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동지로부터  원주 새벽시장 촬영 떠난다는 지령이 떨어졌다.

오래 전부터 원주 김진열씨가 원주장 오는 길에 한번 들리라는 말을 했지만 못갔다.

일정이 맞지 않아 미루어 왔는데, 드디어 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새벽시장을 보기 위해 일찍 출발하느라 잠을 설쳤다.

오전 다섯시 무렵 출발했지만, 정확한 정보가 없어 허탕쳤다.

원주 새벽시장은 봄 야채가 나오는 4월부터 선단다.

 

화가 김진열씨는 정오 무렵 만나기로 약속해 원주 인근의 유적부터 돌아보았다.

문막 반계리에 있는 은행나무 부터 찾아 갔는데, 수령이 800년이나 되었지만 건강했다.

 

땅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서는 2∼3m 높이에서 다시 갈라져

가지가 사방으로 고루 퍼졌는데, 그 웅장한 자태가 장관을 이루었다.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목으로 섬긴다고 한다.

 

은행나무 주변 빈터에 돋아 난 쑥을 캐, 다음 날 쑥국을 끊였으나 향기가 없었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쑥들이 왜 쑥의 고유한 향기가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다음에는 주포리 미륵산에 있는 미륵불을 찾아 나섰다.

미륵산 자락에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경천묘가 있고,

황산사 터에는 삼층석탑도 있는데, 이 지역이 원주팔경에 들어간다.

 

 

경순왕은 정권을 이양한 뒤 전국의 명산을 두루 다니다가

미륵산 경관에 반해 이 곳에 미륵불상을 조성하여 의탁했다고 한다.

미륵산은 경순왕의 애환이 서린 산이라고 전해진다.

 

경천묘를 지나야 황산사터가 나온다는데,

사지는 어딘지? 미륵불은 어디 있는지? 안내판이 없어 알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부도 탑이 나왔는데, 사방을 둘러 싼 돌탑이 정겨웠다.

 

한참을 올라가니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 나왔다.

두꺼운 지붕돌의 처마 받침을 3단으로 나눈 삼층석탑이었다.

몸돌이 가늘고 높아 전체적으로 길쭉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그 곳에도 미륵불은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는 이정표에 1km를 더 가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으나 돌아 갈 수는 없었다.

아무런 등산준비도 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정동지는 경마장 가는지 부츠를 신었고, 난 쪽방 촌에서 얻은 운동화를 신었는데,

신발이 맞지 않아 수시로 벗겨졌지만.포기할 수 없었다.

정동지 더러 석탑에서 기다리라 말하고 혼자 서둘러 올라갔다.

 

급경사가 많아 숨이 점차 가빠지기 시작했는데, 가파른 산길 1km는 만만치 않았다.

석불이 산봉우리에 있었다면 아예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벗겨지는 신발을 묶기 위해 줄을 찿았으나, 칡능쿨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중에 포기할 수 없도록 확실한 목표를 정해 버렸다.

미륵불을 만나 소원을 빌지 않는다면 눈앞에 닥친 일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미륵불이 나를 시험한다고 못 박은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라도 그 소원은 꼭 이루어져야 했다.

동자동 재건축이 계획대로 추진되어 쪽방주민들이 한 곳에 입주하는 일이다.

 

쪽방에서 벗어나 모처럼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고 다들 위안하고 있다.

남은 것이라고는 수십년 동안 쌓아 온 이웃 뿐인데,

가진자들 논리로 여기 저기 내 쫒아 외롭도록 만들어야 하겠는가?

 

정부의 동자동 재개발 사업을 이어 갈 사람은 박영선후보가 적임이라는 생각이다.

건물주들은 재건축을 반대한다며 골목 골목 붉은 깃발을 꽂아 저항하고 있는데,

한 패나 마찬가지인 보수 권력의 시장이 된다면 그 사업에 협력하겠는가? 

그 일을 위해 박영선후보가 되도록 기도하려는 것이다.

 

확실한 목표가 생기니, 그 때부터 발길도 빨라졌고 힘도 덜 들었다.

 

철계단이 나오기에 다 온 줄 알았더니,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로프를 사용해 가며 철계단을 세 번이나 거쳐야 했다.

계단도 말이 계단이지 사다리나 마찬가지였다.

등산이란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놈이 제대로 걸린 것이다.

그래도 그런 절경을 어디서 볼 것이며, 이런 체험을 언제 해 볼 것인가?

 

드디어 정상에 다 올랐다. 펼쳐진 자연풍광에 가슴이 뻥 뚫렸다.

미륵산 정상 가파른 절벽 동쪽을 향해 대형 미륵불을 새겨놓았는데,

가까이는 그 모양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고 멀리서 보아야만 형체를 알 수 있었다.

 

미륵불 앞에 엎드려 박영선후보가 당선되도록 빌었다.

난생처음 주머니를 털어 시주까지 했다.

오래전부터 불교유적을 찾아 전국 사찰을 다 다녔지만, 시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돈도 없었지만, 돈에 눈 먼 중이 싫어서다.

 

미륵상을 담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위치가 마땅치 않았다.

미륵상이 다 나오려면 멀리 떨어져야 하는데, 허공에서 찍어야 했다.

드론이 아니고는 정면 촬영이 안 되는지라, 부득이 원주시청 홍보사진에서 한 컷 옮겼다.

 

드론으로 정면에서 촬영한 미륵불상 / 사진, 원주시청

내려오려고 발길을 돌리니, 멀리 정동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함지 같은 엉덩이를 휘젓고 올라오는데, 미칠 지경이었다.

하기야! 600여 곳이 넘는 전국 장터를 모두 찾아다닌 악바리가 아니던가?

그 역시 포기할 줄 모르는 동지다.

 

목적을 이루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가기로 한 '보문사 청석탑'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진열씨와 약속한 정오가 훨씬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좀 늦겠다는 전화는 했으나 예삿일이 아니었다.

 

배도 고프고 목이 말라 허급지급 내려왔다.

약속한 ‘원주복추어탕’집에 도착하니, 오후 두시가 되었다.

미륵불 찾아 온 산을 헤매다 왔는데, 진짜 생불은 추어탕 집에 앉아 계셨다.

너무 반가워, 미안한 생각도 잊어버렸다.

 

추어탕을 시켜 놓았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밥 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시장기도 한 몫 했지만, 추어탕이 너무 맛있고 밑 반찬도 정갈했다.

배를 채우고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옛날 장터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는지, 옛날 장바구니 이야기를 꺼냈다.

오래 전에는 군용 삐삐선으로 엮은 장바구니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나도 어렴풋이 생각났다. 갑자기 재미있는 기획안이 떠올랐다.

옛날 장터의 기억을 찾아 내는 여러 작가들의 장터 향수전 같은...

 

김진열씨가 상지영서대학 총장으로 있는 줄 알았는데,

정년 퇴임한지가 한 참 되었다고 했다. 세월이 너무 빨랐다.

그리고 한반도지형이 있는 영월군 선암길에 작업실을 만들기 위해

부지를 마련했다는 소식도 전해 주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지만, 김진열씨 안내로 원주 풍물시장에 들렸다.

마땅히 찍을 것도 없는데다, 옆에서 기다리는 것도 마음에 걸려

서둘러 다음 갈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원주 흥업면에 있는 원주천주교 대안리공소로 갔는데,

안내하는 김진열씨 조차 한 참을 헤매었다.

가본지가 10년이 되었다는데,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던가?

대안리공소 위가 산이라 아무 것도 없었다는데,

산을 개간하여 많은 전원주택들이 들어 서 있었다.

 

천주교 대안리공소는 목조 여섯 칸 한옥 건물인데, 참 아담했다.

원주지역에 유일하게 남은 공소로 1900~1906년 사이 뮈텔 주교가 건립했단다.

한국 전쟁시에는 인민군 막사로 사용되기도 했고,

전쟁 후에는 미군 구호물자 보급소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역 교회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었다.

 

비 맞아가며 돌아다닐 처지가 아닌지라, 아쉽지만 헤어져야 했다.

차나 한 잔 하자며 문막의 ‘애뜰리’란 찻집으로 안내했다.

벽난로에 장작불까지 지펴놓았는데, 젖은 옷 말리기 딱 좋았다.

 

찻집이 제법 넓은 공간인데, 천장이 낮으니 아늑했다.

그걸 보니 전시장이 무조건 높아야 할 것은 아니었다.

천장이 높아야 작품 설치도 용이하고 시각적인 존재감도 높여주지만, 다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때로는 이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천장 낮은 전시장이 효과적인 작품도 많다. 

 

김진열씨는 교육자고 화가였지만, 농사꾼이기도 했다.

나야 정선에서 텃밭 좀 일구면서도 난리를 치는데, 제법 많은 농사를 짓는단다.

농군답게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는 단비라 했다.

심어 둔 감자가 잘 자라겠다며 흐뭇해했다.

 

그 모습이 바로 생불이었다.

사람도 진국이지만, 그림도 죽인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생존화가 다섯 손가락에 꼽는 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거칠다.

임꺽정 같은 격정의 힘과 분노가 치솟는다.

 

새벽시장에서 바람맞아 미륵산을 헤매는 시련은 있었지만, 오늘 일진은 대통이다.

미륵불에 기도 올리고, 생불만나 기 받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간곡히 부탁드릴 일도 있습니다.

 빈민들의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박영선후보를 지지해주세요.

 

박영선후보가 내세운 공약은 오세훈후보가 내세운 민간주도 재개발도 아니고

정부 여당이 내 세운 공영주도와도 다소 결이 다른 안을 내 놓았다.

공공주도원칙에서 공공민간참여형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이다.

건물주 반대로 무산될 수도 있는 재건축을 함께 협력하여 풀어가겠다는 의지로 잃힌다.

 

여러분! 다시 부패한 정치로 되돌릴 수야 없지 않습니까?

문정부가 내세운 '사람이 먼저다'는 깃발을 세울 수 있도록 기회 한 번 줍시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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