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 촌에 들어온 지 일주일 뜸 되니, 서서히 길이 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살며 가장 신경 쓰이는 문제는 끼니 때우기다.
하루 한 끼만 먹고 나머지는 떡이나 빵조각으로 해결하는데, 그 한 끼가 문제인 것이다.

봉사단체나 상담소에서 갖다 준 라면은 쌓여있으나, 끓여 먹기가 귀찮은 것이다.

안 먹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배가 덜 고파서 그렇겠지만, 대개 급식소에서 얻어먹고, 쉬는 날은 싸구려 식당에서 해결한다.

그 외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사진 찍는 일이나 컴퓨터 만지는 일 외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잔다.

낮에 자빠져 자고 밤새 컴퓨터와 씨름하기도 한다. 아무도 간습하지 않으니, 마냥 꼴리는 대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나를 살맛나게 하는 것은 변해가는 주민들의 친근감이다.

만나면 말없이 웃어주는 표정들이 밥은 챙겨 먹었는지 묻는 것 같다. 대개 사는 게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곳은 다른 곳과 달리 인정이 살아 꿈틀거린다. 다들 없어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니 인정이 살아 남았을 게다. 돈이 사람을 망친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목요일에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에서 실시하는 도시락 배달에 따라 나섰다.
그 날은 평소에 관심 없던 도시락 반찬에 유달리 관심이 갔다.

오뎅, 버섯, 콩나물, 김치가 도시락에 담기고 있었는데, 침이 꿀꺽 삼켜졌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혼자 살게 되었으니 음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집에서 나올 때, 이 것 저 것 살림살이를 챙겨주며 “딸 시집보내는 것 같다”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중고 냉장고를 사러가서, 내가 우겨 제일 적은 것을 골랐기 때문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좁은 방에 버티고 있을 냉장고의 중압감이 싫어서였는데,

아내가 더 큰 것을 사야한다고 만류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배달하고 남은 반찬을 얻어 올 수도 있지만, 냉장고가 작아 넣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도시락 배달하러 나갔더니, 술이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자는 사람이 눈에 밟혔다.

다들 밥 대신 술로 끼니를 때운 모양이다. 하기야 밥보다 술이 술술 잘 넘어가기야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동자동 주민들의 평균 수명이 다른 곳 보다는 낮은 것도 다들 술 때문이다.
술을 마시기는 마시되, 제발 끌려 다니지는 말아야 할 텐데, 그것이 걱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건너편은 우리나라 대기업 빌딩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굴지의 기업 GS건설빌딩과 전 대우빌딩인 금호빌딩도 있고, 남대문경찰서 뒤로 서울시티타워인 그린화재빌딩과

힐튼호텔, CJ홈쇼핑 건물도 보인다.

그러나 그 거대한 빌딩 틈으로 쪽방들이 코딱지처럼 다닥 다닥 붙어있다.
옛날 사창가였던, 양동을 비롯해 동자동, 도동 등지에 전세 100만원에 월20만원 정도하는 한 평 남짓의 쪽방들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외롭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보기로 작정했다.

그 실상을 전해 들어 마음 굳힌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공식적인 길을 따르기 앞 서, 그들의 실상부터 파악할 겸, 추석 이튿날 동자동을 찾았다.

명절이라 그런지, 동자동 놀이터에 많은 분들이 모였더라.

일단, 그분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갔으나, 나도 모르게 자꾸 카메라에 손이 갔다,

개성이 독특한 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 마치 공원자체가 연극 무대 같았다.






몸이 불편한 분들이야 나오지 못하지만, 웬만하면 답답한 방안보다 공원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 날 공원 곳곳에 낮술을 즐기는 분들이 많았다. 평소에도 그런지 모르지만 술 인심이나 담배인심은 좋았다.

처음에는 인사로 권하는 줄 알았는데, 담배가 없으면 아무에게나 담배를 달라 했다.

예전에야 담배 인심 하나는 좋았으나, 담배 값이 비싸진 이후론 보기 드문 미덕이다.






그러나 원색적인 욕설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와, 겉으로는 거칠어 보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그러진 않겠지만, “야이 씨발놈아”란 말이 일상적인 언어였다.

듣는 사람이 화를 내지 않는 걸보니, 그냥 친근함을 나타내는 악의 없는 욕설이더라.


그런데, 그 곳에도 남자들이 여자의 기에 눌리고 있었다.

성태엄마란 분은 아무 남자에게나 시비를 걸고 쫒아 다니며 진득이를 붙어 결국 도망가게 했다,

가겟집 할머니가 나뭇가지로 엉덩이를 쳐가며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그 날, 세상살이에 절망하여 스스로를 술에 가두고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오죽하면 공원 주변에 술중독자 상담을 위한 현수막이나, 공원에서 술 담배를 즐기는 것을 더 이상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성 플래카드도 걸렸으나. 공염불인 것 같았다.

놀이터에 가뭄에 콩 나듯 한 어린이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노인들의 해방구라 그냥 묵인하는 게 좋을 듯 했다.







그런데 놀이터의 분위기를 확 바꾼 것은 하투놀이였다.
한 남자분이 신문지를 깔고 화투판을 벌였는데,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 여섯 사람이 돌아서서 섰다판을 벌였는데, 투전이라기보다 하나의 나누는 놀이였다.

돈을 딴 사람이 구경하는 주위 분들에게 나누어 주어,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 뿐 이었다.

가진 자보다 없는 자들이 더 인정이 많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잠시, 환자들이 누워계신 쪽방 몇 곳을 찾아보았다.
어떤 분은 귀가 어두워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셨지만, 어떤 분은 내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자식들이 있지만, 찾지 않는다는 분도 계셨고, 죽는 날만 기다린다며 체념한 분도 계셨다.

다들, 복에 없는 돈보다는 사람 사는 정에 목말라 했다.

그렇지만 한 푼이라도 생기면 가난한 자식에게 주고 싶다는 말씀도 했다.

그게 부모의 마음일 게다. 다시 찾아 올 날을 적어드리고, 물러났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서울역 주변에서 죄인처럼 숨죽이고 사는 쪽방촌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다.

다들 가난을 물려 받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죄 뿐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으로 사는 방법이야 있겠지만, 그들에게 한가닥 희망이라도 안겨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기초생활 수급비 60만원에서 집세 20만원을 제하면 남는 게 뭐있겠나?

임대료를 도와주거나, 추위나 더위, 화재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정책과 지원이 절실했다.

내일은 양동과 도동 방향을 돌아보고, 월요일부터 작업에 들어 갈 작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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