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은 강민선생을 비롯한 인사동 터줏대감을 모시고, 
식사 대접하자는 기별을 장봉숙선생께서 보내왔다.
페북에서야 강 민선생을 간간히 뵙지만, 뵌 지가 한 달이 넘었다.





인사동 나주곰탕으로 갔더니, 문학평론가 구중서선생과 소설가 김승환선생,

사진가 정영신씨가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강 민선생을 기다렸으나, 선생께서는 이미 와 계셨다.

제일 멀리 계시는 분이 언제나 먼저 오신다.



 


자리 잡고 앉으니, 장봉숙선생께서도 오셨다.

매번 내가 꼴지로 나왔지만, 모처럼 꼴지 신세를 면한 것이다.



  정영신사진


강민선생은 귀가 어두운데다, 내가 하는 말까지 어눌해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방동규선생께서 보이지 않아 근황을 여쭈었는데, 구중서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연락하니, 일이 있어 못 나온다"고 했다며,배추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아쉬워하셨다.



 


그런데, 장봉숙선생께서 선물 하나를 내놓으셨다.

얼마 전 중국여행 때 사왔다는 이과두주였는데, 병을 보니 보통 술은 아닌 것 같았다.

강 민선생 드리려 사온 술이겠지만, 맛이라도 좀 봐야 하지 않겠나?

눈치 봐 가며 슬슬 포장을 풀었더니, 식당주인이 말했다.

오늘만 강민선생님 때문에 봐주지만, 다음엔 절대 안 됩니다.”



 


52도나 되는 독주를 낮술에 쥐약인 내가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우나, 어찌 귀한 술을 마다하겠는가?

맛만 본다며 조금 받아 마셨으나, 술 맛이 슬슬 당기기 시작했다.

홀짝홀짝 마시다, 나중엔 장선생과 정영신씨가 남긴 술까지 다 마셔버렸다.



 


방동규선생이 안 계시니, 구중서선생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김두환씨가 시라소니 앞에 무릎 꿇었던 옛 이야기를 꺼내시며,

사실은 전해지는 무용담들이 좀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추가 맨주먹으로 열일곱 명이나 때려 눞혔다지만,

선생께 고백하기를 자기도 당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두 분이 각별히 친한 사이지만, 오래 전에는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백기완과 구중서가 책 보라고 부추긴 죄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꼴로 살게 됐다"며,

술값은 늘 구중서선생께서 내게 하셨단다.





어느 날 인사동 실내악에서 구선생의 핀잔에 방선생께서 술값을 계산하고 먼저 일어난 것이다.

가다보니 술 값을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술값을 돌려 달라고 하셨다는데,

실내악 주인 김희주가 누구인가? 절대 못 돌려준다며 타박만 주었다는 것이다.





방선생께서 다방으로 올라가셨는데, 그곳에 계신 신동문시인께  "구중서와 의절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단.

그 소리를 들은 신동문선생께서 갑자기 꿇어 앉어라며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천하의 주먹이 손가락만 슬쩍 밀어도 쓰러질 비쩍 마른 시인의 말에 그냥 무릎 꿇고 앉았다는 것이다.

한참 있다 이제 일어나도 되냐고 물었더니, 좀 더 있어라 했단다.

얼마나 순진무구한 모습이냐?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술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구중서선생께서 자주 가신다는 관훈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지러웠다.

술 깨려고 인사동 주변을 돌아다니는 습관이 다시 도졌다.

길에서 까딱이를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술 취해 빌빌거리는게 불쌍한지 손도 벌리지 않았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목판대학 전시 때문에 그냥 갈 수도 없었다

다른 분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도 않고, 강민선생 따라 기어 오르듯 전시장에 올라갔다.

김진하 관장과 정복수씨가 있었고 뒤 늦게는 김준권씨도 왔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이 너무 좋았다.

초빙작가인 김진열, 정복수, 김진하, 문승영씨 작품은 물론, 학생들 작품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이현숙씨 판화에 눈이 꽂혔다.



   

    

 

전시가 124일까지라 다음에 볼 작정으로 내려와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지러워, 강민선생께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가까운 유목민 들어가 전활철씨께 택시 하나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렵사리 집에 왔으면, 그냥 자빠져 자지 또 컴퓨터는 왜 켰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보고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음주운전보다 더 무서운 음주 포스팅을 기어이 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꼴을 보았다. 갑자기 집채가 쓰러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불안해 기둥 사이로 돌을 집어넣기도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까지 지붕에 올라가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소가 기와장을 튕기며 지붕 위를 뛰어 다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더니 날 뛰던 소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즉사한 것이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별 이상한 꿈을 다 꾸었다며 일어났더니,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마우스를 당겨 보니, 음주 포스팅한 글에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라 급히 내리기는 했지만,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았다.

속은 쓰린데다 망신살까지 뻗쳤으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 왜 이리 낮술에 맥을 못 추는지 모르겠다.

낮술은 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술 들어간 뱃속이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이 뜻 하는 건 뭘까?

집안에 우환이 생길 징조는 아닌지, 해몽가라도 한번 찾아 볼일이다.


다시는 낮술과 음주 포스팅을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그 버릇 개줄까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오늘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 대포 한 잔하는 셋째 수요일이다.

정영신씨 더러 인사동에서 밥 한 그릇 사달라는 전화를 했다.
어디서 만날 것이냐기에 대뜸 ‘인덱스갤러리’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르지만, 밥값에 버금가는 찻집에서 만날 수는 없잖아.






낙엽이 뒹구는 인사동 거리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또 겨울이 찾아오고 실없이 한 해가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황량해 졌다. 사치스럽게도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이군열 사진전이 열리는 ‘나우갤러리’부터 들렸는데, 오프닝 준비로 바빴다.
‘자연의 성’이라 이름붙인 흑백 풍경이지만,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쓸쓸한 늦가을 분위기와 어울릴 것 같은 임춘희씨 '나무그림자'를 보러 ‘통인’으로 갔다.
변화무쌍한 감정을 마치 자서전처럼 화폭에 풀어놓았는데,
혼란스럽기도 하고 황량한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앙상한 겨울나무가 연상되었고, 아련한 향수도 밀려왔다.






정영신씨와의 약속 시간이 되어 ‘갤러리 인덱스’로 자리를 옮겼다.
김종성씨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거리는 한산해도 전시장은 북적였다.
아는 분이라고는 최건수관장을 비롯한 한 두사람 뿐이었다.






사람 틈을 비집고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사진이 왔다 갔다 했다.
정영신씨를 데리고 나와 버렸다.






정영신씨와 저녁식사를 한 후 ‘유목민’으로 갔다.
그 곳에는 유진오씨와 김완기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완기씨가 너무 오랜만이라 근황을 물어보았는데,

피맛골 가게를 처분하고, 삼개월 동안 러시아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좀 있으니, 이인섭선생이 나타났고 김재홍씨는 박기자라는 친구 분을 데리고 왔더라.
김명성, 서길헌, 김각환씨 등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왔으나,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자리를 비켜주고, 옆집 커피숍으로 옮겼다.
연신내 연서시장으로 가자는 김명성씨 따라 지하철을 탔지만, 더 이상 술 생각은 없었다.
그날따라 혼자 있고 싶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계절을 타는 건지, 갈 때가 된 건지, 마음이 찹찹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은 이른 시간에 인사동에 들릴 때가 종종 있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인사동이 인사동답기도 하지만,

술 마실 기회를 줄이기 위한 호구지책이다. 






지난 9일은 성유나씨의 '유나의 거리'초대전을 보러 인사동에 들렸는데,

정오가 가까웠으나 거리가 한적했다.

가게 주변을 청소하는 상인이나 한가로이 구경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사진전이 열리는 '아리수갤러리'는 문은 열렸으나, 작가가 없었다.

성유나씨를 비롯하여 안민교, 이서영, 박은영씨 네 사람의 전시라 사기충전이라 이름 붙인 것 같았다.    




  


다양한 개성의 사진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성유나씨 사진이 가장 눈에 띄었다.

거리를 스냅한 사진들로,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인들의 낯 선 모습이었다.

사진을 시작한지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데, 대상을 보는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진은 아무리 오래 했다고 잘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가 무슨 생각을 하며, 말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야 된다는 것을 입증했다.





전시장을 나와 용해숙씨 파노라마 삼부작이 열리는 나무아트로 올라갔다.

베를린과 서울, 홍천 등 작가가 거쳐간 세 곳의 특정장소를 정하여

작가의 서사적 퍼포먼스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좀 색다른 전시다.





머리를 감거나, 물을 주는 일상적 행위를 독일작업실과 인사동 전시장 옥상,

홍천터미널 앞 수퍼에서 연출하였는데, 퍼포먼스의 상징적 행위들이 세 장면의 이미지로 압축되었다.





영화 스틸처럼 대본에 의한 순간 포착으로 세 개의 옴니버스식 상징적 장면을 만들어 내었다.



 


무의식적이고 무질서한 현대인의 고뇌를 대변하고 있었는데, 사진이라기보다 개념미술이었다.

마침 전시장에 작가인 용해숙씨가 있어 기념촬영도 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술집 유목민에서 열리는 모델 조성은씨의 일상을 찍은

하루와씨의 이팝나무 조팝나무사진전이었다.

관능과 도발과 허무와 권태가 뒤섞인 일상을 포착하고 있었다.

가끔은 훔쳐보고 싶거나 무심코 지나치는 흔한 일상을 보여주었다.



 


사람들과 술 마시던 유목민에서, 사진전을 보는 느낌도 괜찮았다.

인사동다운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램도 들었다.





세 전시 모두 13일까지 열리는 전시라, 보실 분들은 서둘러야 겠다.


    


사진, / 조문호

    
























큰 일 났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인사동으로 나오라는데, 부르는 사람이 거절 못할 사람이다.

낯에는 송추에서 밤에는 응암동에서 퍼 마신 터라 힘들었고, 술 취해 자다 받은 전화라 더 황당했다.

 





죽기보다 일어나기 싫었으나, 술 취해 혼자 갈 수 없다는 어명을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부랴부랴 인사동으로 나갔으나, ‘유목민에는 없었다.

전활철, 박혜영, 장경호, 안원규씨가 있었으나, 다들 취해 있었다.





박혜영씨는 사진 찍어 달라하고, 장경호씨는 욕지껄이로 시비부터 걸었다.

전활철씨가 "형!"하며 반기니까, “어떤 놈은 좋아하고 어떤 놈은 싫어하냐?”

전활철씨 더러 씹할 놈이라는 등 쌍욕을 해댔다.

너 그렇게 싸가지 없이 지껄이고 살아남은 게 용하다 말을 남기고, 정영신씨 찾으러 큰 길로 나갔다.






전화를 걸었으나, 불통이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인사동 거리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는데, 공휴일의 인사동이라 그런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이토록 인적 없는 인사동은 그리 흔치 않다. 가보지도 못한 북한의 밤이나, 아니면 난리 난 것 같았다.






다시 벽치기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니, 좀 전에 없었던 낮 익은 사람이 보였다.

화가 한상진씨와 미술평론가 황정수씨가 와 있어, 반갑게 인사 나누었다.

유목민에 들어가보니, 그 때야 정영신씨가 와 있었다.





저런 인간하고 왜 살아? 버리고 나랑 연애나 하자는 말을 장경호가 정영신씨께 지껄였다.

남의 말이나 엿듣는 것 같아 못들은 척 참았으나, 들어 가 밟아 죽여 버리고 싶었다.

말이면 다 말이냐? 선배가 아니라 친구라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황정수씨 더러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산의 이광수교수 욕은 왜 해댈까?

나와 가깝다는 이유일까? 아니면 이런 사람도 안다는 가오 세우려 그럴까?

여지 것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고 피하는 게 불쌍해 아껴주었는데,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어디 있냐?






앞으로 그 인간이 다니는 술집은 절대 가지 않을 것이며,

그를 부추기거나, 술 권하는 사람까지 안 보기로 작정했다.



    


정영신씨를 데리고 나왔는데, 마치 지옥을 벗어난 것 같았다.

이제 인사동마저 징그러워진다. 



사진, 글 / 조문호




























 




맹위를 떨치던 더위도 순식간에 물러나고, 어깨를 짓눌렀던 아들 결혼식도 잘 마쳤다.
하늘을 날 듯 홀가분해야 하는데, 왠지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허허롭다.






지난 3일 오후 여섯시 무렵에는 인사동 ‘유목민’으로 나가야했다.
정영신씨가 결혼식에 오신 분들을 모셔서 술 한 잔 대접해야 한다는 채근에서다. 
비오는 날 술 마시러 나오라는 자체가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데다, 
스스로 술자리 만드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정영신씨가 술값은 걱정 말랬으나, 연락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누군 하고 누군 하지 않으면 욕먹을 수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전화번호를 모르는 페친도 있는데 말이다.






불편한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날씨마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그러나 ‘유목민’에 나온 인사동 사람들을 만나니, 불편했던 마음은 모두 사라졌다.
그 분들 얼굴만 쳐다봐도 술이 땡기더라.






김명성, 오세필, 임태종, 전활철, 장경호, 김태서, 임헌갑, 임경일씨가 먼저 자리 잡았고,
뒤이어 김 구, 이정환, 김효성, 김종신, 이인섭, 공윤희, 이상훈, 이태규씨가 나타났다.
인사해야 할 분과 그렇지 않은 분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런 구분조차 무의미했다.
다 반가웠다.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잔 하다 보니 슬슬 취하기 시작했는데, 
내일이 내 생일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공윤희씨가 케익 하나를 사 온 것이다.
하루 당겨 생일파티도 하자는 배려였지만, 내가 제일 거북하게 여기는 일이 아니던가.

생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관심도 없지만, 축하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예전에는 모르게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요즘은 폐북 때문에 인사받기 바빠,

생일만 되면 페북에서 탈퇴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모두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난 왜 이리 생각이 비뚤어졌는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나무라며 홀짝홀짝 마셨더니, 손님보다 내가 먼저 취해 버렸다.






술 취한 핑계로 모든 뒷 일은 정영신씨에게 떠넘긴 채, 혼자 동자동으로 도망쳤다.
택시비까지 얻어 왔으나, 사람 차별하는지 택시조차 나를 피해 다녔다.
결국 서울역 가는 버스를 탔는데, 제발 주제 파악 좀 하라는 것 같았다.





굳은 택시비로 노숙하는 친구들과 한 잔 더하려고 서울역사 방향으로 갔는데,
아는 자들은 모두 취해 뻗어 있었다.
꾸물꾸물한 이 날씨에 어찌 취하지 않고 견딜소냐?





마침 술이 덜 취한 유한수씨가 나를 보더니 반색 했다.


소주 한 병으로 끝내고 방으로 기어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정영신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날 술 값을 김효성씨가 먼저 계산해 버렸다는 것이다.
혹 때려다 붙인 격인라, 제발 쓸데없는 일 좀 만들지 말라며 죄 없는 정영신씨께 신경질을 부렸다.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아, 서울을 잠시 떠나려고 작정했다.
내일 정선으로 떠나 심신을 추스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이런 저런 관습에 따른 저항에 부딪힌다.

가난한 형편에 엄청난 돈을 예식비용에 쏟아 붙는 것도 그렇지만,

무슨 놈의 쓸데없는 격식은 그리도 많은지...



 


결혼식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더러워진 몸의 때보다 마음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서다.

탕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이런 저런 불편한 마음을 닦아내며, 아들의 행복을 축원했다.

그 불편한 마음들은 모두 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좋은 말도 잘 못 전달되면 욕이 될 수 있고, 별 것 아닌 말도 오해하면 독이될 수 있는 것이다.

더러는 선입견이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는 말보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 불편함을 유발시킬 때가 더 많다.

잘못된 일을 알게 되면 아무리 가까워도 지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잘못한 일도 감추지 않아 가족으로 부터 원망을 들을 때도 있다.



 


그리고 종교는 잡종이다. 기독교에서 천주교, 불교를 두루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은 토속적인 무속을 좋아하나, 사실은 무신론자에 가깝다.

불쑥 종교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바깥사돈 남선우씨와 친구 배평모씨,

그리고 내가 천주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돈이 된 남선우씨는 16년 전에 우연히 한 번 만난 적 있는 분인데,

상견례 자리에서 혹시 배평모씨를 모르냐?“고 물어 온 것이다.

자신이 배평모씨의 천주교 대부라는 것이다.

배평모씨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한 때 내 대부 역할을 한 적이 있어, 

그 별난 인연에 놀랐다.



 


배평모씨에게 전화해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연락처를 몰라 끊어진 사돈과의 관계가 다시 복원된 것 같았다.

오지랖 넓은 친구라 걱정은 되었으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에게 전화해 블로그에 올린 글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자식 놈이 속도위반해 손자 가졌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자랑이지 욕일 수 있나?

싸가지 없는 말버릇에 더 울화가 치밀어 니 걱정이나 하라”는 말이 튀어 나왔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혼식에 참석한 다음 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안부 전화로 알고 잘 내려갔냐?‘며 인사부터 했는데다시 신경 건드리는 이야기를 꺼냈다.

너의 사돈과 통화를 했는데..“라는 말에 갑자기 불쾌했던 그 날이 생각났다.

데없이 사돈에게 전화질 해 말 물어 나르지 말라며 끊어 버렸다.



 


또 다른 일은 정영신씨에게 일어 난 이야기다.

그동안 햇님이를 친자식처럼 여겨 물심양면으로 애를 많이 써왔다.

결혼식에도 나가서 인사동 축하객을 맞기로 약속했는데,

당일엔 전화를 꺼 놓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많은 지인들이 찾았지만 감감소식이었.



 


결국 결혼식이 끝난 밤 늦게서야 만났는데, 그 사연을 들으니 귀가 찼다.

어느 지인의 전화질에 마음이 상해 하루 종일 돌아 다니며 방황했다는 것이다.

“네무슨 자격으로 예식장에 가냐?”며 가서는 안 될 자리라고 충동질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햇님이 친모도 니 색시는 안 왔냐?”며 걱정했는데 말이다.

사람 관계란 만들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다들 그렇게도 할 일이 없나?

왜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참견해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 뿐 아니다. 혼주가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안 되고, 사진도 찍으면 안 된단다.

별의 별 관습이 나를 다 불편하게 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양복을 입기 시작했으며,

사진찍는 것은 반가운 사람 만났을 때 하는 나의 인사법이다.

사람 찍는 사진쟁이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떻게 그냥 둘 수 있겠는가?

길들어 온 민족성 때문인지, 관습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난리 나는 줄 안다.

자기에게 조그만 덕이 되면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난 24일 밤은 결혼식 전야제를 하자는데, 술 마실 핑계도 다양했다.


울산에서 오세필씨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김명성, 최백호, 이상훈씨도 인사동에 나와 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부터 찾았으나, 태풍소식 때문인지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혀 있었다.

여자만부산식당을 거쳐 결국 '툇마루'에 자리 잡은 것이다.



 


김명성, 최백호씨는 결혼식 날 선약이 있어 축의금만 보냈단다.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키려 했던 말이지만, 예의가 아닌 말을 뱉고 말았다.

한 사람 식대가 오 만원씩 들어가니, 안 오면 더 좋아





'유담' 커피집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유목민에 장경호, 김상현, 이한성씨도 있었다.

지나가던 이정황감독까지 합세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제작에 관심 많은 최백호씨가 은근히 걱정되더라.



 


결혼식을 끝낸 그 이튿날은 유목민에서 착복식을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불편한 양복을 입어 착복식이라 이름 붙였지만,

지방에서 올라 온 벗들과 헤어지기 아쉬워 만든 핑계거리였다.

옛날 시골에서 결혼하면 이웃이나 친구들이 어울려 하루 종일 놀았는데,

요즘의 결혼 풍속도는 너무 야박해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먼저 집부터 들려 편치 않은 양복부터 벗어버렸다. 그리고 불편한 틀니도 뽑아버렸다.

결혼식 때문에 틀니를 끼웠더니, 음식 맛도 모르겠고 발음까지 정확하지 않았다.

마치 광대처럼 차려입은 불편한 것들을 모조리 해체하니 속이 후련했다.



 


유목민에는 신동여씨를 비롯하여 조준영, 김용문, 박상희, 전강호, 임태종,

유진오, 이명희, 전활철, 이정환, 성유나씨가 있었고,

툇마루에는 장경호, 헨리윤, 김진두, 배성일, 신상문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목민으로 합류한 뒤에는 이인섭, 신명덕, 한상진, 공윤희씨도 나타났다.



 


그런데 착복식 한다며 큰소리치고 나갔는데, 지갑에 돈이 십만 원 밖에 없었다.

정영신씨를 만나지 못해 생긴 일로, 돈도 없으면서 혼자 큰 소리 친 셈이다.

처음엔 임태종씨가 계산하고, 나중에는 조준영씨가 부족분을 메웠으나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어쨌든 자식 핑계로 즐겁게 놀긴 놀았는데, 너무 취해 버스 종점까지 가버렸다.


어차피 내 인생은 좌충우돌 연착이다.

 

사진, / 조문호

































 





지난 8일은 인사동사람들 만나 술 한 잔하는 셋째 수요일이었다.
죽기 전에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자고 나발 분지가 제법 되었건만,
다들 그리운 사람이 없는지, 사는 게 힘든지 잘 나오지 않는다.






그 날은 오후2시부터 인사동 나오라는 장경호씨 전화를 받았다.
일찍부터 마시면 늦게까지 버티기 힘들어 겁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난 지 오래된 최명철씨와 함께 ‘툇마루’에 있다는데...






나오다 동자동 입구에 자리 잡은 유정희씨 일당에게 덜미 잡혔다.
“날씨도 더운데, 막걸리 한 잔 해요.”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마시다보니 30분이 후딱 지나버렸다.






바삐 갔더니, 그 때까지 장경호씨와 최명철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명철씨는 전국구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일 없이 바쁜 양반인데, 모처럼 인사동에 나온 것이다.
툇마루 막걸리는 맛은 있으나 느즈막에 달아올라 힘들게 하는 술이지만, 찔끔 찔끔 받아 마셨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30여 년 동안 양념 행상을 해 온 권정선씨가 ‘툇마루’ 이층에 올라 온 것이다.
알고 보니 ‘툇마루’의 된장비빔밥에 들어가는 참기름을 권씨 할매가 댄다고 했다.
‘툇마루’를 단골로 잡고 있는 권씨 할매가 갑자기 존경스러워 보였다.
뵐 때마다 옛날 같지 않은 야박한 인사동이라 사는 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비빔밥 한 그릇 먹고 ‘유목민’으로 가다 거리에서 뜻밖의 까딱이를 만난 것이다.
이 친구 역시 인사동에서 만난 지가 30년 넘었지만,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인사동 물귀신이다.
그것도 날씨가 무섭도록 춥거나 더울 때만 나타난다.
보이지 않으면 혹시 죽지나 않았는지 걱정하는데, 그 걱정을 비웃듯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이 인간 보면 사람 목숨이 참 질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숙자들이 몰리는 서울역 부근으로 가면 밥이라도 쉽게 얻어먹을 수 있지만,
그가 즐겨 다니는 곳은 인사동이나 미술관이 몰린 곳이라 밥은커녕 사람들의 눈총만 받는다. 



 


비록 노숙하며 살아가는 걸승이지만, 내공은 보통이 아니다.
저승 떠난 화가 강용대씨가 그를 일찍부터 알아채어 유일하게 벗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는 한 때 해인사 중이었지만, 무슨 사연인지 인사동을 헤맨 지 숱한 세월이 지났다.
인사동에서는 스님들이 그의 밥이다.
얼마 전에는 조계사 경내에서 보살 한 분이 거지 행색을 푸대접 했다가 혼쭐나는 모습을 최명철씨가 봤단다.






그는 중답게 술은 마시지 않는다.
녹차는 좋아할 정도가 아니라 그의 중독자에 가깝다.
거지 주제에 따뜻한 물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 비결은 나도 모른다.
녹차 문제로 종로경찰서에 들락거린 적도 두 차례나 있는데, 그 때마다 고인이 된 ‘귀천’ 목여사가 빼 내 주었다.






아무리 꼬드겨도 그의 법명은 물론 신상에 관한 일체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무슨 의문이 그리 많은지 항상 고개를 까닥거리고 다녀 그냥 까딱이로 부른다.
탁발 또한 아무한테나 손 벌리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만 강탈하듯 뺏는다. 
푼돈이지만, 만나면 항상 갈취 당했는데, 요즘은 내 사는 꼴을 짐작했는지 돈 달라는 소리를 일체하지 않는다.






너무 반가워 담배 한 대 권했더니, “주제에 담배는 무슨 담배냐”며 갑 채 빼앗아 자기만 피운다.

오히려 내가 담배를 구걸하도록 만들었다. 좌우지간 보통 내공이 아닌 의문의 걸승이다.






이 날은 오래된 인사동 꼴통들을 자주 만났다.
돌 위에 자리 잡은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문호형님 아입니꺼?”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올려다보다 지산이었다. 이 인간 이야기 꺼내려면 날 샐 것 같아 그만해야겠다.






그 날은 막사발로 통하는 김용문씨를 비롯한 서울공고 동문들의 단체전이 있다기에 ‘나무화랑’에 올라갔다.
석심 미술전이라 이름 붙였는데, 돌에는 마음이 없으니 보나마나다.
김용문씨를 내세운 아마추어 동문들 전시였는데, 아는 분이라고는 김용문씨와 김진하관장 뿐이었다.






날씨도 내 마음처럼 왔다 갔다 했다.
비오다 더웠다 들랑날랑 하니 사람들도 많았다 적었다 날씨 따라 갔다.
‘유목민’에 자리 잡았으나 시간이 이른지 손님도 없었다.
오가며 만난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수호선생과 김명성, 공윤희, 유진오, 전활철, 박혜영씨가 전부다.






그나저나 술이 취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다들 늦게나오는데, 나오기도 전에 내가 취해버렸으니 어쩌랴!
다음부터는 오후 여섯시 이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장경호, 유진오씨를 남겨두고 삼십육계 줄행랑 쳤다.






아! 살아남기 힘들다.

제발 셋째 수요일을 기억해다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9일은 사진가 정영신씨와 함께 김수길씨 사진전이 열리는 인사동 ‘나우갤러리’를 찾았다.

전시장엔 사진가 김수길씨와 민병제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영신씨의 작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작품들을 살펴보니 마치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고분의 벽화를 대하는 듯 했다.

리얼리티보다 미적 요소들이 두드러진 사진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내포되었으나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여러 장의 필름이 겹쳐진 추상적인 이미지는 오래된 희미한 기억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작가의 사적인 기억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이 때로는 낯설기도 하지만, 작가의 사색적 고백처럼 다가왔다.






10여 년 동안 같은 작업만 반복해 온 김수길의 '시간 지우기'는 개인전만도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그의 사진을 접했을 때는 비 사진 적이라는 느낌이 앞섰으나, 이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의 한 형식임에 틀림없었다.

중첩된 각각의 필름마다 기록된 시간과 특정 장소가 존재하고 있으니, 한 장소에 대한 작가의 기억이 구체화된 것 아니던가. 

그러나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보기가 주저해 지는 것은 사실적인 기록성보다 미학적 관점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을 하기 이전에 음악과 영화에 심취했고, 미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작가였다.

그러하니 기록적 관점보다 미학적 관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어쩌면 자연스런 결과로 여겨진다.





욕심 같아서는 사진에 저장된 구체적인 기억의 데이터가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월과 함께 작업이 농익게 되면 모든 걸 초월할 수 있는 그만의 시각언어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같은 장소를 시기별로 찾아다니며 변해가는 공간을 기록하였다.

사라져가는 도시의 단면을 한 편의 영화처럼 엮어내고 있다.





그의 작업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감성이라 못 박을 수 없는 것은 엄연한 기록적 현실이 존재해 있고,

그 일련의 작업은 작가의 고뇌와 삶의 파편들이 응축된 데이터베이스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로지 한 눈 팔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를 고집해 온 '시간지우기' 작업은

누가 뭐래도 김수길표 기록법이며 이야기법이다.






지난 14일 오후5시에 가진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는 사진인보다 인사동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영준씨의 시 ‘사육된 비둘기’가 기타 음율에 실려 낭송되기도 했다. 






이순심 나우갤러리 관장을 비롯하여 소설가 배평모, 시인 이영준, 김낙영, 화가 장경호, 김 구,

무용평론가 이만주, 유카리관장 노광래, 사진가 권양수, 인사동을 사랑하는 공윤희, 유진오,

이일용, 민병제, 손인수씨 등 많은 분들이 함께 하며 전시를 축하했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나누었다.


김수길의 '시간을 지우다'전은 인사동 '갤러리 나우'(02-725-2930)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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