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이 인터넷에 기웃거리다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을 만났다.
페이스북 ‘Designersparty’에 올라온 구한말 사진들인데,
그 중에는 장시의 원조로 볼 수 있는 장터사진들이 있었다.
그동안 장터 사진가 정영신씨 따라 다니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장터 풍정에 속이 뒤집혔다.
세월 따라 바뀌는 것이야 어쩔 수 없으나.
불과 20-30년 전의 장옥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부의 장터 살리자는 태풍에 순식간에 다 날아 가버린 것이다.
최소한 한 곳은 남겨야 하는데, 씨를 말려버렸다.
이젠 오래된 장터풍경은 정영신씨 사진으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장터박물관이라도 만들어, 한 군데라도 본래의 기능을 이어 가야 한다.
머지않아 사람 만나 물건 사고 파는 시대는 끝날 것 같다.
이미 인터넷으로 돈과 물건만 오가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정은 커녕, 사람조차 만나지 않게 되었으니, 삭막할 뿐이다.
재미없는 세상일수록, 그 때가 그리울 것이다.
퍼 옮긴 사진들을 한 번 살펴보라.
밥집 툇마루에 앉아 밥 먹는 아낙네도 보이고,
갓 만드는 사람보다, 사진기 처다 보는 애들 눈길이 더 낯설다.
소등에 쌓아 올린 장작더미나, 옹기장수 등짐은 조각 작품처럼 멋지다.
다들 가난은 몸에 베었으나, 정은 흘러 넘쳤을 것 같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에 배가 고프다.
남대문시장의 전신인 ‘창내장’과 광화문 비각 앞의 장작 시장도 있고, 대구장, 통영장, 함흥 장터 등 대개가 1898년도부터 1937년 사이에 기록된 장터풍경이다. 그러나 대부분 기록한 사진가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 중에는 사진가 게리 스티븐스를 비롯하여 호주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권순형씨, 그리고 캐나다 출신의 Macrae DM 선교사. George Rose 선교사가 찍은 사진은 네 장 뿐이다.
이 사진은 Designersparty에서 스크랩했으나, 포토샵에서 조금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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