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동자동 쪽방 촌에 한마당 어울림 잔치가 벌어진다.

 

그것도 자선단체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자리가 아니라

주민 스스로 한 푼 두 푼 모은 잔치라 더 의미가 크다.

 

가난하게 살지만 서로 돕는 인정과 신명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주민이 술 마시며 어울려 놀지만, 한 번도 뒤탈 생긴 적도 없었다.

 

올해로 열두 번째인 동자동주민 한가위 어울림 한마당은 추석을 앞둔 지난 28새꿈공원에서 열렸다.

 

투호, 다트, 윷놀이, 노래자랑 등 민속놀이를 즐기며 음식을 나누는 쪽방촌 최고의 잔치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주관하는 한가위 한마당만은 빠질 수 없어 불편한 몸을 끌고 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빨래줄에 사진을 걸어 두고 찍은 사진도 돌려주었지만,

전시를 그만 둔 요즘은 항상 사진을 갖고 다닐 수 없는 어려움도 따른다.

 

행사장에는 고향을 찾지 못한 분을 위해 차례상도 마련되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다.

 

한때는 서울역쪽방상담소도 명절이 되면 차례상을 마련했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 그만두었는데, 주민들이 차례상을 반기지 않는 이유가 뭘까?

조상을 모실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 아니면 기독교 신자라 그런지 잘 모르겠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열린 한마당 어울림 잔치에서

다들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평소 보이지 않던 반가운 분도 여럿 만났다.

짝을 만나 떠났던 김규수씨도 되돌아왔고, 먼 곳으로 이사 간 강호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날은 김상진, 박희봉씨를 만나 인화해 간 사진을 전해주었는데,

김상진씨는 만족해했으나, 박희봉씨는 컬러사진이 아니라며 시큰둥하여 다시 뽑아주겠다고 다독였다.

초상사진을 갖고 싶어 하는 박갑석, 김봉구, 강 호, 양인숙씨를 찍기도 했다.

 

박갑석씨

민속놀이가 끝나니, 마당에 자리가 펴지며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송편과 묵, 파전 등의 명절 음식에다 돼지 수육까지 한 상 그득했다.

식사하며 반주를 곁들일 수 있는, 공원에서 술이 허락된 유일한 자리인 셈이다.

 

봉사하는 분들은 음식 나르느라 바빴지만, 다들 이웃과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쪽방 주민들이 어려운 노숙인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반가운 분들을 만나 인사 나누고 사진 찍느라 끼어들 틈도 없었지만,

문제는 아침부터 굶었으나 밥 생각은 물론 술 생각조차 없다는 데 있다.

이쯤 되면 밥숟가락 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즐거운 주연이 끝나자 마지막 순서인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최갑일씨 사회로 진행된 노래자랑은 공원을 주름잡던 단골손님들 무대였다.

뭐니 뭐니해도 주민들의 인기 속에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노래와 춤이었다.

 

다만 천 원씩 내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분이 20명에 한정되어 아쉬웠다,

신청 순서에서 밀려난 주민의 안타까움이 곳곳에 묻어났다.

심지어 순찰하던 경찰관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지만, 거절당했다.

 

대신 노래 부르지 못한 사람은 춤으로 신바람을 일으켰다.

다들 돈이 없어 그렇지 신명 하나는 끝내 주더라.

춤꾼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으나, 그중 김봉구씨와 양인숙씨의 엉덩춤이 죽였다.

 

노래자랑이 끝나자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추측한 데로 이정애씨가 최고상을 차지하여 상품을 탔다.

노래 부른 사람만 상을 줄 게 아니라, 흥을 돋 군 춤꾼에게도 인기상 쯤은 줘야할 것 같았다.

 

잘 사는 것이란 결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욕심 없이 사는 데 있다.

요즘은 서울시에서 실시한 동행 식권으로 밥 굶는 사람은 없으니,

신명 나게 놀고 즐기는 것이 최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년 추석에도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지만, 그때까지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다들 행복한 추석 보내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며칠 전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 몇권을 배낭에 넣어 나갔다.

아직 못 챙겨 준 사람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떤 전도사는 몸이 편치 않은 이에게 축도를 올렸고,

몇몇은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공원에 책 줄 사람은 남기씨 뿐이었다.

일부는 쪽방으로 찾아가 전해주었고, 서울역에선 지은이밖에 주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농담도 하지 않고 뭔가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책 날개에 적힌 약력 때문일까?

작업하러 쪽방에 들어 왔다고 생각했는지 친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염려해 여태껏 언론사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지 않았던가.

 

사실 빈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려면 책만 낼 것이 아니라

널리 알리기 위해 언론 도움도 받아야 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편한 관계로 지내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그뿐 아니라 쓸쓸한 가을 날씨마저 우울하게 만들었다.

계절을 타는지 만사가 귀찮고 돌아다니기도 싫었다.

 

혼술은 청승맞아 정동지에게 전화 걸어 술 한잔 사 달라 했다.

둘이서 술 마시며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시름 달랬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새겼던 말도 곱씹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현실을 인식시켜 세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해야 한다.”

 

얼마나 계도에 보탬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힘들고 어렵다.

소주잔에 모든 시름과 가을까지 담아 마셔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2021.9.21

서울역 주변에는 그림자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노숙인이 많다.

숨어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지난날을 돌아보는 자체가 고통일 뿐이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이름까지...

 

그리고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한다.

투명 인간으로 떠돌다 죽고 싶은 것이다.

 

‘서울역 다시서기 지원센터’ 지하 벽에는 노숙인들이 써 놓은 낙서가 많다.

 

“서러움과 슬픔이 가득 차고, 술과 욕설과 싸움이 난무하는 곳”

‘내 고향 솔치재“라는 글도 눈에 뜨인다.

솔치재라면 내가 살던 정선 지척에 있던 고개 이름이 아니던가?

낙서 중에는 백조 시인이 쓴 ’신비로움과 사소함의 동거‘라는 시도 있다.

 

”오랫동안 간절한 것은 신비롭고

한참 머무는 것은 사소롭다.

신비는 직장에서 잘린지 오래고

사소는 각방을 쓴지 오래다.

불황이 걷히지 않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오해가 풀리지 않아

바람 부는 날이 잦아진다.

신비로움과 사소함은 동거 중이다.

궂은날이 이내 지나가고

풀어헤친 머리를 야무지게 묶는다.

네가 내게로 온다“

 

백조 시인이 일 년 전에 쓴 글이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노숙인들의 술자리에는 말 없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이야기가 나와도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실 뿐이다.

말 없는 이들은 표정도 변화가 없다.

다 놓았으니 마음은 편할 것이다.

 

추석을 며칠 남긴 서울역광장의 밤은 한적했다.

다들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더라.

 

오 갈대 없는 이의 명절이란 또 하나의 고통에 다름아니다.

 

다음 날은 쪽방촌 추석 선물 나누어주는 날이다.

웬일인지 ’새꿈공원‘에 선 줄이 길지 않았다.

다들 추석 선물이라 모자라지 않을 것으로 여겼나 보다.

옆방 사는 김씨는 마스크를 두고 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누어 준 선물 박스는 쌀이 들어 묵직했다.

육개장, 라면, 김, 고추장, 된장에 이르기까지 식료품 종합세트였다.

대개 내용물이 비슷비슷해 된장과 고추장은 지난번 것도 있어 남아돈다.

 

낑낑거리며 사층까지 올려놓고 라면 끓일 물을 올리는데,

때맞추어 교회 청년들이 도시락을 전해 주네.

 

고맙게 받아먹었으나, 부끄러웠다.

남의 도움에 길들어 산다는 것이...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광장을 배회하는 노숙인 중에는

세상에서 밀려 난지 얼마 안 된 초보도 끼어있다.

 

아직 세상에 미련이 많아 대개 지하도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충전하며 시간 보낸다.

어떤 이는 담배 생각에 서울역광장 흡연구역을 맴돌며 담배구걸도 한다.

아무리 담배가 피우고 싶어도 수두룩한 재떨이 꽁초는 손도 안 댄다.

 

그런 초보들은 잠깐 보이다 이내 사라진다.

어딘가 비빌 구석이 생겼거나 일당 주는 일거리 따라 전전할 것이다.

간혹 영등포역이나 사람 많이 모이는 파고다공원 등지를 떠돌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노숙인도 있다.

 

하루가고 한 달 가는 세월 따라 그들도 하나하나 바뀔 수밖에 없다.

체납된 요금으로 핸드폰도 버리게 되고 등짐도 단출해진다.

그러나 그들이 즐겨 찾는 것은 밥보다 술이다.

 

채움 터에 가면 끼니는 해결할 수 있으니 술을 사기위해 구걸을 한다.

술이 모든 근심걱정을 사라지게 해 주는 마약으로 둔갑한 것이다.

노숙 생활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시킨다.

 

어제는 오전 여덟시 무렵 거리에 나왔다.

낯 시간은 가는 놈이나 있는 놈이나 만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워서다.

동자동 새꿈공원엔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서울역광장도 술 마시지 않으면 대부분 누워있었다.

 

아직 코로나 검사받을 시간이 되지 않았으나, 대기 줄은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쫓겨 옮겨가기 직전의 서울역광장 풍경이었다.

 

뜻밖의 노숙인을 만났다, 가구점하다 마누라에게 쫓겨 났다는 박씨를 일년 만에 만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며 노래까지 불렀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다가 사진 찍지 말라는 손사래에 얼른 집어넣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했던 걸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았으나, 동료와 아내가 배신했다며 울분을 터트린 적이 작년 봄이었다.

이젠 모든 근심 걱정을 버렸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편해보였다.

행색은 더 구질구질해 졌으나 그 것은 노숙인의 계급장에 불과하다.

 

그동안 영등포역에서 지냈는데, 고향 친구를 우연히 만났단다.

반가움도 잠시 뿐, 경계하는 눈빛에 속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행여 소문 퍼트려 누가 찾아올까 걱정되어 서울역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그 사이 담배는 끊었고, 술도 서서히 줄여가고 있단다.

 

이 지경으로 만든 동료와 가족에 대한 미움도 이제 사라졌고,

돈에 대한 집착까지 사라지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말을 옛날에는 비아냥거렸으나, 이제 사 가치를 알겠다고 한다.

돈이 있으면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기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육신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며, 세상이치를 환갑이 되어서야 깨우쳤단다.

 

아는 절집에 가서 일이나 도와주고 여생을 보낼 것이라며 웃는다.

자리 잡으면 연락해 달라며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사진, / 조문호

 

 

 

옆 방 사는 최군은 정신이 왔다 갔다 하여 다들 미친놈이라 부른다.

그러나 미친놈이 미치지 않은 놈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그는 돈 있은 놈보다 없는 놈을 더 좋아한다.

제 몸 눕기도 비좁은 쪽방에서 물고기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가하면

매달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대부분을 노숙자들 술 사주는 데 써 버린다.

 

가끔은 방안에서 발작 일으키는 소란에 관리인 정씨에게 혼 줄도 나지만 아무 소용없다.

정씨 역시 금방이라도 쫒아 낼 듯 욕을해대도 그의 인정스러움을 알아 그 때 뿐이다.

 

요즘 관리인 정씨가 허리를 다쳐 꼼짝을 못하는 와중에 최군의 발작이 도졌다.

갑자기 갑갑한지 팬티만 걸치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괴성을 질러댄다.

 

아무도 방문조차 열지 않아 그런지 골목으로 나가더니,

지나치는 이들의 심상찮은 반응에 다시 들어왔다.

 

조용해 방문을 열어보니, 발작이 끝났는지 큰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이제 한 숨 돌렸다! 이 더러운 세상 어찌 미치지 않고 살 수 있겠나?

 

마음껏 소리 지르며 억눌린 마음을 풀고 나면 훨씬 편할 것 같았다.

미쳐버리면 모든 걱정도 잊지 않겠는가?

 

일손이 잡히지 않아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 다녔다.

동자동이나 서울역이나 그 풍경이 그 풍경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돈 많은 사람은 여전히 많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마스크도 멋인지 마스크 전문 매장이 생겼더라.

 

최군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쳤다.

미친 자가 미친 것을 모르듯, 다들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온 종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웠다.

먹기도 싫고, 컴퓨터도 싫고, 자다 깨다만 반복한다.

 

가끔은 정선 집이 불탄 것을 잊고 일 할 것을 생각하다

뒤늦게 정선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힘이 쫙 빠진다.

 

난, 정선 집에 많은 것들을 가져 쪽방에 살아도 항상 마음은 부자였다.

다 태우고 모든 걸 잃었으니, 쪽방사람과 똑 같은 동격이 되었다.

 

관리인 정씨가 꼼짝을 하지 않으니, 방문을 열어보고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그때 사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런 생각도 목적도 없이 뚜벅뚜벅 공원으로 걸어갔다.

모든 것은 그 풍경에 그 풍경이고 그 얼굴에 그 얼굴이었다.

 

강씨는 보자마자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한다.

혼자 술 마시던 정씨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반색한다.

 

술 한 잔 하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역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역광장은 노숙자와 비둘기의 천국이다.

 

노숙자는 사람에게 얻어먹고, 비둘기는 노숙자에게 얻어먹는다.

무소유의 삶을 누리는 공존의 장이다.

 

노숙자 지은이가 짐을 끌고 어디로 가고 있었다.

차도 건너 편 외딴 곳에 둥지를 만들어 놓았더라.

 

짐이 많아 치우라는 역무원 등살에 피신한 것 같았다.

터줏대감 가오인지, 그는 항상 짐을 쌓아놓고 산다.

 

나를 보고 멀리서 달려와 손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해 준다.

똥색인 내 얼굴을 살피더니, 무슨 걱정 있냐고 묻는다.

 

가진 것 없는 노숙자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젠 나도 가진 게 없으니 걱정할 것 없는데, 아직 미련이 남았나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제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쪽방이라도 있는 사람은 걱정할 것 없으나, 길바닥에서 자는 노숙자들이 걱정이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추워진다는데, 그들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지난 26일은 자정이 넘도록 잠이 안와 밖에 나가 보았다.

골목매점 앞은 잘 모르는 사내가 마스크를 이마에 걸친 채 자고 있었다.

아마 술 마시다 잠든 것 같은데, 거리로 내 몰린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서울역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다들 광장 구석에서 두더지처럼 자고 있었다.

 

오래된 고참 노숙자들은 나름의 움막이라도 있어 찬바람은 피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 정도 움막 하나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언제 철거될지도 모르는 움막이 아니던가?

 

두 번째는 이불 하나라도 기어이 사수하는 대개의 노숙자다.

온 몸을 이불에 돌돌 말아 잠드니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에 맡길 뿐이다.

 

문제는 갑자기 쫓겨 나 아무 대책 없는 초짜 노숙자들이다.

아무리 잠들고 싶지만, 추워서 잠이 오겠는가?

문제는 그 고통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노숙자들 중에 유독 알콜 중독자들이 많은 것은

육체적 고통은 물론 모든 걱정까지 잊어버리고 싶어서다.

 

해마다 거리에서 죽어나는 무연고자가 300명을 넘는다.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대개 생활전선에서 쫓겨 난 부랑자들이다.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그들은 국민이 아니고, 사람도 아닌가?

 

온 세상이 다 보는 서울역 광장 상황을 정치인들이 몰라서 방치할까?

알고도 외면한다면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자 규정을 보완하여 그들도 쪽방에서 살게 하라.

 

여러분들도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을 만나면 관심 좀 가져주세요.

하나님과 부처님께 바칠 돈 삥땅쳐서라도 그들에게 적선하세요.

하나님도 부처님도 그걸 원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직업처럼 손벌리는 앵벌이는 물론

술에 절어있는 알콜 중독자에게는 절대 돈 주지 마십시요.

알콜 중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빨리 죽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들은 강제 수용시켜 치료받게 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즉각 그들을 수용하여 치료하라.

 

다들 무슨 전생의 죄가 그리 많아 짐승보다 못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신이시여! 제발 세상 조율 좀 해주세요.

 

사진, 글 / 조문호

 

노숙자의 절반은 알콜 중독자로 볼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차가운 날씨에 술이 취해 잠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들이 술을 자제하며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려면

강제 수용하여 치료받게 하는 방법뿐이다.

 

지난 23일 정오 무렵, 산책하러 동네로 내려갔더니,

송범섭씨가 마치 장물애비처럼, 손목시계를 몇 개나 들고 있었다.

한 개 오천 원에 판다는데, 쪽방 촌에 시계 필요한 사람이 있겠는가?

필요하다면 밥 얻어먹는 시간이라도 알아야 할 핸드폰 없는 노숙자들뿐인데,

그들에게 무슨 돈이 있단 말인가?

 

새꿈공원으로 올라가니 주차장 모퉁이에서 노숙하던 병학이 일행이 사라지고 없었다.

자리가 깨끗하게 청소된 걸 보니, 어디로 쫓겨난 듯 했다.

멀리 공원 안쪽에서 누군가 노숙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보니, 쫓겨 난 그들이 공원 안으로 자리를 옮겼더라.

병학이는 이불 속에 파묻혀 자고 있었고, 옆에 있던 봉남이가 반색을 했다.

 

술이 고파 물주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주머니엔 천 원짜리 한 장 뿐이었다.

“천원 가지고 무슨 술을 사?‘라며 시큰둥했다.

병학이가 자서 심심했던지, 날더러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니네 가족은 서울에 사냐?고 물었더니, 사연을 줄줄이 쏟아냈다.

 

운전면허증부터 꺼내 놓으며 집에서 이혼 당해 쫒겨 나온 이야기를 했다.

택시기사로 일하며 살았는데, 그 놈의 술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운전해야 할 사람이 술을 너무 좋아해 일 나가지 않는 날이 많으니, 누가 그를 쓰겠는가?

결국 직장 잃은 가정불화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 사연 사연을 털어놓았다.

“자식은 없냐?”고 물었다니, 갑자기 딸년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슬피 울어대는지 옆에 있는 나까지 눈물이 나더라.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괜히 쓸데없는 걸 물어 초상집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리가 민망해 일어나니, 대뜸 하는 말이 “천원만 더 갖다 줘”란다.

자식이 보고 싶어 그렇게 슬피 울다가도 술값 걱정을 하는 것을 보니, 술이 무섭기는 무서웠다.

이제 오십대 중반이면 한창 일 할 나이인데, 보통 일은 아니었다.

 

작년 이맘 때 비명에 간 용성이도 술 때문에 죽었는데,

술 값 구걸에 못 이겨 술값 준 적 있는 내가 죽인거나 마찬가지였다.

하루속히 알콜중독자를 강제 수용하더라도 구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매일같이 국회에서 개지랄만 떨지 말고 사람 살릴 걱정 좀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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