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사람들이 모처럼 서울 도심을 벗어나, 송추에서 뭉쳤다.

무슨 미련에 못 떠나는지, 인사동 주변을 기웃거리는 예술가들이다.
매월 셋째 수요일마다 인사동에서 만나 대포 한잔하기로 한 것도,
위안거리를 만들기 위한 방편이나 몇 나오지도 않는다.






지난 셋째 수요일 만남에서 송추로 소풍 한 번 오라는 화가 전강호씨의 초대가 있었다.
개천절인 3일 정오 무렵, 송추에서 만나자는 조준영시인의 연락으로 찾아 나선 것이다.
송추유원지 부근에 있는 전강호씨 자택에서 모처럼 자연과 벗이 어울린 호젓한 시간을 보냈다.






전강호씨는 산을 눈앞에 두고 있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누리고 산다.
가 본지가 10년도 넘어 좀 헤맸는데, 주변이 많이 바뀌었더라.
처음 보는 건물들이 많아 낮 설었지만, 집에 들어가니 산을 정원처럼 끼고 앉은 옛날 그대로였다.






그 날은 날씨마저 받혀주어. 따스한 햇살에 온몸이 노글노글 했다.
전강호, 이종순 내외는 물론 조준영, 박윤호, 김민경, 유진오씨가 먼저 와 있었고,
민영기씨 승용차에는 김수길, 공윤희씨가 도착해 내리고 있었다.






인삿말에 동네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더니, 땅값도 몇 배나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는 집값이 오르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 집에서 살아야 할 사람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지천에 늘린 밤도 줍고, 연못에서 노니는 물고기 모이를 주는 등, 술만 마신 게 아니었다.
뒤늦게 화가 정순겸씨 자매와 사진가 하형우씨도 왔고, 한 때 인사동의 ‘풍류사랑’을 운영했던 최동락씨도 오셨다.






이 반가운 술자리에 노래 한 자락 없어서야 되겠는가?
소리꾼 김민경씨 노래야 여러 차례 들어 잘 알지만, 유진오씨 노래는 처음들었다.
마치 “여자의 일생”을 살아 본 것처럼 처절하게 웃겼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다들 무세중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병문안이라도 가야 했지만, 다들 술 마신 상태라 들리기가 좀 그랬다.
요즘은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으로 간신히 사신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는데,
한 분야 획을 그은 예술가의 여생이 이러하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화가 전강호씨는 인사동과 연을 맺은 지가 어언 30여년이 넘었다.
작가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목발로 어지간히도 인사동 주막을 누비고 다녔다.
그동안 강용대, 김종구, 적음스님, 신원섭씨 등 술로 이승을 떠난 친구도 여러 명이다. 



 


유신시절에는 사마귀 작가로 불릴 만큼, 사마귀 그림에 집착하기도 했다.
곤충의 군림자 같은 사마귀 형상에서, 작가의 시대적 저항을 읽을 수 있다.
그 이후에는 버려진 폐자재를 활용하여 다양한 작업들을 했으나, 돈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그렇지만 돈에 연연하지 않고 힘겹게 주워 모은 폐자재들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번씩 술과 외출을 자제하고 수행하는 모습은 스님을 닮았다.





그는 한쪽 다리가 없지만, 건강한 사람보다 더 부지런하다.
그림은 물론 집 주변의 조경이나 모든 것들이 그의 손길 안 닿은 곳이 없다.
텃밭을 가꾸며 직장에 다니는 아내 뒷바라지까지 다 한다.
부지런한 생활에서 예술을 찾아내는, 삶 자체가 예술이다.






푸짐한 안주 덕인지, 아니면 가을 날씨 때문인지,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를 가져 온 민영기씨 일행이 일어나, 나도 일어나야 했다.
버스타기 번거로워 끼어 탔으나, 많이 아쉬웠다.

술과 안주도 남았지만, 남아 있는 벗들이 더 눈에 밟혀서다.





아무튼, 전강호씨 내외 덕에 가을 소풍 잘 다녀왔다.
손님 맞느라 애쓴 두 내외분께 거듭 고마움을 전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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