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만의 조우 또는 해후

김진열_장경호_정복수展 

2018_1205 ▶︎ 2018_1218




초대일시 / 2018_120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김진열/장경호/정복수- 34년만의 조우 또는 해후』展은 나무화랑의 지난 『김재홍·김영진·박불똥의 36년만의 만남-오!레알?』展에 이어 '중견작가 되돌아보기 시리즈' 두 번째로 기획 되었다. ● 1984년 관훈미술관(지금은 갤러리)에서 김진열/장경호/정복수 3인전이 열렸었다. 80년대 초반, 뒤숭숭하고 혼란스런 화단엔 온갖 다양한 모색과 발언들이 70년대식 미술을 거부하며 명멸했다. 많은 그룹들과, 많은 기획전, 그리고 많은 선언들이 스스로를 80년대의 적자라고 주장을 하며 등장 했다.


김진열_두일리 농부_종이에 아크릴채색, 금속_2018

김진열_두일리 농부_종이에 아크릴채색, 금속_2018


장경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11


이때 이들 3인전의 '형상성'은 놀라웠다. 기존에 전혀 보지 못했던 양식과 스타일로 회화의 근거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던졌다. 그리고 자신 내부로부터 동시대 현실을 향해서, 또 동시대인으로서 자기 내부에로 무언가 강력한 신호를 교신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개별 존재인 화가 자신과 세계와의 이질과 불화를 직접적 몸의 표현성으로 남기면서. ● 거기에 회화는 잘 어울리는 미디어였다. 촉감과 액션, 붓질과 흔적, 속도와 물질감 등이 빚어내는 야생적 원초성은 오히려, 관습화된 미술의 허구에 일대 파열구를 내기에 충분한 현실적결과물이었다. 미술이...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서 말하고 배설하고 욕을 하고 일기를 쓰는 것처럼, 회화가 우리들의 피부가 되고 근육이 되고 움직임이 되는 원시적 충동의 새로운 형식으로 전치되었다. 이들 3인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떤 선모델링이나 매너리즘 같은, 앞선 미술사에 대한 표절 없이 당시 자신이 마주한 세계에 대한 생생한 형상성과 표현성에 접근한 것이었다.


정복수_기쁨의원형12_하드보드지에 색연필, 연필_41×28cm_2003


정복수_마음의일기_패널에 유채_110.5×121cm_2003


이들이 34년 만에 다시 '조우'했다. 아니 '해후'라 해야 하나? 30대 젊은 시절의 강렬한 물질성과 형상성을 유지하고 있는 김진열, 초지일관한 주제의식으로 더 세련되어진 화면으로 인간에 대한 발언을 지속하는 정복수, 동일자의 지옥에서 아토포스적 타자를 묵시적으로 호명하는 장경호의 재회는, 60대 중반에도 쉬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반성하는 결과를 보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그만큼 이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쉼 없는 모색은 비판적 형상미술의 토대를 풍부하게 해 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 ■ 김진하


Vol.20181206i | 34년만의 조우 또는 해후展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세 가지의 목소리를 내는 특별한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이흥덕의 불안의 에티카’(1)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조신호의 “DMZ로 부터”(1)는 생태환경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민종은 나의 노래’(2), 자연은 자연으로 두라는

각기 자신만의 어법으로 쟁점화 시켰다.



 


작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 현실이 암울하고 참담할 뿐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정신은 병들었고,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마치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남이야 죽던 말든, 자연이야 망가지던 말든,

오로지 개인주의적 탐욕으로 똘똘 뭉친 것이다.

그 비정의 현실을 말하는 기획전이라 뜻하는 바가 크다.



 


이흥덕이 사회를 보는 불안한 시각은 꽤 오래 되었다.

40년 가까이 욕망이 이글거리는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사회풍경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불안한 현실을 그려내는 심리 도해로서의 지옥도고, 온몸으로 부대낀 보고서다.

    


 



해골 무덤에서 탱고를 추는 남녀 군상들, 구제역에 매몰되는 가축들,

전쟁놀이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구덩이에 처박혀 떨고 있는 사람들, 십자가에 눌린 무력한 예수,

모든 작품들이 지옥이 따로 없는 오늘의 현실을 말해준다.



 


작가의 불안한 증상은 개에 쫒기는 사람으로 동시대적 폭력과 야만을 보여준

80년대부터 시작되었단다.

풍자적으로, 때로는 에로티시즘적인 수사학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상을 형상화해냈다.



 


흑백 목탄이나 초록의 유화 모노크룸,

또는 강렬한 색을 사용하여 마치 요지경이나 만화경 속에 들어 있는

무대처럼 몽환적 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원시의 울산 암각화처럼...




 

근대미술의 시조격인 고야의 동판화집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 뜬다"라는 작품이 있다.(중략) 이흥덕의 그림도 거기에 맞닿아 있다. 요괴를 부정하는 근대도 지나고, 그 유산으로 '찬란한 문명(?)'을 성취한 현대도 100년 이상이나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요괴가 눈 뜨고 횡행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흥덕은 그런 동시대를 때로는 겹 눈질로 때로는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의 불안을 임상보고하고 타자와의 미적·정서적 연대를 시도한다. 이는 보편적인 이웃과 더불어 인간욕망과 욕망이 야기한 폭력과 그로인한 '불안'을 바로 보고, 거기에 맞서려는 작가 이흥덕의 저항적 '에티카(Ethica)'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고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썼다.




 

두 번째 작가인 조신호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한강미술관푸른깃발전에 참여한 적도 있단다.

일찍부터 시대정신에 눈 떠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미를 추구하는 그림에서 벗어나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다 18년 전, 살기가 어려워 파주로 들어가 DMZ를 접하며

생태환경에 빠지는 일대 전환을 맞는다.

고통 받는 동물들을 치료해 주며 스스로 위안 받았다고 한다.

지구의 환경오염이 인간이나 동물에게 미치는 심각한 폐해를 자각한 후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DMZ를 다닐 때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초월적인 힘은 도저히 용납하지 않았다.

인간을 끝없이 불안한 존재로 인식하며,

그런 문제의식을 그림으로 토해내기 시작 했다.



 


살기를 뻔뜩이며 날개 짓하는 독수리무리, 해골에 박혀있는 나무,

앙상한 나목을 마지막 보루처럼 지키는 조류, 하나같이 섬뜩한 장면이다.

마치 작가의 분노가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진 것 같다.

강렬한 색과 터치로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미술평론가 곽대원씨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영국의 화가 프렌시스 베이컨(1909-1992)을 연상케 한다. 베이컨은 고기와 형상과의 관계를 통해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작가다. 베이컨 그림에 나타난 인간과 동물은 아름다움보다는 처절함이다. 조신호의 작품에서 종종 비슷한 그림을 발견한다. 동물을 인간의 정형이라고 믿는 베이컨이나 조신호가 혹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묻고 있다.

    


 



세 번째 작가 이민종이 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내 놓은

일련의 작품을 보면 우선 나른한 느낌이 든다. 자극거리가 없다.

땅에서 시작되는 삶이란 원래 지루하고 따분하다.

성적인 말로 조루와 반대되는 지루의 상태로

언제 사정해 버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을 지닌 채 오래도록 지속된다.

본래 자극을 주는 것이란 쉽게 눈길은 가지만 금방 싫증을 느낀다.



 


마치 드론으로 찍은 부감사진 같은 풍경은

재현적인 사실주의라기보다 조형화한 산수화 같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아주 높고 치밀한 불완전함이 있다.

무기교의 기교이며, 무기교를 위장한 기교다.

바로 이것이 이민종 풍경화의 매력이다.



 


색을 중첩하는 채색방식이야 서양화지만, 동양화의 관점이다.

미세한 붓 자국으로 눈이 쌓이듯 잔잔하게 찍어 그렸는데,

작가는 사물의 물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물감의 흔적으로 화면 층을 깊게 하며,

붓 자국이 쌓이는 시간을 기다려 공간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형상화해가는 방법이 아니라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에 있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은 지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울은 가능성의 세계이고 봄은 생동하는 계절이기에 선택되었으나, 계절 속 자연은 침묵으로 생명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동양사상의 핵심은 현실 속에서 주변과 자기마음을 조용하고 화평하게 하는 데 있다. 화가 이민종의 정신은 이러한 자연에서 발견한 감성적인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것이다.”고 주성열교수가 적었다.



 


지난 30일 전시를 보러 금보성아트센터를 가야했으나,

그날따라 서울대학병원장례식장에서 열리는 김윤수선생 추모식 시간과 겹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한 곳은 포기해야 할 텐데, 기어이 욕심을 부려 더 힘들게 만들었다.




   

먼저 전시장부터 들렸으나 이미 개막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금보성 관장과 미술평론가 김종근씨 등 작가들이 차례대로 나와 이야기들을 했다.

객석에는 류연복, 정복수, 이재민, 나종희, 김진하, 김재홍, 김구씨 등

반가운 분들의 모습도 여럿 보였다.



    

 

개막식이 끝나야 전시를 볼 수 있을 텐데, 행사는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런데 류연복씨가 추모식에 갈 것이냐며 재촉해 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다시 볼 생각으로 나왔는데.

가보니 추모식도 이미 끝날 직전에 있었다.

반가운 분들이야 만났지만...



 


지난 2일은 아침부터 궁상맞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정영신씨에게 연락해, 전 날 못 본 금보성아트센터전시를 다시 찾은 것이다.

작가 이흥덕씨는 자리에 없었지만, 조신호, 이민종씨가 있었고,

금보성 관장과 사진가 양재문씨도 와 있었다.



    


전시도 찬찬히 돌아보고 기념사진도 찍고, 관장실에 들려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마침 서재에 전주의 류휴열씨 도록이 꽂혀 있었다,

! 이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가?

30년 전에 그의 주선으로 전주에서 전농동588번지전시를 연적도 있다.

어떻게 서로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이토록 무심하게 잊을 수 있었단 말인가?

다음에 전주 가면 꼭 한번 만나보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금보성 관장께서 내년에 나와 정영신씨에게 전시를 하란다.

난, 형편도 되지 않지만, 전시 같은 건 별 관심이 없으나,

정영신씨의 장터사진은 한 번 추진해 봐야겠다.

죽기 전에는 동지로서의 계약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한꺼번에 세 작가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전시를 놓치지 마라.

오는 17일까지 금보성아트센터’(02-396-8744) 전관에서 열린다.

 

사진, / 조문호












 





지난 수요일은 강민선생을 비롯한 인사동 터줏대감을 모시고, 
식사 대접하자는 기별을 장봉숙선생께서 보내왔다.
페북에서야 강 민선생을 간간히 뵙지만, 뵌 지가 한 달이 넘었다.





인사동 나주곰탕으로 갔더니, 문학평론가 구중서선생과 소설가 김승환선생,

사진가 정영신씨가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강 민선생을 기다렸으나, 선생께서는 이미 와 계셨다.

제일 멀리 계시는 분이 언제나 먼저 오신다.



 


자리 잡고 앉으니, 장봉숙선생께서도 오셨다.

매번 내가 꼴지로 나왔지만, 모처럼 꼴지 신세를 면한 것이다.



  정영신사진


강민선생은 귀가 어두운데다, 내가 하는 말까지 어눌해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방동규선생께서 보이지 않아 근황을 여쭈었는데, 구중서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연락하니, 일이 있어 못 나온다"고 했다며,배추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아쉬워하셨다.



 


그런데, 장봉숙선생께서 선물 하나를 내놓으셨다.

얼마 전 중국여행 때 사왔다는 이과두주였는데, 병을 보니 보통 술은 아닌 것 같았다.

강 민선생 드리려 사온 술이겠지만, 맛이라도 좀 봐야 하지 않겠나?

눈치 봐 가며 슬슬 포장을 풀었더니, 식당주인이 말했다.

오늘만 강민선생님 때문에 봐주지만, 다음엔 절대 안 됩니다.”



 


52도나 되는 독주를 낮술에 쥐약인 내가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우나, 어찌 귀한 술을 마다하겠는가?

맛만 본다며 조금 받아 마셨으나, 술 맛이 슬슬 당기기 시작했다.

홀짝홀짝 마시다, 나중엔 장선생과 정영신씨가 남긴 술까지 다 마셔버렸다.



 


방동규선생이 안 계시니, 구중서선생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김두환씨가 시라소니 앞에 무릎 꿇었던 옛 이야기를 꺼내시며,

사실은 전해지는 무용담들이 좀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추가 맨주먹으로 열일곱 명이나 때려 눞혔다지만,

선생께 고백하기를 자기도 당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두 분이 각별히 친한 사이지만, 오래 전에는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백기완과 구중서가 책 보라고 부추긴 죄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꼴로 살게 됐다"며,

술값은 늘 구중서선생께서 내게 하셨단다.





어느 날 인사동 실내악에서 구선생의 핀잔에 방선생께서 술값을 계산하고 먼저 일어난 것이다.

가다보니 술 값을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술값을 돌려 달라고 하셨다는데,

실내악 주인 김희주가 누구인가? 절대 못 돌려준다며 타박만 주었다는 것이다.





방선생께서 다방으로 올라가셨는데, 그곳에 계신 신동문시인께  "구중서와 의절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단.

그 소리를 들은 신동문선생께서 갑자기 꿇어 앉어라며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천하의 주먹이 손가락만 슬쩍 밀어도 쓰러질 비쩍 마른 시인의 말에 그냥 무릎 꿇고 앉았다는 것이다.

한참 있다 이제 일어나도 되냐고 물었더니, 좀 더 있어라 했단다.

얼마나 순진무구한 모습이냐?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술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구중서선생께서 자주 가신다는 관훈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지러웠다.

술 깨려고 인사동 주변을 돌아다니는 습관이 다시 도졌다.

길에서 까딱이를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술 취해 빌빌거리는게 불쌍한지 손도 벌리지 않았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목판대학 전시 때문에 그냥 갈 수도 없었다

다른 분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도 않고, 강민선생 따라 기어 오르듯 전시장에 올라갔다.

김진하 관장과 정복수씨가 있었고 뒤 늦게는 김준권씨도 왔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이 너무 좋았다.

초빙작가인 김진열, 정복수, 김진하, 문승영씨 작품은 물론, 학생들 작품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이현숙씨 판화에 눈이 꽂혔다.



   

    

 

전시가 124일까지라 다음에 볼 작정으로 내려와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지러워, 강민선생께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가까운 유목민 들어가 전활철씨께 택시 하나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렵사리 집에 왔으면, 그냥 자빠져 자지 또 컴퓨터는 왜 켰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보고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음주운전보다 더 무서운 음주 포스팅을 기어이 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꼴을 보았다. 갑자기 집채가 쓰러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불안해 기둥 사이로 돌을 집어넣기도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까지 지붕에 올라가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소가 기와장을 튕기며 지붕 위를 뛰어 다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더니 날 뛰던 소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즉사한 것이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별 이상한 꿈을 다 꾸었다며 일어났더니,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마우스를 당겨 보니, 음주 포스팅한 글에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라 급히 내리기는 했지만,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았다.

속은 쓰린데다 망신살까지 뻗쳤으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 왜 이리 낮술에 맥을 못 추는지 모르겠다.

낮술은 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술 들어간 뱃속이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이 뜻 하는 건 뭘까?

집안에 우환이 생길 징조는 아닌지, 해몽가라도 한번 찾아 볼일이다.


다시는 낮술과 음주 포스팅을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그 버릇 개줄까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프로젝트 3탄, 청담동 갤러리 세인에서 오는 26일까지
2018년 10월 21일 (일) 18:40:51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그림이라는 것은 살아서 움직여야 하고. 춤도 추고, 고함도 지르고, 말도 하고, 사랑도 하고, 증오도 하고, 술도 마시고, 미워도 하고, 사람이 살아가듯 살아있어야 그림이라는 정복수의 ‘몸의 극장’이 갤러리 세인 기획전에 초대되어 지난 12일 개최되었다.

갤러리 세인에서 기획한 <FACE to WORKS>프로젝트는 작가와 관람객의 쌍방향의 소통을 중시하는 프로젝트로 전시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인체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껍데기를 중시하는 보통 현대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직시하고 내면의 인간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조우하길 바라며 기획됐다. 박종호, 성병희작가에 이어 3탄으로 기획된 정복수의 ‘몸의 극장’전은 인간의 외면에 초점을 맞춘 근대의 인물화가 아닌 인간의 ‘몸’을 통해 본질과 내면을 표현한 작품이 선보였다.



▲ '몸의 극장'의 정복수화가 Ⓒ정영신


그림은 잘 포장된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길을 맨몸으로 다시 만드는 것이 그림이라는 정복수화가, 예술과 삶이 하나이듯 그의 이번전시는 지난 40년간 인체에 몰두해온 작가의 미발표작과 골판지에 작업한 신작판화와 아울러 그의 예술세계의 중심점이 되는 근원적이고 실존적인 인간의 ‘몸’이 주제다. 말하는 몸으로 세상을 보는 그의 몸은 세계를 해석하는 통로이자 화두로서 인체인 물질과 인간의 정신을 모두 표현했다.



▲ 마음의일기판넬에유채/110.5x121cm 2003 (이미지제공 :갤러리세인)


그의 작품 외로운 십자가는 도적성이 고갈된 현대사회를 향해 던지는 화두처럼 보인다. 몸을 밖으로 끄집어내 그림이 더 이상 허구에 찬 가상이 아니라, 마치 우리 신체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내동댕이칠 수도 있는 사물덩어리로 바꿔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설게 만들어 놓았다. 의식화되고 있는 현대의 서구적 문명에 반발하듯 가장 원초적인 몸으로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조차 증발해버린 동물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그의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가는 과정을 발견하게 한다. 가장 원초적인 몸으로 대항하고, 원초적인 몸으로 세상을 훑어보며 발가벗은 몸뚱이를 내맡기고, 인간본연의 순결하고 순정한 삶의 세계를 꿈꾸기 위한 우리현실에 대한 절망의 몸부림을 신체로 표현했다. 또한 껍데기에 불과한 아름다움은 물질적, 정신적 본질을 날카롭게 해부해 욕망 속에 허덕이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여준다.




▲ 외로운십자가_판화_72.7x91cm_2018 (이미지제공:갤러리세인)


바닥화는 미술사에서도 유래가 없는 정복수만의 고유한 회화방식으로 삶의 처절한 분노와 아픔이 담긴 현실세계를 그리기 때문에 살아있는 인간의 욕망이 생생하다. 서양미술의 아류가 되느니 작가가 그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자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70년대 후반부터 줄곧 사람 몸만을 그려왔다고 한다.

그는 “설명하기 힘들고,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심리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분명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은 인간의 몸이다.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진정한 인간의 초상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 얼굴_하드보드지에 색연필,연필_22x21.2cm_2000 (이미지제공:갤러리세인)


그는 쓴소리도 한마디 언급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감성이 있는데 아직도 서양미술을 흉내만 낸다.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자기세계관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표현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작업을 통해 고민해야 한다. 그림은 내게 생명이고 수행이다. 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목수나 수행하는 중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몸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몸이 곧 자연이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김성호는 ‘아포리즘으로서의 몸의 회화’에서 “정복수의 회화 속 몸은 정신과 나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몸은 정신이자, 마음이다. 이성, 정신, 영혼, 몸을 모두 ‘한 덩어리로서 안은 몸’이자 주체와 타자가 상호작용하는 몸이다. 그가 그리는 몸은 이성, 정신, 영혼뿐 아니라 욕망을 가득 안은 몸이다. 욕망은 욕구와 요구처럼 결코 충족될 수 없기에, 욕망의 대상은 계속 연기되고 욕망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고 평했다.



▲ 하드보드지에 색연필, 연필-20.2 x 24 2003 (이미지제공:갤러리세인)


화가 정복수가 지향하는 몸 자연주의는 우리 몸이 지닌 성스러움이다. 또한 우리정신이 자연에서 자란다고 믿는 그만의 몸에 대한 종교학이다. 그는 인간의 껍데기는 그리고 싶지 않다고 향변 한다. 치장하지 않을 것이며 의식화되고 단위화 되는 서구 문명에 반발함으로써 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세상을 관찰한다고 했다.

그림은 더러운 삶의 현실에 대한 구토와 절망의 조형적 몸부림으로 인간 내면에 내재된 폭력적 진실만을 드러낼 뿐이란다. 그림은 생존을 위한 번뇌와 육체의 허망함에 대한 기록으로 고독한 인간의 심리지도라는 그는, 몸이 밥이고, 사랑이고, 종교이고, 전쟁터고, 희망이자 세상이고 우주라고 쓰면서 몸에 대한 숭고성을 내비췄다.




▲ 인생을찾는사람2 (이미지제공:갤러리세인)


갤러리세인 기획전 ‘FACE to WORKS 프로젝트 제 3탄 정복수의 몸의 극장’은 작가와 미술애호가들이

직접 작품을 두고 소통할 수 있는 신개념의 릴레이전시로 11월에 4탄 유현경, 12월에 5탄 이유미작가로 끝을 맺는다.


이 전시는 청담동 세인갤러리(청담역 10번출구)에서 오는 26일까지 이어진다








초지일관 인간의 몸에 승부 거는 화가 정복수씨의 ‘몸의 극장’초대전이 열린다.
청담동 ‘갤러리세인’의 인체 주제 릴레이 기획전 ‘Face to Works’의 세 번째 주자다.
40년간 인체에 몰두해온 정복수씨의 몸 작업은 오늘의 현실에 뜻하는 바가 크다.
난 정복수씨의 작업을 몸으로 보기보다 사람으로 본다.






몸은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중심은 정신이 아니던가?
인간의 정신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표정인데,
정복수의 작품에 드러난 표정에서 인간의 양면성이나 교활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을 보며 인간성을 잃어가는 절망적인 현실에 통분을 느낀다. 




 


몇 년 전 외딴 곳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 있는데,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마치 정형외과 병원처럼, 작업실 사방에 해체된 인체가 걸려 괴기스러움이 음습해 왔다.
팔 다리가 잘려나간 형체의 표정이 하나같이 고통스럽기보다 가증스러웠다.
마치 사악해 지는 인간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았다.






이번 개인전은 ‘몸의 극장’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발표하지 않았던 구작들과 최근에 그린 신작들을 내 놓았다.





파충류 피부처럼 보이거나, 벌레들이 구물거리는 것 같은 괴기한 몸도 있었다.
몸을 구부리거나, 하나같이 불편한 동작이었다.
다양한 표정을 가진 불구의 몸들은 각기 다른 말을 걸고 있었는데,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는 듯 했다.






전시장에는 초대작가인 정복수씨 내외와 정영숙 관장을 비롯하여
릴레이전의 선두자자 박종호, 성병희씨, 미술평론가 김성호씨,
화가 나종희, 김 구, 김재홍, 이경민, 이흥덕, 정종욱, 최경희,
함명수, 김종필, 홍선이, 홍성미씨 등 많은 분들이 모여 있었다.
전시장에 차려놓은 술상에서 목을 축이고 앉았으니,
화가 손기환씨와 사진가 정영신씨도 나타났다.






미술평론가 김성호씨가 정복수씨의 ‘몸의 극장’을 말했다.
“정복수의 회화 속 몸은 정신과 나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몸은 정신이자, 마음이다 이성, 정신, 영혼, 몸을 모두 ‘한 덩어리로서 안은 몸’이자
주체와 타자가 상호작용하는 몸이다. 추악한 몰골을 하고 있는 인간의 몸이란 긍정을
발현하는 장(場)으로 회화 속 몸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임을 표방한다.
결론적으로 정복수의 그로테스크적인 회화는 삶에 대한 긍정으로 충만하다”고 말했다.






긍정으로 보던 부정으로 보던 간에 인간에 대한 대수술은 이루어져야 한다.
뒤 늦게 등장한 미술평론가 윤진섭, 이태호, 김진하씨의 작품 평도 듣고 싶었으나, 욕심일 뿐이다.






뒤풀이 집으로 옮겨서야 입맛에 맞는 소주를 마실 수 있었다.
술자리 화두로 한 사람의 인격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머릿속은 온통 인간성 개조에 대한 고민이었다.
외과적 수술이 아니라 돈에 병들어가는 정신적 수술이 필요하다.
성질 같아서는 망치로 머리통을 깨부수어서라도 되돌리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잖은가?
인간의 정신을 깨우칠 수 있는 전자기기로라도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정복수씨 작업노트 중 마무리 글귀 몇 줄을 곱씹었다.


 “인간의 껍데기는 그리고 싶지 않다.
나의 그림은 더러운 삶의 현실에 대한 구토와 절망의 조형적 몸부림이다.
내가 그린 몸은 밥이고, 사랑이고, 종교고, 전쟁터고, 희망이고, 세상이고, 우주다.






이 전시는 10월 26일까지 열린다. 매일 10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로 공휴일은 휴관이다.
‘갤러리세인’은 청담역10번 출구에서 가깝다. (문의전화 : 02-3474-7290)



사진, 글 / 조문호







































































올 추석은 유달리 추석선물로 고민을 많이 했다.

동자동 쪽방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추석선물을 지켜보며,
이제는 쪽방촌 선물은 셀프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올해도 각종 기업이나 단체에서 보내 온 선물을 예년처럼 줄 세워 나누어주었는데,
하나같이 주민들을 거지 구호물품 나누어 주듯 생색냈다.
대개 양념이나 라면, 부식 등 먹거리와 관련된 선물로 중복된 것이 많은데다,
네 차례나 줄 세워, 줄때마다 동네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구정이나 추석마다 온정이란 이름표를 달고 행해지는 관행은
불편과 낭비도 따르지만, 주민들을 쪽팔리게 만든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생색내기로 거지 동냥주는 기분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하청 준 ‘쪽방상담소’의 업무는 이제 동사무소로 통합시키고,
쪽방 촌을 빈민구호의 홍보장소로 활용하는 짓을 이제 그만하라.
한마디로 쪽방 촌을 정치인들 언론프레이 하는 무대처럼 여긴다.
동자동을 빈민구호지역처럼 만들어 놓았으며, 주민들을 타자화시켜 자립심을 잃게한다.

주는대로 얻어 먹고 시키는대로 살라며 서서히 길들여 가는 것이다.






이제부터 기업이나 단체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선물은 전국 동사무소로 보내라. 
상품으로 보내지 말고 현금으로 전달하여 동 사무소에서 통합하여 빈민들에게 배분하라. 
빈민들에게 일정한 상품권을 나누어 주어, 필요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라.




 


상품권도 동사무소 직원이 직접 전해 주던지,
아니면 본인이 동사무소에서 직접 찾아가게 하라.
상품권을 줄 때, 어디에서 보내 온 선물이라는 내용도 알려주고...






이번에도 줄서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 받은 선물들을 살펴보니,
중복된 것과 필요 없는 것이 많은데다, 비좁은 쪽방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선에 가져가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 줄 작정으로, 그냥 묶어두고 나왔다.





셋째 수요일은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라 지하철을 탔는데,
대개의 직장인들이 추석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나 역시 오래 전에는 명절마다 선물을 받거나, 선물 전해주는 일에 골머리를 앓았다.






사실 명절마다 선물을 받는 것이나 주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풍습이라 나름으로 주고 받아 왔는데,
동자동에 들어 온 후로는 선물은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주는 쪽방상담소 선물만 받아 왔다.






그런데, 뜻밖에 울산에 있는 오세필씨가 황금배 한 박스를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그 배를 나누어 먹다보니, 나도 누군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돈도 돈이지만, 그 한사람을 누구로 택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인사동 ‘유목민’에 갔더니,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정복수, 전강호, 이종순,
최종선, 이인섭, 유진오, 이도윤씨 등 반가운 분들을 여럿 만났다.






셋째 수요일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술 한 잔 나누기로 한 적이
일 년 가까이 되었으나, 특정한 장소를 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와도 만나지 못하는 분이 더 많은데다, 잘 나오지도 않는다.






다리가 불편한데도 송추에서 나와 준 전강호씨가 그날따라 고마웠는데, 반가운 제안을 해 왔다.
가까운 분들끼리 자기가 사는 송추에서 가을소풍을 한 번 갖자는 것이다.
조촐한 술상을 차릴 테니, 시월 하순경의 주말을 택하자고 했다.
날짜를 잡아 연락한다고 일어나며, 술값으로 신사임당 한 장을 내놓았다.






그 돈을 보니,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로 했던, 진즉의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세진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감동스러워했던 일을 떠 올렸다.
오래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묘지를 걱정한 적이 있었는데,
이웃의 최연규씨가 묘지로 쓸 명당이 있다며, 자기 땅을 그냥 사용하라고 한 것이다.






그 오래전의 일이 떠올라 최연규씨 에게 선물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어렵사리 선물 살 돈과 함께 보낼 곳도 정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크고 작고가 아니라, 마음이 담긴 선물은 참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 외에 도움 준 많은 분들께는 저의 마음만 보냅니다.
부디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9일 오후 무렵, 인사동 ‘나무화랑‘의 박근혜를 끌어 내리려는 ‘병신무란 하야제“ 전에 들렸다.

요즘 하는 일 없이 바빠, 출품작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지만, 개막식에 잠시 들린 것이다.

이미 전시장 바닥은 풍성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야제’ 전시를 기획한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화가 이인철, 박불똥, 박은태, 김사빈,

사진가 박영환, 시인 정동용, 강고운, 성효숙씨 등 여러명이 모여 박근혜를 술안주로 씹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우두머리급인 신학철선생 작품도 걸려 있었다,

몸이 편치 않은데도 빠지지 않고 출품해 주어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입구에 걸린 장경호씨 작품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허수아비 박근혜 얼굴에다 무술처럼 침을 꽂은 작품인데,

저주의 힘이 섬뜩했다. 찢어 진 종량제쓰레기 봉투 틈으로 박근혜가 보이는 김진하씨 작품도 흥미로웠다.

국민들이 얼마나 원하는지, 박근혜 하야를 발표한 호외 신문까지 등장했다.

이인철, 박불똥. 홍성담, 박 건, 윤 엽, 이 하, 장 백, 김이하, 정평한, 강기욱, 이종구, 정정엽, 김기호, 박영환,

권 홍, 류우종, 김종찬, 이영학, 김수연, 김 술, 이진우, 이재정, 성효숙, 박은태, 정동용, 김사빈, 박세라, 신미란,

정영신, 류성환, 이동슈씨 등 우리나라 민중미술작가들과 사진가, 시인 등 각 계의 예술가 40여명의 작가들이

여한 전시에는 다양한 풍자화가 선보였다.


그런데도 얼굴에 철판 깐 박근혜는 도무지 물러 날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의 저항이 하늘을 찌르지만,

끝까지 버텨보려는 심보다. 아예 검찰조사도 받지 않겠다는 뻔뻔스러운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기야! 혼자서 꼼짝도 못하는 허수아비가 이 엄동설한에 교도소 갈 생각하니, 아찔할 것이다.

나라 망친 죄가 만 천하에 드러나 전 국민이 하야을 외치고 있으나, 반성은커녕, 빠져 나갈 구멍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광화문 텐트촌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추워 잠을 못 이루는데도, 그는 “잠이 보약이다”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런 개같은 또라이가 대통령이라는 게, 정말 미칠 것만 같다.

우리가 더 이상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후손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어야 한다.

정치판 곳곳에 기회를 노리는 이와 비슷한 모리배들이 득실대고 있다.

다시는 이런 정치풍토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내일은 촛불보다 햇불 들고 거리로 나서자.

이 하야전은 박근혜가 하야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지만, '나무화랑'에서는 29일까지다.

인사동거리나 광화문광장으로 나갈 작정이라, 참여 작가들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유 무명을 가리지 않는 하야전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내용이면 되고, 참가비는 2만원이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데, 다 같이 동참하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3일, 뒤늦게 출품작을 급조하여 전시장에 들렸더니,

장경호, 정복수, 박홍순, 김사빈씨 등 여러명이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28일 조준영시인과의 약속으로 인사동에 나갔다.
강민 선생을 모시는 오찬 모임을 마련한 것이다.
정오 무렵, ‘포도나무집’에는 강민시인을 비롯하여
이행자, 조준영, 김상현씨가 나와 있었다.

뒤늦게 장경호씨도 나왔으나, 주문한 음식들이 형편없었다.
주인이 없으니, 제대로 된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인사동에 갈 만한 음식점이 별로 없다.
몇 군데 있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는 것이다.






대충 허기를 메우고 ‘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민선생의 순례 코스이기도 하지만, 그 곳은 땅콩이 무제한 제공되는데다, 한적해서 좋다.

좀 있으니, 신경림 선생도 오셨으나, 자리가 편하지 않았던지 슬그머니 나가셨다.
강민 선생도 몸이 편치 않아, 먼저 가겠다고 일어나셨다.







그 때부터 김상현씨의 노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신곡이 많았으나, 그의 음색에 잘 맞는 곡이었다.









그 무렵, '경기도미술관장' 지낸 최효준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모처럼의 인사동 나들이라 근황이 궁금했는데,
어디 갔다 오는지, 큰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좋은 술이 있다며 배낭에서 술 한 병을 꺼내 주었는데, 감로주였다.

알콜 도수가 40도나 되어 그 자리에서 비우기는 좀 그랬다.
맥주로 이런 저런 소식들을 나누었으나,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옮겼더니, 모두들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조준영씨는 신학철선생 계신 서울대병원으로 떠나고,
장경호씨는 전시 중인 ‘인디프레스’로 떠나며, 나중에 ‘유목민’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마침, 다음 달 12일까지 연장 전시된 김억의 목판화전이 생각났다.
‘나무화랑’으로 올라가니, 작가는 보이지 않고, 김진하관장과 정복수화백이 있었다.
좋은 작품에다, 반가운 분을 만났으니, 어찌 술병이 고개를 쳐들지 않겠는가?
감노주를 꺼내 마셨는데, 전주가 있어 그런지 금방 올랐다.
전시장에서 내려왔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 가 없었다.













저녁 약속으로 다시 나와야 하지만, 집으로 들어가야했다.
몸도 피곤하지만, 아침일찍 일터에 나가던 아내가 부탁한 게 있어서다.
집에 들어와 숨도 고르기도 전에, 빨리 나오라는 전화가 이어졌다.






‘유목민’으로 나갔더니, 일터에서 곧장 온 아내도 와 있었고,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편집국장과 임동현기자도 와 있었다.

그리고 마산에서 올라 온 변형주씨와 조준영, 장경호, 공윤희씨 등 여러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은영씨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이라며 신문을 보여 주었다.

술 취한 분들이 신문을 무시하는 말을 한 것 같으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돈 안 되는 문화예술계 소식만 다루는 유일한 신문이 아니던가?

잘 못된 부분이 있으면 정확히 지적하여 시정하도록 해야지,

신문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만든 신문에 시비를 건단 말인가?

난, 어렵게 운영되는 신문을 아끼는 마음에서 원고료도 없이 글을 보내주고 있다.











옆 자리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장성한 아들을 데려 왔는데, 음악을 공부한다더라.
기타를 연주하였으나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위키리의 ‘눈물을 감추고’란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얼마 전, 부친 상을 당한 이은영씨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제일 좋아하던 노래라며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술이 취해, 결국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눈물을 감추고, 눈물을 감추우고, 이슬비 맞으며 나 홀로 걷는 밤길...”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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