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의 인사동엔 방배추로 불리는 조선의 삼대구라 중 한 분인 방동규선생과
강민 시인께서 나와 오랜만에 진득한 사람냄새 나는 인사동이 되었다.






강민선생 시집 출판을 기념하여, ‘나주곰탕’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강민, 방동규선생을 비롯하여 김명성, 김상현, 조준영, 정영신씨가 함께 했는데,
술잔에 녹인 이야기는 노익장 방동규선생의 치열한 삶이었다.





팔순을 넘긴 연세지만, 요즘도 공장에 일하러 나간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삼일이지만,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손톱에서 피가 흐르는 피땀의 시간을 보낸다고 하셨다.





가방 하나 만드는데, 몇 십원 정도이니 받아보았자 얼마 되지 않는 돈일게다.
그 돈으로 체육관을 드나들며 육체미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 본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해라.






‘나주곰탕’에서 커피 마시러 ‘유담’으로 가는 중에 사진가 김영호씨를 만났다.

김상현씨와는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라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가워했다.
‘유담‘’에서 커피로 한 숨 돌린 후, ‘유목민’으로 옮기는 이차가 이어졌다.
강 민선생은 먼저 일어 나셨지만 방동규선생께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날따라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대훈, 노인자 내외가 왔다기에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산에 사는 김진규씨가 반색을 했다.
그 자리에는 임경일, 임계재씨를 비롯하여 처음 보는 미녀도 두 분이나 있었다.
김진규씨가 부산에서 전시하러 왔다는 화가 황보 연이씨와 최숙희씨를 소개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털니라도 끼고 나올 걸, 후회막급이었다.






두 분이 ‘인사아트’에 있는 ‘부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최숙희씨는 '욕망에 대한 몸의 사유'라는  전시 리프렛을 주었고,

황보 연이씨는 '그리움은 너야만 했다'라는 리프렛을 건네주었는데, 둘 다 제목이 야릇했다.

정선 갈 일로 전시를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애석했다.



 



낮술에 쥐약인 놈이 일찍부터 빨았으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본색을 드러내 미투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돈도 권력도 없으니, 미투도 아무나 하는 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뒤늦게는 공윤희, 임태종, 이인섭씨 등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그날 밤엔 인사동 악사들의 연주도 골고루 이어졌다.
전활철씨와 김상현씨의 노래에 이어 김진규씨의 하모니카 연주도 한 몫 했다.
무슨 기생도 아닌 주제에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며 홀짝거렸으니,
완전 맛이 가버렸다.






이틀 날 새벽부터 정선 갈 생각하니, 더 이상 죽칠 형편이 아니었다.
그 때까지 방동규선생께서 자리하고 계셨으나, 삼십육계 줄행랑쳐야 했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누이동생 혜숙이야 행복하게 살아다오“
 노래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유행가 자락을 뱉으며...


글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이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지난 셋째 수요일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술 맛 나게 만들었다.

그 전날은 이청운 화백 문병 온 울산의 오세필씨를 만나 한 잔했는데,

사람 핑계에다 날씨 핑계까지 대며 매일같이 술 마실 핑계를 찾는다.




먼저 이명희씨가 출연하는 ‘기타리스트’ 리허설 사진 찍으러 갔으나,

인사동에서 죽치고 있을 오세필씨 생각에 리허설이 끝나자 바로 달려갔다.

서울 온 김에 셋째 수요일의 만남에 함께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인사동 ‘시골밥상’으로 갔더니 무용가 이재은씨 내외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재은씨 내외는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한 때는 정선 만지산 작업실까지 온 적이 있었다.

근황을 물었더니, 토종씨앗 지키는 일에 몸 바치고 있단다.

토종 씨앗을 파종한 마을을 찾아다니며 잘 자라도록 춤도 춘다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좀 있으니 정영신, 공윤희씨가 나타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손님을 젊은 층으로 바꾼다는 전활철씨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다들 아는 장소라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나는 장소를 어디로 정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생태탕이 맛있는 ‘부산식당’이 좋겠지만, 수요일엔 전시뒤풀이가 많아 앉을 자리가 없다.

그리고 ‘풍류사랑’은 골목 깊숙이 있어 오가며 들리기가 까다로워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사동집’과 ‘풍류사랑’ 두 곳을 연계하면 어떨까 생각되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집약해 보기로 했는데, ‘유목민’에는 윤강욱, 김기영씨 일행이 자리잡고 있었다.




좀 있으니, ‘나무화랑’에서 열린 강행복씨 오프닝에 참석한 분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강행복씨를 비롯하여 김진하, 손기환, 홍성미, 이태호, 김 구, 한상진씨가 나타났고,

나중에는 장경호, 안완규, 김윤기, 박세라씨도 왔다.
그런데 좀처럼 빠지지 않는 김명성씨와 이인섭선생이 보이지 않았다.




그 날의 술상 안주는 화가 손연칠씨였다.

얼마 전 ‘서울문화투데이’에 인터뷰기사가 실렸는데, 문화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축배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아, 오세필씨가 전화로 왜 나오지 않았냐고 추궁을 했다.

그 또한 나처럼 미투의 언저리를 들락거리지만, 별 탈 없는 요시찰 인물이다.




술이 취하니 피로가 몰려와 먼저 일어났는데. 정영신씨 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일은 오늘 못 가본 강행복씨 전시와 사진전 오프닝 두 군데 가려면 바쁘게 되었다는 걱정에 돌아 온 말이다.

“누구를 위해 사냐? 제발 스스로를 위해 살아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일요일은 두 차례나 술자리가 생겼지만, 운전 때문에 마실 수가 없었다.
술 마시다 혼 쭐난 후 부터, 한 동안 밀밭에도 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팠겠나.

일요일엔 녹번동의 동지 정영신씨 집에서 죽치는 날인데,
느닷없이 인사동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들이 닥친 것이다.
일요일엔 녹번동서 논다는 정보는 알았겠지만, 전화도 없이 찾아와 놀랐다.
하기야, 엊그제 전화번호를 바꾸었으니, 연락 될 리가 만무했다.






평소 핸드폰을 가까이 두지 않아 전화를 잘 받지도 않았지만,
여지 것 다른 사람 명의의 핸드폰을 사용해 내 전화가 아니었다.
거지에게는 통화료를 받지 않는 전화기가 있다기에 바꾸었더니,
바뀐 번호를 안내도 해주지 않았다.

전활철씨는 배낭에 술과 안주까지 잔뜩 사왔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한 시간 후에 운전하여 김포까지 가야 하는데, 어찌 술을 마실 수가 있겠나. 
일어 설 때까지 전활철씨 혼자 술을 마셨는데, 고문도 그런 고문은 없었다.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가 인사동 ‘유목민’ 손님이 젊은 층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이 많은 자신마저 손님들이 꺼려해, 현장에서 은퇴해야겠다는 것이다.
“아이구야!” 늙은 것도 서러운데 마지막 아지트까지 뺏기면 어디로 가지?
이제 낙원동 ‘다리밑집’ 아니면 ‘풍류사랑’ 뿐이었다.





술은 남았지만, 시간되어 자리에서 일어 날 수밖에 없었다.
김포 가는 일은 정영신씨 조카 심지윤씨의 저녁초대를 받아서다.
김포로 이사 간지가 제법 되었지만, 시어머니 눈치 보느라 초대하지 못했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지방에 외유 중이라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자동차로 한 시간 가량 걸렸는데,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주차장이 종합운동장 몇 개나 되는 크기였다.
촌놈이 서울 딸 내 집에 찾아 온 격인데, 주차장에서 한 참을 헤매었다.
난, 아파트 살 형편도 되지 않지만, 그냥 준다고 해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왠지 감옥 같은 느낌이 드는데다, 그 넓은 곳을 청소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 같다.






조카사위 김중호씨가 저녁상을 마련해 두었는데, 백숙에다 소주가 나왔다.
차 때문에 한 잔 받아 입술만 축이려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식사하며 나눈 주된 대화는 어머니 험담이었다.
정치적 이념에서 부터 생활습관 등 모든 것이 달라, 같이 살기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골통 태극기부대 스타일이고, 아들과 며느리는 촛불의 주역이니 보나마나다.






돌아가신 김중호씨 부친은 박정희시절에서 전두환 정권 초반까지
중수부장과 검사장을 지냈으니, 어머니 자부심은 대단했던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굽신굽신하던 옛날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검사장 시절의 명패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자식들은 아버지의 그런 행적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것이다.
가끔 김포에서 열리는 공식적인 행사에 아들을 따라나서고 싶어 했으나,
김중호씨는 기겁한다는 것이다. “돈 프레이 뎃 송‘이란다.

태극기부대와 촛불시민의 갈등이 집안까지 번진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

사진, 글 / 조문호










토요일 저녁 무렵, 인사동 ‘유목민’으로 낭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글쟁이 조준영이가 몸 아픈 김상현을 위해 불러냈는데,
다들 대가리 컷 다고 말을 잘 안 듣는다.
기껏 광대 이명희와 장돌뱅이 정영신, 점쟁이 신단수가 전부다.





일단, 주인공 딴따라 몸이 좋아져 기분이 좋았다.
기가 살아 3월14일부터 신사동 ‘뮤아트’에서 벌리는 축제에 오라 했고,
이명희는 3월20일부터 뮤지컬 기타리스트 공연한다는 소식도 주었다.
찍사만 졸라 바빠지게 생겼다.






점쟁이 신단수는 요즘 잘 나간다.

신단수는 필명이고 본명은 김효성인데, 바로 인사동 '아라아트' 김명성이 친동생이 아니던가.
‘매일경제’와 ‘제주신문’ 두 군데에, 오늘의 운세에다 정치인 운세까지 풀어대니,

얼마나 바쁘겠는가? 문전성시다.
그 날도 정치꾼들 팔자를 불어대기 시작하는데, 약 좀 팔더라.
오죽 잘 나가면, 복채를 내야 할, 내가 받았겠는가?






요즘 쥐띠부인이란 미친년한테 좆 물려 내 정신이 아니다.
점쟁이 신단수는 쥐띠부인 수를 훤히 깨고 있었다.






어저께 페북에 ‘쥐띠부인은 미친년인가? 나쁜년인가?“라는 글을 올렸지만,
너 정말 잘 못 물었다. 니 죽고 내 살기로 뽄때를 한 번 보여 줄란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던, 몰캉몰캉한 옛날 껄득이가 아니다.





불길한 까마귀그림에 눈깔이 뒤집어진 모양인데,

그게 탐나면 그냥 달라하지, 왜 병문안 핑계로 미친 척 쇼를 하냐?






페친인 광대나 딴따라는 그 사건을 잘 알았으나, 글쟁이는 몰랐다.
장돌뱅이가 핸드폰으로 보여주니, 제목이 찝찝하단다.






다들 정선 귤암리에서 벌릴 동강할미꽃 축제날 오라고 나발 불었다.
박광호 까마귀그림 화형식 퍼포먼스에서 한 판 놀자는 거다.
“한 자락 뽑을라카마, 목아지를 위해 날계란이라도 좀 묵어둬야 겠다.
봄바람에 연봉홍 치마나 한번 날릴까 보다.

그 날 잘하면 미친년 신도 내려줄 수 있는데...




 


뒤늦게 청계광장에서 518망언자 구속시키라고 데모한 정영철, 최명철, 김이하 등

데모꾼들이 나타나 주막이 흥청대기 시작했다.  
김이하는 양놈 좆 같은 대포를 들이대고 사정없이 박아 재켰다.






아무리 술 마시기 바빠도, 노래 한 곡 없어서야 되겠나?
딴따라 더러 한곡만 뽑으라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불렀다.
‘떠날 때는 말없이’라며 청성 스럽게...






“그 날 밤 그 자리에 둘이서 붙었을 때
똑같은 그 순간에 똑 같은 마음이
달빛에 젖은 채 밤새도록 즐거웠죠
아~ 그 밤이 꿈이었나 비 오는데
두고두고 못 다한 말 가슴에 새기면서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사진: 정영신,조문호 / 글 : 조문호






주연: 김상현, 조준영, 이명희, 정영신
조연: 전활철, 신단수, 정영철, 최명철, 김이하
엑스트라: 이인섭, 윤승길, 김교서, 이필립, 이용우, 김택규, 박완규 등등

촬영: 조문호

















































전활철이가 드디어 민예문구사업을 시작했다네.








지난 셋째 수요일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는 날이었다.
요즘 몸이 편치 않아 움직이기 싫으나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가면 얼마나 더 나갈 것이며, 만나면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조급증에서다.






인사동은 훤하게 불 밝힌 관광상품 매장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전시장을 다녀오는 화가들의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인사16길' 골목은 술시가 이른지 조용했으나,
코너에 있던 전시장 ‘보고사’가 골동품 매장으로 바뀌었더라.






그 곳은 여러 차례 전업을 거듭하는데,
아무래도 골목 모서리라 술집이나 음심점으로 바꾸는게 나을 것 같았다.






‘유목민’에 들렸더니, 반가운 분들이 많이 와 있었다.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서길헌, 김영국, 김상윤, 김각환,
신상철, 이미례, 이승철, 박완규, 전활철씨 등 여럿 모여 있었다.






그 날 이야기는 ‘광복회 3,1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실시하는 독립선언문 이어쓰기에 이성 구로구청장이 지명 받아서다.
이성씨는 탑골공원이 있는 종로구 김영종 구청장과 항일 유적이 많은 완주군의 박성일군수,
그리고 만 여 점 넘게 독립운동 사료를 모은 김명성씨 등 세 사람을 지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김명성씨는 하는 방법을 몰라 못했다는데, 인터넷하는 젊은 직원에게 부탁해야 할 것 같았다.
받은지 48시간 안에 독립선언서 한글본과 한 문장 필사 사진을 첨부한 게시물을 업 로드해야 한다,. 

필사한 후, 다음 문장을 이어 필사할 3명을 지목하면 된다.






독립운동가의 비장한 심정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독립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뜻 깊은 일이다.
많은 분들이 3·1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에 동참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이야기로 침을 튀길 때가 종종있다.
다들 미식가기도 하지만, 사는 재미가 별 없으니, 할 이야기가 뭐 있겠는가?
맛 보다 끼니 때우는 게 급급한 나로서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지만...






김명성씨는 홍어 애탕 이야기를 꺼냈다. 

‘애간장 끓인다’는 옛말도 애탕이 너무 맛있어 나왔다는 것이다.
황복이 맛있느니, 돔이 맛있느니, 온갖 생선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난, 조개가 맛있다고 맛장구 쳤더니, 김용국씨는 한 술 더 떴다.
“전복이 더 맛있어! 살아있는 전복에 참기름 치면 꿈틀꿈틀하는 맛이 죽인다”나...






씰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나 동참하자.
다 같이 3.1운동 100주년의 독립운동 정신을 되 세기며, 진정한 통일을 염원하자.






그리고 3.1절 백주년 행사로 열리는 줄 댕기기와 신명천지 열두마당도 참여하자.

이래는 2월 26부터 3월1일까지 청계천광장에서 펼쳐지는 일정이다.


26일: 4시 줄비나리
27일: 오전 9시~ 진도북놀이와 풍물
28일: 오전 10시부터 줄 말기 / 1시30부터 줄고사, 청수 의례춤 /

        오후 2시부터 신독립선언문 낭독 /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전야제- 시대상황극 12마당 -

3월1일: 4시부터 줄이 나가지만, 미리 오셔서 함께 줄을 짊어지자.
 


사진, 글 / 조문호
















김기춘 '우포의 아침'



지난 1일 터키에 초빙교수로 가 있는 김용문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인사동 나왔으니, 대포 한 잔 하자는 전화였다.






이틀 전, 인사동 출입을 자제하며 사람을 가려 만나겠다는 결의문에 가까운 글을 올렸건만, 안 나갈 수 없었다.
그는 30여 년 동안 인사동에서 어울려 온 ‘인사동 사람들’ 원조가 아니던가.
‘사나이 명세 개 명세, 자고 나면 새 명세’란 말이 딱 맞았다.

몇 일을 참지 못한 채, 결심 자체가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담배 못 끊는 것이나 사람 못 끊는 것이나 똑 같은 이치다.
의사가 담배를 끊지 않으면 죽는다는 협박에 가까운 말에도 피우듯이,
인연을 끊는다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






초저녁부터 인사동으로 들어서다, 초입에서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를 만났다.

정영신씨 상가에서 만난 후 처음이라 같이 술 한 잔하고 싶었다.

그와 함께 ‘마루’에서 열리는 김기춘씨 전시회 부터 들렸는데,

전시 작가인 김기춘씨를 비롯하여 배병수씨도 와 있었다.






김기춘씨는 내 고향 옆 동내인 ‘우포늪’으로 간지가 7년이 되었다는데,
전시된 사진도 ‘우포늪’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추측은 했지만, 우포늪의 생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곽봉수, 김갑진, 김경화, 김권하, 이상근, 추향자씨 등 화가들과 어울려 여는

단체전이라 그런지, 사진보다 그림에 가까웠다.
‘마루’의 ‘빛그늘 초대전’은 오는 12일까지 열린다.






김용문씨가 기다릴 것 같아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목민’은 밖이 보이도록 통유리로 창을 만들어 놓았더라.
천상병선생께서 막걸리 드시며 윙크하는 오래된 내 사진을

투명판에 프린트해 붙이겠다는데, 공정이 까다롭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 때까지 주인공이 오지 않아, 최건모씨와 먼저 자리 잡았으나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에 김용문씨가 나타나니,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반가운 분들이 모여 들었다.
최종선, 공윤희, 김명성, 이인섭, 유진오씨가 나타났고, ‘풍류사랑’에서 넘어 온 ‘민미협’ 팀들도 속속 등장했다.
최석태, 최병수, 이인철, 김명희, 김정환, 심정수씨 등 십여 명이 모여드니, 술집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터키에서 귀국한 김용문씨는 인사동 여관방에 짐을 풀고 묵는 중이라 했다.
오는 13일부터  '통인갤러리’에서 막사발전이 ‘열린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 듯, 그도 삭아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빠져 그런지, 말아 올린 상투가 애들 고추처럼 작아 졌더라.






그날의 이야기 거리는 ‘세계막사발미술관’이었다.
완주 삼례에서 ‘막사발미술관’을 폐관한다는 소식은 진즉 들었으나,
그 때가지 이전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터키에서 ‘막사발미술관’을 옮겨가겠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김명성씨의 야심찬 프로젝트도 들었지만,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어야겠다.
김명성, 김용문, 최근모씨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취기가 올라 합 바지 방귀 새듯 사라졌다.






늘 인사동에서 술 취해 나오면 갈등을 느낀다.
동자동으로 갈 것인가? 녹번동으로 갈 것인가?
유행가 가사처럼, 차라리 미아리로 가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뮤지션 김상현씨가 중병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아는 분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 이야기로 걱정 해왔는데,
뜻밖에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 노래까지 들을 수 있었다.






지난 25일 인사동 ‘유목민’의 실내 공사를 한다기에 찾아 간 것이다.
외장에 사용할 오래된 인사동 풍경사진을 의논하기 위해서다.






강남의 송재엽씨 기공식에 갔다가 ‘통인가게’ 관우선생 차에 편승해 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분을 만난 것이다.






한 때 인사동에서 ‘북스’란 책 갤러리를 운영한 김호근씨 였다.
제주도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마치 인사동 유령이 나타난 것 같았다.






일단 볼 일부터 본 후, '유목민'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먼저 임하룡씨가 전시를 한다는 ‘토포하우스’로 갔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른 채 이야기만 듣고 갔는데,
개인전이 아니고, ‘제5회 오늘전’이란 단체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2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임하룡씨 외에도 정승재, 심영숙, 이경근,
박춘우, 이유림, 김은숙, 백순진, 한정혜, 권혁철, 샤샤정, 장용주, 이혜영,
유준희, 이준섭, 최재영, 오현금씨 등 열 일곱명의 화가가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임하룡씨 외에도 정승재씨를 만난 것이다.
전시 보러 오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참여 작가라 했다.






그 부지런함에 존경감이 일었다.
학교 강의하랴 소설 쓰라, 이젠 그림까지 그리니, 식구들 얼굴 볼 틈은 있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제 작업에 물이 올랐나보다.






전시를 돌아본 후 ‘유목민’으로 갔다.
‘유목민’ 안방을 터, 통유리로 밖이 보이게 하는 모양인데. 화가 양서욱씨가 열심히 돕고 있었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반가운 사람이 줄줄이 나타났다.
‘유담’커피숍 앞에 김명성씨가 서 있었고, 안에는 정기범씨가 계셨다.






좀 있으니, 김호근씨가 찾아 와 ‘유목민’에 자리잡고 막걸리를 시켰다.
이어 김완기, 최종선, 김영국, 김상윤씨가 줄줄이 등장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김상현씨가 나타나, 죽은 사람 살아온 듯 반가웠다.
김명성씨가 연락했다는데, 좀 수척해 보이기는 하나 생각 외로 좋아 보였다.






그동안의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그의 노래까지 들을 수 있었다.
‘회상’과 ‘떠날 때는 말없이’ 두 곡을 불렀는데, 너무 절절했다.
감정에 몰입되어 터져 나오는 노래 소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김상현씨의 노래 소리가 오랜만에 인사동을 울렸다.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사진, 글 / 조문호





'제5회 오늘전' 전시작


임하룡작

임하룡작

이준섭작

장용주작

샤샤정작

정승재작

정승재작


























 




날씨가 갑자기 추워 그런지, 년 말이 되어도 인사동이 별로 흥청대지 않았다.
구세군의 종소리를 뒤로하고, 뭐가 바쁜지 다들 종종 걸음만 친다.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로는 ‘민예총’ 기금마련전이 열리는 ‘관훈갤러리’가

그 중 볼거리가 많은 전시라, 보았지만 다시 들렸다.






이층에는 이재일씨와 서인형, 정영신씨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 관람객도 띄엄 띄엄 있었다.
그런데, 전시작의 배치도 바뀌었지만, 처음 보는 작품에 눈이 번쩍 띄었다.






개막식에 없었던 신학철선생의 사진 콜라주 작품이 한 점 나온 것이다,
알아보았더니, 돌아가신 김윤수선생 사모님께서 ‘민예총’에 기증한 작품이라 했다.
그 작품은 민중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가격도 적지 않아, 고마운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고인이 된 김영수씨 사진도 두 점이 더 걸려있었다.
사진가 정인숙씨가 추가로 가져왔다는데,

한 점은 갯벌이 펼쳐진 을씨년스러운 포구 풍경이고, 한 점은 주재환선생의 젊은 시절 모습이었다.
이젠, 주재환선생께서 ‘미투’작품 판 돈으로, 그 작품을 사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군데군데 빨간 딱지가 붙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신학철선생 판화를 비롯하여, 주재환, 민정기, 박홍순,
이원식, 이태호, 강요배, 박재동씨등 여러 점에 붙어 있었는데,
한 작가의 작품이 두 점 팔린 것은 세 작품이나 되고,
이태호씨의 판화는 네 사람이 딱지를 붙였더라. 



 


이 정도면 불경기에 괜찮은 전시로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몇몇 컬렉터가 찜해 놓은 작품이 있다니,
‘민예총’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은 마련할 것 같았다.






이 전시가 끝나는 1월6일에는 모두 나와 신명난 황금돼지의 꿀꿀이 잔치한 번 벌이자.
‘민예총’사람이던, ‘인사동 사람들’이건, ‘사진쟁이’건, 모두들 꼬인 것이 있으면,

그 날 액을 풀며, 새로운 한 해를 맞자,





나쁜 놈인 이승만의 말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말이 생각난다.

“뭉치면 살고, 흩어 치면 죽는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