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최울가가 서울서 전시를 한다기에, 정 동지를 앞 세워 평창동 ‘가나아트’로 갔다.

 

월요일의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전시장엔 아무도 없었는데,

1, 2, 3관으로 이어지는 넓은 전시장에 회화는 물론 조각과 드로잉까지

60여점이 제 자리를 지키 듯 경쾌한 놀이마당을 펼치고 있었다.

 

제목으로 내건 ‘화이트, 블랙, 레드+’ 시리즈는 물론 최근에 시작했다는 스티커 입체화도 있었다.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주었다.

세삼 그의 천진무구한 즉흥적 자유로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여느 작품처럼 무거워 보이거나 난해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재미와 즐거움이었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꽃이나 어항, 물고기나 새, 그리고 상형문자 같은

기이하고도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나열이 산만하지 않고 절제돼 보이는 까닭이 뭘까?

그건 바로 인간이 언어로 소통하기 전부터 남긴 벽화 이미지, 즉 원초적 미의식의 발로라 여겨진다.

 

왜 최울가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화단에서 한국의 대표작가 중 한사람으로서 주목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5년 전, 최울가 작업실에서...

 

난, 최울가를 40여 년 지켜보았다.

유목민처럼 세계를 떠돌며 작업하는 터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만나면 술도 받아주고 용돈까지 챙겨주는 아우 같은 벗이다.

 

오래전 부산 남포동에 국악을 들려주는 ‘한마당’이란 술집을 차린 적이 있었는데,

우리 집 단골손님으로 드나들며 그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물론 그 때는 가난한 무명화가였다.

 

그 무렵 자주 드나들던 화가 중 지금은 고인이 된 이존수와 박광호도 있었는데,

세 사람 모두 인사동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는 점도 우연치고는 남다르다.

 

다들 나름의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웠지만,

한 사람은 대학로 빨래집게 전시로 유명세를 타 돈은 벌었지만 돈이 사람을 망쳤고,

고집스러운 한 사람은 돈이 없어 고생하다 안타깝게 이승을 떴다.

그러나 최울가는 돈에 집착하지 않아 살아남았는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세 작가의 작품을 모두 소장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정선 집 화재로 모두 태워버렸다.

 

오래 전 박광호도 자신의 그림을 모두 태운 적이 있지만,

최울가도 10여 년 전 뉴욕 그라피티의 자유분방함과 현대예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실험적인 설치미술에 충격 받아 이전에 그려놓은 작품 200점을 미련 없이 불태워버리고 재충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애착가진 그림들은 왜 불과 연관이 있을까?

 

30년 전 최울가가 선물했던 불 탄 작품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 오는 날 개울가에 한 아이가 쪼그려 앉아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는데, 그 아래 개구리 한 마리가 있었다.

비 맞는 개구리를 걱정하는 여린 동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당시 최울가 작품은 대부분 시적인 천진난만함이 깔려 있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작품마저 소실되었으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돈이 없어 생명줄과 마찬가지인 카메라를 전당포에 잡혀도

그림들은 팔지 않았는데, 그마저 나에겐 욕심이었단 말이던가?

 

이제 최울가의 사는 방법과 작품세계를 한 번 들여다보자.

 

‘Black & White’ 시리즈로 뉴욕 화단에서 주목 받은 최울가는 국내는 물론 파리, 베를린, 부다페스트 등 세계무대를 누벼왔다.

‘Black & White’ 시리즈에는 일상적 삶과 관련된 요소들로 채워졌다.

관계성 없는 사물들의 무질서한 공존은 작가가 가진 무의식의 세계였다.

 

특징짓는 검은색과 흰색은 그가 생각하는 우주와 빛의 근원에 가장 가까운 색이다.

이  두 가지 색을 사용해 그는 원시적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다.

 

최울가는 30년 넘게 유목민처럼 세계를 떠돌았다.

뒤늦게 파리국립장식예술학교와 베르사유미술학교를 나와 2000년 뉴욕으로 건너갔다.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서는 아시아권으로 파리에서는 유럽권, 그리고 뉴욕에서는 북미 지역을 넘나들었다.

 

자리가 잡힐 만하면 익숙해 진 삶의 공간을 떠나 다시 낮선 곳으로 떠나갔다

그래서 그의 이름자 앞에는 유목민이란 말이 항상 따라 다닌다.

아마 그의 몸에 새로운 땅을 찾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나보다.

 

유목민처럼 떠돈 것은 그 낮 선 이질적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여 다시 동질적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 현실적 공간이 작가의 몸을 통해서 회화적 공간으로 다시 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 데도,

낮 선 세계, 즉 새로운 장소에 거주하는 경험 자체가 작품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그리고 삶터의 이동이라는 유목성이 최울가 예술의 한 축이라고 한다면,

중복되는 이미지와 중첩적인 텍스트 사이의 유동성이 최울가 예술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인생이나 예술이나 본질적으로는 움직임 자체가 아니던가?

그 유동성이 특정한 감각적 방식으로 고정되어 하나의 구체적 형태를 가진 이미지로 재현된 것이다.

 

그는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원시적이며 초월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왔다.

원시성을 띤 그의 그림들은 너무 순수해 꿈을 꾸 듯 동화 속 한 장면을 대하는 것 같다.

 

다양한 도형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은 드로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드로잉 자체가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원초적인 표현방법이 아니던가. 작가의 고향이었던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연상되기도 했다.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고, 동물이나 나무 같은 사물들이 무질서하게 그려 진 그림들은 원시적인 인간 본연의 삶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무시하는 그의 아나키적 화법도 한 몫 했다.

마치 아이들의 낙서와도 같은 그의 작업은 눈에 익숙한 잘 그린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대상의 재현이 목표가 아니라 원초적 미의식에 바탕 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말하려는 것 자체가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란 것도 깨달았다고 한다.

작가의 끝없는 자유로움이 새로운 변화를 끌어 낸 것이다.

 

최근 그는 기존의 캔버스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매체와 형태의 작업을 시도한다.

이미지를 입체화한 세라믹조각과 스티커를 활용한 입체그림이 그중 하나다.

그의 신작 ‘Beetle Series’는 입체평면 스티커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이전에도 종종 스티커를 배경에 부착해 화면에 변화를 주곤 했으나,

이번 연작들은 아이들이 스티커를 벽면에 붙이고 노는 것을 연상시킨다.

시계, 꽃병, 사람 머리 같은 시리즈를 구성하는 이미지를 에폭시 스티커로 채워놓았다.

재료든, 형식이든 테두리 안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림에 표기된 상형문자 같은 기호들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의식에 다름 아니다.

기호로 채워진 그 촘촘한 세계야말로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는 공간일 것이며,

원시성의 훼손에 대한 물질문명을 비판하는 그만의 놀이 법인 셈이다.

 

그의 그림들은 원초적 자유와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성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본연으로 돌아가라고 노래한다.

도식화된 삶을 살아가는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깨우침을 준다.

 

최울가 최근모습, 인터넷에서 스크랩

 

최울가의 ‘화이트, 블랙, 레드+’전은 오는 30일까지라 며칠 남지 않았다.

(평창동 가나아트 / 02-720-1020)

 

사진, 글 / 조문호

 

전시를 보고나서 담배 생각이 나 옥상으로 올라가다 깜짝 놀랐다.

누구 작품인지 모르지만, 소녀가 거꾸로 서서 쩍 벌린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미투 강박관념에 나도 모르게 줄행랑쳤다

아이구!  숨차...

 

 

 

며칠 전 조준영시인으로 부터 인사동서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는 정기적인 인사동 모임이 있었으나, 코로나 광풍에 밀려 사라진터라 반가운 기별이 아닐 수 없었다.

 

 

 

조준영씨를 만난 지가 일 년을 훌쩍 넘겼으나 인원수 제한에 걸려  다른 분은 연락도 못했다.

아마 정선 집에 불난 소문을 듣고 무리하게 자리 만든 것 같았다.

 

 

 

정영신씨와 함께 약속보다 일찍 나가 마루아트에서 열리는 노무현 추모전 사람 사는 세상’부터 보러갔다.

 

 

 

전시장에서 박재동 화백과 유준 화백을 만나기도 했다.

 

 

 

99명의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들이 넓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세삼 울컥하게 만든 작품은 노무현대통령 전속 사진가로 일한 장철영씨 사진이었다소탈한 바보 대통령의 진솔한 모습에 어찌 옛날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나온 인사동 거리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문 닫았던 몇몇 가게들이 옷 가게나 악세서리 가게로 다시 문을 열었는데, 전통 노리개를 팔던 아원공방자리는 화려한 색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사동 길가의 신축건물 일층에 더 스타갤러리가 문을 열었더라.

일 년만 숨어 지내다 오면 인사동의 모든 게 다 바뀔 것 같았다.

 

 

 

약속시간이 되어 툇마루로 갔더니, 김 발렌티노가 반갑게 맞았다.

요즘 청소부로 돈 번다며 밥 한 그릇 사겠다고 우겼으나 약속이 있어 사양했다.

 

 

 

'툇마루에서 조준영씨를 만나 된장 비빔밥에 막걸리 한 잔 했다.

요즘 술만 마시면 힘들어 아껴 마실 수 밖에 없었는데, 입은 땡기고 머리는 말리니 어느 장단에 춤 출지 모르겠더라.

 

 

 

다들 지난한 나날들 하소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조준영씨가 화재 후원금을 건네주었다.

함께 공유할 예술창고를 만들려면, 돈보다 많은 사람들의 동참이 필요해 고맙게 받아 들였다.

 

 

 

대기손님들이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어 오래 버틸 재간이 없었다.

 

 

 

툇마루에서 나와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유목민도 손님이 많았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소식 끊겨 죽은 줄만 알았던 장춘씨가 나타난 것이다.

 

 

 

정말, 안보면 보고 싶고 보면 징그러운 여인이다.

'죽어도 고.”라는 작심으로 마시기 시작했는데, 소주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녀의 언어 법은 귀신들이 나누는 말투라 다소 난해하다.

 

 

 

우린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으로 흘리니 문제될 게 없으나, 옆 좌석에 던지는 실 없는 소리에 신경 쓰였다

다행스럽게 귀신 말귀를 알아챘는지, 맞장구를 쳐 주어 분위기가 무러익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홀짝 홀짝 마신 술에 취해 버렸다.

그렇지만, 이 얼마만이더냐? 마음대로 이야기하며 기분 좋게 마신 적이...

 

 

 

같은 방향이라 녹번동으로 함께 갔는데, 장춘씨가 떠난 생각이 나지않는 걸 보니, 아마 먼저 뻗은 것 같았.

벌 받아 그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누워 낑낑거렸으나 후회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놀면 날마다 노나?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막걸 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좋더라.

앵헤야~ 엥헤야~ 앵헤야~ 앵헤야~“

 

사진, / 조문호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5일, 정영신씨와 함께 인사동에 전시 보러 갔다.

보아야 할 전시가 한 두 곳이 아닌지라, 고스톱으로 치면 일타삼피 격이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미얀마 민주시민을 위한 미술행동전이 열리는 ‘나무아트’였다.

서둘러 나온 것도 미술행동 서울 전 끝나는 날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생명평화 미술행동’이 추진한 미술행동전은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지지하는

홍성담, 박건, 주홍, 박재동, 김진하씨 등 42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목숨 걸고 싸우는 미얀마 국민들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41년 전의 광주를 떠 올리게 하는 참상에 온몸이 떨리지만,

타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가슴 조릴 수밖에 없다.

그들을 지지하는 연대가 미얀마군부독재정권을 종식시키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4월15일부터 29일까지는 ‘안성맞춤아트홀’에서 전시된다.

 

두 번째는 김수길씨의 ‘보이지 않는 도시’전이 열리는 마루 '아지트갤러리'로 갔다.

전시 작가인 김수길씨를 비롯하여 유진오, 박윤호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시간 지우기란 철학적 제목이 사뭇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낙엽처럼 쌓인 기억의 파편들은 작가의 추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운다는 것은 세월 지우기에 앞서 추억을 지우는 일이다.

 

작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시간지우기 작업을 보여 주었는데,

지워지는 시간의 파편 속에 세월의 아쉬움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의 카메라는 표현의 도구일 뿐, 사진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깝다.

이러한 심상 풍경은 여운이 깊지만,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숨은 기억을 찾아내는 퍼즐놀이처럼, 보는 이의 독해를 요구한다.

 

작가는 “잊기 위해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지운다.”고 말한다.

김수길씨의 도시풍경 ‘보이지 않는 도시’는 16일까지 열린다.

 

다음에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강찬모화백 초대전을 보러갔다.

전시장 입구에 박재동화백 작업실이 인사동 복덕방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집중하는 작업에 방해 되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눈인사만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기어이 일어서게 만들고 말았다.

 

박화백이 인사동에 둥지를 틀고부터 항상 마음 든든함을 느껴왔다.

삭막해져가는 인사동에 한 가닥 단비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강찬모 초대전이 열리는 '인사아트프라자'1층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강찬모씨는 손님을 만나고 있어 작품부터 살펴보았다.

 

오래전 히말라야에서 받았던 영감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신비로운 빛을 쏟아냈다.

자연의 경이에 앞서 한 작가가 올리는 기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마법처럼 펼쳐진 산세는 자연의 실체와 작가의 시적 언어가 어우러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금분으로 드러낸 석양의 색조 또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좋은 작품에 어찌 돈이 따르지 않겠는가?

대작은 억대를 호가하는 잘 나가는 작가다.

 

세치 혀로는 도저히 그의 작품을 말할 수 없다.

작업노트에 적힌 마지막 글 외에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눈물겹다. 따뜻하다. 행복하다. 신비롭다.”

 

전시는 20일까지 열린다.

 

꼭 보아야 할 전시가 남았으나, 술벗의 기다림이 마음에 걸렸다.

‘유목민'에는 ‘뮤아트’ 김상현씨 노래 소리가 골목을 촉촉이 적셨다.

 

뒤이어 ‘아지트’에 있던 김수길, 유진오, 박윤호씨 까지 합류했으나,

다음 약속이 있어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이튿날, 못 본 전시를 보기위해 다시 인사동에 나왔다.

‘갤러리 밈'에서 열리는 한국 최초의 여성 클라이밍 산악사진가

강레아의 ’소나무 바위에 깃들다‘를 보기 위해서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사진이 아니라 마치 산수화 같았다.

그가 보는 시각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위치에서 보기에 선경에 다름 아니다.

자일에 메 달려 바라보는 아슬아슬한 쾌감은 작가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보여주는 주제는 암벽에 뿌리 내린 소나무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소나무 자태에 반해버렸다.

 

고고함을 뽐내는 눈 덮인 소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정경이 아니다.

흐리거나 눈 오는 악천후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사진가의 필사적 의지가 필요하다.

입이나 머리로 사진하는 사람이 많은 세태라, 그의 노력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전시는 5월2일까지 열린다.

 

인사동에 전시 보러 가자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전시들이 아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녹번동 정영신씨가 치과에서 대수술을 받았다.

며칠 동안 식사를 못해, 간병 차 대기하기로 했다.

 

지난 일요일 오전에는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방문했다.

시장 갔다 오는 길에 들렸는데, 두릅을 사왔더라.

김수길씨가 주더라며, 내가 좋아하는 떡도 가져왔다.

정동지로서는 보고도 못 먹는 장떡에 불과하지만, 두릅을 맛있게 데쳐 주었다.

이른 시간부터 두릅을 안주로 ‘대마불사주’ 한 잔 했다.

 

그런데, 너무 슬픈 소식을 전해주었다.

화가 최민화가 낭패를 당했단다.

아무리 좋은 술과 안주지만, 독주가 되어버렸다.

 

활철씨가 떠난 뒤, 벚꽃 구경 시켜주겠다고 정동지를 꼬셨다.

몸이 편치않아 위안하려 했으나, 술이 취해 바로 떠날 수는 없었다.

정동지 역시 비실거려, 두 시간만 자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잠을 너무 많이 자버렸다.

이미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밤 벚꽃도 괜찮단다.

 

여의도 윤중로에는 벚꽃이 봄비에 젖어 한물갔더라.

화려한 꽃잎이 길바닥을 수놓고 있었다.

 

이 나이에 새삼, 한강 야경에 빠져들었다.

인생 말년의 소소한 행복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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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있겠냐마는

요즘 인사동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코로나 이놈이 부채질이 아니라 에어컨을 틀어댄다.

 

여기 저기 공사 가림막 처 놨지만, 금방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간판 없는 동굴 집은 문 열자마자 휴업에 들어갔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들이 안타깝다.

 

동내 풍경 바뀐 것보다 더한 것은 사람냄새가 안 난다,

복면한 사람들이 인사동 누비는 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인사동 사람을 만날 수가 없으니, 인사동이 인사동 아닌 것이다.

 

민병산 선생께서 회갑 생신날 돌아가신 이야기도,

천상병시인 노자 돈 보태드리며 술 마신 일도 이제 전설이 되었다.

 

도처 땡초들 객기 부리던 무협전 기억들도,

'실비대학'에서 '유목민'까지의 추태들마저 그립다.

 

갑자기 영수 군화 발에 날아 간 용대가 보고 싶다.

 

 

사진,글/ 조문호

 

며칠 전 사진가 최인기씨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와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다.

최인기씨는 미투와 관련된 사건으로 불편한 관계라

식사보다 인사동에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모처럼 ‘유목민’에 나갔더니, 다들 먼저 와 있었다.

내가 올린 꼴 페미 까는 글 보고 청탁한 원고를 취소한 터라

어색한 관계를 풀어야 했는데, 바쁜 이규상씨까지 나오게 해 송구스러웠다.

 

그리고 최인기씨는 미워할 수 없는 사이다.

좋아하는 후배이기도 하지만, 사진판에 잘 못된 현실과 싸우는 그만한 전사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올린 내용은 일부 급진적 페미니즘이 여성의 성 평등 운동에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요즘 상대를 매장시키려는 가짜 미투가 기승을 부려

선의의 피해자마저 의혹의 눈길을 받는 세상이 되어바렸다.

특히 정치판에서 많이 악용되는 현실인데,

진보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공략에 많은 국민들이 등 돌리고 있다.

더 이상 착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엇이던 과하면 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최인기씨를 꼴 페미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청탁한 원고를 취소하는 전화를 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동안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할 수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주변 누군가의 문제 제기에 어쩔 수 없이 전화했을 것으로 여긴다.

 

그냥 덮고 넘어 갈수도 있었지만 페미니즘 문제라 

 꼴 페미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싶었다.

아마 내 글을 본 지인이 ‘눈빛출판사’에 연락한 것 같은데,

이규상대표가 화해의 자리를 주선한 것이다.

 

그 날 최인기씨는 죄송하다며, 여러 차례 사과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관한 자신의 의견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민망할 정도의 사과라 더 이상 묻지도 말하기도 싫었다.

내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지만, 노령진수산시장 투쟁 사진집 서문은

최인기씨를 잘 아는 이규상대표가 쓰면 어떠냐고 했더니,

이번 책은 서문 없이 사진집을 내겠다 했다.

 

아무튼, 좋은 일은 아니지만 즐거운 술자리가 되었다.

그날 이규상 대표가 반가운 선물도 주었다.

정영신씨의 ‘어머니의 땅’ 가제본된 사진집 한 권을 내놓아 눈이 번쩍 띄었다.

그동안 ‘길 위의 인문학’ 공모에 정영신씨 원고가 선정된 것은 알았지만

사진집을 만든다는 것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런데, ‘유목민’ 안 쪽 테이블에서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미술평론가 유근오씨와 도예가 변승훈씨가 나를 보더니 옮겨왔다.

변승훈씨는 백기완선생 문상 다녀 왔다는데, 이미 취해 말이 거칠었다.

이규상씨와 유근오씨는 서로 명함을 건네받으며, 원고 청탁도 하더라.

구체적으로 모르나, 문제만 일으키는 내 뒷조사 해달라는 말인지,

나에 대한 글을 청탁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좋은 필자와 좋은 편집자가 만났으니, 좋은 일인 건 틀림없을 게다.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도 한 때 미투문제에 걸려 곤욕을 치룬 적도 있었다.

의혹이 풀려 다시 강단에 서게 되었지만, 자칫하면 생사람 잡는 무기로 악용된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파장 무렵에는 발렌티노 김이 나타났다.

서울특별시 환경미화원 복장으로 나타났는데, 요즘 청소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공채 시험 면접에서 "서울을 자기 머리처럼

빤짝 빤짝 빛나게 하겠다"는 말에 배꼽을 잡은 적도 있었다.

무슨 일을 하던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렵게 사는 최인기씨 주머니를 털어 마음은 편치 않지만,

나올 때 무거웠던 걸음에 비해 갈 때는 날아갈 것 같았다.

알랑방구 낄 정영신씨 책을 옆구리에 끼고, 간 크게도 택시를 불러세웠다.

 

“기사 양반 요! 녹번동 가입시다. 택시비는 그 집 안주인한데 바드이소”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 정오 무렵,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동안 거리두기 핑계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뮤지션 김상현씨와 하양수씨 일행이 찾아 온 것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설거지 하는 중이라 난처했다.

손님 대접할 음식이 없어 가래떡과 대마불사주로 한 해의 건강을 축원했다.

 

그 날 김상현씨로 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청담동에 ‘뮤 아트2’를 열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란다.

후배가 후원하는 업소라 임대료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김상현씨가 병마를 털고 일어난 지가 오래지 않았는데, 연이어 좋은 일이 생기고 있다.

 

김상현씨 일행이 일어난 후, 인사동 ‘유목민’에 전화를 걸었다.

지난 주말 전활철씨로 부터 전화가 왔으나, 일이 있어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즉 연락하지 못한 것은 집이 비좁아 한꺼번에 앉을 수도 없지만,

다섯 사람 이상 모이지 말라는 거리두기 지침에도 맞지 않은가?

 

전활철씨와 한 잔 하는데, 때 마침 조해인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듯이, 자리 만든 김에 조해인씨를 초대했다.

손님이 사 온 떡과 케잌을 안주로 기분 좋게 마셨다.

 

그 날은 일찍 세상 떠난 작은 거인 강용대씨와

땡초스님 최영해씨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떠난 친구 그리워하기 전에 살아 있는 친구라도 자주 만나야 할 텐데, 그게 잘 안된다.

이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연식이라, 올 해는 친구 자주 만나는 해로 정했다.

"우리가 살면 언제까지 사나?"유행가 구절도 갱각난다.

 

코로나가 한 풀 꺾일 오는 5월 무렵, 인사동에서 심봉사 잔치 한 번 열기로 했다.

새해들어 시무주로 마신 대마불사주가 건강과 함께 깨우침을 준 것 같다. 

 

기대하시라! ‘인사동 기 살리기 잔치’를...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지난 23일 오후6시, ‘리얼 포토’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준비모임이

인사동 ‘푸른별 이야기‘에서 있었다.

전시도 전시지만 옛 사우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더구나 대전에 은둔하는 이석필씨를 만날 수 있어서다.

 

그 날은 쪽방 관리인 정씨가 같이 갈 때가 있다며 저녁식사를 하지 말라고 했으나,

모처럼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이 있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되어 방문을 열어보니 파리똥이 미끄러질 정도로 내 구두를 빤짝 빤짝 닦아 놓았다.

정씨가 빙그레 웃으며 ‘옛 친구 만나는데 구두가 더러워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난, 빤짝거리는 구두를 좋아하지 않아 여지 것 아무리 더러워도 구두 닦는 일은 없었는데,

닦아놓으니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아마 정씨는 군대 내무반시절 선임들 구두깨나 닦아준 것 같았다.

 

초라한 행색에 구두만 반짝거렸으나, 서둘러 나갔다.

 인사동에서 약속 있을 때마다 늦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라 늦장부리다 매번 시간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10분이나 빨랐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무도 없어 약속장소가 바뀐 줄 알고 술집에서 나와버렸다.

김문호씨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뭔가 잘 못된 것 같아 돌아서려는데,

좁은 벽치기 골목에서 김문호씨와 이석필씨가 등장했다.

 

김문호씨야 전시장에서 가끔 만나지만, 이석필씨는 만난 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술집에 먼저 자리 잡았는데, 이석필씨는 비슷한 연배지만 아들처럼 젊어보였다.

이 친구의 건강비결은 술을 마시지 않고 밥을 잘 먹는데 있지만, 본래 야생의 체질이다.

야생화 찍으려 산을 숱하게 돌아다녔는데,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으며

물을 더럽힌다고 비누는 물론 세수도 잘하지 않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질이 생겨 그런지 비누를 사용한다고 했다.

 

막걸리와 소주에다 김치찌게를 시켜 한 잔하고 있으니 안해룡씨가 나타났다.

김봉규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일이 있는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네 사람이 만나 한 잔하는 자리가 오붓하기는 했으나, 왠지 씁쓸했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는데,

기념전을 어떤 식으로 치룰 건지 의논하는 자리였으나,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당시의 작업을 소환하느냐 아니면 지금 작업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압축되었는데,

그야 당연히 지금의 작업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지만,

어떤 공동주제를 내세워 짧은 시일이지만 집중적으로 작업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왜 중요한 모임에 다들 참석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면 모를까 별로 관심 없는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결론도 얻지 못한 체 케케묵은 이야기나 근간의 사진계 이야기를 안주로 술만 마시다

대전까지 가야 할 이석필씨가 먼저 일어났다.

 

술값 품앗이로 돈을 냈더니, 안해룡씨가 슬쩍 돌려주었다. 고맙긴 하나 마음은 편치 않더라.

소주 한 병이면 주량보다 좀 과하게 마셨으나, 그냥 집에 가기는 싫었다.

지척에 있는 ‘유목민’에 들렸더니, 전활철씨가 반겨주더라.

술보다는 시원한 콜라 한 잔 얻어 마시고 녹번동 가는 3호선을 탔다.

언제나 술이 취하면 동자동으로 가지 않고 녹번동 가는 이유는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서다.

다만 마스크 쓰고 지하철 타는 시간이 길어 곤욕스럽기는 하나 정영신씨 만나는 기쁨도 크다.

 

난, 술이 취하면 간이 커지고, 쪽팔리는 것도 잘 모른다.

술 값 돌려받은 돈으로 꽃집에서 국화 한 다발을 산 것이다.

정영신씨에게 알랑방귀 뀌는 것이 아니라 보라색의 작은 꽃송이가 너무 섹시해서다.

초라한 늙은이가 꽃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꼴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문을 들어서니 세수하던 정영신씨 표정에 미소가 감도는 걸 보니, 쪽팔렸지만 잘 했다싶다.

 

오늘의 결론은 안 하고 입 닦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고,

하려면 의미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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