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 요~. 이 내 사연 한 번 들어보소.

옛날 같으면 고려장 할 이 나이에

소가 갈아야 할 땅 파 엎느라 녹초가 되어부럿소.

손바닥 물집은 터지고 허리는 펴지지도 않는데,

슬피 울어주던 새소리 끊긴지도 오래 되었소.

사는기 죽는 긴지, 죽는기 사는 긴지 나도 모르것소.

이 좋은 봄날, 신세타령 한 번 합니더.

 

옛날 할매들의 한 맺힌 팔자타령을 늘어놓는 것은 이 보다 더 좋은 위안의 말이 없어서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정선 만지산에 농사 지으러 갔는데,

이제 체력의 한계가 서서히 느껴졌다.

매년 반복되는 농사지만, 땅 파 뒤 짚는 일이 제일 힘든 일의 하나다.

소도 경운기도 없이 오로지 곡괭이로 파 엎어야 하는 데, 간이 쑥 둘러빠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곡괭이질도 서서히 느려질 수밖에 없다.

한 번 파고 헉헉대고, 두 번 파고 낑낑대다 결국 한 밭때기는 남겨야 했다.

 

몇 년 전만해도 밭 주변 나뭇가지에 다양한 산새들이 날아들었다.

힘들어 낑낑대면 새들이 조잘대며 다독이거나

뻐꾹뻐꾹 노래도 불러 주었으나 이제 새소리 멈춘 지도 오래다.

온 산을 개간해 농약을 뿌려대니, 새들도 더 이상 살 곳이 아니라 여겼는지 모두 떠나버렸다

 

어둡기 전에 집 주변 청소부터 해야 했다.

겨울내내 집을 비웠으니 집 주변에 몰린 낙엽이나 나뭇가지가 흩어져 할 일이 태산 같다.

오랜만에 지피는 군불이라 온돌 데우려면 불도 많이 지펴야 한다.

태울 것들 부엌에 가득모아 낙엽을 의자삼아 군불을 지피는데, 연기가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호흡기에 문제가 있어 약과 흡입기를 입에 달고 살지 않는가?

숨이 차고 눈물이 나도, 낙엽 타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가 정겨워 참는다.

 

낙엽과 가지들을 다 태우고 나니 방안에 연기가 들어차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바닥 곳곳에 구멍이 생겨 연기가 방안으로 들어 간 것이다.

방안 가득 찬 연기가 다 빠져 나가려면 오래 걸리지만,

검은 산 바라보며 잡 생각에 빠지는 시간도 싫진 않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연기가 다 빠져나갔는데,

라면 끊여먹고 방 청소 하니 밤 두시가 가까웠지만, 이 얼마만의 안온함이냐?

따끈따끈한 온돌에 아픈 등 지지는 그 노골 노골한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가히 여인네 품속과도 비길 수 있는데, 만약 품속까지 있다면 난리 나는 거지.

 

동창이 밝아 눈을 떠니 오전 아홉시가 되었다.

예전에는 창이 밝아오면 새 소리가 시끄러워 늦잠을 잘 수 없었는데.

깨워 줄 새들이 사라졌으니, 일손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온돌 덕에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돌아가신 강민선생의 동오리 집 방문앞에 핀 목련꽃에 반해

심었던 목련의 키가 지붕을 훌쩍 넘었는데,

이제 막 피어나려고 봉우리를 맺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목련 꽃 아래서 술 한 잔 할 수 있겠구나

 

저녁 무렵 서울로 돌아가려면 할 일이 바빴다,

먼저 산소부터 들려 아머니께 인사드렸다.

“엄마! 저승에는 코로나가 없는기요?” 물어도

오랜만에 찾아 삐쳤는지 대답도 없더라,

 

땅에 밑거름 뿌리려면 정선 읍내 퇴비 사러 가야했다.

가는 길목에 핀 ‘동강 할미꽃’에 어찌 문안드리지 않을소냐?

아직은 이른 시기지만 성질 급한 할미 몇몇은 벌써 고개 내밀었더라.

벼랑에 핀 할미 보며 노래 불렀다

 

“동강 할미야

열길 높은 벼랑에

누굴 그려 피었느냐?

칼바람에 오무렸다

햇살에 핀 동강 할미야

죽은 울 엄마 생각나는 동강 할미야.“

 

정선농협에 비료 사러 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점심시간이었다.

마음은 바쁜데, 시간만 죽여야 했다.

퇴비 열 포 사 싣고 만지산에 돌아온 것 까지는 좋으나

또 하나의 고난도 일거리가 남았다.

마당에서 밭까지 퇴비를 올리는 일이었다.

 

언덕에 박아 놓은 토끼궁댕이 같은 돌계단 따라

비료 들어 올리는 일은 그의 곡예에 가깝다.

퇴비 무게에 자칫 중심을 잃으면 나자빠지기 십상이다.

줄 타듯 중심 잡아 올라가는데,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힘만 좋다면야 등짐으로 올리면 좋으련만,

힘이 딸리니 기생첩 끌어 안 듯 가슴에 안아 오르는데,

평소 여인네를 그렇게 끌어안아 주었다면 말년이 이렇지는 않을 게다.

 

어렵사리 퇴비 다 뿌리고 떠날 채비를 했다.

점차 힘들어지는 농사를 그만 두겠다며 다짐에 다짐하지만 봄이 오면 다시 반복한다.

작년에는 땅에 휴식년 준다는 결심까지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땅을 놀리면 안 된다’는 농꾼들의 지론을 핑게 삼지만,

그 일마저 그만둔다면 이 산골에 일 년에 몇 번이나 올 수 있으며,

산 위에 누운 울 엄마는 얼마나 외롭겠는가?

그리고 정동지에게 무공해 야채를 전해 주는 그 즐거움은 어쩌랴?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약으로 긴 세월 애용했던 대마다.

농작물이야 농사 짓지 않아도 어디서나 구할 수 있으나

마약 올가미 씌워 놓은 대마는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밭 언저리에 몇 포기 심어 나물도 무쳐먹고, 강정도 만들어 먹고 술도 담아 버티는 것이다.

몇 년이나 더 버틸지 모르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안은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강변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나른한 밤길 운전에 졸음까지 몰렸으나, 졸음 쫒는 특효약을 잊어버렸네.

깜빡대는 졸음에 놀라 몸을 꼬집기도 빰을 때리기도 했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차창을 모두 열어 재치고 미친 놈처럼 노래 불렀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 길...”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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