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은 동자동 복귀하는 날이었다.
주말에 정영신씨 집에서 쉬고 아지트로 돌아가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 였다.
“행님 어딧습니꺼? 녹번동이마 시상식 중계 보면서 술 한 잔 하입시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출발한 것 같았다.

 

 



이 집은 밥을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정오 무렵에 밥 먹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마침, 정영신씨가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 놓았다.
자식 자취방에 보내는 심정으로, 가는 놈 몸보신 시킬 속셈이었다.
마침, 전 날이 보름이라 오곡밥과 나물도 남아 있었다.
술은 이름도 거룩한 ‘불사주’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었다.

 

 



전활철씨는 오전에는 시장보러 다녀 항상 등짐을 짊어지고 다닌다.
보따리를 뒤지더니, 송이버섯을 꺼냈다.
철 지난 송이라 향은 없으나, 명색이 송이버섯이 아니더냐.
그 정도의 술안주면 요리집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누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요즘 제주에서 벌어먹는 공윤희씨였다.
반갑게 어울려 함께 술을 마셨는데, 화제는 온통 ‘기생충’ 이야기 뿐이었다.
난, 상 받는 자체를 좋아했지만, ‘기생충’이란 영화 내용도 몰랐다.
대략의 줄거리를 들어보니 흥미롭기도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건드려 더 관심이 컸다.

 

 


그나자나, 이 집은 영화 보는 모니터는 있으나, 티브이를 볼 수 없도록 해 놓았다.
노트북으로 YTN 뉴스 틀어 놓고 마셨는데, 빈속에 들어가는 낮술이라 기분 좋았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기생충’ 상 받는 게 안 좋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전활철씨는 남다르다.
봉준호 감독 일행이 ‘유목민’ 단골이라 그 속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각본상에 이어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네 개 부문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모두 들떴다.
다들 기분 좋아 축배에 축배를 거듭한 것이다.

 

 



전활철씨는 가게 문을 열어야 하니, 아쉽지만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을 뇌까리며...
뒤이어 조해인시인이 왔고, 한 참 후에는 사진가 김수길씨도 등장했다.
코구멍한 집구석에 인근에 사는 인사동 사람들은 다 등장한 것이다.

 

 



술 기운에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여기 저기 전화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공윤희씨가 미국 사는 최정자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가며 바꾸어 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 반갑기는 했으나, 미국 같으면 그 때가 새벽3시 무렵이었다.
잠자는 노친네를 깨운 그 죄를 어쩌려고, 정말 대책 없는 술꾼들이다.

 

 



기분 좋게 취했으나, 조해인씨는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신 것 같았다.
신이 나서 십팔 번 노래까지 불렀는데, 문제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부득이 집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자리가 파하자 나 역시 녹초가 되어버렸다.

 

 

 

밥 먹으며 간단히 끝내려 했던 술자리가 결국 하루 종일 땡땡이 친 셈이다.
자고 일어나니 몸속의 기생충이 들고 일어났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불사주'는 관절에 특효인 약술로 조금씩 마시면 아주 편하게 취하는 좋은 술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술도 지나치면 독일 뿐이었다.

 

 

 

몸이 안 좋아 술을 피해 다니니, 술이 나를 찾아다니는 격이었다.

 

 



하루종일 땡쳤으니, 국 쏟고 뭐 데인 격이지만 누굴 원망하랴!
술이 원수냐? 상이 원수냐? 친구가 원수더냐?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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