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10월 15일 (월) 16:59:07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ss@sctoday.co.kr
▲미아리2011_7
이정환씨 ‘미아리 이야기’사진전이 충무로 '비움 갤러리'에서 19일 까지 열린다.
‘미아리 이야기’ 전시를 보며 오래된 추억들이 떠올랐다.
유행가에 나오는 눈물의 미아리 고개가 아니라, 슬프기도, 우습기도 한 “희비쌍곡선”이다.
▲미아리2015_7
고등학생 시절 영화에 미쳐, 미아리에 있었던 ‘서라벌예대’에 들어가려 안달한 적 있었다.
집에서는 “줄만 서면 들어가는 딴따라대학에 들어가 딴따라 될끼가?”라며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 도망쳐 와 할부 책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어눌한 주변머리에 책 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팔았다 하면 망하는 회사에 풀어, 돌려받느라 혼 줄 난적도 여러 차례다.
▲미아리2011-1 |
친구 자취방에서 잠은 끼어 잤지만, 굶기를 밥 먹듯이 하여 배가 얼마나 고팠는지 모른다.
그래도 틈만 나면 미아리 학교 주변을 기웃거렸다,
고갯길의 중국집에서 공갈빵 하나 사서 간신히 허기를 메웠는데,
그 공갈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공갈빵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사서 고생 하다 결국 집으로 잡혀 갔지만, 몇 달 동안 미아리 주변을 맴돌았던 추억이 새록새록 했다.
▲미아리2013_4 |
다른 추억 하나는 20여년 후, 사진에 미쳐 두 번째 야반도주했던 때 이야기다.
인사동 친구들 여러 명이 어울려 마시다, 술김에 단체로 미아리 택사스에 몰려 간 것이다.
박모 시인 덕에 누린 호사였는데, 정말 죽이더라. 그때 난생 처음 계곡 주를 맛 보았다.
열 명이 넘는 남녀가 발가벗고 술 마신다고 한 번 생각해보라.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난다.
▲미아리2013-1 |
이정환씨의 ‘미아리 이야기’가 그만 필자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미아리 이야기’사진전이 열리는 전시장은 마치 미아리 택사스 촌처럼 어두컴컴했다.
푸르스름한 조명이 좀 야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전시된 사진들은 야하지 않았다.
▲미아리2014-1 |
이정환씨는 미아리에서 태어나 55년의 세월을 미아리에서 살아 누구보다 미아리를 잘 알고, 추억과 애정 또한 남다르다.
그는 사진가이기 전에 한 때 영화 전문가였다.
30대부터 컴퓨터 그래픽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각종 CF의 CG작업을 했다.
‘신 씨네’ 와의 인연으로 국내 최초의 CG영화 ‘구미호’의 CG디렉터로 활약하기도 했다.
▲미아리2018_34
그가 늦게 사진을 시작해 옛날 기록은 남기지 못했지만, 일찍부터 사진을 했다면,
완전한 미아리의 역사를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사진마다 미아리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옥상 난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개를 찍어 추억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점집 앞에 제수로 엎어 놓은 돼지 한마리가 비정한 오늘의 현실을 대변했다.
아파트가 미아리를 잠식해가는 사진에서는 작가의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비닐 막을 통해 보이는 꽂집 풍경과 택사스촌 입구를 지키고 앉은 여인, 음습한 유흥가를 지나는 발길들,
가로등이 조는 밤늦은 뒷골목 등 하나같이, 오랜 기억을 불러들이는 쓸쓸한 풍경이었다.
▲미아리2017_32 |
그는 골목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그동안 '국제 골목사진전'과 '골목은 살아있다'에서 보여주었듯이 '골목'에 대한 그의 철학도 남다르다.
그의 지난 사진들은 보지 못했지만, ‘북촌’, ‘사라지는 교남동’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장소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지난 해 보여 준, '우연한 의도'전과 '미아리 이야기' 모두 장소에 대한 기억의 연장선상이다.
사진 속 공간 공간에는 사람 살아가는 끈적한 인간애가 배어있고, 변해 가는 고향에 대한 연민의 정이 묻어 있었지만,
작가의 시선은 냉소적이었다. 사랑과 미움의 갈등 같은 것이 묻어났다.
▲미아리2018_02 |
어릴 때부터 살아 온 미아리 전경의 사진에서는 그나마 아련한 향수가 밀려왔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긴 하지만, 아직은 골목골목의 정취가 남아있었다.
언젠가는 아파트 무리에 밀려나겠지만, 마지막 파수꾼처럼 묵묵히 지키며 기록하는 것이다.
예술 한다며 겉멋 부리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바라 본 것이다.
사진에서 만나는 장면은 지나치다 우연히 발견했지만, 늘 찾는 대상이었다.
그 미아리의 아픔을...
▲봄소풍의 추억 |
아래는 이정환씨 ‘미아리 이야기’ 전시 서문 일부다.
“추석 즈음, 모 교수의 칼럼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걸 따라 하자면 나에게 "미아리는 무엇인가?"
나에게 미아리는 태어난 장소, 곧 자궁이요, 고향이다.
나에게 미아리는 놀이터요, 나에게 미아리는 삶의 터전이요,
나에게 미아리는 사회성을 키워준 공간이요,
그러고 보니 미아리는 내 삶 그 자체인 거다.
나는 미아리에서 태어나서 55년을 살았다.“
▲전시장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작가 이정환 (사진작가제공)
이 전시는 충무로 ‘비움갤러리’에서 1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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