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모’ 송재엽씨가 강남 도산대로에서 빌딩 기공식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임인 ‘인사모’ 맴버로 오래 전부터 함께 해 온 분이다.  

더구나 ‘통인가게’ 관우선생이 친동생처럼 아끼는 후배라, 술자리도 자주 어울렸다.






여지 것 '동원건설'을 운영한다는 것만 알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었다.
난, 부수고 짓는 건설 자체를 싫어하는데다, 관심 없는 직업이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송재엽씨가 강남의 랜드마크가 될 Alumni505-Quorum의 기공식을 한다는데,
어찌 안 갈 수 있으랴.






가기 전에 송재엽씨의 직업에 대해 알고싶어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더니, 부동산 투자의 귀재로 소개되어 있었다.
전공은 연극영화였으나, 부친께서 오래전 부터 경영해 온 건설 사업에 영향 받은 것 같았다.
'동원건설'은 충북 청주의 뼈대 있는 토목전문 건설 회사였다.






송재엽씨가 충주에서 단돈 4,000만원 들고 상경해 일구어 낸 것이 서울의 '동원건설'이란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동산 투자에 대한 성공담도 소개되어 있었다.






이번에 기공식을 갖는 ‘Alumni505-Quorum’은
건평 164평의 15층 건물이라는 데, 도산대로변에 명물 하나 탄생할 것 같았다.





정오무렵 기공식을 축하하러 찾아 나섰는데, 좀 일찍 도착해 버렸다
현장에는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는 분은 송재엽씨와 서용민씨 뿐이었다.





신축될 빌딩은 아트샵이나 개인 작업실 용도로 지어지는 것 같았다
순수회화를 전공한 아들 송자호군은 아버지의 건물 기공식에 화환을 세웠는데,
“펜트하우스는 제가 쓰겠습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벌써 자식이 입주예약을 한 것이다.






반가운 사람들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건축가 임태종씨를 비롯하여 임하룡, 조항선, 변문수씨가 나타났고,
술 안주로 큼직한 방어 한마리가 난도 질 당했다.





인사동에 약속이 있어 일어나고 싶었으나, '통인가게' 김완규씨가 온다기에 기다렸다.
그 날 임하룡씨가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지만,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오늘전'에 참여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인사동 가는 김에 전시장도 들려 볼 참이었다.





뒤늦게 관우선생과 이제훈씨가 나타났는데, 징을 들고 왔더라.
마치 무당처럼 돌아다니며 두들겼는데, 멋진 푸닥거리고, 고사였다.
이어 배일동 명창까지 나타나 술자리가 무르익었으나, 먼저 일어나야 했다.

관우선생도 약속 때문에 인사동 간다기에 따라 붙은 것이다. 
단지,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쉬웠다.






아무쪼록 성공적으로 완공시켜, 사업 번창하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한 해를 보내는 지난 31일은 왠지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몇 날을 송년회 핑계대고 퍼 마셨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종각 타종행사 같은 곳에 갈 수는 없잖아.

마침 ‘통인’의 관우선생께서 연락이 왔다.
낙원상가 밑의 ‘다리 밑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관우선생 단골집이지만, 좁아도 술집 분위기가 꽤 괜찮다.
마치 어린 시절 짚동 사이에 들어가 놀던 틈바구니 생각도 나지만,
집 이름이 너무 야하지 않은가?

인사동에 나가보니 낙원상가 가는 길이 꽁꽁 얼어붙어 몇 사람이나 넘어졌다.
연탄재라도 좀 뿌려야 했으나 요즘은 연탄재도 흔치 않다.
그런데, ‘다리밑 집’에 문이 잠겨 있었다.
연락했더니, ‘낙원아구찜’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관우선생을 비롯하여 송재엽씨 등 여러 명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미녀가 두분이나 있었다.
관우선생이 도예가와 큐레이터라고 소개했는데, 큐레이터라는 여인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사슴 눈처럼 큰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일 것 같은 애잔함이 가득한데,
약간 도툼한 입술은 모든 기를 다 빨아들일 것 같은 강한 마력을 갖고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걸 눈치 챈 송재엽씨가 얼른 자리를 바꾸었다.
이런 저런 씨잘데 없는 이야기 나누며, 소주로 한 해의 여독을 씻었다.

이차로 다른 곳에 간다지만, 난 서울역으로 가야 했다.
한 해를 보내는 즈음이라 노숙하는 친구들과 한 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사동 최고의 부자나 인생의 벼랑에 선 사람이나 술마시고 노는 건 별 다를 바 없다.
쪽방 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가 기초생활수급자라 사는데 별 걱정은 없지만,
노숙자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간이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욕심 부릴 게 없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대로 나누어 먹는 그들이 진정 비운 자라는 생각도 한다.

패트 소주 두병과 육포하나를 사들고 서울역으로 같다.
개찰구를 나오니 지하도 한 쪽 구석에 낯 익은 자들이 보였다.
이종민, 김종학, 김상훈씨등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낄낄거리고 놀았다.
총무를 맡고 있다는 김종학은 ‘종학이를 아느냐?’며 계속 천원만 달랬다.
서울역에서 종학, 종철, 종민, ‘쓰리 종’을 모르면 간첩이라며 유세했다.

마침 세밑이라 그런지 온정을 나누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외국인 가족이 각기 봉투를 들고 왔는데, 그 안에는 빵 하나 우유 하나, 양말 한 컬레, 핫펙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난 고맙다며 사진까지 찍었으나, 다들 시큰둥했다.
술이 취해 했던 소리를 되풀이하거나 가끔은 금지된 노랫가락이 튀어 나오기도 했는데,
지나가는 역무원들이 제지시키며 나가라고 종용했다.
몸에 상처를 입은 동자동 최씨는 ‘다시서기’직원들이 휠체어로 실어갔다.

이종민이가 카메라를 달래서 주었더니, 이런 저런 모습을 찍어댔다.
마침 경찰의 강제 해산에 직면해 어지러운 술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선물이 담긴 봉지는 챙기지도 않은 채 그냥 두고 갔다.
그런데, 정리를 하고 나니, 종민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가져간 카메라는 5년 전에 삼십만원에 구입한 NIKON Coolpix P310으로 지금은 단종 된 카메라다.
술자리에서 마구 사용한 고물이라 돈은 되지 않지만, 오늘 찍은 사진파일이 걱정되었다.
그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미인도 미인이지만, 같이 마신 친구들의 초상사진도 많았다.

다른 역으로 옮긴다면 모르겠으나, 서울역에 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한편으로 배신감도 일었으나, 아무래도 물욕은 아닌 것 같았다.
나에겐 소중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쓰레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분명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더 가까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라는 듯...
그들 무리에 합류하고 싶으나, 추위가 두려워 탐색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카메라를 빼앗긴 무장해제 상태가 되니 지갑에 돈 떨어지듯.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기관총 급인 라이카를 챙기러 동자동 방으로 올라갔다.
이 카메라는 고향후배인 사진가 하재은씨가 선물한 카메라인데, 

좋기는 하지만 술자리나 현장에서 막 쓰기는 불편하다.
찍히는 사람들도 피해의식부터 느끼니, 큰 행사나 많은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시 카메라를 챙겨 서울역지하도로 내려갔으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새로 나타난 어느 노숙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 깔고 누워 있었다.


하는 수 없어, 해 바뀌는 시점에 함께 축배 들기로 약속한 녹번동 정영신씨를 찾아갔다.
오늘 일기장에 올릴 사진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내 얼굴 한 장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내 밀었다.
신년 인사를 겸한, 강한 의지가 담긴 그런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되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낙원상가 계단 밑에 둥지 턴 ‘다리 밑’ 집은 추억을 일깨우는 정겨움이 가득하다.

이곳은 본래 담배포를 개조한 곳이라 간판도 없다.
탁자도 세 개 뿐이라, 열 댓 명 남짓 들어가면 꽉 찬다.
‘통인가게’대표 김완규씨는 외국 손님을 이곳에 안내할 정도로 단골이다.

안주로는 감자부침, 닭똥집, 뻔대기찌게 등이지만, 생맥주에 막걸리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김완규씨가 개발한 이 ‘막맥주’를 마셔보진 못했지만, 마셔 본 사람들의 인기가 대단했다.
통풍에는 맥주가 쥐약이라 삼가긴 하지만, 마시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다.

그런데, 입구에 자리가 있어도 굳이 담배가 진열된 계단 밑을 찾아간다.
키 큰 사람은 계단 턱에 걸릴 것 같은 낮은 곳이지만, 오랜 기억들을 끌어내는 아기자기함이 있어 좋다.

밀폐된 좁은 공간의 은밀함에 더해 상대방과의 대화집중력에 그지 그만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어린 시절 추억이란 게 골방의 구석진 자리나 뒤 칸의 숨은 공간들을 아지트 삼아 놀던 기억이다.

심지어 시골에서는 볏단 틈에 들어가 놀기도 했다. 일단 어른들의 시선에서 벗어 날 수도 있었지만,

자기만의 은밀한 공간이 좋았던 것이다.

지난26일 오후7시 무렵, 김완규, 송재엽, 연극박사 이동일, 윤경옥 내외와 어울려 다리 밑으로 기어들었다.

술집의 분위기 때문인지 그 날의 화제는 어린 시절 이야기 일색이었다.

김완규씨는 어릴 적 병아리를 무척 좋아 했다고 한다. 용돈만 생기면 병아리를 사 모아 일흔 여섯 마리까지 모았단다.

병든 병아리는 마이신까지 사 먹이며 애지중지 길렀는데,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모두 가마솥에서 삶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의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단다. 조금만 더 키워 야생으로 키울 야심찬 기대가 순식간에 물거품 된 것이다.

이동일씨는 집에서 키우던 개 네 마리가 한꺼번에 쥐약을 먹어 안타까워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고,

윤경옥씨는 팔려가던 개가 자기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린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말 못하는 가축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옛 생각에 빠져 들었다.

모두들 불편을 감수하며 이 좁은 집을 찾는 것은, 지난 시절의 추억도 추억이지만, 사람 사는 정이 그리워서일게다.

요즘은 이 집도 손님이 많아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인사동에 추억과 낭만을 파는 술집은 없는가?

사진,글/ 조문호




























지난13일, ‘통인옥션’에서 전시하는 고재권씨의 그림전에 들린 김에,

‘통인가게’ 김완규회장이 머무는 ‘상광루’를 급습했다.

마침 송재엽씨가 함께 있어, 졸지에 술판이 벌어졌다.

뒤늦게 산타는 조상희씨가 등장하기도 했으나, 사실은 김완규씨에게 건의할 일이 있어 들렸다.


‘인사모’에서 매월 한 차례씩 모임을 갖지만, 인사동을 위한 일을 한번 하자는 생각에서다.
‘인사모’와 ‘통인’이 협력하여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미술상을 하나 만들자는 제안이었는데,

이심전심이라 듯, 이미 그럴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에 술 맛 나는 자리였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1일, '통인가게' 김완규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에 맛있는 술집이 생겼으니 술 한 잔 하자는 것이다.

'통인가게' 회장실로 찾아갔더니 성악가 이동환씨가 와 있었다.

 

발렌타인 21년산을 선물 받았다며, 양주를 꺼내 마셨다.

그 날의 주된 화제는 어제 공연된 '통인오페라'에 대한 이야기였다.

감동을 준 공연이니만치 뒷이야기도 무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인사동 지나가는 행인들도 들을 수 있게 '통인가게' 이층 누각에서

공연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해 보았다.

 

몇 잔 마시다 새로 생겼다는 술집에 따라 나섰는데,

바로 낙원상가 입구의 담배 가게였다.

담배 가게 앞에 간이 텐트를 쳐 테이블 두 개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김호근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뒤늦게 나타난 송재엽씨 까지 합세하여 술을 마셨는데,

이 집의 특별 요리는 닭똥집이었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안주지만 맛있었다.

그리고 제육뽂음 등 다른 안주들도 괜찮은 걸로 봐

주인아주머니 음식 솜씨가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실내인 듯 바깥인 듯 아리숭한 집이라 끽연까지 가능했다.

 

사진, 글/ 조문호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약칭: 인사모)의 1월 정기모임이 지난 26일 오후6시30분 인사동 '툇마루'에서 열렸다.

이 날 모임에는 민건식회장을 비롯하여 10명의 회원들이 참석하여 만찬을 즐겼다.

 

 

 

 

 

 

 

 

 


인사모(인사동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1박2일 일정의 여행을 경상북도 상주로 떠났다. 

이번 나들이는 상주시 은척면 출신인 이상배, 김동주씨 주선으로 가게 되었는데, 지난 16일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상주옹기, 명주박물관, 곤충박물관, '은자골탁배기'공장, '고려왕검연구소', '동학교당', '묵심도예', 상주5일장 등을 돌아본 후, 이틀날 오후5시경 서울로 돌아왔다. 함께하신 분으로는 고위공직자인 이상배씨를 위시하여 녹색성장위원장 김형국씨 내외, 서화가 김양동씨, 통인그룹 대표 김완규씨, 동원건설 대표 송재엽씨, 서양화가 이목을씨, 건축가 김동주씨, 필자 등 모두 아홉 명이 함께해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이 번 상주 나들이는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었다.

이상배씨 덕분에 가는 곳마다 칙사 대접을 받았는데, 상주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보고 느낀 것들도 많았다.

명장들의 공방인 정대희씨의 '상주옹기', 칼을 만드는 이상선씨의 '고려왕검', 도자기 만드는 이학천씨의 '묵심도예' 등 이 지역 명장들의 작업현장을 골고루 둘러볼 수 있었고, 상주시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귀촌, 귀농에 대한 세미나도 들었다.

그리고 잠사곤충사업소에 들려 명주박물관과 곤충박물관은 물론 누에에서 명주로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둘러보았는데, 인근의 가로수마저 개량된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특히 3선 국회의원에 경북지사, 서울특별시장, 내무부장관, 정부공직자 윤리위원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이상배씨가 누에를 보며 던진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누에가 실을 다 풀어내고 생을 마감하듯, 자신도 누에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 공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고향에 잘못된 점을 알고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틀 동안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의 성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상주시 은척면에 동학본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제우선생의 동학이념을 계승한 김주희선생께서 상주동학교당을 창건하여 동학경전과 동학가사 등 대대적인 간행사업으로 이념 위주의 교세화장을 꾀했다는데, 이곳에 동학의 유물들이 전부 모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교당본부 건물5채를 비롯하여 유물 177종 1,084점이 전시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김주희선생이 타던 가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숙소로 정한 상주시 은척면에 소재한 성주봉 휴양림의 풍광도 일품이었다. 울울창창한 산림과 계곡 요소요소에 팬션을 지어 환경친화적인 숙소를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김동주씨 생가에 가서 또 한 번 놀랐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자택은 어떻게 지었을까?"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궁금했었는데, 옛 가옥을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해 놓았던 것이다. “툇마루나 문짝 하나하나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데, 어찌 다시 지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역시 손 안대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고의 건축이었다.

 

상주 은자골 터가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오래 전에 동학교당을 세운 것도 그렇지만,

이 깡촌에 이상배씨와 김동주씨 같은 훌륭하신 양반이 두 분이나 태어났으니 말이다.

잔치 집처럼 마당에 자리를 본 만찬장 또한 최고였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먹고 마신 여러 가지 음식들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었던, 그 곳 만의 진미였다.

 

손님들을 위해 정성껏 장만한 나물들을 보내 주신 이웃을 비롯해,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신 이상배, 김동주님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혼자 고기 굽느라 고생하신 이목을님, 먼 길을 도맡아 운전해 주신 송재엽님, 식욕을 주체 못한 김완규님 등 함께하고 반겨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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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인사모) 2월 정기모임이 지난 2월 27일 오후6시부터 인사동 ‘툇마루’에서 있었다.

이번 모임에는 민건식회장을 비롯하여 박일환, 김완규, 강봉섭, 김근중, 김동주, 김양동, 송재엽, 선우영, 조균석씨 등

열 한분이 참석했다.

빈대떡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는데, 이 집 막걸리는 맛은 있으나 술이 취하지 않아 제 구실을 못한다.

막걸리 몇 잔에 배가 불러 소주로 바꾸었는데, 술 잔을 단숨에 비우는 민회장님의 덫에 걸려 맛이 가버렸다.

‘툇마루’ 2층에는 급한 일로 박인식씨와 윤재문PD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술이 취해 난감했다.

이날 술값 스폰서는 이대에서 법 가르치는 조균석교수라지만, 매번 얻어먹는 입장이라 좀 민망했다.

참석한 분 중 네분이나 법조인이라 회장님께 간곡히 부탁 드렸다.

다음 차례 술값 마련하려고 사기 한 번 칠 작정인데, 잘못되어 잡혀가면 법정에서 변론 좀 해 달라고...
우스게로 한 말이지만 좀 거시기해, 한 탕 더 뛰어야 한다며 줄행랑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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