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인사동,

전통의 거리인가. 예술의 거리인가.

 

오래 전에는 골동의 거리였고,

70년대부터 화랑가가 형성되었다.

 

전통과 예술이 어우러진 인사동도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었다.

 

노포는 문 닫고 새 가게가 들어섰다.

인사동 정취가 서서히 사라졌다.

 

골동가게가 화장품가게로 바뀌고

표구점이 옷가게로 바뀌었다.

 

술타령에 흥건했던 인사동 대폿집들,

예인들의 한숨이 시와 그림 되었다.

 

시를 안주삼아 술잔을 들었다.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눈물이 되었다.

 

밀어닥친 역병은 마지막 풍류마저 앗아갔다.

폭우와 달리 물러 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가들은 눈치 봐가며 작품을 내 건다.

전시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팔리기는 커녕 보는 이도 드물다.

가슴만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거리는 안방에서 탈출한 사람으로 분주하다.

버스킹의 음율은 장송곡 같다.

 

신이시여! 이제 광란의 춤을 거두세요.

인사동에 봄바람 일게 하소서!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의 길 아닌 길, 벽치기 길이 흐르는 세월따라 인사동 명물이 되어버렸다.

안국역 6번 출구에서 나오면 ‘관훈주차장’과 ‘경찰 방범대’ 건물 사이로 개구멍 같은

샛길이 나 있는데, 주차장 땅 주인과 가게 주인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길이다.

최소한 50cm만 양보해도 장애인 휠체어 정도는 통과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 샛길을 통과하려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을 확인하고 진입해야 한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밤만 되면 취객들의 방뇨로 악취가 진동하는 지저분한 길이었다.

이젠 그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기다리고 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종로구청’에서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다.

어쩌면 길을 넓히는 일은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벽치기란 이름은 십여 년 전 인사동 술꾼들에 의해 불려지기 시작했다.

벽치기 하면 언뜻 성행위를 떠 올리지만,

샛길을 지나치는 행인들이 벽을 쳐 담을 허물어버리자는 뜻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허물어지기는 커녕 유명세까지 더해졌다

 

인사동에 대형건물이 여럿 들어서고, 점포는 물론 거리 풍경까지 바뀌었지만,

유일하게 그 벽치기 골목만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개구멍 같은 그 샛길에 위안받는 지도 모른다.

아무튼, 흉물이 명물로 바뀐 것이다.

 

그 샛길은 인사동16길과 연결되는데, ‘유목민’을 비롯하여 ‘푸른별 이야기’,

‘누룩나무’,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때', ‘스토그’, '시골밥상', ‘산골물',

'우리선희', '사랑채', '다미’, '백화'등의 다양한 식당과 대폿집들이 있다.

찻집으로는 '유담'이 있고, 전시장은 ‘보고사’, 모텔은 ‘PEARL’이 자리 잡은 지름길이다.

 

왜 술꾼들을 외딴 골목의 꾀죄죄한 술집들을 좋아할까?

고향의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함을 그곳에서 찾는 것은 아닐까?

 

인사동 주막에서 아련한 그리움을 술잔에 녹여보자.

 

사진,글 / 조문호

 

 

, 생일을 유달리 싫어한다.

나만을 위한 날이 부담스러워 어릴 적부터 생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 우겼다.

정영신씨를 만나면서 피곤할 정도로 생일을 챙겨주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음력생일이 양력생일로 바뀌었고

미역국 먹는 일이 유일한 생일치레가 되어버렸다.

 

모르고 지나치기를 원하나, 페이스 북을 시작하며 더 큰 곤욕을 치룬다.

생일만 되면 페북에서 나팔을 불어대니, 잊어버리기는커녕

잘 모르는 페친까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려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맞는 것이 부담스럽다.

 

지난 생일은 수해 때문에 정선 만지산에 갇혀있었는데, 늦은 오후에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조찬 약속이 저녁으로 바뀌기는 했으나

아들 내외와 손녀 하랑이까지 합세하여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생일 지난 지가 일주일도 더 되었는데,.

지난 13일 정오 쯤 인사동 유목민에서 생일잔치를 갖는다는 기별을 보내왔다.

생일 핑계로 술 한 잔 하자는 전활철씨의 제안이라 안 갈 수도 없었다.

 

그 날은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김상현, 김수길, 유진오, 안원규, 정영신씨 등

여러 명이 모였는데, 백숙에다 장어까지 구워 음식이 푸짐했다.

김수길씨는 생일케익을 사왔고, 유진오씨는 초가을에 입을 티스쳐를 사왔다,

마침 날씨까지 쌀쌀해 선물을 그 자리에서 입을 수 있어 더 고마웠다.

모처럼 유목민에 모인 자리에서 엊그제 있었던 기가 막힌 뉴스를 풀어놓았다.

 

정영신씨의 전언에 의하면 지난 금요일 마약수사대에서 전화가 왔더라는 것이다.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대마에 대한 글과 사진이 있다며 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짐작이 가는 누군가가 자기 요구에 씨알이 먹히지 않으니, 경찰서에 신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양아치보다 못한 인간과 긴 세월을 함께 한 것이 너무 분했다.

,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아, 정영신씨 전화 번호를 알으켜 준것도 그의 제보였다.

 

나야 대마합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선 입장이라 두려울 게 없으나

전화를 받은 정영신씨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경찰에서도 블로그를 꼼꼼히 살펴보아 나를 훤히 알더라고 한다.

동자동 쪽방에도 찾아왔다지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 것이다.

 

직접 대면했더라면 교도소에 갈 지언 정, 개인 일기를 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겁 먹은 정영신씨가 그들이 지적한 사진과 글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런데, 정영신씨가 블로그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비밀번호를 바꾸어 버렸다.

 

법이 잘 못 되었지, 올린 내용이 틀린 말은 아니잖은가?

애지중지 농사지은 걸 흔적도 없이 도둑질해 가는 놈이 없나,

자기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비정한 세상을 만드는

 모든 것들이 대마를 합법화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약초가 마약으로 둔갑되는 잘못된 법은 하루속히 고쳐져야 한다.

 

몇년 전에는 환경을 훼손한 엉터리 사진가를 탓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해 감방에서 벌금 대신 지낸 적도 있었다.

교도소 생활을 해보니, 쪽방에서 사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하더라.

끼니 거정할 것도 없는데다 술과 담배를 할 수 없으니, 건강도 좋아졌다.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독방에 넣어주어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블로그에 올리는 직설적인 문제점 지적들은 친분관계를 따지지 않으니,

또 무슨 일이 터질까 항상 마음 조아리며 지낸단다.

 

그래서 생일 축하하는 건배사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 이제 사고 그만 쳐요.”라고 외친 것이다.

 

"그래! 미안하다.

나이가 일흔이 넘도록 철이 안 들어 몸이 너무 가벼운 걸 어쩌랴!"

 

유진오씨는 생일 축하곡을 봄날은 간다로 도전장을 냈다.

내 십팔번이지만, 유진오씨의 새로운 버전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상현씨까지 그 노래를 불러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버렸다.

 

, 봄바람이란 노랫말만 들어도 왜 이리 슬퍼질까?.

노래가 슬픈 것인지, 사는 게 슬픈지 모르겠다.

 

술이 취해 일어났더니, 곰장어 덕인지 거시기가 구물구물 한다.

약발 하나는 정말 죽인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생일은 맞고 싶지 않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 노래가 무색한 날이었다.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에는 광화문광장 시위에 일장기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가 일본 놈들 손아귀에서 벗어 난지 75년이 지났건만,

친일 청산은 커녕, 오히려 일제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갤러리 구루지’에서 열리는 ‘독립이 맞습니까?’란 전시 제목이 실감났다.

 

다시 한 번 미치광이 전광훈 개독집단과 꼴통 보수 세력이 친일 잔재라는 걸 입증했다.

그 뿐이던가?  맞장구치며 부추기는 보수언론이 더 문제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를 씹는 보수언론 논리에 귀가 막혔다.

 

독재자 이승만의 일제 계승과 무고한 민중 학살을 몰라서 하는 말이던가?

그렇게 일제 치하가 그리우면 국적을 바꾸던지, 차라리 일본으로 이민가라.

언론이란 가면을 쓰고 국민을 이간질 시키는 무리부터 척결해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위급한 때가 아닌가?

도저히 쪽방 구석에 처박혀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어디서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았다.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인사동으로 갔다.

시위를 끝내고 지하철로 몰려드는 늙은이들의 행렬이 측은해 보였다.

무엇이 저들을 거리로 내 몰았을까? 역병에 목숨까지 걸어가며...

 

요즘 떠도는 유행어처럼 독립운동은 못해도 꼬장은 부리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원칙도 가치관도 없이, 젊은이들로 부터 지탄 받고 살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인사동의 모습은 변함없었다.

비에 젖어 가라앉은 거리엔 발길만 분주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거리 사진부터 찍었겠지만, 바로 술집을 찾아갔다.

 

벽치기 골목을 들어서니 ‘유목민’ 앞에 연출가 기국서씨와 김명성씨 모습이 보였다.

김명성씨가 추진한 독립 자료전을 보고 오는 길이라 했다.

개막식이 있던 날은 작업 때문에 밀양에 있었단다.

 

모처럼 소주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기국서씨가 고충을 털어 놓았다.

아무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일에 답답해했다

결과에 돈이 걸려 있다는 대목에서는 미칠 것 같단다.

 

비록 기국서씨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주변과 얽히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며, 돈에서 자유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작가의 재능이 뛰어나도 권력이나 돈에 치우치면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나 친일시인 서정주와 다를 게 무엇인가?

차라리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이 나을 것이다.

 

한 쪽 자리에는 ‘뮤아트’ 김상현씨가 후배 가수들과 어울려 노래를 불렀고,

유진오씨는 분주히 ‘유목민’ 일손을 돕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출연자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인 이승철씨, 박재웅씨 일행에 이어 단청장 이인섭씨가 나타났다.

좀 있으니, 시인 정희성씨와 소설가 현기영, 산악인 박기성씨가 왔다.

 

이 우울한 날 어찌 술 한 잔 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때와 달리, 기국서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는 시국처럼, 술자리마저 흩어져 사분오열이었다.

‘유진커피숍’에서 팥빙수에 더운 속을 식히고 자리를 떴다.

 

아무리 코로나가 설쳐도 꼭 찾아갈 곳이 있다.

바로 구로구민회관 ‘갤러리 구루지’에서 열리는 ‘독립이 맞습니까?’전이다.

그 전시를 보며, 독립을 위하여 몸 바쳐 싸운 독립투사들의 정신을 되새기자.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죽을 쑨다.

그 많던 관광객이 코로나 광풍에 휩쓸린지 오래다.

 

장사는 안 되어도, 친근한 오래전의 풍경은 되살아난다.

 

이제 물밀 듯 밀려오던 그 때의 호황은 꿈도 못 꾸지만,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이미 점포 비운 가게들이 속출하고, 새 주인 기다리는 가게도 많다.

새로 들어 온 상인들은 기존 업종보다 다른 업종으로 바꾼다.

 

음식점에서 커피 집으로 바뀐 정도야 그게 그거지만

낙원상가와 가까운 인사동4길은 악기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사아트프라자’의 대 변신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 건물에,

인사동 문화에 애착을 가진 새로운 경영자가 들어왔다.

 

건물 전체를 미술관으로 만든다고 한다.

이미 공예품매장으로 어수선 하던 1층이 갤러리로 바뀌어 손님을 맞고 있었다.

 

백 여 평의 7개 층 전관에 한 달 동안 전시 한 건 없는 ‘아라아트’ 같이

파리 날리는 전시장이 더 많은 시절에 걱정은 되나 나름의 전략이 있단다.

 

오랫동안 임자 못 만난, 보물 없는 ‘보물창고’를 비롯한

인사동 큰 길가의 가게들이야 무슨 업종이 들어서던 명맥은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골목 안으로 한걸음만 들어가도 문 닫은 집이 속출한다.

 다시 채우려면 숱한 시일이 걸릴 것 같았다.

 

신통하게, 손님 몰리는 곳도 있다,

인사동 16길에서 벽치기 길로 이어지는 골목 술집들이다.

 

‘유목민’, ‘누룩’ 등의 몇몇 술집은 코로나 이전보다 손님이 많단다.

답답한 세상 술 잔에라도 풀지 않는다면 어찌 살겠는가?

 

앞으로 인사동에 어떤 업종이 들어올지도 모르고,

인사동 문화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사동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 같다. 

 

희망사항에 불과하겠지만 인사동 미술시장이 더 활성화되고

전통문화와 예술가들의 풍류가 함께 어울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소설보다 더 기막힌 일이 많아, 이젠 소설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검찰총장이 자신을 임명한 정권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지 않나,

대권에 뜻을 둔 유망 정치인들은 모조리 ‘미투’란 올가미에 걸려 잡혀 가거나,

목숨까지 잃는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다.

음모와 저주가 난무하는 드라마 같은 현실에 누가 소설을 읽겠는가?

 

느닷없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보를 접하며 한동안 멘붕 상태에 빠져 일손을 놓았다.

업 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마지막 희망으로 지지해 온 

정의당의 망자에 대한 부도덕한 처신도 마음을 뒤집었다.

조문하기 싫으면 안 가면 될 것이지, 왜 나팔을 불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도 잘난 채 하고 싶었을까?

 

시장으로 재임하기 전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할 때부터 존경해 온

박시장과의 첫 만남은 ‘아름다운 가게’ 상임이사 시절이었다.

당시 ‘민예총’ 사무총장이었던 김용태씨 소개로 사진 5점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창녕군 장마면이 고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향후배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친근감을 느꼈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러한 호감에 금이 간 것은 2018년 여름 그가 동자동 쪽방 촌을 방문하면서다.

그 당시 쪽방 촌에 장관을 위시하여 여러 정치인들이 찾아 와

빈민들을 들러리로 정치 쇼를 벌이는 일이 잦아 심기가 불편했다.

더위에 지친 빈민들에게 수박화채를 나누어주고,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는 일이고맙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대부분 기자들 사진촬영을 위해서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빈민들을 정치판 들러리로 내 세우지마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이번에 나팔 분 정의당 철부지가 한 말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일은 자신의 뜻이라기보다 보좌진들이 짜놓은 일정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사과드린다. 부디 용서하시고, 저승에서나마 못 다한 일 이루시길 바란다.

 

어저께는 동자동에 짐 옮길 일이 있어 차를 끌고 나왔다.

그러나 신호에 걸려 출발하려니 갑자기 변속이 되질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 시동을 끈 후 다시 걸었는데, 이젠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빵빵 그리는 뒤차의 성화에 정신이 없었는데,

호출한 견인차마저 일이 많다며 늦게 출동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삼일 전에도 밤 늦게 정선에서 돌아오다 타이어가 터져 서울까지 견인해 오지 않았던가?

그 때 폐차해야 했는데, 당장 차 쓸 일이 많아 중고타이어 두 짝을 구입한 것이다.

이번엔 엔진을 들어 올리는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다며 수리비만 40만원이 넘는단다.

노후경유차라 고장 나기 전에 폐차했더라면 백 오십만원이나 되는

서울시에서 주는 조기폐차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는데,

재수가 없으려니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격이었다.

 

결국 애마를 폐차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루 전에 구입한 타이어가 아까웠다.

좋은 타이어를 산 가격 그대로 준다던 주인 말이 생각나 다시 찾아간 것이다.

타이어 휠까지 끼워 줄 테니 산값의 반만 돌려 달랬으나 한사코 손사래 친다.

오히려 자기가 아는 곳에서 폐차시켜 줄 테니 차를 견인해 오란다.

아마 폐차장에서 주는 소개비가 탐나는 모양인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십여 년간 거래한 단골이지만, 돈 앞에서는 본색을 더러 냈다.

 

3년 전, 500만원에 사들여 끝 까지 운명을 같이 할 거라며 다짐했지만, 또 먼저 보내게 되었다.

장안평 중고차 장사꾼 말에 속아 탈 많은 고물차를 너무 비싸게 사, 수리비가 더 들어갔다.

이번 주말에는 울 엄마 제사도 있지만, 무덤 이장할 일로 정선 갈 일이 난감했다.

 

그동안 이십년 넘게 정선을 오갔지만, 한 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은 없다.

정선에서 하루에 네 차례 다니는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귤암리에 내려

한참을 걸어가는 산길이라 차 없이는 힘든 곳이다.

 

어디서 어떻게 차를 구할까를 고민하며 전전긍긍하는데,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김명성씨와 김상현씨가 와 있다며 빨리 오라는 것이다.

꼼짝하기 싫어 머뭇거렸는데, 정영신씨를 통해 독촉이 빗발쳤다.

 

도살장 끌려가듯 나갔더니, 그날 강찬모씨 딸 결혼식에 갔다 왔단다.

왜 나 한데는 연락하지 않았을까? 거지라 봐 주는지 모르겠으나,

아들 햇님이 결혼 때도 축의금을 보낸 터라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뒤늦게나마 결혼식을 축하하며, 행복하게 잘 살기 바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서니 ‘뮤아트’ 김상현씨가 반겼다.

이 친구도 병원에 입원해 수술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병문안을 가지 못했다.

요즘은 핸드폰을 멀리하며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니, 사람 도리를 제대로 못한다.

사람 만나는 일은 커녕, 술 마시는 일 자체를 만들지 않지만, 이 날은 한 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술자리의 화제는 온통 비명에 떠난 박원순시장 이야기 뿐이었다.

김명성씨는 독립운동 자료전시 문제로 박시장이 만나자는 날짜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 왔다는데, 갑작스런 비보에 난감해 했다.

가족에게 사실을 털어놓아 딸로부터 원망을 듣고 나갔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마음 여린 분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다.

 

술 마시는 중에 최명철씨와 이인섭, 안완규 씨등 여러 명이 지나갔다.

너무 과음한 탓인지 눈물이 앞을 가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마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눈물인냥, 비까지 하염없이 내렸다.

엎드려 있다 잠들기를 반복했는데, 김상현씨가 부른 노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란 슬픈 노래 소리가 빗물에 흘러내렸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여파 이주원씨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잘 모르는 분이라 궁금했는데, 칡뫼선생과 함께 가겠다는 말에 나만 모르는 주변 분 같았다.




12일 오전엔 김명성씨 따라 장호원에 갈 일이 있어 일찍부터 차를 끌고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니, 약속시간인 다섯시가 임박해 차 돌려 줄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인사동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주원씨와 약속한 ‘화인갤러리’로 간 것이다.




그 자리는 옛날 이해림씨가 운영한 술집 ‘평화만들기’ 자리였다.
수안스님 전시 뒷풀이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예사롭지 않은 장소였다.



쌈지 뒷골목은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는데, 이름도 반가운 '정선곤드레쌈밥'집도 생겼더라.



'화인갤러리'로 바뀐 후 첫 걸음인데, 마침 전시작을 철수하고 있었다.
칡뫼 김구, 여파 이주원 선생 등 여러 명이 참여한 단체전이었다.



칡뫼선생이 먼저 와 있었는데, 걷어내기 직전의 출품작 두 점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개인전을 못 봐 아쉬웠는데, 두 점이라도 봐 천만다행이었다.



뒷골목 밤 풍경을 그렸는데, 작품에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칡뫼선생 이야기로는 몇 년 전에 한 작업으로, 그 때는 작품도 제법 팔렸다고 한다. 
왜 주제를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그리움에 병든 세상이 아니던가?




뒤 이어 여파선생이 나타났는데, 서울이 아니라 천안에서 왔다고 했다.
하기야! 칡뫼선생도 김포서 왔지 않았는가? 서울역 부근에 사는 거지 팔자가 상팔자가 아닌가 싶다.




난, 이주원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는 우리 집 숟가락이 몇 개인 것 까지 다 알고 있었다.
블로그 ‘인사동 사람들’ 단골손님으로 가끔 정다운 댓글로 위안도 준 분이다.
온라인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몇 안 되는 귀한 인연이었다.




뒤늦게 임경일씨가 나타나 술 마시러 갈 때가 되었는데, 끌고 온 차가 골칫거리였다.



'툇마루'로 가기 위해 골목을 나서는데, 정영신씨가 지나가다 손을 흔들었다.

사진으로 본 정영신씨보다 더 젊어보인다는 여파선생 말에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은 것 같았다. 




술 마시려면 차는 어쩔 것인가?  일단 마시고 보자.
‘툇마루’에서 녹두빈대떡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 마셔버렸다.
이 좋은 날, 술 한 잔 마시지 못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차로 간곳은 벽치기 골목에 있는 ‘유목민’이었다.
요즘 술 마시러 인사동에 잘 나오지 않아 몇 달 만에 들렸는데, 대개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화가 여파선생은 사진 작업도 병행한다는데, 그 작업들이 궁금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인섭선생과 주인장 전활철씨가 나타났다.



술은 땡기지만, 몸에서 그만 마시라는 신호가 왔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지만,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대리운전을 부르라며 여파선생이 따라 나섰지만, 손을 흔들었다.
주차비도 제법 나왔을 텐데, 여파선생이 계산해 버렸다.
차를 끌어 내 ‘아라아트’ 옆 빈자리에 세워두고 지하철 타러 간 것이다.



내일 새벽 다시 나올 생각하면 귀찮지만, 어쩌겠는가?
“성질 마이 죽었다. 음주면허증으로 그 술 마시고 두 번 걸음하다니...”

사진, 글 / 조문호






























지난20일은 졸음을 견디지 못해, 인사동으로 바람 쐬러 나가야 했다.




오늘까지 ‘부랑자’원고를 정리하여 출판사에 넘겨야 하는데,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두 시간 밖에 못자며 여기 저기 흩어진

사진 이미지 찾느라 파김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전시장이나 들렸다 올 작정에 인사동 벽치기 골목으로 접어들었는데, 

‘유목민’ 문 앞에 단체손님 예약으로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궁금증을 자극해 들어가 보니, 영화 ‘기생충’ 제작팀들이 ‘유목민’을 접수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사진가 이유홍씨를 비롯하여 조성표, 안완규씨가 술자리를 마련해 잠깐 합석했는데,

그 날 국민들의 영웅이 된 봉준호감독을 비롯한 일행들이 청와대 다녀와서 주연을 갖는 자리라고 했다.



이유홍씨는 요즘 우울증에 시달려 몸무게가 육킬로나 빠졌다고 했다.

사진가 황규태선생과 점심식사를 한 후, 인사동으로 옮겨 술 한 잔하고 있었는데,

모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되었다.



안쪽에는 봉준호감독을 비롯하여 송강호, 장혜진, 조녀정, 박소담, 박만철씨를 비롯한

20여명의 ‘기생충’ 출연진과 스탭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쪽팔리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어 가끔 화장실을 더나들 때 만났을 뿐이다.

그러나 축하연에서 나온 케익이나 얻어먹고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인섭씨를 비롯한 몇몇 분들이 들어 와 예약 팀들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아서다.


 

이유홍, 조성표, 박혜영씨와 옆 골목에 있는 ‘꽃, 밥에 피다’로 옮겼다.

이 집은 생긴 지가 오래지 않아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으나,

지나치다 좆밥이라는 등 농담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유홍씨 단골집이란다.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생충’ 대본이라도 한 권 얻기 위해 다시 ‘유목민’에 갔는데,

사진가 이정환씨를 비롯하여 심보겸, 성유나, 이미리씨 등 여러 명을 골목에서 만났다.

반갑기는 했으나,그들도 ‘유목민’ 예약 팀 때문에 다른 술집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가보니 이미 대본을 다 나눈 뒤라 허탕치고 돌아왔으나, 더 이상 술은 마실 수가 없었다.

오늘까지 마무리해 넘겨야 할 원고 걱정에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었다.

동자동으로 돌아왔으나, 술 마신 자체가 문제였다.

몰려오는 졸음에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나 일한다는 게, 일어나보니 이미 아침이었다.



그날까지 원고를 모두 넘겨주어야 다음 날 책을 편집하고 가제본하여

마감일인 월요일까지 지원금을 신청한다고 했는데, 이미 날 샌 것 같았다.

복에 없는 지원금 신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더 꼼꼼하게 보충 작업하여 좋은 책 만들라는 계시로 생각하며 위안했다.



모든 것은 준비된 자가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발에 닭 알이라’는 옛말이 생각나 혼자 웃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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