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사진이란 된장이나 와인처럼 세월이 흘러 숙성되어야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어저께 인사동에서 민속학자 심우성선생님과 막걸리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 말씀을 꺼내셨다.

“조군, 내가 두 살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동생들이 갖고 싶어 하니 몇 장 복사해 주게"라고 하셨다.


사진을 달랬더니, 지척에 있는 집필실(푸른 별 이야기)로 달려가 조그만 사진틀

하나를 갖고 오셨는데, 사진이 너무 좋았다.

 

그 사진은 세월의 두께가 더해져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사진틀 뒤에는 1933년 6월 28일 종로 명륜동 자택에서 라고 적혀 있었고,
당시 명륜동에 있었던 '아리수 사진관'에서 출장 나와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하셨다.

모시 한복 차림으로 앉은 어머니와 어렸던 심선생의 모습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했다.

80여 년 전, 유리원판 사진이라면 쉽게 찍을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예술 지상주의에 빠져 자기 생각들만 형상화하는 요즘,
다시 한 번 기록사진의 가치를 입증한 순간이었다.

기록사진이란 시사적 사회적 현상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상적 삶의 모습도 소중하다.
바로 이게 우리가 살아 온 역사 아니던가.

역사란 결국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 조그만 흑백사진 한 장이 말해 주고 있었다.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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