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미술의 대표적인 이론가이신 김윤수 초대 한국민예총 이사장께서 지난 29일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업씨와 동생 김익수(영남대 명예교수), 김두해(재미음악가)씨가 있다.






지난 1일 오후5시에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모식을 갖고,

그 이틀 날 오전 9시30분 발인하여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되었다.






민족예술인장으로 치러진 장례위원장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맡았고,

집행위원장에 박불똥(민예총이사장), 이종헌, 강일우, 이영욱씨,
장례위원에 백낙청, 백기완, 신학철, 김정헌, 임옥상, 김상철, 윤범모, 채희완, 김민기, 심광현,

강성원, 강요배, 김봉준, 홍성담, 박진화, 고세현씨 등 많은 미술계 인사들로 구성했다.






고인은 경북 영일 출신으로 서울대 미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영남대 교수를 역임했다.
1980년대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회장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이사장,

창작과비평사 대표이사 등을 거쳐 2003부터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냈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오피시에)을 받았으며,

‘민족미술과 리얼리즘’,‘한국현대회화사’,‘한국미술 100년’ 등의 저서와 번역서를 펴냈다.





선생께서는 70년대부터 반 유신운동에 참여했고 80년대에는 진보적인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이론가로서,
특히 당시 국내 제도권 화단을 주도했던 추상주의 미술 사조에 맞서 현실 참여적인 리얼리즘 미술을

국내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으로 정립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선생의 부음을 전해들은 날은 통인가게에서 배일동명창의 판소리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그날 심봉사 통곡 대목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는데, 배일동씨의 절절한 소리가 마음을 울렸기도 하지만,

어쩌면 김윤수선생 생각에 울었는지도 모른다.



 


뒤풀이에서 대취하여 장례식장을 찾았는데, 민예총 식구들이 총 출동해 있었다.

빈소는 미망인 김정업 여사가 지켰고,

민예총박불똥 이사장, 서인형 사무국장, 정영신 조직국장, 박세라 총무팀장이 손님을 맞았다.



    

 

반가운 분들을 만나니 슬픔도 잠깐이었다.

주재환선생을 비롯하여 유홍준 장례위원장, 박종관 문화예술위원장, 박현수, 심정수, 임정희, 장순향,

박흥순, 곽대원, 김영중씨 등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추모식이 있는 그 이틀 날은 공교롭게도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와 겹쳤다.

이흥덕, 조신호, 이민종씨 전시 오프닝과 시간이 같아 어느 한 곳을 포기해야 했으나 양다리 걸친 것이다.

전시된 작품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류연복씨가 서둘러야 한단다.

많은 분들을 남겨두고 정복수, 류연복씨와 먼저 나왔는데, 추모식장에 도착하니 끝나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마산에서 온 고승하씨, 경주에서 온 정비파씨 내외 등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장지에 가는 그 다음날 아침엔 약속이 있어 나설 형편이 못되지만, 떠나는 모습이라도 보려고 장례식장에 갔다.

민미협회원들은 가까운 곳에서 잤는지 다들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신학철선생도 계셨다.

선생께서는 집안에 우환이 있어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안타까웠는데, 정말 세상이 원망스럽더라.







시대의 스승이신 고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겨보자.
“예술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민예총' 페북에 올라 온 정영신씨 사진을 스크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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