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상가 계단 밑에 둥지 턴 ‘다리 밑’ 집은 추억을 일깨우는 정겨움이 가득하다.

이곳은 본래 담배포를 개조한 곳이라 간판도 없다.
탁자도 세 개 뿐이라, 열 댓 명 남짓 들어가면 꽉 찬다.
‘통인가게’대표 김완규씨는 외국 손님을 이곳에 안내할 정도로 단골이다.

안주로는 감자부침, 닭똥집, 뻔대기찌게 등이지만, 생맥주에 막걸리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김완규씨가 개발한 이 ‘막맥주’를 마셔보진 못했지만, 마셔 본 사람들의 인기가 대단했다.
통풍에는 맥주가 쥐약이라 삼가긴 하지만, 마시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다.

그런데, 입구에 자리가 있어도 굳이 담배가 진열된 계단 밑을 찾아간다.
키 큰 사람은 계단 턱에 걸릴 것 같은 낮은 곳이지만, 오랜 기억들을 끌어내는 아기자기함이 있어 좋다.

밀폐된 좁은 공간의 은밀함에 더해 상대방과의 대화집중력에 그지 그만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어린 시절 추억이란 게 골방의 구석진 자리나 뒤 칸의 숨은 공간들을 아지트 삼아 놀던 기억이다.

심지어 시골에서는 볏단 틈에 들어가 놀기도 했다. 일단 어른들의 시선에서 벗어 날 수도 있었지만,

자기만의 은밀한 공간이 좋았던 것이다.

지난26일 오후7시 무렵, 김완규, 송재엽, 연극박사 이동일, 윤경옥 내외와 어울려 다리 밑으로 기어들었다.

술집의 분위기 때문인지 그 날의 화제는 어린 시절 이야기 일색이었다.

김완규씨는 어릴 적 병아리를 무척 좋아 했다고 한다. 용돈만 생기면 병아리를 사 모아 일흔 여섯 마리까지 모았단다.

병든 병아리는 마이신까지 사 먹이며 애지중지 길렀는데,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모두 가마솥에서 삶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의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단다. 조금만 더 키워 야생으로 키울 야심찬 기대가 순식간에 물거품 된 것이다.

이동일씨는 집에서 키우던 개 네 마리가 한꺼번에 쥐약을 먹어 안타까워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고,

윤경옥씨는 팔려가던 개가 자기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린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말 못하는 가축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옛 생각에 빠져 들었다.

모두들 불편을 감수하며 이 좁은 집을 찾는 것은, 지난 시절의 추억도 추억이지만, 사람 사는 정이 그리워서일게다.

요즘은 이 집도 손님이 많아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인사동에 추억과 낭만을 파는 술집은 없는가?

사진,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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