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순례(38)·청주 미원장

 

어르신들 말소리 웃음소리로 아직도 떠들썩~

4·9일 들어간 날에 장 열려
인근에 평야 발달…쌀 등 농산물 풍부
 

 

7월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미원장도 ‘청원 미원장’이 아니라 ‘청주 미원장’이 됐다. 미원장은 예부터 ‘쌀안장’이라 불렸다. 쌀이 떨어지지 않는 고을이라 ‘쌀안’이라 했다지만, 상당산성 안쪽에 있어 ‘산안’으로 불리다가 ‘쌀안’이 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미원(米院)이라는 지명은 이를 한자로 옮겨 쓴 것이다.

 미원장(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은 아직도 촌로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제 장바닥에 떠도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잘나갈 때 무용담밖에 없다”는 이씨 할아버지(83)의 막걸리잔 위로 지나가버린 시간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우체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수산리 박씨 할머니(90)의 사정도 비슷하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 나들이가 유일한 외출이유. 장에 나와야 사람 얼굴도 보고 얘기도 하고 웃기도 혀유.” 할머니는 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친구라며 웃는다.

 30년째 곡물장사를 하는 조덕님 할머니(78)도 얼굴이 환하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쌀이 떨어지는 벱이 없는 동네였어유. 다른 디는 가물어도 여그 동네는 물이 마르지도 않아유. 헌디 요샌 잡곡이 좋다고 쌀은 쳐다도 안 봐유. 세상 참 많이 변했시유.” 됫박 위로 쌀을 수북이 담는 조씨 할머니 손잔등에 햇빛이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이맘때 장터는 색의 향연이다. 텃밭에서 금방 수확해 온 여러 채소와 온갖 과일이 알록달록 펼쳐져 있다.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오이와 호박의 수줍음은 초록으로 번진다.

 잿물과 폐기름으로 만든 빨랫비누를 길 위에 펼쳐놓은 이씨(67)가 지나가는 여인네만 보면 소리소리 지른다. “마트에서 파는 세제는 이 비누 못 따라와유. 하나만 사다 빨래해 봐유. 다음 장에 또 사러 오구만유. 한장에 천원이유~!”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 펼쳐진 만물상에는 모기장을 사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든다. 잣대를 대고 크기를 재는 표정들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쇠똥 먹고 자란 옥수수 좀 사가유~!”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외치던 이분순씨(61)가 마르면 맛이 없다며 부대에 옥수수를 주섬주섬 담는다. 영 안 팔리는 눈치다. 그런데 큰길가 트럭에 쌓인 옥수수는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옥수수를 고르던 권태영 할아버지(87)의 말씀이다. “사람도 제각각이듯이 옥수수 맛도 다 달라유. 햇빛 많이 본 놈이랑 이슬 많이 받은 놈 맛은 전혀 다르구먼유.”

 미원면 지역은 길게 뻗은 구룡천과 미원천 유역으로 평야가 발달했고, 산간에서는 고랭지채소가 잘된다고 한다. 그래서 쌀을 비롯해 옥수수·감자·수수·고구마·청결고추와 은행·표고·산나물·대추·은행 등이 생산된다. 매년 9월에는 미원면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쌀안축제’도 열린다.

 과거 청원군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소로리볍씨’의 고장으로 유명했고, 친환경 농산물의 명산지로도 이름 높았다. 특히 <청원생명쌀>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졌으며, 청원생명쌀 마라톤대회(올해는 9월28일 개최)도 있을 정도다.

 이제 청원이라는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4일과 9일이 들어간 날이면 미원리 우체국 옆길에는 여전히 장이 들어선다. 보은군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와 여기서 청주시내로 가는 버스가 연결돼 다들 보은장이나 청주장을 찾으면서, 이제 미원장은 예전의 활기를 잃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장날이면 인근 마을에서 나온 어르신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아직은 떠들썩하다. 행여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까 정거장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정을 느끼게 한다.

 미원장 외에 과거 청원군 지역에서 열리는 장은 대청호 인근의 포도로 유명한 문의장(상당구 문의면, 1·6일), 가까이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있는 옥산장(흥덕구 옥산면, 3·8일)과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있는 오창장(청원구 오창읍, 3·8일), 초정약수로 유명한 내수장(청원구 내수읍, 5·10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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