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은 오후1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정선에서 밤늦게 돌아와, 그동안 등진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날밤을 깠기 때문이다.

뭘 좀 먹어야 했으나, 밥 때를 놓쳐버렸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 먹을 심산으로 내려오는데,
2층에서 김정길씨가 봉사하는 학생들을 대동해 짜장면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베푸는 짜장면 나눔이라는 것이다.
쉽게 굳는 짜장면을 배달하는 일이 예사 일은 아니다 쉽었지만,
고맙게 받아들고, ‘얼시구나’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라 다를까 짜장면은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한 올 한 올 풀어 비벼 먹었더니, 꿀맛이더라.
시장이 반찬이란 말도 있지만, 바삐 나누어 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더해
먹기 위해 공들인 내 손 맛까지 곁들였으니, 어찌 맛있지 않을소냐?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나니, 인사동으로 나오라는 호출이 연이었다.
인사동 ‘보고사’갤러리에서 정기호씨 전시도 열리고,
평창올림픽을 홍보하는 미녀들도 인사동에 나온단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구와의 술 약속이다.


오늘은 일진이 아주 좋은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밤이 되면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간다.
추워지면 거리로 내 몰린 노숙인 들이 문제다.

얇은 옷에다 박스지에 의지해 온 대부분의 노숙인 들은
급변하는 날씨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술기운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는 자들이 늘려 있고,
바람 피하려 폐지박스로 사방을 가린 노숙인도 있다.

여태껏 말로만 복지 국가를 외쳐댔지만,
벼랑에 내 몰린 빈민들의 삶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새 정부에는 기대 했으나, 하나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제일먼저 관심 가져야 할 게, 서민들의 복지개선 아니던가?

최소한, 거리에 내몰린 노숙인들의 잠자리부터 해결하라.
조금만 신경 쓰면 얼마든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다.






짐승도 저렇게 떨지는 않는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발 빠른 대처를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사람이 참 간사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덥다고 난리치더니, 하루아침에 춥다며 웃옷을 찾는다.


사실, 쌀쌀해지면, 술 맛 나는 계절 아니던가?
술 생각에 새꿈 공원으로 나갔더니, 여기 저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구멍가게 강재원씨는 이미 맛이 가버렸더라.
어머니 몰래 소주 몇 병을 빼돌려 놓고 허풍을 떨어댔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자락에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었다.
이남기씨의 빠진 이빨 사이로 즐거움이 넘쳐 흘렀다.






이홍렬씨는 소주파가 아니라, 주위만 맴돌았다.
내가 막걸리 한 병을 사서 자리를 만드니,
그 때야 한 잔 하시며, 옛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추석명절의 쓸쓸함이 유난히 길어, 그 때가 그리운 것 같았다.






20여 년이 지난 추석 전 날,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다 돈뭉치를 주웠다는 것이다.
거금 백만원이나 들어있는 쇼핑빽에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그 날 청소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코가 비틀어지게 마시고,
남은 돈은 명절 보너스 로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냐마는, 없는 사람들 적선했으니, 아마 복 받았을 거다.
그래도 혼자 챙기지 않고, 함께 나누었으니 인간적이지 않은가?
신고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도리지만, 어찌 혼자 독식하는 야박함에 비할소냐.





지난 해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린 다섯 쌍 중의 두 내외도 나와 있었다.
이기영, 홍홍임씨 내외와 김만귀, 이경희씨 내외는 찰떡궁합이다.
그 날도 두 내외가 짜장면으로 정분을 나누었는데,
김만귀씨 아들 정훈이가 동내재롱 다 부린다. 동자동의 유일한 기쁨조다.






이 날은 ‘구글 보지’로 통하는 유씨도 등장했다.
사실은, 이름보다 별명이 더 잘 기억된다. 옆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그랬다.
“꼭다리 옆방이 짹짹이 방이잖아” 이름은 얼른 기억나지 않지만, 별명은 바로 나온다.
날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찍새로 불러다오.






그날의 화제는 어딜 가나 지갑 분실사고 였다.
지난 추석 전 날, 이모씨가 지갑을 분실한 모양인데, 그 일로 뒷말이 많았다.
CCTV에 줏는 사람 모습이 찍혔다며 경찰까지 개입했으나,
아무도 이씨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만큼 동내에서 인심을 잃은 것이다.






이미 술이 취해 있었는데, 인사동에서 술친구들이 날 불러 재꼈다.
인사동‘툇마루’로 자리옮겨 마시느라, 지갑에 만원짜리 한 장 달랑 남겼는데,
그마저 임자가 따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서울역에서 지하계단을 올라가다 옆방에 사는 최완석씨를 만났는데,
구석에서 노숙자 한 사람이 손을 흔들어댔다.
자세히 보니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이 소원”이라던 이상구씨였다.






몇 달 만에 만났는데, 얼굴도 많이 상했지만, 다리를 다쳐 목발을 옆에 두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길래,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지갑을 마저 털어야 했다.
누구에게 구제 금융을 요청하던, 그건 내일 일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 이상구씨의 고마워하는 표정에 내일 걱정까지 사라지더라.






“돈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던가”


사진,글 / 조문호




페이스북 친구가 된 김길석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내 손이 잛아 나는 반토막만 나왔네






































동자동 쪽방주민을 위한 무료 이발소’가 동자동 ‘새 꿈 공원’에 차려졌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주선한 지난 12일의 무료이발소는
지역주민 문성재씨가 자원봉사로 나선 것이다.
이홍렬씨 등 극히 일부 주민들이 머리를 잘랐지만,
추석에 대한 그리움을 일으킨 하루였다.






대부분 고향이나 가족을 등진 분들이라 추석이 다가와도 가지 못하는 분이 더 많다.
그래서 ‘동자동 사랑방’에서 공동차례도 지내고,
노래자랑을 하는 등 추석잔치를 벌이지만,
어찌 옛날 추석의 아련한 그리움에 갈음할 수 있겠는가?






옛날 명절 대목이 되면 목욕탕과 이발소 가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 목욕탕도 싫어했지만, 이발소는 딱 질색이었다.
가기만 하면 머리를 짧게 깎아 촌놈을 더 촌놈같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명절 대목만 되면 이발소는 사람들로 붐볐다.
순서를 기다리다 지켜본 이발소 풍경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주인은 바리깡과 가위를 바꾸어가며 분주하게 머리를 잘랐고,
주인아줌마는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덮어놓고, 혁대에 쓱쓱 면도날을 문질러댔다.
바보처럼 늘 비실비실 웃는 아저씨는 손님들 머리 감기느라 물조리 춤을 추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들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단지 눈길을 끌었던 것은 벽에 걸린 야한 달력 사진보다,
시쳇말로 이발관그림이었다.






깨진 대형 거울 위에 그린 그림이었는데,
거울에 금간 자욱 따라 뻗은 고목 가지에는 이름 모를 새들과 꽃이 여기 저기 그려져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자욱 따라 그리다보면, 뭔가 어색해야 되는데, 너무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 모르지만, 어렸던 내가 보기에는 꽤 좋아보였다.
저런 그림과 유명 화가의 그림은 어떻게 다르며,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는지도 궁금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저런 의문 속에 머리 감으려 고개를 쳐 밀었는데,
비눗물이 들어가 눈이 따가워 죽을 지경이었다.
눈, 눈,하며 거품을 무니, 바보 아저씨는 비누 묻은 손으로 눈부터 문질렀다.
잇따라 물조리에서 쏟아지는 물 세레에 시원해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콩나물시루에 물 뿌려 키우 듯, 내 머리도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발 무료봉사 소식 전한다는 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예전만큼 추석이 설레지는 않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였다는 말이다.
이번 추석에는 공원에서 열리는 콩쿨대회에 나가 대야라도 하나 타고 싶지만,
이가빠져 새는 소리 때문에 상 받기는 틀린 것 같다.






다들 잊을 수 없는 추석명절의 추억 한 자락씩 남기시길...

사진, 글 / 조문호










난, 오래전부터 생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울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하는 수 없어 생일상을 차렸지만,
돌아가신 후로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이 살 던 정영신씨와 늘 부딪히는 문제인데,
작년에는 정영신 장터 사진전과 연결해, 억지 칠순잔치도 벌였다.




페이스 북에서 생일축하 메시지 받기조차 송구스러웠다.
그러나 이번 생일을 기해 나쁜 습관 하나 바꾸기로 작정했다.
똥 누는 화장실 옆에서 설거지하는 게 싫어, 일 년동안 밥 한 번 해먹지 않고,
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노숙자들 빵 뺏어먹으며, 일회용으로 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배 속에 똥을 잔뜩 넣어두었는데,
똥통인들 설거지 못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밥해먹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9월4일 생일에 맞추어 쪽방상담소에서 밑 반찬 표를 나누어 주었다.




삼개월간 열 차례에 걸쳐 나누어 주는 ‘밑반찬 지급 확인서’였는데,
처음 받는 일이라 30분전에 나갔으나, 모두 나와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250명 선착순으로 준다니까, 다들 일찍부터 나온 것이다.




가구별로 신청 받아 조금씩이라도 골고루 나누어주는 방법은 없을까?
무슨 똥개 길들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한 시간씩이나 땡볕에 세워 구워야 하나?
늙은이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당기면 될텐데,
기어이 오전10시를 채워 쪽지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여지 것 ‘한강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주는 빵 배급은 줄을 서 보았지만,
반찬배급은 처음이었는데, 노숙자들이나 모르는 분이 많던 빵 배급에 비해,
반찬배급은 주민들이라 대부분 아는 분들이었다.



김정호, 송범섭, 강병국, 이재화, 유한수, 정재헌, 김정길, 김원호씨 등
반가운 분도 많이 만났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한 쪽에서는 막걸리를 마시는 분도 계셨다.
다들 질서를 잘 지켜 11시경에 끝났는데, 못 받은 분은 없는 것 같았다.




‘밑반찬 지급 확인서’라고 적힌 쪽지에는 열 군데의 확인란이 있었는데,
'한강교회'에서 나누어 준 빵 배급표와 비슷했다,
이제 빵은 받지 않기로 했으니, 노숙자 신세는 면한 것 같았다.
어떤 밑반찬을 줄지 궁금했으나, 처음 나누어 주는 7일이 기다려졌다.




오후에는 정영신씨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이 생일이니 저녁식사라도 함께하자는 것이다.
시간 맞추어 녹번동에 갔더니, 조촐하지만 최고의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




지난 번 정선에서 갖다 준 ‘메이드 인 만지산’으로 밥 반찬을 만들었더라.
7년 전 심은 도라지 한 뿌리를 캐 주었는데, 거짓말 좀 보태 어린애 팔뚝만 했다.
술은 지난번 김남진씨가 동자동에서 파티하라고 준 ‘MIXX TAIL’이 있었다.
개복숭아 효소에 칵테일해 마시니 맛이 죽였다.




이런 저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해가며 마셨더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동녘이 밝아 오는 것 보고 잠들었으니 보나 마나지만, 죽어도 좋았다.




삼일 뒤에는 쪽방상담소에 밑반찬 받으러 갔다.
밥차에서 문규도, 송범섭씨가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나누어 주는 밑반찬은 우엉조림과 닭고기, 두 가지 였다.



일회용 밥 한 개와 음료수 하나도 끼어 주었다.
한 두 끼 먹으면 끝날 반찬으로, 밑반찬이라 하기엔 좀 그랬다.




“제발 잔소리 말고, 주는 대로 받아 쳐 먹어라”
감히 거지 주제에 어따 대고...

사진, 글 / 조문호



















얼마 전, 미술감독 안애경씨가 핀란드 친구들을 데려와 만들어준 침대 덕에,
한 동안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용하다보니 탁자와 의자가 좀 불편했다.
장시간 일하다 보니 탁자에 물 컵 하나 놓을 자리도 없고,
의자는 등받이가 없어 온 몸에 주리가 틀렸다.
욕심 부리느라, 정선 집에 있는 탁자와 의자로 바꾸기로 했다.






지난 27일, 매월 한 번 씩 들리는 정선 집으로 떠났다.

궁상맞게 비까지 내려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군불 지피며 했던 생각이 "죽으면 이 많은 짐을 어떻게 하며,
엄마 무덤은 어쩔까?" 쓸데없는 걱정도 해댔다.

2박 3일이 금세 지났는데, 할 일도 많았다.
말벌에게 두방이나 맞아 어깨는 묵직한데, 정영신은 봉숭아 꽃잎 따오라지,
구름은 왔다 갔다 하며 놀자고 약올리지,
창수엄마는 조씨네 집으로 술 마시러 오라지...






그런데, 이튿 날 서울 갈 짐을 차에 실어려니, 탁자가 실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차 지붕에 올려놓고 끈으로 칭칭 묶었는데, 꼴이 가관이다.
끈을 고정시킬 수 없어, 빽밀러에도 묶었는데,
타고 내릴 때는 차창으로 끈을 풀고 내려야 했다.

우려와 달리, 서울 동자동까지 잘 도착했다.
탁자는 물론 설합장까지 들여놓으니, 쪽방이 가득 찼다.
보따리에 싸 두었던 옷가지도 챙겨넣고,
집기들도 한 곳에 모아 놓으니, 훨씬 지내기가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왠지 아늑한 정감이 없다.
마치 사람 사는 방 같지 않고, 무슨 사무실 같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옆 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영신씨를 데려와, 어떤지 한 번 봐달라고 했다.
한 마디로, 희망이 있는 방과 없는 방의 차이 같다며,
마치 쪽방 사람들을 관리하는 사무실 같다는 것이다.



정영신사진


같은 생각이었지만, 이제 와서 어쩌랴?
몸과 마음을 더 내려놓는 수밖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은 하루 종일 쪽방에서 죽쳤다.
하는 일이래야 컴퓨터와 노닥거리다 잠자는 것뿐이다.
마침, 맞은편 방에 사는 김응수씨가 소주 한 잔 하잖다.
소주 세병과 소시지 세 개를 사왔지만, 방에 들일 수가 없었다.

침대에다 책상까지 들여 놓았으니 방이 좁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어 문턱에다 술상을 차려 손님을 맞았는데, 그와는 처음 갖는 술자리였다.

나이는 일흔 셋인데, 그 날은 오랜 숙원사업이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며 약간 고무되어 있었다.





부산에서 아들과 아내가 살고 있지만, 사업자금 융자받으러 상경해 쪽방에서 체류한지가 삼년이 되었다고 한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그가 고성에다 대규모 야시장을 개발하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었는데,

서류 갖추고 보완하느라 3년이 흘렀단다, 그런데 융자 신청액이 무려 300조가 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이포 용지에 적힌 확인서 비슷한 내용을 보여주었는데, 너무 큰 금액이라 믿기지 않았지만, 한 번 물어 보았다.

야시장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냐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서냐 물었더니 당연히 돈 때문이라고 했다.

그 나이에 엄청난 일을 꾸며 벌어본들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들과 손자를 위해서란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돕는 것이라며 말을 끊었더니, 이번엔 정치이야기를 꺼냈다.

박정희의 경제 성장론을 늘어놓으며, 삼년만 더 했다면, 세계 최고의 경제국가가 되었을 것이란다.

더 이상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화장실 가는 송범섭씨를 불러 앉혔다.

이 친구는 아래층 사람들과 복도에 둘러앉아 한 점에 백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록 결말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돈 따는 것보다 시간 보내는 놀이였다.

후래삼배라며 석 잔을 연거푸 따라 주었으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던지 서둘러 내려가버렸다.






이번에는 옆방에 사는 최완석군이 나타났다. 이 친구는 막걸리만 마셔 끼일 형편도 아니지만,

이미 취해 들어왔다. 내년이면 50에 접어들지만,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틈틈이 괴성을 질러 옆방 사람들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건물 관리하는 정씨로부터 숱한 욕을 먹으며 구박 당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런데 방에서 조그만 컵에다 물고기를 키우는데, 하루에 몇번이나 물을 갈아주었다.

유일한 친구인 냥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티브이도 물고기가 노는 화면을 자주 틀어놓았다.

다들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쪽방 촌에는 별의 별 사연의 사람들이 많지만, 하나같이 힘들어하는 것은 소외감이고 외로움이다.

문제는 이웃과 어울리거나 공원에 나와 사람을 만나는 분은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다들 혼자 사는데 익숙해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다.

그러니 먹는 것조차 부실할 수 밖에 없어 결국은 건강마저 잃어버린다.

혼자 살다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은 고사하고 언제 사망한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 이어 급증하는 고독사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시대가 만들어 낸 사회적 병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경우, 지난달부터 한국 야쿠르트와 업무협약을 맺고 개인정보제공을 조건으로

3회씩 야쿠르트 배달원들이 홀몸노인 가구를 방문해 음료를 전달하며 안부까지 확인하기로 했는데, 정말 잘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극소수의 사람들이 신청했고, 그것도 외부 출입이 잦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아무 조건 없이 해당되는 분은 주기적으로 방문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부의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절실하다.



사진, 글 / 조문호




















갑자기 날씨가 서늘해지니,

봄이 찾아온 것 보다, 더 반갑다.
올 여름 쪽방 더위는 지긋지긋했다.
이보다 지독한 여름은 없었다.

날씨 덕에 노숙인의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깔판을 등짝에 붙인 노숙인의 패션도 재밋다.
쿠숀이 있어 노숙하기 안성마춤인데,
몇 겹으로 접을 수 있어 옮기기도 편하다.

옛날 거지는 얻어먹을 밥통이 필요 했지만,
요즘 거지는 자리 깔 박스용 판지가 필요하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노숙인은 빈 몸으로 떠돌아,
자리 깔려면 그 흔한 박스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복지, 복지, 입이 아프도록 나팔 불어대지만,
노숙인을 위한 복지 한 번 생각해 본적 있는가?
그들을 위한 물품 보관소 부터 만들어주라.
폐품을 사용하는 노숙자라 사람도 폐품이던가?

제발, 인간 폐품도 재활용 방법 좀 연구하라.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