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없는 것들

곽한울展 / GWAKHANOUL / 郭한울 / painting

2014_1217 ▶ 2014_1223

 

 

곽한울_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_캔버스에 유채_112×193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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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해체와 생성의 점이지대(漸移地帶) ● 적막이 감도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뭍인지 물(水)인지, 수면인지 하늘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무채색의 풍경에는 균형 잡힌 긴장감이 흐른다. 적요(寂寥)함의 감정을 흘려보내는 이 풍경은 존재들을 구획 짓는 경계가 사라진, 부유하는 시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작가 곽한울이 만들어낸 것이다.「공원」시리즈(2012)에서 도시의 변두리나 무심하게 방치된 주변부적 공간들을 발견, 관찰, 체험하여 풍경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image)와 지각적 사고(思考)의 결과물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던 곽한울은「무언가와 아무것도 사이 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시리즈(2014)에서부터 습지(濕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습지에서 직접 채취해온 진흙과 유화를 혼합하여 그려낸 풍경화는 장소적 특수성과 물질적 특수성을 극대화시킨다.

 

 

곽한울_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_캔버스에 유채_112×193cm_2014
 

일반적으로 습지를 재현한다고 하면 환경 운동의 교의(敎義)를 전달하는 작가라 예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집중하는 것은 계몽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의 문명이 놓치는 존재들에 대한 발견과 그에 대한 근원적 탐구이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낭만주의적 숭배나 향수와는 거리가 먼 철학적인 사색의 연장이다. 곽한울의 풍경은 명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담아내고 있다. ● 습지의 재현은 이미지와 생각이 결합된 풍경이라는 작가의 이전 작업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깨뜨리는 이중성을 갖는다. 앞선 연작이 그랬듯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은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관찰한 장소이자 그 안에 머무르며 지각했던 공간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현실 너머에 위치하는 듯 부유하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습지의 풍경화는 이미지의 윤곽을 명확히 구별할 수 없으며 그것에 대한 지각 역시 완전할 수 없다. 관객은 그 모호함 앞에서 완전히 길을 잃는다. 그것은 내부를 파악할 수 없는 블랙홀(black hole), 구획 지을 수 없는 무한대의 공간과도 같다. 그리고 이 공간은 불안과 매혹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낸다.

 

곽한울_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4
 

곽한울은 인간을 비롯한 세계 속 모든 존재의 내부에는 명확히 정의되는 정체성과 그것에 대해 이질적인 불명확한 요소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인간의 언어는, 그리고 인간의 이성은 모든 존재와 현상들을 설명하고 정의내릴 수 없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의 사각지대(死角地帶)가 분명히 존재한다. 오히려 이 세계는 정의될 수 있는 것과 정의될 수 없는 것들이 서로 역동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에서 존재의 가능성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이에 작가는 이 사각지대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미술-예술-의 의무이자 권리이며 미술이 가진 힘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습지이다. 곽한울은 인간 이성의 힘이 온전히 미치지 못함을 암시하기 위해 습지 풍경에 인간의 흔적을 모두 지워낸다.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이 공간은 작가가 지향하는 자유로운 이동과 부유를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곽한울_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4
 

일반적으로 습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을 함유하는 애매하고 모호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주체와 대상, 문명과 자연, 육지와 물처럼 명확한 이분법적 구별과 정리를 추구했던 모더니즘(modernism)적 사고 안에서 뭍도 물도 아닌 모호한 형태와 속성을 가진, 그 깊이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끈끈한 진흙과 진액으로 가득 찬 습지는 거부감과 호기심의 양가적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난해한 존재 그 자체였다. 흐르지 않는 죽은 물이 고여 있는 우울하고 어두운 영역인 습지는 고체도 액체도 아닌 이분법 밖에 존재하기에 인간 이성이 정의내릴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다. 그것은 문명-상징계(the symbolic)-이 거부하고 불쾌해하며 공포스러워하는 동시에 호기심을 갖는 모순적 존재로서의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킨다. 그러나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액체성과 고체성 사이를 넘나드는 유동체(流動體)인 습지는 변화와 약동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동체는 단일성이라는 위상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것을 교란시킨다. 단일성이 해체된다는 것은 단순히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계속되는 변화, 지속되는 흐름을 가능케 하여 오히려 유한한 시공간을 초월하는 긍정적 무한함을 얻는다. 습지는 실제로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분해되는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양가적인 세상인 동시에 진정으로 중립적인 경계지대이다. 이에 작가는 습지가 단절과 연결, 그리고 지워짐과 생성이 함께 하며 절대적 가치가 부재하는 역동하고 재생하는 공간이라 강조한다.

 

곽한울_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4
 

결과적으로 육지와 바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그 둘 사이의 경계에 존재하는 점이지대(漸移地帶)인 습지는 어떠한 명확한 위치도 점유하지 못하는, 혹은 점유하지 않는 –작가 자신을 포함하는-경계적 존재들을 함축하는 최고의 상징물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습지는 코라(chora)적 공간이라 하겠다. 카오스(chaos)적 공간이자 어디에도 없는 장소이며 해석이 불가능한 공간인 코라는 영원하고 소멸되지 않는 공간이자 비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이해되는 공간이다. 동시에 생명의 발생을 허용하는 터전이자 소멸이 나타나는 기반이기도 하다.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에 따르면 코라는 이름붙일 수 없고 있을 것 같지 않은, 혼성의 용기이다. 즉 그것은 근본적인 애매성(ambiguity)이자 무정형(amorphous)이며 모순적이고 통일성이 없는, 즉 이성적 사고와 상징계적 질서 이전의 것이다. 그것은 습지가 그렇듯 완전히 정의되고 한정지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며 모순과 무의미를 함유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사고로는 결코 표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영역이다.

 

곽한울_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4
 

곽한울은 코라적 지대를 재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습지의 형태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거나 지워나감으로써 모든 명확한 지점을 해체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해체 작업이 단순히 소멸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반드시 재생과 생성을 전제로 한다. 또한 무정형의 공간을 표현다고 하여 화면 구성이 느슨해지거나 즉흥성을 띠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구성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으며 촘촘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표현 방법은 이성에 근거한 명확한 위계질서의 근본이 되는 이분법적 대립항의 벽을 허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담론, 특히 정체성 자신의 내부에서 위기를 불러오는 담론에 주목한다. 명명되는 순간 고정된 성격을 갖는 그 무엇이 되기 때문에 곽한울의 풍경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작가에게 모든 것을 규정하고 한정짓는 세계야말로 불가능한 것이자 무의미한 것이다. ● 이제 해체된 형상들은 경계가 흐려짐으로써 서로를 향해 흘러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존재로 재생된다. 스스로 해체와 재생을 반복하는 곽한울의 풍경화는 고착(固着)된 문명의 규범과 규칙들의 작동을 약화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들어 다양한 의미의 생성을 이끌어내는, 유동적 희열이 작동하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끝.) ■ 이문정

 

곽한울_Between Something and Anything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4
 

습지에 가면 육지가 있고 바다가 있다. 많은 비가와도 바다가 되지 못하고 태양과 맞서도 육지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 지워지는 장소이고 동시에 무엇이 생성되는 장소이다. 나의 의식은 그곳의 미혹적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음 발을 내디뎌 다른 지점으로 향한다. 허무함이 찾아오고 다시 굳건한 무언가에 대한 강박증이 불쑥 생겨난다. ● 내가 바라보는 세계는 육지도 아니며 바다도 아니다. 어릴 적 배웠던 많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소망은 어느 한 지점을 차지하지 못하고 중간 경계에서 끊임없이 분열하여 또 다른 중간 지점으로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나의 피안은 어디인가, 질문에 관한 불안함은 나를 관찰자로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 경계의 지점에서 어느 한 곳으로 낯선 여행을 하는 것이 나의 시각적 세계의 풍경이 되었다. ● 내가 바라보는 이러한 세계의 모습을 화면에 기록한다. 습지의 물성이 평면에서 다시 현상적 풍경으로 재현되고 있다. 감각하고 인지하는 세계의 다양한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 대상은 흐려지고 파괴되며 다시 생성된다. 어둠과 밝음에서 출발하여 경계의 색에 이르러 낯선 풍경이 등장한다. 여기 끊임없이 분열되고 분화되는 경계의 중간 지점에 서서 바라보는 것은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에 저항 할 수 없는 생멸의 장소라기보다는 생성을 위한 매개의 공간이자 영역이다. 나는 이러한 중간 지대의 관찰자이며 여행자이다. ■ 곽한울

 

 

Vol.20141217d | 곽한울展 / GWAKHANOUL / 郭한울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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