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낮술에 취했다.
컴퓨터를 열어보니, 잘 아는 사진가가 다큐사진으로 살기 힘든 현실을 적어 놓았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 줄서고 눈치보는 사진인이 많아진 것이다.
술 김에 카메라 렌즈가 총구였으면 좋겠다는 악담을 늘어놓았다.






또 다른 댓글은 열 받게 만들었다.
다 아는 사실을, 자기는 뒷 짐 지고 나서지 않으면서 말로만 잘난 척하는 꼴이 거슬렸다. 
그 전에는 그림 그리는 친구가 아주 저질스런 어투의 야유를 페북에 올려놓았다
둘 다 2-30년이나 된 오랜 지기지만, 사정없이 페친에서 잘라버렸다.
무슨 특권가진 대법관 방망이 휘두르듯...






술 취해 늘어져 자는데, 정영신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북촌에서 냉면이나 먹자는데, 배고픈 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밥은 안 먹고 술만 마셨더니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집 나서기가 무섭게 장경호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술 한 잔 하러 오라는 것이다.
냉면은 못 먹어도 콩국수라도 먹자며 정영신씨를 꼬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술 취해 저지른 만행이 마음에 걸렸다.
왜 이리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각박해 졌을까하는 자책이었다.
몇 년 전, 페북에 들어오며 더 그런 것 같았다.
정영신씨 말처럼, 중독되었다고 생각하니 남새 서럽다






이제 마약 같은 페북을 끊는 일만 남았다.
끊는 일이야 간단하겠지만, ‘티브이도 신문도 보지 않으니
세상과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변명 같은 고민도 한다.






‘유목민’에 도착하니 장경호씨와 전활철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목구멍에 들어가기 시작하니 깬 술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난, 술 취하면 농담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장경호씨는 질색을 한다.
술 마시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데도 자주 어울리는 것 보면 신기하다.
술자리에서 시시껄렁한 소리나 하며 웃어야지,
거룩한 표정 짖고 앉았으면 뭐하냐? 는 게 내 생각이다.






술에 녹초되지 않으려고 부지런을 떨어댔다.
그 날 인사동 '리갤러리'에서 김용문, 윤진섭 도판화 2인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용문씨가 있다는 술집 ‘시가연’에도 들리고,
인사동 거리에서 노는 외국인 노래 장단에 맞추어 엉덩이도 흔들어댔다.
소울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가게에서 손님 받는 전활철씨까지 데려가 함께 흔들었다.






“노세노세 늙어 노세, 죽고 나면 못 노나니...”

사진, 글 / 조문호
































안국역 6번 출구의 개구멍 같은 샛길,
벽치기 골목은 언제나 취객들로 북적댄다.
담배 피울 수 있는 골목 자리라,
골목이 주막이 되어버렸다.
담배 연기 자욱한 술 자리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는 정겨운 풍경이다.






지난 29일은 인사동사람들의 옛 모임
‘창예헌’ 사람들이 '경복궁'에서 만찬을 가진 후,
벽치기 골목의 ‘유목민’으로 몰려온 것이다.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방동규, 최백호, 이성, 김신용, 김혜련,
조준영, 고중록, 김용국, 오세필, 임태종, 허미자, 전인미,
이상훈, 공윤희씨 등 이십 여명이 이동하였는데,
‘유목민’에 계시던 구중서선생을 비롯하여
전활철, 서길헌, 황예숙, 정영철씨도 합류했다.






시간이 늦어 ‘유목민’으로 오신 구중서선생은
김명성씨께 선물할 붓글씨를 써 오셨더라.






유상곡수군현필지(流觴曲水群賢畢至)라고 적었는데,
여러 선비들이 어김없이 왔으니,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그 잔이 돌아오기 전에 시 짓는 놀이나 하자는 뜻이 아니던가?
술만 취하면 시를 쓰는 김명성시인이 좋아할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술만 취하면 자기 자랑에 침이 말라 듣는 이를 곤혹스럽게하고,

어떤 이는 본인 앞에서 듣기 민망한 과분한 칭찬을 해댄다. 






자기자랑도 웃기는 짜장면이지만, 넘치는 칭찬도 불편하다.
제발 교만하지 말고, 알랑방귀 뀌지 말고 살자.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추하게 보인다.


배운 것 없는 거지보다 못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수요일은 ‘나무화랑’에서 열린 “Oh! Real"전으로 많은 지인들이 인사동에 나왔다.
이제부터 모르는 사람은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으니,

인사동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라고는 사진가 정영신, 성기준씨와 건물 옥상에서 찍은 부감사진 뿐이다.

 

인사동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벽치기 골목 안에 있는 ‘유목민’은 이른 시간부터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 날은 ‘나무화랑’ 전시 뒤풀이가 열려 다들 이곳으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비좁은 길을 점령한 술상으로 골목은 정겨웠다.
술상 사이로 지나가는 행인들도 불편해 하기는커녕, 손을 흔들거나 인사 건네며 지나갔다.

인사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람냄새 풍기는 진경이었다.

 

이 날은 홍천 사는 화가 양서욱씨도 ‘유목민’에 나타났다.

불화가 이인섭선생을 비롯하여 시인 김이하, 김명성씨 화가 박불똥, 김영진, 김재홍, 장경호,

손기환, 홍성미, 조신호, 박세라, 이재민, 김정대, 미술평론가 김진하, 유근오, 곽대원씨,

사진가 이정환, 성유나씨, 최명철, 신상철, 공윤희, 유진오, 김효성, 김대웅, 노광래, 김태서,

이미례 영화감독 등 많은 분들이 등장하여 술맛을 돋우었다.

 

이 날은 분위기에 휩쓸려 너무 과음했다.

자정이 넘어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다들 난리 쳐들어 온 것처럼 도망질이다.

택시 잡느라 씨름하다 보니 술이 깰 지경이었다. 니기미~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일요일 오후,  인사동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 사진가 정영신씨와 함께

몸이 아파 꼼짝 못하고 드러누운 화가 장경호씨 위문공연에 나섰다.

다들 ‘그동안 술이 얼마나 고팠을까?’걱정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더 고팠다.
연서시장에 들려 안주를 잔뜩 장만했다.
곰장어구이에다. 가자미찜, 메밀국수까지 사들고, 불광동 집으로 쳐들어갔다.






전화 목소리는 생생했으나, 일어나기 힘들어 그런지 나오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독거의 설움이란 몸이 편치 않을 때일수록 절절할 수밖에...
마석에서 불광동으로 이사 온지가 몇 달 되었으나 집들이도 못 갔는데,
결국 집들이가 아니라 병문안이 되고 말았다.






아픈 원인은 작업하는 자세가 불편해 생긴 신경통 같은데,

작년에 나도 그 병으로 입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병원에도 가지 않고, 파스만 쳐 바르고 있었다.
아이고, 이 고집불통을 어찌해야 할까?
내일 차 끌고 와 병원에 가자고 했으나, 기어히 필요없단다.






집 안을 둘러보니. 귀가 막혔다.
사람 사는 집에 냉장고는 커녕 냄비 하나 없었다. 
밥은 커녕 라면도 끓여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집안에는 화구와 그림들만 있었고,
먹다 남은 말라비틀어진 만두 두 알과 빈 우유팩만 딍굴었다.






내가 사는 한 평도 되지 않는 쪽방도 냉장고와 냄비 등 기본적인 것은 다 갖추고 사는데,

이렇게 넓은 집에 살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기야,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큰 집을 구했다지만,
이 집 달세가 장난이 아니란다.
벌이도 신통 찮은 환쟁이 주제에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보도금지’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쪽팔려 그러겠지만, 가난한 작가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찍힌 사진을 올렸다 지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렸다.

문제는 가난해 지면, 그 가난의 늪에서 쉽게 벗어 날 수 없는 현실이다.
체면이 무엇인지, 다들 정부에서 준다는 쥐꼬리만한 복지마저 마다하지 않았던가?
돈이 사람을 망치는 요물이지만, 최소한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마음이 편치 않아, 가져간 술에 우리가 취해버렸다.
내일 다시 들리겠다며 나왔더니, 기다렸다는 듯 호출이 왔다.
어느 소장자가 이청운씨의 못 본 작품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그림 값이 만만찮은 이청운씨도 어렵게 살기는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작업 못한지가 오래되었는데, 비싸면 무슨 소용이던가?






대관절 작가는 누굴 위해 종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버는 격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9일 저녁 무렵, 화가 장경호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인사동 ‘유목민’에서 술 한 잔 하자는데,
피차 징그럽지만 어쩌겠는가?

요즘 관 같은 쪽방에 누워 꼼짝도 않고 지내는데,
귀찮지만 일어나야 했다.






꾸물대다 한 참을 지나서야 ‘유목민’에 도착했는데,
그 자리에는 장경호씨 외에도 영화감독 이정황씨와 최명철씨도 있었다.
엊그제 김구 전시 뒤풀이에서도 보았지만, 다들 반가웠다.

잘 챙겨먹지 않는 것을 아는지, 이 감독은 앉자 말자 밥부터 챙긴다.
옆에 앉아 계속 밥 숱 가락에 반찬을 올려 주는데,
마치 죽은 울 엄마가 살아온 것 같았다.






옛날엔 밥 먹어라는 소리가 그렇게 싫었으나, 세월이 지나니 그리웠다.
얼마나 밥 먹는 걸 귀찮아했는지,
마누라 혈압 올렸던 일도 대부분 밥 때문이다.






호강에 바쳐 요강에 똥 싸는 소린지 모르지만,
동자동에선 밥 먹으란 소리하는 사람 없어 너무 좋다.
배고프면 빵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니, 설거지도 필요 없다.

그런데, 그 역할을 지금 이감독이 하고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결국 한 그릇 다 비우고 말았다.






그날의 술 안주는 요즘 뜨는 김정은이었다.
김정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인 것이다.
하기야 요즘 김정은이 싫어하는 사람은 자한당 패거리 말고는 없을 것이다.


빨간색의 자한당이 빨갱이를 싫어하는 것도 그렇지만,
어쩌면 평화를 싫어하는 자한당이 빨갱이가 아니던가?






아무튼,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핵 폐기에 따른 보상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그건 핵 포기에 따른 보상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의 패권을 위해 한반도에 끼진 패악의 대가다.


제주 4,3사건을 비롯하여 죄 없는 국민들의 목숨은 얼마나 앗아 갔는가?
그 피의 대가를 김정은이가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날의 술잔은 회담 결과를 앞당긴 축배나 마찬가지였다.
이정황감독이 쏜 평화 기원 주에 모처럼 행복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조준영 시인으로부터 인사동에서 대포 한 잔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5일 약속장소인 ‘유목민’에는 일찍부터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골목 술상에는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강경석, 유진오, 김상현,

이명희, 전강호,, 공윤희씨 등 반가운 사람들이 많았다.
안 쪽에는 화가 김 구, 김 억, 한상진씨가 있었고,
뒤늦게는 김명성, 윤승길, 김수길, 신상철, 이미례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이 모임에는 술값으로 만원을 받고 있는데, 
그마저 70세 넘는 노인은 면제니, 보나 마나 적자다.

인사동을 드나드는 예술가들이 다들 가난하니, 어쩌겠는가?





예전에는 대부분의 술값을 김명성 시인이 부담하였으나,
조준영 시인이 소집하면서 부터 작은 돈이지만 회비를 받게되었다.
십시일반 조금씩이라도 모아 모임의 자립성을 꾀하려하나,
모자라는 대부분을 대학에서 교편 잡는 조준영 시인이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이날 모임에서 은평구의원에 출마한 조햇님에 대한 인사를 많이 받았다.
달세 방에서 노모와 외할머니까지 모시며 사는 가난한 형편에
불평등의 벽을 없애겠다며 정치판에 뛰어들었으니, 다들 대견스러운 것 같았다.
그 고마운 마음을 답하는 길은 기어이 당선되어 잘못을 바꾸는 길 뿐이다.






그리고 화가 박광호씨가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생선뼈만 줄 창 그렸던 박광호씨는 불운의 화가다.
장애가 깊어진 후로 인사동은 커녕 방안에서만 지내지 않았던가.






오랫동안 연락되지 않아 걱정했는데, 화가 전강호씨로 부터 안부를 전해들은 것이다.
목에 호스를 꽂아 통화가 불가능하다기에 병문안이라도 한 번 가야할 것 같다.
전강호씨가 입원한 병원을 알아내어 연락해 주면,
다들 찾아가 그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고 재기를 기원하자.





가난한 인사동 사람들이지만, 인정마저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사진, 글 / 조문호









































모처럼, 인사동 터줏대감들이 총 출동하셨다.
‘엉겅퀴 꽃’의 민영시인과 ‘한국의 아이들‘을 쓴 황명걸시인,
인사동을 노래하는 강민 시인, 문학평론가에서 서화가로 발 넓힌 구중서선생,
조선의 3대 구라 중 한 분으로 꼽히는 방배추(방동규)선생 등
인사동을 주름잡던 터줏대감들이 여럿 나오신 것이다.






암으로 투병중인 신경림시인께서 나오지 못했지만,
원로 다섯 분을 한자리에서 만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양평이나 용인 등 멀리 계시기도 하지만, 이제 연세가 많아 예전 같지 않으시다. 
열 몇살이나 작은 나도 빌빌거리는데, 다들 지팡이에 의지하며 힘들게 사신다.
이젠 작정하여 모시지 않으면, 한자리 모시기 힘들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밖에 없다는데, 친구들 끼리 한데 뭉쳐 살수는 없을까?
별로 나눌 말씀이야 없겠지만, 얼굴만 보고 있어도 추억이 줄줄 하니 행복하지 않겠는가?
이제, 인사동 터줏대감을 모시는 경로잔치라도 자주 열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창예헌“이란 모임에서 모셨으나, 그마저 풍비박살 나 자주 뵐 수 없게 되었다.






이번 모임은 지난달, 영주의 신동여화백 왔을 때 갑작스레 결정된 일이다.
그 날 ‘유목민’ 술자리에서 우연히 구중서 선생을 만난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김명성, 조준영시인이 한 번 모시자고 제안한 것이다.
29일로 정한 것은 조준영교수의 수업 없는 날로 택한 것이다.






그것도 양평 계시는 황명걸선생을 모셔오기 위해
조준영시인이 차로 모셔 와서는 끝난 후 다시 모셔 드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준영시인은 차 때문에 반가운 자리에서 술 한 잔 못 마시는 징역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저만한 제자 둔 황명걸 선생은 진짜 복 많은 분이시다. 요즘 그런 제자 없다.






29일 정오 무렵 ‘유목민’에서 오찬회를 갖기로 했으나, 갑자기 ‘툇마루’로 자리가 바뀌어 버렸다.
전활철씨는 시장까지 보아두었는데, 친구 힘들까 바 김명성씨가 바꾼 것 같았다.
그래서 ‘유목민’에서 만나 '툇마루'로 옮겨 간 것이다.
된장비빔밥과 북어찜으로 막걸리를 마셨는데, 전활철씨는 꼬불쳐 둔 중국술 한 병을 내놓았다.






그 날 마주앉은 방동규선생께서 여러 가지 충고 말씀도 주셨다.
“네가 쪽방에 들어가므로 결국 쪽방 하나가 더 늘어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노숙자 탓도 하셨다.
방선생께서는 돈을 벌기 위해 박킹 끼우는 일을 받아 하신다고 했다.

한 개 끼우는데 3원씩이니 만개를 끼워야 삼 만원 벌지만, 손톱이 달도록 일하신다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지만, 노숙자들도 여러 계층이 있다.
질병이나 신체장애로 일 못하는 노숙자도 있지만, 대개가 알콜 중독자들이다.

그러니 늘 술에 취해 있는데, 스스로의 통제력을 잃은 상태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나도 서서히 노숙자에 동화되어 간가는 점이다.
그들을 알기 위해 어울리다보니, 이제 주객이 전도된 듯하다.
그래서 지금은 노숙자들과의 술자리를 가능한 줄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뜻밖의 중국술에 이게 왠 떡이냐며 두 잔 받아 마셨는데,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오후3시부터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김경린시인 학술심포지움 사진 찍어야 하는데, 걱정스러웠다.

술 취해 찍는 취사야 몸에 베였지만, 점잖은 분들 계시는데, 쫄랑대면 남사스럽지 않겠는가?






다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냉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일어서야 했다.
뒤늦게 페북에 올라 온 사진을 보니, 김상현씨와 전활철씨가 노래를 불러가며
흥겨운 판을 만들었는데, 나만 놀지 못해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이 날 모신 다섯 선생님 외에도 많은 후배들이 나왔다.
처음 말 꺼낸 김명성, 조준영, 김상현. 전활철씨 외에도
박인식씨를 비롯하여 정영신, 장경호, 고중록, 이상훈, 김영국씨가 어떻게 알았는지 줄줄이 찾아왔다.
우짜든, 김명성씨가 잘 풀려야 이런 자리라도 자주 만들어질텐데...


부디, 선생님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요.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6일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는 셋째 수요일이다.
우중충한 날씨는 우산을 폈다 접었다 바쁘게 하지만,
곳곳에서 반가운 분의 환한 웃음을 만날 수 있었다.






'갤러리 이즈'에서 나오는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를 만났고,
영화감독 이정황씨와 산악인 반민규씨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낙원동 ‘유진식당’에서 ‘통인가게‘ 김완규씨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

기업은행 김재수 지점장, 사진가 정영신씨를 만나 냉면에 소주 말아 마셨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나 갈 곳은 많아 퍼질 수는 없었다.






'갤러리H'에서 열리는 유혜정씨의 ‘색은 속삭이다’를 보러가야 했다.
제목이 야시시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마음 설레며 그림을 둘러보고, 유혜정씨의 미소도 찍었다.






‘유목민’에 들렸더니, 낮에 조햇님 선거사무소에 같이 갔던
사진가 이정환씨와 성유나씨도 있었고,
길에서 만났던 이정황감독과 김이하, 이산하시인을 만났다.






그런데 안쪽에는 오래된 사우 배병우가 아니라 배병수씨가 있었는데,
몇 년 만에 만나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살아 있으니 만나는 것이다.
오래 전 부여에서 벌인 정액페인팅을 그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인사동 귀신인 불화가 이인섭씨와 전활철, 유진오씨 등

올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더 이상 술잔을 나눌 수가 없었다.
술 땡기는 이 꿉꿉한 날, 구경만 해야지만 어쩌겠는가?

반가운 사람 만나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그 사람들 떠나고 나면, 인사동이 인사동일까?
인사동보다 사람이 더 좋은 이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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