벼농사를 짓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물이 빠지는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는 못 짓고, 대신 ‘산듸’를 심어 제사도 지내고 잔치할 때도 쓴다는 답이 돌아온다. 산듸는 밭에 씨를 뿌려 키우는 찰벼인데, 파종과 밭매기가 힘들어 부지런하지 않으면 경작할 수도 없다고 한다.

 송씨가 대뜸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았냐고 물어온다. 제주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4·3사건의 아픔이 눅눅하게 배어 있는 땅이다. <지슬>은 제주 사람이, 제주 땅에서, 제주 토박이말로 만든 독립영화로, 1948년 3월부터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풀린 1954년 9월까지 7년7개월 동안 이어진 4·3사건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세화장 외에 제주에서 열리는 장은 감귤과 갖은 채소가 많이 나는 함덕장, 성산포 은갈치와 성산 겨울무로 유명한 성산장, 대정 암반수 마늘로 유명한 모슬포장(이상 1·6일), 은갈치·옥돔·대장간이 이름난 제주민속장, 성읍민속마을과 제주민속촌이 가까운 표선장(이상 2·7일), 옥돔·갈치·고등어가 많은 중문장(3·8일), 열매를 먹으면 백살까지 산다는 백년초 군락지가 있는 한림장, 제주의 대표 축제인 들불축제와 노천탕이 있는 고성장, 자리돔 축제가 열리는 서귀포장(이상 4·9일) 등이 있다.

 

[스크랩 /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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