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 쳐 박혀 알 까는 중에 사모님께서 날 잡으러 왔다.

누군가 술집에서 기다린다며 빨리 가자고 협박이다.

요즘은 꼼짝하기가 싫다, 아니 아무도 만나고 싶지가 않다.

사람 좋아하던 놈이 사람 싫어지면 인생 끝난 거 아니겠나?

사람 좋아 사람 찍던 카메라도 놓아야 하고...

 

그러나 사모님 명 어겼다간 밥 한 술 없어먹기도 힘들어진다.

소 도살장에 끌려가듯 녹번동 어느 술집에 따라 갔는데,

느닷없이 미술평론 하는 최석태씨가 입구를 향해 큰 절을 올린다.

거의 절하는 자세가 죽은 놈에게 하는 폼이다.

아니면 죽은 놈이 살아 돌아와 놀라서 하던지...

 

그 자리에는 스마트협동조합 서인형씨도 있었는데,

다들 일 끝나고 한 잔 하는 자리인 것 같았다.

 

난, 나랏말은 잘 듣지 않아도, 거리두기 하나는 잘 지킨다.

사람들 만나기 싫은 것을 거리두기에 핑계대는 것이다.

사람들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처신하기가 불편해서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최석태씨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몸이 편치 않아 술자리를 삼간다는 뜬소문도 엄살인 것 같았다.

그 날의 화제도 술과 건강문제인데, 술안주로 장경호, 전활철씨가 올랐다.

둘 다 애주가이지만, 술에 골병들어서다.

 

한 사람은 술장사를 하니 술을 피할 수가 없고,

한 사람은 밥은 안 먹고 술만 마시니, 피골이 상접해서다.

 

먼저 간 친구들이 대부분 술 때문에 갔으니, 어찌 걱정스럽지 않겠나?

나 역시 술을 좋아하지만 조금만 과음해도 숨 쉬기가 힘들어 술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어쩌면 호흡기 문제가 명줄을 연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치고, 어렵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어려운 형편에 술 값은 어떻게 마련하겠는가?

사람 좋은 최석태씨는 백만원만 빌려달라는 지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서인형씨에게 빌려서 주고, 갚지 못해 걱정을 한다.

 

아무리 없는 사람 사정은 없는 사람이 안다지만,

여지 것 빌려주고 한 번도 돌려받지 못했지만, 그 짓을 반복한다.

무슨 천적인지, 무슨 악연인지 모르겠다.

 

없는 개털 주제에, 돈 좋아하지 말라고 노래 부르지만,

살아남기 위해 안달하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비참하게 사는 것과 비굴하게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차라리 의롭게 죽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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