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에는 인사동 거리에서 제법 긴 시간을 맴돌았다.
봐야 할 전시도 두 곳인데다 길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도 두 사람인데,
서로 만나기로 한 시간조차 달랐다.
인사동 사진은 거리를 지나치며 찍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지만,
이번에는 한 시간 넘게 거리를 방황했더니 다리가 아팠다.
기다리는 동안 전시라도 둘러 보았으면 좋으련만
정영신씨와 같이 보기로 해 먼저 볼 수도 없었다.
거리는 구정을 앞둔 주말이라 평소에 비해 많은 사람이 오갔다.
더러 선물보따리를 들고 가는 모습에서 명절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반가운 풍경은 행인들이 거리에 내놓은 그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아무리 작가의 영혼이 빠진 그림이지만, 가격이 너무 쌌다.
이 삼만원 대가 주류고 비싼 게 오 만원이었다.
어떻게 만들어져 나왔는지 모르나 물감을 이겨 그린 그림도 있어,
인건비는 차지하고 재료비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멀리 ‘나무아트’에서 김진하관장이 나오고 있었다.
박건씨의 ‘나는 산다’전에 가자기에 사람 만나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정오 무렵 만나기로 약속한 사진가 최인기씨가 드디어 나타났다.
조그만 양반이 도르르 굴러오듯 바쁘게 걸어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빙그레 웃는 동안에 마음까지 포근해 졌다.
그를 만나기로 한 건, 며칠 전 경남 함안장에서 연락 받았다.
‘눈빛출판사’에서 노량진구수산시장 상인들의 투쟁을 기록한 사진집을 만드는데,
서문 좀 쓰 달라는 원고청탁이었다.
그는 사진가이기에 앞서 노동운동가다.
가끔 현장에서 만나 지켜본 바로는 성실하고 겸손한데다 투쟁력 또한 치열했다.
좋아하는 후배사진가 중 한 사람이라 바쁜 시간이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명절선물이라며 보리굴비까지 들고 왔는데,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받은 선물도 다른 분 줄 정도로 선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굴비는 정영신씨가 좋아하는 생선이라 점수 따기 딱 좋았다.
마침 정오 무렵이라 ‘툇마루’에 밥 먹으러 갔다.
술 마시러 간 것이 아닌데도, 쥔장의 도토리묵 서비스까지 받았다.
맛있게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고, ‘귀천’ 목영선씨의 모과차도 마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사진 자료 담긴 유에스비를 건네받고 헤어졌다.
그도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나 또한 정영신씨를 만날 시간이 되어서다.
지하철 역 방향으로 마중가니, 총총걸음으로 정동지가 나타났다,
바쁜 분 만나려니, 이 몸까지 바쁠 수밖에 없었다.
마루의 ‘아지트갤러리’로 갔더니, 눈에 익은 작품들이 줄줄이 걸렸더라.
전시 개막 직전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화가 최경태씨 그림에 마음이 아팠는데,
작가 박 건씨와 김진하씨가 나타났다.
박건씨의 공산품 아트를 비롯하여 김주호, 김환영, 류연복, 박불똥, 박영숙,
성병희, 안창홍, 이윤엽, 이현정, 이하, 정영신, 정보경, 정복수, 정정엽, 하일지 씨 등
내 노라 하는 분들의 작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었다.
박건씨의 혜안으로 모운 작품이라 보는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다.
또 하나 기분 좋은 건 작가의 권위를 지키려는 거품은 모두 빼버렸다,
작품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이치에 대한 도전장에 다름 아니었다.
다음에 들려야 할 전시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금보성씨의 ‘한글’전이었다.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연지 35년 만에 150호 대작 22점을 내 걸었는데,
웅장한 스케일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마치 자음을 윷놀이 하듯 화면에 던져놓았는데, 문자와 디자인이 결합한 독창적 언어였다.
작가로부터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인사동에서의 일정은 마무리했다.
다음 날은 동자동에서 일해야 하고, 그 다음 날은 경북 상주장에 가야했다.
무슨 놈의 일이 한꺼번에 몰려 똥오줌 못 가릴 지경이다.
서울역 홈리스 원고는 탈고한지 오래지만, 노숙인 코로나 확진자가 100여명이나
나온 데다 동자동 쪽방 촌 공공 개발 소식에 추가 할 원고가 생겨서다,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아산시를 시작으로 전국을 연결하는 전시를 기획했다며,
필요한 사진 자료를 수집해 보냈는데, 정말 난감했다.
어디서 찾았는지 모르지만 기억이 아물아물한 사진도 있었는데,
필름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사용했던 사진도 수정 이미지를 못 찾아 재 수정하느라 곤욕을 치루었다.
얼마나 마우스를 잡고 낑낑거렸으면 아직까지 어깨가 결린다.
오죽하면 오래된 필름 정리해 스캔 받아 두라는 정동지의 성화를 뭉갠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고려장 할 나이에 이처럼 일이 많은 것도 복이라면 복이고, 욕이라면 욕이다.
그토록 바삐 쫓겨 다녔으니 최인기씨 원고 쓸 겨를이 있었겠는가?
2월 중순까지 요구한 글이라 추석연휴에 쓰려고 밀쳐두었으나,
원고료 부담에다 자료 담긴 유에스비 조차 열어보지 못해 마음이 더 무거웠다.
그믐 날 제사음식 준비 하는 중에 최인기씨로 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어렵게 전화한 듯, 정중하게 원고 청탁을 거두겠다는 내용이었다.
앓던 이 빠진 것 시원해 받은 원고료를 즉각 돌려보냈는데,
거절한 이유가 마음에 걸렸다.
더 좋은 필자를 구했거나, 다른 이유라면 모르겠으나,
20여일 전 '인사동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말하고 싶다'전 포스팅에
“언제까지 미투로 생사람 잡을거냐?“는 글을 본 모양이다.
아니면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바로 미투였다.
고질적인 성희롱을 없애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미투 운동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사적인 감정으로 상대방을 매장시키는 가짜 미투가
기승을 부려 진짜 미투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폐단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부산의 이광수교수가 여러 차례 페북에서 지적한 바 있는
진보정당이나 노동운동가들이 페미니즘에 집착하는 폐단이 떠올랐다.
그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걸 여태 보지 않았던가?
개안적 견해에 불과한 미투의 문제점 제기에 안면까지 몰수할 정도라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인주의로 흐르는 세태가 안타까운 실정에, 페미니즘 문제까지 부채질 한다.
메주알고주알 까발리다 보니 말이 엄청 길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사동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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