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은 통의동과 인사동을 오갔다.
대전에서 전시중인 정복수씨와 울산에서 올라 온 오세필씨로 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먼저 정복수씨를 만나러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전이 열리는 통의동 ‘인디프레스’로 갔다.


경복궁 지하철에서 내려 골목을 접어더니 장경호씨와 유근오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 술 마시다 담배 피우러 나온 모양인데, 반가움보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깝게 지낸 사이지만,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 일 년 가까이 등 돌리고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했으니, 이제 화해가 된 듯싶었다.

술집에 채현국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분이 있다지만, 약속시간이 늦어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좀 있다 보자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정영신, 오세필, 최백호씨를 비롯한 열 여명의 모르는 여인네들이

커피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세필씨 부탁으로 아침 일찍 전시 안내하러 간 아내를 길에서 만난 것이다.

DDP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들, 그리고 ‘아라아트’의 브레인 워시전을 거쳐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전이 열리는 ‘인디프레스’로 왔다는 것이다.

인사만 나누고 정복수씨가 기다리는 전시장으로 급히 갔더니, 조금 전에 나갔다는 것이다.

바쁜 일이 있나 보다며 돌아서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전시장 옆 ‘메밀꽃 필 무렵’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 곳에는 교장선생님인 정복수씨 부인도 함께 있었다. 몇일 전 대전 전시장에서 뵙기는 했으나, 반가웠다.

미색도 출중하지만, 정복수씨의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정복수씨가 반평생 신체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인 덕이었다.


술과 안주를 주문하기 바쁘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미술 평론가 최석태, 유근오씨와

화가 장경호씨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 등 여러 명과 어울려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소주나 마실 것이지, 남 따라 장에 간다고 잘 마시지 않는 막걸리를 마셨더니, 금방 취했다.

아마 맞은편 미녀 눈길 닿는 게 쑥스러워 벌컥벌컥 마셨던 게 원인이 아닌가 짐작된다.

김정대씨와 합류하여 어딘가 이차를 간듯한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오세필씨와 인사동 ‘유목민’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김명성씨의 전화를 받고서야 자리를 옮겼는데, 그 자리에는 이성 구로구청장을 비롯하여, 최백호,

박인식, 오세필, 김명성, 최석규, 정영신, 임태종씨 등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카메라불도 꺼졌지만, 술이 취해 횡설수설해대니, 옆에 있던 아내가 가자며 눈치를 주었다.

왜 술만 취하면 오버하는지 모르겠다. 가슴에 뭉친 불만을 술이 밀어내는 걸까?

사진, 글 / 조문호









































대전아트센터 쿠, 오는 9월 2일까지


▲정복수 作


‘골프존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정복수의 80년대 특별전‘ 개막식이 지난 7일 오후7시 대전 ‘아트센터 쿠’에서 열렸다.

개막식에는 작가 내외를 비롯하여 김영찬 골프존문화재단이사장, 화가 박건 씨 등 100여 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작가의 아들 정상이 군이 이끄는 4인조밴드 ‘안녕의 온도’가 나와 멋진 축하 연주도 해 주었다.





▲정복수 作


이 전시는 작가 정복수의 1980년대 작품들을 보여주는 전시다. ‘몸의 지도’라는 부제 아래 억눌린 인간의 본성 표출이나 인간 실존에 대한 작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탐욕의 인간사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육체'라는 믿음으로, 1979년 전시부터 여지껏 인간의 절단된 몸만 다루어 오고 있다.



▲정복수 作


언젠가 안성의 어느 산 아래 자리 잡은 그의 외딴 작업실에 들린 적이 있는데, 마치 음습한 정형외과를 연상시켰다. 홀로 외롭게 틀어 박혀, 세상 사람들을 주시하며 인간상을 탐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업실 곳곳에 가죽이 벗기고 사지가 잘린 육신들이 프레임 속에서 너덜거리고 있었는데,  탐욕에 가득 찬 인간들의 위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의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판은 그의 평생 화두였다.



▲정복수 作


그는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생 시절의 스케치북에도 사람의 형상들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인간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 이후 홍익대에 진학하며 잠재적 문제의식이 고개들었는데,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중반의 사회문화적 허위의식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되었다.



▲정복수 作


충격적인 그로테스크로 화단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30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해 온 결과, 한국현대형상 회화에 큰 획을 긋게 된 것이다.

정복수는 신체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물적인 표현을 통해 인간내면에 잠재된 본능을 끄집어낸다. 신체 절단의 부정성이나 원초적인 동물성보다 오히려 유기체로 이해되는 신체 너머의 해방과 자유를 말하기도 한다.



▲정복수 作


그리고 분절된 팔이나 목에서 내뿜어지는 힘찬 줄기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절단과 훼손에 따른 핏줄기가 아니라 해방의 내파가 진행 중임을 알리는 에너지 줄기라는 것이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잘린 신체의 목들이 여기 저기 걸려있었다, 양면성으로 위장된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본질적인 욕망만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영혼들이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다. 때로는 그림 속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림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시공간을 넘는 것으로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복수 作


그리고 80년대 이후부터 화면이 보다 구체적이고 폭이 넓혀져 관찰자로서의 치밀함과 부드러움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또 캔버스 오브제 입체 색연필 드로잉을 이용한 대형 설치작품 등 기법과 형식에서도 다양성을 띤다. 외형상 절단되고 왜곡되고 기형화되어 있어도 매우 아름답고 부드럽다. 그의 육체는 ‘보여주는 육체가 아니라 말하는 육체'라고도 말했다.



▲정복수 作


작가는 "내가 그리는 ‘몸’은 잃어버린 생각들을 찾고 몰랐던 것을 알기 위해 떠나는 무전여행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작업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다양한 장르로 작업을 확장할 것이라고도 했다.

 

▲정복수 作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는 정복수 그림을 이렇게 말했다. “정복수의 작품 속에서 정신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이 진정한 실존의 조건이 되어 관객을 향해 날아온다. 그리고는 이내 관객의 폐부를 찌른다. 애달프다. 그렇게라도 살고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의 고귀한 신체 이면에 존재하는 그 무엇들이 서글플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찌르는' 정복수의 그림이 안겨주는 소중한 덕목이 바로 이 것이다.”



▲작품 앞에서 작가 정복수 씨.


이 전시는 9월2일까지 이어진다.


조문호 기자/사진가


‘골프존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정복수의 80년대 특별전‘ 개막식이 지난 7일 오후7시 대전 ‘아트센터 쿠’에서 열렸다.

개막식에는 작가 내외를 비롯하여 김영찬 골프존문화재단이사장, 화가 박 건 등 100여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작가의 아들 정상이군이 이끄는 4인조밴드 ‘안녕의 온도’가 나와 멋진 축하 연주도 해 주었다.

이 전시는 작가 정복수의 1980년대 작품들을 보여주는 전시다.

‘몸의 지도’라는 부제아래 억눌린 인간의 본성 표출이나 인간 실존에 대한 작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탐욕의 인간사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육체'라는 믿음으로,

1979년 전시부터 여지 것 인간의 절단된 몸만 다루어 오고 있다.

언젠가 안산의 어느 산 아래 자리 잡은 그의 외딴 작업실에 들린 적이 있는데, 마치 음습한 정형외과를 연상시켰다.

홀로 외롭게 틀어 박혀, 세상 사람들을 주시하며 인간상을 탐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업실 곳곳에 가죽이 벗기고 사지가 잘린 육신들이 너덜거리고 있었는데,  

탐욕에 가득 찬 인간들의 위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의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판은 그의 평생 화두였다.

그는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생 시절의 스케치북에도 사람의 형상들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인간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 이후 홍익대에 진학하며 잠재적 문제의식이 고개들었는데,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중반의 사회문화적 허위의식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되었다.

충격적인 그로테스크로 화단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30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해 온 결과, 한국현대형상 회화에 큰 획을 긋게 된 것이다.

정복수는 신체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물적인 표현을 통해 인간내면에 잠재된 본능을 끄집어낸다.

신체 절단의 부정성이나 원초적인 동물성보다 오히려 유기체로 이해되는 신체 너머의 해방과 자유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분절된 팔이나 목에서 내뿜어지는 힘찬 줄기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절단과 훼손에 따른 핏줄기가 아니라

해방의 내파가 진행 중임을 알리는 에너지 줄기라는 것이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잘린 신체의 목들이 여기 저기 걸려있었다,

양면성으로 위장된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본질적인 욕망만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영혼들이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다. 때로는 그림 속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림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시공간을 넘는 것으로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80년대 이후부터 화면이 보다 구체적이고 폭이 넓혀져 관찰자로서의 치밀함과 부드러움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또 캔버스 오브제 입체 색연필 드로잉을 이용한 대형 설치작품 등 기법과 형식에서도 다양성을 띤다.

외형상 절단되고 왜곡되고 기형화되어 있어도 매우 아름답고 부드럽다.

그의 육체는 ‘보여주는 육체가 아니라 말하는 육체'라고도 말했다.

작가는 내가 그리는 ‘몸’은 잃어버린 생각들을 찾고 몰랐던 것을 알기 위해 떠나는 무전여행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작업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다양한 장르로 작업을 확장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는 정복수 그림을 이렇게 말했다.
“정복수의 작품 속에서 정신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이 진정한 실존의 조건이 되어 관객을 향해 날아온다.

그리고는 이내 관객의 폐부를 찌른다. 애달프다. 그렇게라도 살고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의 고귀한 신체 이면에 존재하는 그 무엇들이 서글플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찌르는“ 정복수의 그림이 안겨주는 소중한 덕목이 바로 이 것이다.”

이 전시는 9월2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공연도중 하늘 위의 구름이 붉은 빛깔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렸다.




























“6FIGURATION”전시뒤풀이가 인사동 유목민에서 있었다.

 

김진열, 성병희, 이샛별, 이세현, 장경호, 정복수씨 등 참여 작가를 비롯하여 김진하, 하태웅, 배성일씨가 먼저 자리 잡았다.

뒤늦게 미술 평론하는 유근오씨 등 반가운 분들이 나타났다. 건축가 임태종씨와 공윤희씨, 풍기에서 소설 쓰는 배평모, 구중관씨, 삼천포에서 도자기 굽는 박영현씨, 이회종, 이도흠 교수, 최혁배 변호사, 사진가 정영신씨 등 많은 분들과 여흥을 즐겼다.


그런데 여기 저기 흩어져 있으니, 진득하게 마실 수가 없더라. 술판은 뭉쳐야 되고, 시끄러워야 술 맛 나는데...

 

사진, / 조문호







































화가의 자궁
정복수展 / JUNGBOCSU / 丁卜洙 / painting


2015_1105 ▶ 2015_1201 / 월요일 휴관



정복수_화가의 자궁-번식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1015c | 정복수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6(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정복수의 손-자궁 ● 70년대 후반부터 '기괴한' 혹은 '기이한' 몸을 그려왔던 정복수는 최근 매우 다른 몸을 그리고 있다. 보는 이들을 당혹하게 만들던 그의 저 '벌거벗은 신체'들은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자족하고 있다. '보기에 좋구나, 더불어 노닐고 싶다' 웅얼거릴 정도다. 부분기관으로 종횡무진 날아다니거나, 종으로서의 인간 증식을 위해 외롭고 숙명적인 계열체의 한 사슬로 존재하던 이 신체들은 이제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뱀들과 교감하며 부드럽게 유영하고 있다. 어떤 첫 탄생의 순결과 평화, 온유함이 은은하게 번진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정복수_뱀과의 하루 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정복수_뱀과의 하루 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변화가 그렇게 급작스럽거나 이상한 건 또 아니다. 80년대의 소위 '검은 그림'을 거쳐 90년대에 그가 끊임없는 변주로 그려 보인 신체들을 떠올려보자. 입/혀에서 성기로, 입/혀에서 항문으로, 또는 입/혀에서 발로 이어지는 내선들만으로 이루어진 그의 기관 없는 신체-인간들은 즉물적이고 원초적인 동물성이나 최소한도로 축소된 사회성을 가리키기보다는 오히려 유기체로 이해되는 신체 '너머', 그 신체를 특정 방식으로 조립하고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사유 '너머'의 해방과 자유를 증명한다. 그가 그린 무수한 부분 신체들은 또 어떠한가. 평자들은 부분신체로 존재하는 그의 인간 이미지들을 주로 '절단'이라는 말로 포착했지만, 절단의 부정성보다는 오히려 '분절'의 해방과 향락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꽤나 많았다. 그렇다, 예를 들어 ♀를 찾아 (신체 없이) 저 홀로 붕붕 날아다니는 ♂는 흥미롭게도 페니스 파시즘의 경쾌한 자기 조롱이고 자기 해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는 전체주의적 폭력과 억압의 남근이성중심주의를 짊어질 수 없으며, ♀ 또한 모멸을 견디는 수동적인 신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분절된 팔이나 목에서 내뿜어지는 저 힘찬 줄기는, 사람들이 말하듯 절단과 훼손의 핏줄기가 아니라 해방의 내파가 진행 중임을 알리는 에너지 줄기다. 하늘로 비상할 때 우주선 꽁무니에서 내뿜어지는 에너지가 연상되는 기운이다. 슝~~ 어디론가 날아간다. 어디로? 안 알랴 주징~~. 이렇게 정복수는 고통스런 종의 규범적 생존 연대기에 장난기 많고 제멋대로인 욕망의 풍경을 잇댄다. 이제 신체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아예 신체가 된 기억들은 더 이상 일그러진 억압의 풍경으로 정박되길 거부한다. 남근의 폭력적인 권력을 주장하는 ♂들의 허망한 즉물적 성욕을 폭로하던 80년대의 검은 짐승-신체인간은 서서히 타자를 품고 이야기를 만들어간 시간의 기억으로 변태한다. 이 부분신체들 혹은 기관 없는 신체들은 더 이상 제도와 규범의 강제 위에서 자기동일성을 구축하는 주체가 아니다.


정복수_몸의 초상#4_패널에 색연필_170.5×44.5cm_2015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에 들어와 더 한층 발랄한 기운을 품게 된다. 아마도 이 시기는 화가 정복수가 아버지가 되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기쁨」 4개, 「혀의 추억」, 「기쁨의 원형」 4개, 「생의 일기」는 그의 그림 전부를 통틀어 무엇보다 밝고 희망에 차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이 이미지들에서 이빨은 물어뜯기 위함이 아니고, 혀는 독설을 내뿜기 위함이 아니다. 길게 입 밖으로 뻗어 나와 날름거리는 붉은 혀는 기쁨을 노래하기 위해 저 스스로 소리를 내는 풀피리 같다. 몸통도 팔도 잘렸지만 그 부분 신체로 이 인간들은 웃음 속에서 행복 하느라 여념이 없다. 혀들은 상대방을 향해 쏘아댄 폭력적 판단의 독화살 말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사랑의 밀어를 추억한다. 이렇게 그의 신체 이미지는 다양한 느낌을 담으며 다양한 몸의 지도, 인간의 구조, 마음의 지도, 인생의 일기를 펼친다. 일관되게 더 밝고 더 긍정적이며 더 아름다운 삶을 향해 전진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러나 그의 인간들은 암컷을 향해 달려드는 수컷에서, 단지 수컷 단지 암컷에서, 뉘앙스가 있는 짐승-사람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정복수_얼굴_패널넬에 색연필_28×22.5cm_2015


정복수_손_패널에 색연필_40.5×74cm_2015

이번 전시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인간들은 밝고 은은하고 평화로운 기운 속에서 뱀과 함께 어떤 시작을 알리고 있다. 뱀은 신화와 종교, 정신분석의 세계에서 지혜와 사악함 (즉 선악의 분별과 그것에 따른 판단), 부활과 치유, 그리고 여성의 (유혹하는) 섹슈얼리티와 남성의 (욕망하는) 섹슈얼리티를 가리켰다. 그리고 정복수가 이제까지 보여준 신체 그림에서 입/혀에서 성기로, 입/혀에서 항문으로, 또는 입/혀에서 발로 이어지는 내선들은 저 모든 의미로서의 뱀이었다. 이 뱀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첫 생성과 창조의 시공간을 연상시키는 그림에서 (더 이상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보살을 닮은 사람이 뱀과, 뱀이 사람과, 또 뱀이 뱀과 이야기를 나누며 유유자적 공존한다. 기관 없는 신체에서 이제 아예 내부가 없는, 아니 내부를 외부로 지닌 신체가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말 걸기다. 다시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폭력 아닌 말 걸기로, 사악한 판단 아닌 지혜로운 인식으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상서로운 잇기로 새롭게 탄생시켜 보자는 것이다. 무엇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유기체적 신체-삶의 목표는 이미 버린 지 오래고, 목적은 여정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날름거림'으로 진행되는 이 탄생의 여정이 어떤 경이로운 미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갈지, 정복수의 손-자궁이 어떤 형상들을 잉태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 김영옥



Vol.20151105b | 정복수展 / JUNGBOCSU / 丁卜洙 / painting






정복수 ‘화가의 자궁’전’이 ‘트렁크갤러리’에서 열렸다.

지난 5일, 이른 시간부터 정복수, 김진하, 정영신, 조 우 등 여럿명이 국립현대미술관 정원 잔디밭에 자리 잡았다.

김진하씨가 사온 막걸리만으로도 충분한데. 박영숙선생께서 안주까지 내다주니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트렁크갤러리’와, 창에 배치된 작품의 조화도 일품이었다.

한 밤중에 몰래 와, 트렁크를 통째 들고 가면 되겠다 싶었다.
서늘한 바람과 낙엽 속의 술 맛에 가을은 서서히 저물어 갔다.

오후5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작가를 비롯하여 박영숙관장,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곽대원,

박 건, 이인철, 백창흠씨 등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전시를 축하해 주었다,

전시 뒤풀이는 오후6시경, 삼청동의 모 안가에서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생고기 전문집인데, 고기보다 더 반가운 것은 창문만 열면 자유롭게 끽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막걸리와 와인을 섞어 마신데다 소주까지 사양 않고 마셨더니, 너무 취해 깜빡 잠이 든 것이다.


그 사이에 별일이 다 있었던 모양이었다,

박불똥씨는 10,26사건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조합해 페북에 올리기도 했다.

심지어 이인철씨가 사진 찍는 모습을 확인 사살하는 장면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졸지에 쪽팔리는 사진이 페북을 도배하게 되었는데,
난 그 곳에서 이미 사망 처리되었으니, 이제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혼을 쏙 빼가는 몽달귀신을 아는지 모르겠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몇 일전 아내의 핸드폰에 문자메시지가 찍혔다.
작업실에 한 번 놀러오라는 화가 정복수씨의 문자였다.
벼루고 벼루다 지난 7일, 작업실 있는 안성으로 찾아 갔다.
양지IC에서 시골길로 한참 들어갔으나, 길을 못 찾아 헤맸다.
정화백이 찾아 나서야 할 만큼 깊은 곳이었다.

산 아래 외 딴 곳에 자리 잡은 정복수씨 작업실은 마치 정신 병동 같아 보였다.
40여 년 전 대마초 피우다 끌려간 부산 대연동의 ‘마약중독자 진료소’처럼 음습했다.
현관으로 들어가니 정신병원이 아니라 종합병원이었다.
사방에 가죽이 벗기고 사지가 잘린 육신들이 너덜거렸고,
각종 공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짐작은 했으나, 그의 작업을 보며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연상했다.
작품들은 폭력과 야만을 가린 인간들의 위선을 조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의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판은 그의 평생 화두였다.

그는 경남 의령의 대갓집 자손으로 태어나 부산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에 그렸던 스케치북에도 사람의 형상들이 그려졌는데, 일찍부터 인간에 집착 했다.
그 이후 홍익대에 진학하면서 잠재적 문제의식이 고개를 들고 일어 난 것 같았다.
70년대 후반에는 충격적인 그로테스크로 화단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40년 동안 줄기차게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했기에,
오늘 날 한국현대형상회화에 중요한 획을 긋게 된 것 아닐까 생각된다.

작가는 미쳐야 한다지만, 정복수씨는 미쳐도 제대로 미친 사람이다.
정말 미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무도 없는 그 외딴 곳에서 온 종일 인간 육신과
씨름 한다는 게 말처럼 쉽겠는가? 그의 말처럼 그는 그림으로 통곡하는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몸부림치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한다. 너무 사이비들이 판친다.

그는 인간의 골수로 그림을 그린다지만, 그 날 우리는 인간의 피로 술을 마셨다.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니, 사는 게 걱정되었다. ‘그림은 좀 팔리는 기요?’라고 물었더니.
파는데 신경 쓰면, 마음대로 그릴 수 가 없어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작가가 그걸 모를까마는 어려운 문제다. 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아! 그놈의 돈이 도대체 뭔지? 돌아오는 내내 돈타령을 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정화백이 태어나기 전인 80년전, 조부의 회갑잔치다. 의령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의 작업 노트다.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씨의 전시 뒤풀이가 지난 15일 오후7시경 인사동 '부산식당'에 마련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술자리 인데다 부산식당의 명물 생태찌개 맛이 너무좋아 과음해 버렸다.

이 날은 정비파씨 전시 외에도 도예가 김용문, 서양화가 이강용씨 등 인사동에 전시오픈이 여러 군데 있어

여기 저기 오가느라 불알에 요령소리가 났다.

와인에다 막걸리에 소주까지 섞어 마시다보니 이차로 간 '무다헌'에서는 너무 취해 뻗어 버렸다.

잠들기 전까지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으나, 얼마나 취했는지 이틀 날 확인해보니 카메라에 CF카드가 없었다.

부산식당에서 빼내며 갈아 끼우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부산식당 뒤풀이에는 작가 정비파씨를 비롯하여 서양화가 신학철, 박진화, 정복수, 김정대, 성기준씨 목판화가 류연복, 김영만씨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 아라아트 김명성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종률총장, 국회의원 임수경씨,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손예진, 오덕훈, 이도윤, 김영진씨 등이 함께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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