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1일은 정영신씨 가방모찌로 전북 순창에 따라갔다.
순창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통시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지닌 몇 안 되는 장터였다.
시골 장의 정취를 모락모락 풍기며 장바닥에 웃음이 번지던 정겨운 장이었다.
좋은 장터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는 분에게 소개해주는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장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세월의 때가 묻은 장옥은 돈벼락에 날아가고, 찾는 이 없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썰렁한 장터풍경이었다.
가는 날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없는 사람이 더 없었다.
모든 원인은 장터 살린다며 쏟아 부은 돈 때문인데,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장터를 죽이는 것이었다.
돈 빼먹기 좋은 것이 토목공사니, 오래된 장옥부터 철거하는 것이 제일 먼저였다.
없는 사람이 장옥 바꾼다고 올 리 없는데, 옛 정취마저 사라진 썰렁한 장터는 파리만 날렸다.
오전 10시 무렵에 키가 장승같이 큰 조호순씨가 나타났다.
정영신씨와 연락되어 나오신 분이었는데, 내 이름과 두자나 같아 친근하게 느껴지는데다 친절하기까지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SBS 피디로 일하다 십여 년 전 시골로 귀농하였단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가난하게 사는 현실보다 복지부동주의에 빠진 공무원들의 자세가 더 슬프다는 것이다.
순창장에도 많은 애착을 가져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도무지 먹히지 않았단다.
장터에 관한 자료는 10년만 지나면 모조리 폐기해 버려 10년 전의 장터사진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다 정영신씨의 30년 전 순창장터 사진을 보고 연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순창장에서 국밥을 대접받은 후, 그의 안내를 받아 순창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순창객사를 비롯하여 순창여인들의 길로 정해진 홀어머니 산성과 산동리 남근석,
강천산의 구장군폭포와 강천사 등 여러 곳을 돌아보며 순창 여인네들의 애환을 느꼈다.
그 날 밤은 보성 벌교에 여장을 풀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그날따라 보성에 전국체전이 열려 여관마다 만원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방에 머물렀는데, 모처럼 사먹은 꼬막 정식 값까지 더해 다음 날 움직일 비용이 걱정이었다.
그 이틀 날은 보성장부터 찾았는데, 장에 사람은 붐볐으나 후덕한 옛 인심은 오간데 없었다.
하기야! 옛말에 ‘장꾼들 말은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두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듯이 돈이 오가는 장터라 야박할 수밖에 없고,
속이고 속이는 것이 장꾼들의 생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농사지어 내다파는 순박한 농민조차 예전의 순박함을 모두 잃었다는 것이다.
그 날 우연히 엿들은 두 할머니가 나누는 이야기가 오늘의 현실을 대변했다.
난전에 농산물을 펼쳐 놓은 한 할머니가 ‘양심에 저려 거짓말을 못하겠다‘는 하소연을 하시자,
옆에 앉은 할머니가 “장에 오면 양심은 전당포에 잡히고 와야 하는거야”고 대꾸하셨다.
대개가 싼 수입농산물을 넘겨받아 농사지은 것이라며 파는데, 가격이 서울보다 훨씬 비싸다.
그런데도 장에 나온 정영신씨는 사라는 할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없는 돈에 바리바리 산다.
오일장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생각 때문인데,
알면서도 속아줄 때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장터에서 벗어나 보성 팽나무숲과 반석리 석불좌상, 보성판소리 성지 등의 인근 유적들을 돌아보았는데,
판소리성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근사하게 지은 한옥들이 도처에 늘려 있었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이 놀부집 같은 대궐에 소리 좋아하는 노인들을 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경노당에서 세월만 보내는 노인들을 선발한다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좋은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흉가에 다름 아니다.
바람직한 일인 줄 알면서도 행여 잘못되어 다칠까 겁먹는 무사안일주의의 공무원들 처신 좀 바꿀 수는 없을까?
뼈 빠진 세금을 버러지들 사육비로 사용되어서야 되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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