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경展 / GUMOKYOUNG / 具慕慶 / painting
2015_0408 ▶ 2015_0414


 

 

구모경_然-107_한지, 먹, 백토_200×700cm_2015

 

 

초대일시 / 2015_040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아라아트센터AR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9길 26(견지동 85-24번지) 4층

Tel. +82.2.733.1981

www.araart.co.kr

 

 

수묵의 전통성과 현대성-구모경의 수묵 작업과 그 의미 ● 수묵은 동양회화의 전통을 관류하고 있는 전통의 실체이다. 대단히 오랜 기간 배태되고 성숙된 수묵의 사장과 조형은 단순한 재료적 차원의 구분으로는 그 특성과 가치를 수렴해 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이는 삼라만상에 대한 지극한 관조를 통해 얻어진 사변적 성찰의 내용들과 동양 전래의 사상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특수한 표현 양식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사실 수묵의 역사는 대단히 오랜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오랜 기간을 통해 축적된 창작 실천의 결과물과 이론의 집적 역시 매우 방대하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수묵의 변화와 발전 과정이 격변의 혁명적 상황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불교의 전래에 따른 사고의 확장은 동양문명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현상과 본질이라는 가치에 대한 인간들의 숙려는 급기야 수묵 자체에 일정한 사상성을 부여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재료 자체에 대한 의미의 부여와, 이를 통해 특정한 사유를 개진하는 것은 아마 수묵이 유일할 것이다. ● 비록 수묵이 대단히 오랜 발전 과정을 거쳐 동양회화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날 수묵이 지니는 위상이 반드시 이전의 그것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수묵이 처한 현실적 상황은 침체와 부진의 나락이라 표현함이 보다 적확할지도 모른다. 이는 근대 이후 서구 중심적 가치의 횡횡 으로 전통적인 가치의 몰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수묵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났던 혁명적 변화가 근대 이후 상실되었다는 점을 꼽아야 할 것이다. 예술은 그것이 속한 시대와 더불어 호흡하며 그 시대를 기록하는 것이라 할 때, 수묵은 전통의 고답적인 경직된 인식으로 스스로를 지난 시대에 머물게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모경_林_한지, 먹_140×200cm_2015

 

구모경_然_한지, 먹, 백토_280×700cm_2015

 

 

작가 구모경의 작업은 수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개성이 무제한적으로 발산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질적인 재료의 사용은 이미 보편화 되었을 뿐 아니라 수묵과 채색의 병용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세태에서 오로지 수묵만을 지지체로 삼아 본격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는 오히려 희귀하고 신선하게 까지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는 이미 화업의 시작 단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수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지향을 전통에서 비롯된 관성의 일단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그가 보여주고 있는 조형의 내용과 요소, 그리고 그 변화 과정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의지와 태생적 감성이 수묵과 일정 부분 잘 부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작가의 초기 작업은 실경을 변용한 수묵 작업이었다. 그것은 자연, 혹은 자신이 속한 공간에 대한 관심을 수묵이라는 전통적 재료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전통과 현대의 일정한 연계를 도모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발상과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그의 학습기이자 수묵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의 준비기라 할 것이다. 이후 그의 작업은 일변하여 보다 정제된 수묵 표현으로 표출되었다. 특히 자작나무라는 특정한 소재에 천착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작업을 개별화함과 동시에 수묵이 지니고 있는 조형적 특성을 극대화 시켰다. 흑과 백의 단순한 얼개로 이루어진 그의 화면은 자작나무라는 특정한 소재를 수용하지만 이미 수묵 특유의 심미적 조건, 즉 정신적인 경계에 육박하고자 하는 의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구모경_然-09_한지, 먹, 백토_90×90cm_2015
 
 

수묵은 현상 너머에 자리하는 본질을 관조하는 관념의 세계이다. 그것은 형상을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사변의 세계이다. 작가의 작업은 자작나무에서 비롯하여 점차 순수한 수묵의 심미로 변화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마치 득의망전(得意亡筌)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제 작가에게 자작나무는 그를 수묵의 유현한 세계로 인도하는 도구이자 수단이며,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이 되었다. 형상은 해체되어 공간을 부유하고, 수묵은 더욱 자유로워져 거침이 없다. 작가의 손길과 호흡을 반영하는 수묵의 조합은 이미 일정한 추상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전통적인 수묵의 표현 요소 중 필의 요소는 제거되고 묵을 기반으로 한 면의 표현이 강조되고 있는 작가의 화면은 이미 형상의 부담감에서 일정 부분 벗어난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 재료와 표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한지를 이용한 독특한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스미고 번지는 수묵 특유의 물성을 십분 발휘한 한지 작업은 화면의 바탕을 견고히 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수묵 특유의 그윽하고 은근하며 함축적인 표현을 더욱 심화시켜주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재료실험이라는 제한적 의미를 넘어 자신이 지향하는 수묵 고유의 독특한 심미를 강조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 여겨진다. 더불어 이는 전통과 현대라는 상충되는 가치의 민감한 접점에서 작가가 취한 절충적 선택이자 수묵에 대한 주관적 해석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구모경_然-104_한지, 먹, 백토_220×420cm_2015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수묵은 동양회화 전통의 실체이자 본령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수묵의 위상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것이다. 디지털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의 상황은 독점적이고 수직적인 보편성의 구조에서 탈피하여 지역적 특수성과 차별성을 중시하는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오늘날 수묵이 처한 현실은 안타까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묵으로 일관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작가의 존재는 반가운 것이다. 더불어 그가 추구하는 수묵 작업이 형식재현의 생명력 없는 고답주위가 아니라 자신의 사유를 통한 수묵 정신에 접근하고자 함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수묵은 완결이나 완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혹은 우주에 대한 부단한 사색의 결과를 드러내는 것이기에 언제나 변화하며 새로운 양태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처음 선택한 수묵은 이미 타인에 의해 이루어진 기성의 수묵이었다. 이를 자신의 사유를 전제로 한 주관적 해석을 통해 개별화하여 조형적으로 표출해 낼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그가 천착하고 있는 작업의 요체일 것이다. 수묵이 혁명적 변혁을 통해 그 유장한 생명력을 이어가며 동양회화 전통의 근간을 이룬 것이라면, 작가 역시 자신의 작업에 대한 냉철한 이성적 비판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문화 상황에서 전통과 현대라는 상충된 가치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 될 것이다. ■ 김상철

 

 

 

구모경_然-105_한지, 먹, 백토_220×480cm_2015

 

구모경_然-106_한지, 먹, 백토_200×700cm_2015

 

 

Tradition and modernity of 'Ink-and-wash painting'-Gu, Mo-Kyoung's ink-and-wash painting works and their meanings. ● Ink-and-wash painting truly represents the tradition of oriental painting. Long matured and style and form of ink-and-wash painting is highly unique that it cannot be delineated merely in the dimension of materials used for ink-and-wash paintings. Instead,such traits could be perceived as an extraordinary form of expression that is a combination of Oriental traditional ideologies and speculative introspections that are obtained from extreme contemplation of the nature. In fact, the history of ink-and-wash painting is a very long one. Hence, the accumulation of related theories and outcomes of practice is enormous in its size. What to notice here is that the development process of ink-and-wash painting has been realized through turbulent and dynamic phases. The expansion of thoughts owing to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had brought groundbreaking change to the overall culture of Asia. Especially, men's mature consideration regarding form and essence had even developed to the stage where people began to assign certain ideas and thoughts to ink-and-wash painting. Assigning meaning to materials and developing special ideas are the exclusive and unique characteristics of ink-and-wash painting. ● Although ink-and-wash painting has placed itself as a mainstream art in Asian painting with its long history of development and evolution, today's stature of ink-and-wash painting is not same as that of the past. It is more suitable to say that today's ink-and-wash painting has faced recession. The obvious reason for such depression can be found from the fall of traditional values due to the expansion of Western values since the modernization. However, the most critical reason is the loss of dynamic changes since the modernization that had once appeared in the past developments of ink-and-wash painting. When art is a medium to record an era by breathing with the time it belongs to, ink-and-wash painting should reflect on itself for its past dependency with its inflexibility. ● Artist Gu's works form their base in ink-and-wash painting. Nowadays, varieties of different individualities are expressed unlimitedly. In such times, the use of heterogeneous materials has become generalized and the mix of ink and colours is also not something new in the field of ink-and-wash painting. In the time of convergence, artists who only paint with black and white ink as main instrument are even perceived as rare and fresh. Gu, from the beginning of her artist career to the present, has only been using ink for her ink-and-wash paintings. Her focus in ink and ink-and-wash painting can be simplified and considered as inertia of tradition, but the visual contents and elements and the changes that appear in the development history of her works exhibit alignment of her volition and innate sensitivity with the characteristics of ink-and-wash painting. ● Gu's initial works were ink-and-wash painting that embodied modifications of scenery landscape. Her initial works had been the fruits of her endeavors to endow her works with a liaisonrole that connects traditions with present day by using ink-and-wash painting as a medium. In the aspect of idea and its expression, those works had been the learning period and the earnest preparatory period to approach ink-and-wash painting in a serious and sincere manner. The style of Gu's subsequent works has gone through some alterations to encompass more refined expressions of ink-and-wash painting. Especially, she has individualized her works and magnified the formative traits of ink-and-wash painting by delving deeply into a specific topic, the birch tree. Structured simply in black and white, the screen of Gu's works accommodates the particular topic which is the birch. Furthermore, beyond the structure of the paintings, one may encounter Gu's efforts and will to reach the emotional boundary, namely to fully satisfy aesthetic conditions of ink-and-wash painting. ● Ink-and-washpainting is a world of intellections that contemplates the essentials beyond images perceivedvisually. Such world of intellection can only be acquired by abandoning images and forms. Gu's works including the birch trees seem to be developing to incorporate pure aesthetics of ink-and-wash painting. Such tendency is somewhat similar to 得意亡筌 (a Chinese four character idiom meaning that one has realized his/her goal and reached the stage of forgetting the means to acquire the goal). Now, the birch, not being the purpose itself, has become a medium and tool that leads Gu to the subtle world of ink-and-wash painting. In her paintings, shapes and forms are disintegrated and they drift around the surface and her skills and techniques are now free and feisty. The combination of different ink-and-wash images that reflect the touch and waves of breath of Gu is now advancing to the stage of abstraction. The paintings of Gu which stress ink based expression and neglect the elements of brush from the expression elements of ink-and-wash painting, are the evidence that Guhas partly escaped from the pressure to articulate images and forms. ● The artist's interests in materials and expression have been extended to the unique use of Hanji (Korean traditional paper). The hanji used works best exemplifies the attributes of ink: permeation and spreading. Therefore, hanji playsthe role of strengthening the background of the paintings while intensifying profound, subtle and abstract expression of ink-and-wash painting. Such use of hanji is an inevitable choice to be made in order to highlight distinctive traits of ink-and-wash painting beyond mere material experiment. In addition, it can also be explained as a result of her will of subjective translation of ink-and-wash painting along with a conciliatory decision that she had made between the conflicting values of tradition and modernity. ● As mentioned above, ink-and-wash painting is the essence of tradition of Oriental painting. However, today's reputation of ink-and-wash painting is poor compared to its glorious past. Remembering that the trend of modern civilization is to deviate from monopolistic and vertical universal structure and enter the era of diversity where regional distinct characteristics are emphasized, the current status of ink-and-wash painting is quite miserable. In such depressing situation, the existence of an artist who has been solely working on ink-and-wash painting is pleasantly welcoming. Plus, the artist's efforts to closely reach the spirit of ink-and-wash painting through self-introspectionin contrast to the lifeless reproduction of forms through transcendentalism shall be highly credited. As generally known, ink-and-washpainting does not accept completion since it is reflections of painter's contemplation and meditation about the human, the nature or the universe. Paintings will always be transforming and new meanings and intellections will appear in new aspects. ● The very first ink-and-wash painting Gu chose to paint was an existing piece painted by an establishedartist. Hence, the purpose of the initial work had been to reinterpret the piece based on her own ideas and thoughts and then to individualize and regenerate the painting through formative expressions. Since ink-and-wash painting has been forming its traditional fundamentals of Oriental painting through revolutionary transformations, the artist also needs to secure new phases in her art career by criticizing her own work realistically and rationally. Such self-examination will present a solution to the conflicting values of tradition and modernity in a wholly new cultural situation. ■ KIMSANGCHUL

 

 

Vol.20150408j | 구모경展 / GUMOKYOUNG / 具慕慶 / painting

30년간 숨어있던 서양화가 김종숙씨의 '속초다'전 개막식이 지난 28일 오후5시, 인사동 아라아트 전시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전시장에는 김종숙씨를 비롯하여 기획자 박인식씨, '아라아트'대표 김명성씨, 출판인 정광호, 이규상씨, 만화가 박재동씨. 도예가 황예숙, 김희갑씨, 사진가 임채욱씨, 시인 송상욱씨, 김정남, 이상철씨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김종숙씨는 강원대미대를 졸업한 후 20대 중반부터 홀로 아들을 키우느라 갖가지 ‘막일’을 해왔단다. 황태덕장 등에서 생선을 다듬고 갈무리하는 일부터 식당의 서빙까지 닥치는 대로 했단다. 고등어, 꼴뚜기, 가자미, 대구, 말린 도루묵, 명태, 열갱이 등등 화폭 속에서 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로 살아 펄덕이는 갖가지 생선들은 화가의 남다른 체험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박인식씨는 '나는 꾸덜꾸덜함과 쿰쿰함에 이미 중독되었다”고 표현해 놓았다.

 

 

 

 

 

 

 

 

 

 

 

 

 

 

 

 

 

 

 




김준권 회고전 ‘나무에 새긴 30년’

김준권 작가가 올해 완성한 채묵 목판화 ‘푸른 소나무’. 새벽 시간 왕릉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

상서로운 푸른 기운을 내뿜는 모습을 표현했다. 김 작가는 특정 지역의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이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함께 담아낸다.

색깔별로 별도의 목판이 필요해 6개 판에 새겨 완성했다. 김준권 작가 제공

 

 

소담스레 눈이 쌓인 시골 마을, 서늘한 새벽 공기를 내뿜는 숲 속 정경, 분홍 꽃잎이 흐드러진 봄날의 꽃나무….

김준권 작가(58·사진)의 서정적인 풍경화를 보면 두 번 놀란다. 먹빛이 부드러운 수묵화 같은데 뾰족한 칼로 파낸 판화다.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는 청년 시절엔 민족해방(NL) 계열로 정치 투쟁의 선봉에 섰던 투사였다.

1980년대 미술계의 주류였던 민중 화가들은 민주화 이후 각자의 길을 걸었다. 목판화가 오윤(1946∼1986)은 40세에 요절해 전설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으로 논란을 일으킨 홍성담 작가(59)는 여전히 직설적 화법으로 시대와 불화한다. 투쟁의 도구가 아닌 예술의 본질로 돌아가 미학적 고민을 하는 이들도 있다. 김 작가가 그런 경우다.

 

 

10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그의 회고전 ‘나무에 새긴 30년’은 미술 운동가에서 서정적 목판화가로 선회한 작가의 예술 여정을 시기별로 보여준다. 홍익대 미대 졸업 후 미술교사에서 해직 교사로, 민족미술협의회의 사무국장과 상임집행위원장으로 바쁘게 활동하며 억센 선묘 위주의 선동적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는 민중미술운동이 동력을 잃자 다른 고민을 해야 했다.

“커다란 이념이 아니라 동네 고샅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감동을 표현할 기술이 없더군요.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선에 투입됐던 거예요. 내가 옳다며 떠들던 것들이 실은 무지의 발로가 아닐까 회의했습니다.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중미술가로 활동하던 시절인 1985년 고무판에 유성잉크를 발라 찍어낸 선묘 위주의 ‘태극도’. 김준권 작가 제공

 

 

떠들썩한 세상 한가운데 서 있던 그는 30대 중반이던 1991년 충북 진천군 백곡면 산골짜기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자발적인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에서 전통적인 수묵인화기법을 익히고, 목판화의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다색목판화 우키요에와 중국의 수인판화를 배웠다.

한중일 3국의 목판화 문화를 섭렵한 결과물이 채묵 목판화다. 젊은 시절 여느 목판화가들처럼 서양 종이에 유성물감으로 찍어냈던 그는 지금은 한지에 먹을 안료로 쓴다. 유성판화는 누가 찍든 같은 결과물이 나오지만 수묵판화는 먹의 농도, 목판과 한지의 수분 함량에 따라 작품들이 다 다르다. 그만큼 표현 영역이 넓지만 수분 조절이 어려워 정교한 기술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소재도 바뀌었다. 머릿속 이념을 담아내던 작가는 평범한 이들이 발 디디고 사는 이 땅의 질박한 풍경들을 눈으로, 발로 사생하고 작업실에 앉아 되새김질하며 목판에 새겨낸다.

그가 30년간 그리고, 파고, 찍은 작품은 550여 점. 작품마다 5, 6개의 판을 새겼으니 3000개가 넘고, 작품당 20점 미만의 에디션을 찍었으니 6만 장이 넘는 판화를 내놓은 셈이다. 이번 전시에는 연도별로 7, 8점씩 250여 점을 전시한다.

작업실에 ‘한국목판문화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건 작가는 “목판화란 죽은 나무를 살려내는 일”이라며 “내가 살려낸 것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다”고 했다. 29일까지. 02-733-1981

동아일보 /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최인선의 회화 25년 미학오디세이
25 Year Anniversary of In Sun Choi's Aesthetic Odyssey

최인선展 / CHOIINSUN / 崔仁宣 / painting

2014_0605 ▶ 2014_0805

최인선_날 것의 빛-모네 Light of Rawness-Monet_캔버스에 유채_184×259cm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007h | 최인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4_0605_목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전시기간 중 5회 격주 목요일 04:00pm~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아라아트센터

AR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9길 26(견지동 85-24번지)

Tel. +82.2.743.1643

www.araart.co.kr

 

 

 

최인선의 회화 25년에 부쳐 햇살 속에 발가벗은 '사과'라는 단어는 사과가 아니다. '연필'이라는 단어 자체가 연필이 아닌 것처럼. 연필 냄새를 풍기는 것은 연필이 아니라 연필을 놀리는 게 업인 사람일 수도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서 이렇게 썼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당연한 제목이다. 그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묘사한 '그림'이니까. ●1990년대 중반부터 최인선은 언어의 본성 (본질 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을 파고들었다. '사과'라든가 '연필' 같은 일반명사조차 그 이름 주인의 본성과는 아무런 개연성이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뤄진 약속이자 관행의 소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화가의 눈을 떴다. 자신이 소통시키려는 사과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과를 그려서는 안되었다. 연필을 전달시키려면 연필을 그리는 대신에 연필을 그냥 사용해야만 했다. 그 즈음의 몇 작품 명을 살펴본다.「먹는 언어 또는 먹히는 언어, 1997」,「조각적 사고 사고적 조각, 2000」,「생산되어진 흰색, 2000」,「하언이의 언어코끼리, 2001」 ,「나의 가족의 이름은 아름다운 다리를 만든다, 2000」,「읽는 회화, 2000」,「빛에 조각하다, 2001」,「연필다리, 2001」 ...

 

최인선_검정과 실버 위에 이미지, 언어, 생각 늘리기 Extending Image, language,

Thought over Black silver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2cm_2001

 

 

이 제목들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림은 글로 쓰고자 했고, 글로 그림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이 제목들은 쓴 게 아니라 그만의 조형언어로 그린 것이다. 당시의 그는 화가라기보다 번역가로 봐야 옳다. 번역 대상은 회화의 주제가 된 '언어'다. 그 언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꿔놓은 대신 조형화시켜 보여 주자는데 번역작업의 목적이 있다. 그는 언어를 입에서 눈으로 옮겨 놓으려 했다. 번역된 작품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읽어내게 하려면 언어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의미구조를 해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체되었다가 최인선 식으로 재결합한 제목들이기에 기존 언어의 의미구조를 초월하게 되었다. 르네 마그리트라면 제목 뒤에다 이렇게 덧붙일 만 하다. - 이것은 제목이 아니다. 그림이다. ● 그렇다. 그의 진정한 그림은 화폭이 아니라 이 제목들에 있는 것이다. 변기를 전시장으로 옮겨다 놓고 마르셀 뒤샹이 붙인 '샘'이라는 제목의 역할과도 한통속이다. 뒤샹의 발견인 레디 메이드 또한 옮기기, 다시 말해 번역작업인 셈이다. 뒤샹이 주변 부산물들을 작품 세계로 옮겨 놓았다면, 최인선은 생각과 사고의 부스러기들에 형태와 색을 입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화폭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들로 하여금 생각이나 사고의 형태를 눈으로 읽어볼 수 있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미적 체험을 안겨주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 그의 작품세계에는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우주의 신비를 엿본 듯 하고, 세상의 모든 고뇌가 제 어깨에 내려 앉은 듯하여 별에 스치는 한 점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그 피 끓던 시절에 끝내 말이 되지 못했던 간절함 들이 쌓여 그의 화폭에서 조형언어의 옷을 입고 우리 눈길을 기다린다.

 

최인선_날 것의 빛 Light of Rawness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14
 

 

태풍인가 싶게 바람이 센 어느 봄날이었다. 홍익대 작업실에서 2008년부터 선보인 그의「미술관 실내. 날것의 빛」 시리즈 여러 점을 봤다. 그 순간 두 가지 상념이 내 머리를 쳤다. - 그의 작업은 색의 한계에 대한 물음표다. - 그는 영원 (카오스다. 검을 현玄에 누런 황黃이 군림하는 무채색이다.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비어야만 영원해진다)의 세계에서 순간 (색의 세계다. 오직 한 순간의 진실만이 색으로 드러난다)의 세계로 넘어온 미적 망명자다. 영원을 지향하던 무채색 세계에서 언어의 본질을 찾아 헤맨 모색기에 그가 감내했을 오랜 '미학적 고독'이 거기서 씻김굿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어느 인도 성자의 부르짖음을 상기시켰다. - 현세는 물론 내세도 전생도, 성聖과 속俗도, 깨달음으로 얻은 참나眞我의 빛도 한갓 마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성자의 세계에서 한껏 평화로웠던 내 마음은 뿌리 채 뽑혀 뒤집어지고 있었다. 캠퍼스로 들어오면서 맞았던 태풍의 눈이 거기 있었다. 그 눈이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휩싸여 나는 단숨에 수십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랐다. 아름다움으로 몸서리치던 젊은 날의 시간과 그렇게 다시 마주쳤다.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아니 환영이기에 더욱 숨막히게 만드는 아름다움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뭣보다 작가의 국적을 알 수 없었다. 역사적 바탕도 읽을 수 없었다. 작가의 나이도 성별도 짐작 가지 않게 했다. 그는 뭔가 숨기려 했을까? 아니다. 그의 의도는 오로지 미학적인 것에서만 쏠려 있었다. 미학의 본질에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모조리 쏟아 부어 서로 하나로 묶은 결과물이었다. 진정이라면 아름다움도, 사랑처럼, 국경도 나이도 성별도 초월한다. 불필요한 인문학 과시나 관심으로 미학적 에너지를 소모시키거나 본질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서였다. 교훈적이거나 관념적이거나 수사적인 테크닉을 모두 던져 버리고 오직 직감으로 빛나는 색의 본질과 일대일로 맞짱 뜨고 있었다. 다른 예술 장르로도 표현될 수 있는 모방적이거나 재현적인 기능을 과감히 떨쳐냈다. 오직 회화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을 위해 그는 색 그 자체를 재료로 삼아 그리는 작업으로 되돌아 와 있었다.

 

최인선_백색침실 White Bedroom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4

 

 

최고의 셰프가 정성껏 차린 식탁처럼 세련미가 극치에 닿은 화면이지만, 나는 거기서, 생선 뼈와 살 사이로 파고드는 사시미 칼날의 예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칼날에는 해체된 생선의 붉고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리하여 뛰어난 성취를 이룬 모든 작품의 이면에는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까지 캔버스에 저며 바르려는 원초적이고도 불가해한 창작 욕망이 잠재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실이라는 '공간'과 역사라는 '시간'은 그의 관심 밖에 있다. 그를 매혹시키는 시공간은, 시간이 공간으로 또 공간이 시간으로, 육체가 정신으로 또 정신이 육체로, 우연이 필연으로 또 필연이 우연으로 뒤바뀌는 그 경계, 다시 말해 기존의 현실과 역사에서는 실현되지 않았기에 여태 보이지 않아 조형으로 표현된 적이 없는 낯선 세계다.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있는, 그 세계에서 그는 혈연이나 성별이나 나이나 국적까지 초월함으로써 현실의 가시적 세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모든 사물 속에 내재적 본질이 입고 있는 색의 수수께끼 실마리가 그의 손에서 풀려났다.「생각하는 형태들」 시리즈에서 생각은 작가가 아니라 감상자의 몫이다. 작가는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 제목들로 그런 여지를 남긴다. '사색'이 미술재료나 양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만든 까닭을 여기서 찾게 된다. 깊은 통찰력이 빛나는 사색을 캔버스 속에서 융합 시키는 것, 그리고 사물들의 원초적인 색들을 작품의 필수 요소로 이끌어내는 작업이야말로 그가 일궈낸 그만의 미술 양식으로 볼 수 있다. 물체건 사람이건 풍경이건 아니면 이들간의 다양한 조합에서건, 그가 택한 모든 조형요소들은 작품 속에서 색깔로 제 생각들을 드러낸다. 정물화에서도 실내 풍경 에서도 사물들의 사색은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존재의 깊이를 더해간다. 그러나 이 사색은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곳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철학과 과학이 아닌 곳으로 발걸음을 뗀다. ● 그가 화재로 붙들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기존의 질서와 선입견으로부터 철저하게 독립되어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그를 기존의 미학세계에서 자신만의 미학세계로 망명을 떠난 '미적 망명자'로 부르게 된다. 회화의 사색은 (철학적 × 논리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회화의 사색은 (과학적 × 학문적) 진리를 찾지 않는다.그것은 다만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한다. 그의 작품은 스스로 놀라고 스스로 탐색한다. 모노크롬의 미니멀한 작업에서 조차 그는 그림의 본질을 담은 그릇인 형태를 완전히 버린 적이 없다. 그 형태야말로 '그리기'로서의 회화를 살찌우고 정당화 시켜주는 미학 요소들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최인선_영원한 질료 Eternal Material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97cm_1993
 

 

「날것의 빛」 시리즈는 그의 모든 작품 연대기에 있어 비할 데 없이 빼어난 색채 사전이다. 마티스의 작품 또한 눈부시지만, 그의 이 시리즈 곁으로 다가오면 그 빛을 잃을 것만 같다. 햇살 속에 발가벗은 색채의 나신들은 너무도 눈부시다. 그가 콜라주하는 오브제는 물체가 아닌 '시간'이다. 피카소가 공간적 입체주의를 창시했다면, 그는 시간적 입체주의를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날것의 빛, 2014」 시리즈에서 거듭 확인 된다. 그런 작품에서는 하나의 실내 풍경이 서 너 개 또는 그보다 많은 화면으로 나눠진다. 그 분할된 화면들은 각자 다른 시간대에 속해있다. 그 부분 화면들은 제 각각 다른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맞물려 있는 곁의 화면과는 동일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음에도 시간적으로는 서로 떨어진 시차를 느끼게 한다. 호텔 로비에 세계 주요 도시의 각기 다른 시간들이 콜라주 되어 있듯, 실내 풍경을 그린 그의 화폭에는 등장 사물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콜라주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문다. 존재와 의미의 경계마저 그 빛 속에서 허물어지고 만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일까? 화재로 선택된 사물이나 콜라주 된 시간의 스토리가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령 모네나 세잔느 같은 대가들의 그림으로)도 있지만 특별히 눈길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조화롭거나 서로 충동하는 색들은 그 자체로 이미 놀라움이며 발견이다. 곳곳에 사물들의 생각이 깔려있다 해서 미술적 매력이 감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작품의 형식미에 풍부함을 더하고 색채만이 발견하여 말할 수 있게 하고 또 안내해서 미학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최인선_영원한 질료 Eternal Material_캔버스에 혼합재료_184×228cm_1993

 

최인선_날 것의 빛 Light of Rawness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3

 

여기서 빛나는 모든 색채들은 인과관계를 초월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할 개연성을 찾아 볼 수 없다. 색채의 본질은 그 비 개연성에 있는 것이다. 광합성 작용으로 잎과 나무와 가지를 길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처럼, 그는 자신만이 구사해내는 색채들로 인과관계의 경계를 뛰어 넘어 신비함으로 빛나는 비 개연성의 세계로 망명했다. 그 세계에는 무라카미 하루끼의 소설「1Q84」 에서처럼 달이 두 개 떠있을 수도 있고, 빨간 철근 프레임으로 세워진 집이 강아지처럼 소파에 누워 노란색 낮잠을 즐길 수도 있다. 거기에는 인과율의 하수인인 고정관념이나 관습이 없다. 단 한번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세상을 향해 영원히 열려진 창문이 있을 뿐. 그런 세계를 학자들은 병행세계 Parallel World 라 부른다. 현실과 병행해서 존재하지만 감지 불가능하며 호환 불가능한 세계를 말한다. ● 25년에 걸친 그의 미학적 오디세이는 비 개연성의 세계, 바로 미학적 병행세계로 우리를 데려다 주는 네비게이션으로 작동한다. 그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어느새 그가 만든 병행세계로 들어와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연필냄새 그대는 어디에? 지금 날것의 빛이 오랜 그리움 더불어 다발로 쏟아져 내리는 창문 앞에 섰다. 저 뒤쪽에 주방이 있었지. 거기서 그대는 지금 저녁 식탁에 올릴 생선을 손질하고 있는가. 창문 틈에서 날것의 빛살에 싸인 생선 비린내 풍겨온다. ■ 박인식

 

Vol.20140605d | 최인선展 / CHOIINSUN / 崔仁宣 / painting

산악사진가 안승일씨의 ‘불멸 또는 황홀’ 백두산사진전이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리고 있다.

1층에서부터 지하4층까지의 넓은 공간을 대형 작품으로 가득 메운 전시는 마치 백두산에 오른 듯 장엄했다.

이십년 동안 백두산에 미쳐 살아 온 안승일씨가 이루어 낸 기적이었다.

이 전시를 기획한 박인식씨의 말에 의하면 작가가 그동안 백두산에 미쳐 집을 두 채나 팔았다는데,

이번에는 일억을 들여 엄청난 규모의 전시회를 마련하였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분명 미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친 사람이 많아야 행복한 세상이 된다.

백두산의 정기가 오롯이 담긴 그의 작품들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실제 백두산에 올라가도 그토록 다양한 각도와 신비로운 순간들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는 2월18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 안보면 분명 후회하게 된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명성씨의 '아라 아트' 신축공사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오는 12월 하순경 개관될 예정입니다.
지금은 개관 기획전 준비로 바쁜 나 날을 보낸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12일 오후, 모처럼 황명걸선생님께서 인사동에 나오셔서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최혁배, 공윤희, 이청운, 조문호, 송상욱,
전활철, 손성근씨 등 지인들이 어울려 막걸리 한 잔 하였습니다.
2차로 '인사동 사람들'에 들렸다가 이계익선생님도 만나 그의
아코디온 연주도 들었습니다.

 

 

 

 

 

 

 

 

 

 


지난 26일 정오 무렵, 아내와 함께 인사동으로 나갔다.
각자 나서는 목적은 달랐지만, 청명한 가을 날씨 탓인지 모두들 마음이 들떴다.
인사동 거리는 가을의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나뭇잎들은 아직 여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전인경, 허미자 전시가 있는 ‘아라아트’에 들려 두 작가는 물론, 황명걸, 김신용, 김명성씨를 만나
그동안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여자만’에 들려 오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튿날 예천에서 있을 ‘농심마니’ 산삼심기에 가려고 버스가 기다리는 광화문으로 향했더니,
박인식씨를 비롯하여, 송상욱, 박세경, 노광래, 변명희씨 등 여러 반가운 얼굴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리 가을 날씨가 좋다지만, 어찌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나는 반가움과 즐거움에 비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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