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놀이도 이젠 힘들어졌다.

주말이면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 들려 청소나 설거지로 알랑방구 끼며 개기는데,

지난 7일은 청양 촬영 가야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방에서 노트북이나 주물럭거리는 것 보다 봄나들이가 낫겠다 싶어 새벽 일찍 나섰으나,

지난 울산 촬영에서 고생한 이래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다.

특히 새벽부터 돌아다니다 밤늦게 돌아오는 당일치기는 파김치가 되어버린다.

이 좋은 봄 놀이조차 힘에 부치는 걸 보니, 봄 날은 갔나 보다.



 


그런데, 정영신씨 건강도 말이 아니다. 한 달 넘게 감기에 시달리나, 이번 촬영엔 처음으로 코피를 쏟았다.

출판사에서 장터와 지역 문화를 연계하는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아 들인지가 일 년이 가까운데,

좋은 책 만들고 싶은 욕심에 기름 값도 되지 않는 원고료에 감지덕지하니. 그건 일이 아니고 노는 것인 모양이다.




 


그 날은 오전 아홉시 무렵 청양장에 도착했는데, 장꾼들만 나왔고 손님이 없었다.

요즘 어느 장이나 일요일은 손님이 없고, 있어도 늦게 나온다.





장터에 애착을 가지는 정영신씨와 달리 난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장터 풍경과 야박해진 인정에 넌더리가 나서다.





정영신씨는 이야기 듣고 사진 찍느라 바빴지만, 난 사람대신 진열된 상품이나 찍었다.

봄철인지라 봄나물이 유난히 많았고, 파종할 씨앗도 정갈하게 진열해 놓았다.



    

 

장터에서 벗어나 청양향교를 거쳐 칠갑산에 있는 장곡사로 갔다.

칠갑산 장곡사는 신라후기 보조국사가 세운 절인데, 특이한 것은 대웅전이 두 개나 있으나 탑이 없다.

그리고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도 다른 절과 다르다.





대웅전에는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는데,

장곡사 하대웅전에는 약사여래부처를 모시고 상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부처를 모신다.

약사여래부처를 모신 전각은 약사전이라 부르고, 비로자나부처를 모신 전각은 대적광전이라는데,

장곡사는 왜 대웅전이라 부르며, 대웅전 전각을 두 개나 두었을까?





약사불은 병들어 고통 받는 중생에게 쾌유와 희망을 주는 부처고,

비로자나부처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 부처다.

약사불을 모신 하대웅전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고,

비로자나불을 모신 상대웅전을 통해 수행자들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생각일게다.



     


이 절을 보니, 비로자나부처님을 안아 볼 수 있었던 20여 년 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전국 사찰을 돌아다니며 불교문화를 촬영할 때였는데,

장곡사 상대웅전 비로자나부처를 받치는 광배를 찍으려니 부처님에 가려 찍을 수가 없었다.

부득이 주지스님의 허락을 받아 부처님을 안아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그 당시 찍은 목조광배는 중심부에 연꽃무늬를 새기고 테두리에 불꽃무늬를 새겨 놓았는데,

오랜 세월에도 색채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신라 후기에 유행한 광배를 모방하여,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설선당 건물에 걸려있는 長谷寺라 적힌 편액이다.

이 편액은 유신시절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씨가 쓴 글인데, 날 선 글씨체에서 그의 야망이 그려지는 것은 지나친 선입견일까?

노년에 그가 말한 서산으로 지는 노을처럼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는 말이 생각나서다.



 


절 아래 있는 칠갑산 장승공원에는 별의 별 장승이 다 모여 있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청양대장군, 공명선거대장군, 고추대장군 등 별의별 이름을 단 대장군이 많았으나,

미천한 생각에 고추대장군보다 좆 대장군이 나을 듯 싶다.

쌍놈 문화를 물씬 풍기며, 한 번 웃을 수 있으니 그게 낮지 않겠는가?



    

 

이어 정산면에 있는 천장호 출렁다리를 찾아갔다.

2007년에 만들어진 이 다리는 1.5m에 길이가 207m나 되는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





칠갑산 경관과 잘 어우러진 천장호 풍광도 장관이었다.

고요한 호수 안으로 산자락이 드리워 진 출렁다리에 들어서니, 마치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렸다.

칠갑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은근한 스릴을 선사하는 곳으로, 특히 한국 사람들 좋아하는 공짜라는 점이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은 정말 잘 한 것 같았다.

얼마되지 않는 돈으로 야박한 인상을 주는 것 보다 관광객을 끌어들여 먹고 노는데 쓰게 하면 그게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그 날 출렁다리를 찾는 관광객의 수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아 성공한 작전인 것 같았다.



    

 

거대한 용과 호랑이 조형물이 설치된 출렁다리 건너편의 칠갑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또 하나 명소인 칠갑산 소원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바위는 일명 잉태바위라고도 불리는데,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시집보낸 딸이 5년 동안 아기가 없자 친정어머니가 이 바위에서 칠백일 동안 정성들여 기도를 하니

칠갑산 수호신이 감탄하여 소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원바위 아래 있는 천장호는 여성의 자궁형상으로 임신과 자손의 번창을 상징한다는

풍수사의 이야기도 있어 많은 이들이 찾아 와 소원을 빈단다.




 


천장호 출렁다리 중앙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가 세워져 있는데,

이 또한 다산과 연관한 상징물이 아닌지 모르겠다.





마침 소원바위 앞에서 한 여인이 열심히 소원을 빌고 있었는데, 정영신씨도 등달아 소지를 매달며 빌었다.

환갑이 된 나이에도 자식을 갖고 싶은 생각이 있는건지, 은근히 걱정되는 장면이었다.



    

 

아직 까지 칠갑산 주변의 벚꽃은 몽우리만 맺혔는데, 아마 몇일 후에 만개할 것 같았다.

때를 맞추어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킨 날을 기념하는 '태암춘추대의제'가 413일 목면 송암리 모덕사에서 열리고,

통일장승을 만든다는 '칠갑산장승문화축제'도 413일과 14일에 장승공원일원에서 열린다니,

청양에서 봄 바람 한 번 씌는 것도 좋을 듯하다.



    

 

출렁다리를 빠져 나오다 보니, 입구에 콩밭 매는 아낙네라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하기야 칠갑산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도 '칠갑산' 노래가 아니던가?

청승맞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칠갑산을 빠져 나왔으나, 서울 갈 길이 막막하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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